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당신 이야기의 유령 콘셉트는 낙관적인 것이지요? 유령이란 존재 자체가 사후세계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낙관적이지요.

  • 작성일 2026-06-01

  [레지던시 일기-서울프린스호텔]


  당신 이야기의 유령 콘셉트는 낙관적인 것이지요? 유령이란 존재 자체가 사후세계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낙관적이지요.1)


서윤빈

 

  우선 하나 고백하면서 시작하겠다. 나는 여태 진실한 에세이를 써 본 적이 없다. 일곱 권의 책을 냈으니 적어도 일곱 번은 에세이 내지는 에세이격에 해당하는 작가의 말을 썼다는 뜻인데, 그중에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것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아주 현실적으로 보이는 몇 편의 글에서도 나는 아무도 알지 못할 거짓말을 섞어 넣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쓸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별로 인기가 없는 사람이고, 인기가 없다는 건 내가 별로 흥미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일 테니까.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는 건 작가로서 죄를 범하는 일처럼 느껴졌으니까.

  문제는 이 글에서는 거짓말을 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원고 청탁 내용 자체가 호텔 프린스 ‘소설가의 방’ 사업에 선정된 작가의 <레지던시 일기>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소설가의 방’이 10년이 넘는 연식을 가진 장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상반기, 하반기에 각각 6명의 작가가 머물렀다고 치면 대충 추산해 봐도 여태 120명 이상의 소설가가 호텔 프린스에 머물렀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무언가를 꾸며내어 쓴다면 그들 중 누군가는 분명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깨가 딱딱하게 굳으면서 글이 턱 막혔다. 망상과 기현상 없는 글은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일단은 내가 벌인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일들을 떠올려 보자. 틀렸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유튜브 영상을 몇 편 찍은 것, 장편 소설 원고를 쓴 것, 가능한 조식을 챙겨 먹으려고 애쓴 것 정도가 전부였다. 남들 다 한다는 산책도 거의 하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명동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없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시트를 갈아주는 새하얀 침대의 느낌이 꽤 각별하기는 했으나… 그거야말로 120여 명의 작가가 다 아는 지루한 이야기겠지.

  하지만 그게 꼭 내 잘못이기만 할까? 지금 객실에 관해 생각하면 객실의 공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먼지 냄새와 함께 감돌던 어떤 끈적한 기운. 그 기운은 내 몸에 부드러이 달라붙어 나를 잠으로 이끌곤 했다. 혹시 그 기운이 수많은 작가가 거쳐 간 흔적이었던 건 아닐까? 얼핏 깨끗해 보이는 객실의 벽지와 침대 시트에 사실 앞서 머물렀던 작가들의 땀과 한숨, 권태가 지층처럼 쌓여 있었던 것이다. 작가 레지던시답게 ‘소설가의 방’ 중 한 객실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 귀신 역시 축적의 산물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귀신은 한밤중에 슬쩍 나타나 소설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렇게 속삭이겠지.

  — 특별한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아. 너도 알잖아.

  물론 내 방에는 귀신이 나오지 않았으니 귀신이 정말로 어떤 스타일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오해했다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하지만 나도 서운하다는 점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귀신을 만나고 싶었다. 내 인생에도 남들에게 이야기해 줄 만한 놀라운 일이 한 번쯤은 생기기를 바랐고, 한편으로는 귀신을 만나면 점점 무기력해지는 내 정신이 번쩍 들 것만도 같았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귀신에게 이런 걸 바라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인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당시의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름의 간절함으로 타자기를 사서 호텔에 체크인했을 정도로 말이다.

