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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만난 호주

  • 작성일 2026-09-01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가림막과 조명으로 초현실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높은 절벽을 상징하는 이 회전판은 갈등의 공간으로 때로는 성공의 공간으로 상징되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춤과 노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너무나 완벽했다. 중간중간 객석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배우들의 모습도 공간을 더 넓고 다채롭게 보이게 했다. 보는 내내 뮤지컬을 좋아해서 혼자서도 열심히 보러 다니는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과 함께 봤다면 참 좋아했을 텐데’ 언젠가 아들과 함께 이곳에 앉아서 보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2. 시드니 작가축제

  오래된 낡은 건물인 Carriageworks에서 열린 시드니 작가 축제는 공간에 반했던 일정이었다. 전시 기획도 하고 공간연출에 관심이 많았던 내게 작가 축제가 열리는 이곳은 무언가를 꾸미고 만들고 싶은 내 안의 기획 욕망을 꿈틀거리게 하는 곳이었다. 아마도 예전에 공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인 것 같은 이 공간은 낡은 벽과 여전히 남겨둔 공장 기물들의 흔적과 그 사이에 축제를 위해서 만들어진 깔끔한 공간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책을 자유롭게 펼쳐두고 볼 수 있는 공간과 강연을 위해서 만든 또 다른 공간에서 열리는 작가 강연들.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준비하는 이들의 열정이 느껴졌고 책을 좋아하는 호주사람들이 아침부터 많이 찾아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모습도 좋아보였다. 서울국제도서전이 이런 곳에서 열린다면 어땠을까? 동행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인천에서도 이미 이런 폐공장 같은 공간에서 책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다음에 꼭 한번 가서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3. 호지어 레인(Hosier Lane) 그래피티 예술 거리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배경이 되었던 그래피티 골목(거리라고 하기에는 좁은 길) 이 호지어 레인 그래피티 예술거리이다. 이 드라마는 도대체 언제 적 드라마인가? 찾아보니 2004년이란다. 우리 소간지가 도대체 몇 살이었던 거야? 아무튼 이 드라마의 강렬한 시각효과 때문인지 이곳은 ‘미사거리’라고도 불린다고 했다. 바로 옆 골목만 해도 깨끗한데 이 곳만 유독 그래피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도시미관을 해치는 낙서로 취급받다가 점점 많아지게 되고 그러다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어버려서 그래피티로 가득 채워진 골목이 되었다고 한다. 

  벽화를 많이 그린 내가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림위에 또 다른 그림이 층층이 쌓이고 그 색감들이 더해져서 아름다움이 더해졌다. 아무도 계획하며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이미지들이 쌓여갈수록 다른 곳에서는 따라올 수 없는 이 골목만의 멋짐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SNS의 시대가 아닌가? 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화려한 색감이 배경의 역할을 하니 사람들이 많이 찾을 수밖에 없었다. 유명하지 않아도 그림을 사랑하는 거리의 작가들이 쌓아서 만든 거리의 미술관이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머물게 하는 것. 이런 게 예술의 힘이 아닐까? 



  4. 퍼핑빌리 레일웨이 Puffing Billy Railway

  무성영화에서나 보던 증기기관차를 타고 멜버른의 산속을 달리는 열차이다. 벌써 100년이 넘어서 이제는 사라져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유산을 시민들의 힘으로 다시 되돌려놓은 마을의 스토리가 인상적이었다. 산간 지역의 화물열차이며 주민들의 교통수단으로 역할을 다했던 증기기관차가 산사태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 이를 아쉬워했던 주민들이 기적적으로 다시 살려내어 지금은 중요한 관광자원이 된 것이 이 열차였다. 시속 20km도 되지 않는 느린 열차가 뿜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산중턱을 달리고 나무 사이를 달린다. 사람들이 창틀에 다리를 내놓고 평화롭게 가는 이 느린 기차는 빠르게 달려가는 이 시대와 어울리지 않아서 더 매력적이었다. 천천히 호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며 장난감 같은 마을 사이를 달리다 보면 아날로그 감성이 폭발했다. 아름다운 호주의 풍경과 달리는 기차를 향해 손 흔들어 주는 마을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천천히 두 눈에 가득 담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5.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그림을 공부한 내가 가장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곳은 미술관이다. 멜버른에 있는 NGV에서는 다양한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었다. 피카소, 베이컨, 마크 로스코 같은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술관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도 있었는데 전시를 보고 한국에 이 시간에 이 현대미술의 거장은 고인이 되셨다. 다시 사진을 돌려보니 그의 작품이 더 소중하게 보인다. 미술관의 콜렉션이 엄청나게 유명한 작품이 많지는 않았지만, 호주 원주민 미술가들이 그림도 인상적이었고 고전주의 풍의 그림들도 호주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 흥미로웠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도기부터 현대의 패션을 소개하는 공간까지 흥미롭게 본 전시였다. 꼼꼼하게 다 보려면 몇 일은 걸릴 것 같아서 제대로 못 본 게 아쉬운 시간이었다. 



  서점에서 분장을 하고 그림책을 읽어주는 아름다운 풍경들, 산속 깊은 동네에 자리 잡은 낡은 헌책방의 풍경들,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하는 호주인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들, 아침 일찍부터 일터로 향하는 호주인들의 부지런한 발걸음들, 처음으로 들어가 본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 건축물의 아름다운 모습들,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그림책 작가의 원화 전시, 비비드 시드니 라이트 축제의 일환으로 밤에 다시 찾은 오페라 하우스의 아름다운 모습들, 거대했지만 아름다웠던 보타닉 가든의 멋진 나무들.

