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 작성일 2017-05-01

[글틴 스페셜_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감상&비평 부문 수상작]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김성호



– 멀리 가는 이야기_김보영


내가 글틴에 온 지도 어느 덧 3년째이다. 이야기글에선 거의 뿌리를 내리다시피 살았는데, 나는 내 글을 평해 주시는 선생님이 어떤 소설을 쓰는지, 어떤 작가인지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다. 그저 담임선생님처럼 이름 석 자만 외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이번에야 그 선생님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나는 <멀리 가는 이야기>라는 단편집을 통해 김보영이라는 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단편집은 다섯 개의 단편과 하나의 연작시리즈로 이루어진 SF소설 단편집이다. 평소에 장르문학이라면 판타지나 공포 쪽을 답습해 오던 나로서는 SF소설 입문작인 셈이다. SF라는 장르가 그리 내 흥미를 끈 것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과학을 싫어하는 탓에 SF소설은 뭔가 이해하기 복잡한 실타래로 여겨졌다.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SF 입문작으로서 이 작품은 매우 적절했다. 기존의 SF에 대한 나의 편견과 벽을 허물어 준 고마운 소설이다.
흥미롭게 읽은 작품을 꼽아 보자면, ‘다섯 번째 감각’, ‘우수한 유전자’를 뽑을 수 있다.
‘다섯 번째 감각’은 비단 이 단편집을 떠나, 내가 읽어 본 소설 중 명작 반열에 올려놓아도 될 만큼 나와 꼭 맞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알 듯 말 듯, 오묘한 감각의 선을 독자의 머릿속에 그려내며 어딘가로 데려간다. 언니의 죽음과 언니가 사고 났을 때의 자신(주인공 연주)의 행동을 조사하러 온 경찰관, 그리고 경찰관이 말한 사이비종교. 이 세 개의 흐름이 맞물리면서 독자는 첫 문장부터 느꼈던 그 오묘함의 정체를 깨닫는다.
청각. 이 소설의 주제이자 설정이자 커다란 줄기인 ‘청각’이다.
이 세계에서는 말로 대화를 하지 않고 수화로 대화한다. 말을 하지 않으니 음악이 있을 리 없다. 그 사실이 이 소설의 첫 번째 반전이다. 나는 추측해 보았다. 귀라는 기관이 퇴화된 세계인가,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청력을 잃은 사람들의 세계의 이야기인가. 그러한 궁금증은 신흥 사이비종교의 특징이라던 ‘입을 오물거리는’ 행위에서 더 극대화된다. 입을 오물거린다, 이 표현이 얼마나 낯설던지. 우리는 흔히 소리 내어 의사소통을 하는 행위를 ‘말하다’로 표현한다. 말하기 이전에 입술이 움직이는 그 형태를 우리는 생각할 일이 거의 없다. 입을 오물거리는 것은 뭔가를 씹거나 먹을 때 주로 묘사하는 표현이다. 말을 하지 않는 소설 속 세계에서 음식을 섭취할 때를 제외하고 입을 쓰는 일은 없다. 경찰은 말을 하는 행위, 소리를 듣는 행위를 초능력쯤으로 간주한다. 소리를 듣고 소리를 내는 행위는 우리가 지팡이를 휘두르고 마법주문을 외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능력의 범주를 벗어난 ‘초능력’으로 여겨진다.
입을 오물거린다는 표현이 말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윤성이 등장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주인공인 연주는 죽은 언니에게 온 편지에 적힌 주소로 찾아간 한 카페에서 윤성을 만난다. 그가 입을 오물거리는, 그러니까 언니가 살아생전 빠져 있었다는 그 사이비종교의 특징을 내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윤성에게서 ‘행복해지는’ 박수 치기를 배운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녀에게(윤성과 같은 초능력자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허공에 손을 맞부딪치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이다. 윤성은 그녀를 자신과 같은 초능력자들의 아지트로 안내한다. 그곳 아지트에는 다양한 나이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녀는 거기서 죽은 언니가 살아 있을 때 했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이해하게 된다. 언니가 기괴하게 몸을 이리저리 놀리는 것은 ‘춤’을 추는 것이었고, 그 춤은 소리, 즉 ‘노래’에 맞춰 행해지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떠나간 언니의 빈자리가 있다. 윤성과 그들은 손으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귀가 먹먹해지는 공기의 파동을 이용하여 ‘입’으로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들이 그녀에게 악기를 이용한 ‘노래’를 들려주었을 때, 연주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인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모르던 내 몸의 감각이 깨어난다면?
그녀는 그런 상황이었다. 평생 닫혀 있던 문이 갑작스레 열리며 쏟아져 들어온, 이(異)세계의 존재는 그녀의 청각을 일깨운다. 윤성은 그녀에게 당신도 언니처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녀는 아니라고 한다. 그녀는 완강히 그 사실을 거부한다. 연주에게 윤성과 그들은 경찰의 말마따나 ‘초능력자’, ‘외계인’쯤으로 보였을 터였다.