  내게 타자기는 비현실로 가는 매개체였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에서 주인공은 겨울 동안 폐쇄된 호텔의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타자기로 소설을 쓰다가 미치광이 살인마가 된다. 코엔 형제의 작품 <바톤 핑크>의 주인공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할리우드의 호텔에 머무르며 타자기를 두드린다. 그는 이내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웃기게도 그게 또 영감이 되어 글이 술술 풀린다. 폴 오스터는 타자기로 빵도 구웠다. 요컨대 핵심은 타자기다. 노트북을 들고 호텔에 체크인하는 요즘 영화에서는 귀신을 만나더라도 그게 노트북 탓인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지 않나. 게다가 생각해 보면 타자기에는 장점도 많다. 인터넷 접속이 안 되니 집필 이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쓴 글을 프린트하지 않고도 바로 볼 수 있다. 콘센트 위치가 번거로워도 충전 걱정 없이 글을 쓸 수 있다. 기원의 의미에서나 실리적인 의미에서나 내게는 타자기를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소설가의 방 문
침대 방 내부


  시작은 좋았다. 내게 배정된 방은 305호였다. 웹툰 <어서오세요, 305호에!>를 떠올리며 나는 내게도 놀라운 만남과 인연(적어도 귀신)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싱글 베드 두 개가 자리한 방은 깨끗했고, 화장실에는 욕조도 있었다. 책상이 따로 없어서 화장대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한다는 사소한 이슈만 빼면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나는 가져온 택배 상자를 뜯었다.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구매한 타자기를 나는 그날까지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보관하고 있었다. 타자기는 짙은 하늘색 플라스틱 케이스와 일체형이었으며 꽤 무거웠다. 뚜껑을 힘주어 열자 쇠로 만들어진 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지 않았기에 종이를 끼우고 첫 문장을 쓰기까지 약간의 연구가 필요했다. 나는 더듬더듬 첫 문장을 써 보았다.

  아ㄴ녀ㅇ하세요, 호ㅏㄴ여ㅇ하ㅂ니다.

  철컥거리는 경쾌한 소리와는 달리 종이 위에 찍힌 문장은 엉망진창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디지털 키보드와 달리 타자기에는 내가 자음을 입력할 때 이것이 종성인지 초성인지 유연하게 구별할 능력이 없다. 나는 망가진 글자들을 입력해 가면서 받침과 쌍자음, 겹받침을 그럴듯하게 쓰는 법을 익혔다. 잘 쓰지 않는 겹받침을 입력하기 위해서는 버튼을 무려 다섯 번이나 눌러야 했지만, 대개의 경우 디지털 키보드와 비교해 입력 절차가 하나나 둘 정도 추가되는 정도였다. 그쯤이면 낭만의 값으로 흔쾌히 지불할 만했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깥이 어둑어둑했다. 비록 제대로 된 글은 전혀 쓰지 못했지만 타자기는 벌써 자신의 효용을 입증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이토록 몰입해 본 것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3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그 뒤로 며칠 간은 글을 쓰며 보냈다. 귀신은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작은 방을 가득 채우는 타건음과 문장이 종이 끝에 도달했을 때 울리는 땡—하는 소리가 사뭇 만족스러웠다. 타자기로 열심히 종이 한 장을 채우면 워드 프로세서로 쓸 때와는 달리 원고지 4매 정도의 분량만 나온다는 점이나 글자를 선명하게 입력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이 뻐근하도록 힘을 주어야 한다는 점은 사소한 불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무릇 사건이란 모든 게 다 잘 풀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벌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고, 그 뒤로 내 집에는 한 번도 욕조가 있었던 적이 없다. 객실 화장실에 욕조가 있는 걸 발견한 첫날부터 나는 뜨거운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담그고 영감을 얻는 상상을 했다. 그날은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나는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타자기 앞에 앉았다. 단락 하나가 풀릴 듯 말 듯한 임계점이었다. 당시 쓰고 있던 소설은 일종의 메타 소설로 주인공이 게임의 메인 캐릭터를 구해내 현실로 돌아가는 내용이었다. 만약 게임 캐릭터가 자신이 게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캐릭터는 무엇을 시도해 볼 수 있을까? 꼭 시뮬레이션 우주론 같기도 한 내용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새끼발가락에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드디어 초자연적인 현상이 시작되는 것인 줄 알았다. 드디어 내 방에 워터홀(Water-hole)이 열렸나? 객실 바닥에 ‘디랙의 바다1)’가 형성되면서 그렇게 귀신이 나타나는 것인가? 하지만 고개를 숙여보니 바닥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수돗물이 있었다. 나는 뒤늦게 내가 욕조에 물을 받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과연 물은 화장실에서부터 꿀렁꿀렁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슬리퍼를 벗어두고 천천히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 가까워질수록 발바닥에 닿는 물이 따뜻해졌다. 문을 열자 가벼운 저항감이 들면서 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정강이 아랫부분까지 젖었다. 욕실 안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고, 바닥은 이미 물바다였다. 전등의 노란빛이 수증기에 맺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지점에서 욕조 구조에 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욕조는 직사각형으로 삼면이 욕실 벽에 딱 달라붙어 있다. 사람은 세면대 쪽으로 난 긴 면으로 드나드는 구조인데, 그 긴 면에는 거의 천장까지 빈틈없이 이어지는 유리 벽이 설치되어 있고 한가운데에 안쪽으로 열리는 문이 있다. 나는 물을 틀어놓은 다음 그 문을 닫아놓고 욕실을 빠져나온 모양이었다. 유리 벽으로 된 닫힌 공간 안에는 내 키만 한 물기둥이 있었다. 문 아래쪽의 작은 구멍이 물을 열심히 쏟아내고 있지 않았더라면 물기둥은 내 키를 넘겼을지도 몰랐다. 