  스냅사진처럼 남아 있는 호주에서의 소중한 시간과 함께 동행했던 작가님들과 도서관 사서님들, 책방지기 그리고 친절하게 우리를 이끌어 주셨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직원들의 모습까지. 이제는 앨범 속으로 차곡차곡 쌓아두어야겠다. 나는 또 30년 뒤에 호주를 어떻게 기억할까? 아마도 이번에는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문학상주작가지원사업 2025년 우수시설에 선정된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호주 시드니작가축제 및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인 멜버른을 탐방하고 우수사례를 경험하였습니다.
  2026년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7박 9일간 참여자들의 호주 국외연수 후기는 문장웹진-모색 9월호에서 총 6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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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산책

[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명동 산책 도재경 몇 해 전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하던 한 학생에게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학생에게 허풍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솔직하게 답변한다는 게 고작 맥주를 마시며 놀 궁리를 한다는 거였다. 대답하고 나니 어쩐지 궁색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며 노는 게 아니라 궁리를 하는 거라고……. 궁리를 한다고? 꼴에 선생이라고 자못 젠체한 듯해서 뒤통수가 가렵다.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끄적거릴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종국엔 멍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대체 온종일 뭘 했나 자책감이 들면서도 그러한 상태야말로 창작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라고 합리화하곤 한다. 지난여름 명동에 자리한 서울프린스호텔의 ‘소설가의방’에 입주한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침구류는 새것처럼 빳빳해져 있었고, 물기 하나 없는 욕실에는 보송보송한 수건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허기질 일도 없었다. 늦잠을 자느라 곧잘 조식을 거르곤 했지만 호텔의 ‘이층서가’나 인근 식당에서 언제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라운지에는 쿠키나 주스 등 간식도 가득했다. 그랬다. 분에 겨울 정도로 호사스러운 일상에서 부끄럽게도 불철주야 온갖 공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중 하나는 전기밥솥에 관한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돌멩이에 관한 거였다. 전자는 탈고를 앞둔 장편소설의 소재였고, 후자는 곧 쓰게 될 단편소설의 글감이었다. 퍽 다행스럽게도 호텔에서의 일상은 밋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집필을 핑계로 죄다 퇴실 이후로 미루었고, 무더운 한여름에 호텔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대부분을 객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좀이 쑤실 때면 산책 삼아 호텔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호텔에서 남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 초입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는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특별할 게 없는 풍경이라 도리어 생경했다. 말없이 멍만 때리다 보면 입안이 퍼석퍼석해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몇몇 동료 작가들이 입주해 있었다. 함께 식사하고선 소화를 시킬 겸 당구를 치며 각자의 공간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서로 위로 삼곤 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어쩐지 반(半)백수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듯해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회적 활동(?)이란 걸 하긴 했다. 7월 초에는 장흥에 계시는 한 원로작가님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7월 말에는 세종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는 딱히 이벤트랄 게 없었다. 어찌 됐든 소설을 쓰기 위해 입주했으니 모쪼록 심심한 날들만 이어지길 바랐다. 비가 그친 어느 날 오전이었다. 객실 창밖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연두색 사마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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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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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책장지기의 기록

[문학의 곁] 책장지기의 기록 ― 문학이 동사가 되는 시간 하림 올해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일 년 동안 문학 행사를 함께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라는 이름의 행사였다.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문학 행사라는 설명과 함께 진행을 부탁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문학 관계자도 아닌 내가, 북플루언서도 아닌 내가 이런 자리를 맡아도 될까 싶었지만, 노래라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 계절 나주로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3회차까지 마치고 처음으로 쫑파티를 제안했다. 요즘은 공연이 끝나도 쫑파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이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회식 자체를 권하는 일이 괜히 민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탓도 있는 것 같다. 우려와 달리 모처럼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동안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무엇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은 성공이 누구의 공인지 서로에게 돌리며 웃고 떠들다가, 그 자리에서 이 원고를 청탁받았다. 맥주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흔쾌히 쓰겠다고 했다. 제안받은 글의 주제는 ‘문학의 곁’. 하지만 나는 문학의 ‘곁’에 있기보다는 문학의 ‘주변인’에 가깝다. 주변에 작가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을 향한 나의 애정도 친구들에 비하면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최근에는 꽤 많은 양의 책을 좋은 곳에 입양 보냈다. 작업실과 집 구석구석을 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책더미를 바라보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생긴 책장의 빈 공간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을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전자책도 많이 산다. 전자책은 공간에 대한 죄책감 없이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전자책은 특유의 손맛이 없어 정이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움이 될 팁을 하나 건네자면 서점에 들러 실물 책을 조금 만져보고 물성을 느끼고 나면 조금 나아진다. 어쨌든 언젠가는 내 스마트폰의 e북 앱이 SNS를 누르고 스크린 타임 1위에 오르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책들을 대거 정리하고 달라진 점이 또 있다. 마치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가듯 도서관을 드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 종종 오전 러닝을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동선에 구립 도서관이 포함되어 있다. 의미 없는 찬사와 자기과시로 점철된 술자리를 보낸 다음 날, 털려버린 영혼을 다시 채우고 전날의 죄의식을 씻어내 주는 곳은 천천히 달리는 하천가 산책로와 도서관이다.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서는 것이 조금 쑥스럽고 미안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얼른 들어와 책장 사이를 가만히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마르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늑한 골목 같은 서가에서 책등을 훑으며 거닐다 눈에 걸린 책 한 권을 들고 나온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이 마음에 들면 ‘득템’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는 조금 이상한 독서 습관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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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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