그때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경찰에게, 정부에게 ‘청각’은 사이비종교, 이단이다. 정부가 청력이라는 감각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은폐하고 있었는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청각은 정부(권력)의 통제와 지배의 도구로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부라는 소수의 몇몇 사람들이 다수 인간의 한 감각을 통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멋진 신세계>를 떠올려 보면 그리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한 감각을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손쉽게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겠는가? 누군가를 길들이거나 조종할 때, 물리적인 폭력과 억압보다는 정신적인 세뇌가 더 효과가 있는 법이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 인간의 본능적 감각을 통제하는 것이다. 단순히 인간의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과 사상, 나아가 본능까지, 진정한 인간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세계의 정부는 청각을 통제하고 있다. 갓 태어났을 때부터의 감각 차단 세뇌의 발현일 수도 있다. 소리가 없는 세계는 많은 것이 은폐되기 쉽다. 죽어 가는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구원을 요청하는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사람은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그 존재의 ‘실체’와 ‘진실’에 좀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고, 맛보고, 들으면서. 그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린다면 그만큼 우리는 그 존재의 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들을 피해 윤성과 함께 도망친다. 침묵의 세계에선 도망가는 죄 없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무고한 사람들을 쫓는 이들의 군홧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육안으로 보이는 현실에서 그녀와 윤성은 범죄자이다. 정의와 진실은 침묵에 묻힌 상태이다.
연주는 자신이 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순간 ‘비명’을 질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꺄악, 그것은 침묵을 벗겨낸 감각의 본능이었다. 거기서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할 수는 없다.’ 때로 우리 사회에서는 그 지배를 시도하는 억압이 가끔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억압 속에서도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의 감각을 잊지 않고 있다. 정의를 부르짖는 목소리와, 다른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는 발소리, 의지에 가득 찬 노랫소리를.
그녀는 노래를 부른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소리를 내고, 음을 붙여 노래를 부른다.
우리에게도 소설 속 세계 사람들의 ‘다섯 번째 감각’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그 감각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뿐.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소름 돋는다.
‘우수한 유전자’는 짧고 강렬한 이야기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반전을 이해했을 때, 나는 누가 뒤통수를 세게 때리고 지나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소설에서 세상은 두 세계로 나뉜다. 고도의 과학기술과 문명을 이룩한 ‘스카이돔’ 시민들과 질병과 죽음이 만연한 원시적인 ‘키바’ 사람들의 세계이다. 주인공은 스카이돔에서 키바로 파견 나온 조사관으로, 자신의 눈에는 한없이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는 키바 주민들을 돕기 위해 왔다. 그곳에서 그는 마을 이장의 집을 방문하여, 스카이돔의 키바에 대한 물질적 지원에 대해 설명을 한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유에선지, 이장은 자신들의 스카이돔을 위한 헌신과 조공을 흐뭇해하며 스카이돔의 어떠한 지원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지능지수, 교육, 실력 등에서 스카이돔과 키바의 경계를 가르는 건 ‘유전자 판별기’의 존재이다. 열성 유전자와 우수한 유전자를 판별하여 키우는 것이다. 주인공은 유전자 판별기 역시 단 한 사람도 사용하지 않은 키바 주민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의구심만 가득하다.
소설 중간 중간에는 주인공이 쓴 듯한 기록 비슷한 것이 있다. 거기서 그는 키바 주민들을 향한 연민과 스카이돔 시민과의 차이 인정 등을 얘기한다.
주인공은 홍역에 걸린 아기를 치료하는 이장의 주술 행위를 가만히 지켜보지 못한다. 나서서 이장을 밀치고 아기를 구하려 한다. 하지만 아기는 이미 죽어 있다.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주인공이 쓴 중간의 기록에서도 그는 아기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소설은 180도 고개를 홱 비튼다. 나는 후반부까지 그 중간의 기록이 스카이돔 시민인 주인공의 ‘키바 방문기’, ‘키바 시민들을 만나고 나서’ 따위의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 기록은 정반대의 시선이었음이 드러난다. 키바 주민의 스카이돔에 대한 글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거기 나왔던 모든 연민과 차이, 분노는 모두 스카이돔 시민들에 대한 것이었다. 스카이돔은 화려한 문명이 발달한 세계가 아니라, 너무 연약하여 감히 그 돔 밖을 나올 수 없는 존재들의 인큐베이터에 불과했다.
여기서 나는 의문을 던진다.
‘원시적’이고 ‘문명적’인 것의 기준과 판단은 무엇이며, 우리가 무슨 기준으로 ‘열등’과 ‘우수’를 판단하는가?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라는 것을, 소설의 마지막 반전은 말해 주고 있다. 우리가 원시인이라고 생각한 그들이 보기엔 우리가 ‘원시인’인 것이다. 그것은 모두 상대적인 개념이며, ‘남보다는 내가 낫다’는 식의 인간의 자기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한 허울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우리는 나날이 계속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문명의 도약’이자 ‘인류의 진화’라고 여길지 모르나, 그만큼 자연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후퇴이자 퇴화에 불과하다.