  나는 물기둥에 완전히 압도당해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평생 이 정도의 물은 감당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수도꼭지를 잠그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만 했다. 나는 욕실 문을 닫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욕조의 유리문은 살짝 밀어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왼쪽 어깨를 문에 붙이고 힘차게 밀어붙였다. 문이 조금 열리면서 마치 바다에서 건져낸 사람을 인공호흡하는 데 성공했을 때처럼 물을 켁, 켁,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자  물은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왔다. 나는 문 손잡이를 부여잡고 조난자처럼 간신히 버텨냈다. 마침내 수도꼭지를 잠갔을 때, 욕실 안에는 무릎 높이의 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참사였다. 솔직히 그냥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욕실 문을 열면 사태가 더 악화될 터였다. 다행히 욕실 바닥에 배수구가 있었으므로 나는 이미 흠뻑 젖은 옷을 벗어 욕실 문틈을 막았다. 현실감이라고는 없는 광경 속에 유일하게 천연덕스러운 것은 욕조였다. 욕조 안에는 딱 욕조의 높이만큼 물이 차 있었다. 나는 물이 다 빠질 때까지 원래 목적했던 바대로 목욕을 하기로 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자 내 몸의 부피만큼 물이 넘쳤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이곳에서 귀신을 만날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이미 현실만으로도 벅찬 사람에게는 귀신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한참 뒤에 목욕을 마치고 욕실 밖으로 나왔을 때, 방에는 발톱 높이까지 오는 엷은 물의 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다행이랄지 불행이랄지 방이 퍽 건조했던 덕에 외출하고 돌아오니 물은 다 말라 있었다. 그러니까 뭐 결과적으로 별일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금세 일상을 회복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그날 이후로는 타자기를 잡아도 아무 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1) 스탠리 큐브릭이 영화 <샤이닝>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뒤 스티븐 킹에게 연락해 던진 질문.

1) 진공을 무한한 전자의 바다로 보는 이론적 모델. 전자는 음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레지던시 일기〉는 문학 레지던시에 머문 작가들의 에세이입니다. 입주 기간 동안의 하루와 작업 과정,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한 감각과 생각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작품 너머 창작의 현장과 작가의 내면을 함께 전합니다.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독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모색

제1회 서울제대로도서전, 또 하나의 작은 책 축제를 만나다

[도서전 참관기] 제1회 서울제대로도서전, 또 하나의 작은 책 축제를 만나다 정대훈 프롤로그 서울국제도서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늘 또 하나의 도서전을 찾았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최근 출판계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새로운 시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현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시간은 개장 약 30~40분 전. 예상했던 것처럼 행사장은 한산했다. 몇 년 전 서울국제도서전이 지금처럼 대규모 축제로 자리 잡기 전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드문드문 모여 있었고,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도서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들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 노들섬에 도착했을 때. 서울국제도서전의 여운을 안고 또 하나의 책 축제를 찾아왔다. 맑은 하늘만큼이나 오늘은 조금 여유로운 도서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개장 전 풍경. 아직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 있었다. 오래전 서울국제도서전이 지금처럼 북적이기 전, 그 시절의 익숙한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느긋하게 책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 책의 열기 개장과 동시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행사장 규모는 서울국제도서전의 대형 부스 몇 개를 합친 정도에 불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게다가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가지 않았다. 부스마다 멈춰 서서 책을 펼쳐 보고, 출판사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이동했다. 덕분에 행사장의 동선은 한참 느렸지만, 그만큼 책을 중심으로 한 시간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족 단위 관람객과 어린이를 동반한 방문객도 많았고,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단체 관람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어린이책과 그림책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출판사 부스의 분위기였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젊은 직원들이 운영하는 부스를 많이 볼 수 있었다면, 이곳에서는 작은 출판사의 대표나 편집장이 직접 독자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책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 더 깊게 이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 불과 몇 분 만에 달라진 풍경. 조금 전까지 한산했던 공간은 개장 시간이 다가오자, 순식간에 긴 대기 줄로 바뀌었다. ‘오늘은 여유롭게 둘러보겠구나’ 했던 기대는 이때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던 내부.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출판사와 독자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발걸음은 느렸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책 위에 머물러 있었다. 도서전의 또 다른 즐거움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이번에도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조선대학교 양경언 문학평론가였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그랬지만, 도서전은 책만 만나는 공간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업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묻고, 짧은 대화 속에서 새로운 소식도 듣게 된다.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다시 연결되는 장소라는 점에서

  • 정대훈
  • 2026-07-01

문장웹진 모색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와서

[도서전 참관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와서 정대훈 1. 다리가 아팠다, 그런데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다리가 아팠다. 서울국제도서전에 들어선 지 네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분명 책을 보러 왔는데 이상하게 계속 걷고만 있었다. 한 부스를 보고 나오면 또 다른 부스가 나타났고, 저쪽에 사람이 몰려 있어, 가보면 또 다른 줄이 있었다. 잠시 앉아 쉬고 싶었다. 그런데 앉을 곳이 없었다. 커피 한잔 마시며 오늘 본 풍경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지만, 행사장 안 카페는 이미 만석이었다. 결국 사람들이 선택한 곳은 전시장 한쪽 벽과 통로였다. 누군가는 가방을 베개 삼아 쉬고 있었고, 누군가는 오늘 받은 전단과 굿즈를 정리하고 있었다. 책은 느린 매체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책을 펼치고, 페이지를 넘기며 머무는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 그런데 책 축제에 온 사람들은 멈추지 못하고 계속 걷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 이상한 것은 아무도 쉽게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와, 너무 많다. 어디부터 봐야 하지?” “아 힘들다.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은데 자리도 없네.” 힘들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다시 다음 부스를 향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책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 이상한 모순에서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을 바라보는 질문이 시작됐다. 2.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 책을 사러 온 사람들일까, 그냥 책 곁에 있고 싶은 사람들일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사람들이었다. 특히 젊은 여성 관람객들이 많았다. 20대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방문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행사장 곳곳을 누볐다. 그런데 조금 걷다 보면 묘한 장면이 보였다. 길게 늘어선 줄. 그런데 그 줄 끝에는 늘 책이 있지는 않았다. “여기 줄 서 있는 거예요?” “이벤트 참여하시려면 저쪽 끝부터 서셔야 해요.” 사람들은 이벤트를 기다렸다. 한정 굿즈를 찾았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 상품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조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책 축제인데 책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처음에는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행사장을 오래 걷다 보니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들은 책을 영영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책 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아닐까. 과거에 비해 지금의 독자는 조금 복잡하다. 좋아하는 출판사의 세계관을 소비하고, 책 주변의 귀엽고 탐스러운 물건들을 소유하고, 작가와 연결되는 어떤 새로운 경험을 꽤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책은 목적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출입구가 되고 있었다. 3. 가장 작은 공간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람들 — 어쩌면 독립 출판이 보여준 취향의 힘? 첫날. 흥미로운 것은 크고 화려한 부스에만 사람들이 몰렸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인파가 가장 천천히 움직였던 공간 중

  • 정대훈
  • 2026-07-01

문장웹진 모색

공허 view

[레지던시 일기 – 협성마리나 G7] 공허 view 정용준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하지 않기’였다. 뭘 하려는 노력은 그만두고 뭘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일찍 일어나는 것. 까다로운 연락을 주고받는 것. 확인하고 결정하고 결심하는 것. 크고 작은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 사느라 바빴다. 어떤 이유로, 혹은 이유도 모른 채, 분주했다. 급한 일에 시달렸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는데 처리하려 들었고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정작 소중한 일이나 가치 있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뒤로 미루었다. 이상하다. 의미 있는 일은 안 하고(못하고) 무가치한 일에 온 힘을 다하는 삶이라니. 살기와 쓰기는 겨룰 수 없다. 둘은 체급이 다르다. 쓰기는 살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살기의 눈치를 봐야 쓰기는 존재할 수 있다. 살기가 자리를 비우거나 잠이 들어야 비로소 초원에 나올 수 있는 약하고 약한 쓰기. 일상의 사각에 숨어 읽고 쓰는 것. 그것도 대단하지만, 그만큼 소중하지만, 때로는 생각한다. 삶의 운동장 전체를 다 사용해서 쓰면 얼마나 좋을까. 페소아가 그랬듯이 온종일 허구의 존재들하고만 놀면 얼마나 좋을까. 두려움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몇 개로 가능하다면 수십 개로 분화해서 모두에게 삶을 허락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과 공상으로 사면을 채워 그 안에서 영원해지고 무한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협성마리나 G7 39층 숙소. 그곳을 떠올리면 차가운 2월의 허공이 느껴진다. 커다란 창밖으로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 1,200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 창문에 이마를 대고 멍하니 그것들을 봤다. 그렇게 있는 것이 좋았다. 허공에 떠서 아래를 바라보는 3인칭 화자의 기분은 이렇겠지. 높은 고도와 그만큼 텅 빈 풍경. 이따금 새가 날고 몇 차례 비가 내리는 것 외엔 언제나 비어 있던 저 허공. 거기에 눈을 두고 오래 있으면 곧 공허해졌다. 나는 그 풍경을 미술관의 그림처럼 응시했고 그 작품의 이름을 ‘공허 view’라고 지었다. ‘공허’의 정의가 궁금해서 사전에서 찾아봤다. 내부 감정이 황폐해지고 환상과 소망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하지 못하거나 단순히 기계적인 반응만을 보이는 주관적인 정신 상태. 이런 상태에서 개인은 확신, 열성, 타인들과의 연결됨을 상실하고 무감각, 권태 그리고 피상적인 감정에 시달린다. 대부분의 설명과 표현에 동의하지만 ‘황폐’, ‘기계적인 반응’, ‘시달린다’에는 수긍하기 어렵다. 내부 감정의 구조와 지탱하고 있는 것들이 무너질 수는 있다. 무너질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그 풍경을 황폐하다고 할 수는 없다. 대청소를 하려고 물건을 빼놓은 빈방을, 새 물을 채우려고 물을 다 뺀 수영장을, 더럽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그 ‘뷰’는 공허했

  • 정용준
  • 2026-07-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