이 두 작품은 내게 많은 생각거리와 문제를 던져 주었다. 이만큼의 깊이와 재미를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특히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서는 말이다.
다만 아쉬움도 존재한다.
‘촉각의 경험’ 같은 경우는 클론의 꿈을 통한 인간과 클론 사이의 교류라는 점이 흥미로웠으나, 이야기의 폭발성이나 극적인 부분의 부재를 느꼈다.
‘종의 기원’은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인간이 로봇을 탄생시킨다는 사실을 역으로 풀어낸 이야기이다. 로봇이 인간을 탄생시키고 파멸시키는 이야기. 그들이 ‘신’이라 믿는 존재는 인간일 테고, 그들은 자신들을 창조한 신을 창조하고 파멸시킨 셈이다.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주인공 케이 히스티온의 ‘종족 보존’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불러일으킨 인간의 치명적이고 완벽한 아름다움의 상충됨은 모든 피조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갈등이 아닌가 생각한다. 피조물의 본능은 창조주에 대한 숭배와 헌신인가? 피조물의 창조주에 대한 시기심, 이라는 질문도 해보게 된다.
‘미래로 가는 사람들’ 시리즈는 주인공이 각각 겪은 에피소드를 기, 승, 전, 결의 순으로 엮은 것인데, 이해하는 데 시간이 다소 걸렸다. 우주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래서 그만큼 더 신비스럽고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이해하기가 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이 세계가 정확히 어떤 세계인지, 세계관이 모호한 점이 아쉬웠다. ‘기’ 부분의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굳이 말하자면 독자에 대한 배려가 조금 더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미묘한 점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렇지만 행성과 존재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남은 자들을 그린 이야기에 나는 본능에 이끌리듯 빠져들었다.
나는 한국 문학을 잘 읽지 않는 편이고, 더군다나 한국 ‘장르문학’은 읽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내게 우리나라 장르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SF의 매력과 개성을 실컷 뽐냈다. 단편집의 제목 ‘멀리 가는 이야기’처럼 우리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얼마나 삶의 영역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지 궁금하다. 작가의 다른 단편집과 장편소설을 읽을 날이 기다려진다.
좋아하는 한국 작가가 한 명 더 생겼다는 점이 독자로서는 기쁠 따름이다.











김성호
작가소개 / 김성호(글틴 필명 : 아그책)

1998년생. 2016년도 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감상&비평 부문 수상자
가좌고 문예창작동아리 '창작사모' 1기로 활동하였고, 청소년문화연대 웹진 '킥킥'에 <고3 아그책의 시사소년 표류기>를 연재하는 중이다. 현재 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글을 쓰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는 스티븐 킹과 정유정, J.K.롤링, 윤이형 등이다.
(위 작품은 2016년도 사이버문학광장 글틴 감상&비평 게시판 3월 월장원 선정작으로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문장웹진 2017년 05월호》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모색

가르치는 문학, 배우는 문학, 자라나는 문학

[문장서포터즈] 가르치는 문학, 배우는 문학, 자라나는 문학 (인터뷰이: 조인혜, 고등학교 국어교사) 문장서포터즈 2기 김성호 문학은 단순히 독자와 작가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독자와 작가가 되기 위한 그 과정, 여로를 봐야 한다. 그 여로엔 다양한 존재가 있지만, 나는 그중 학교 현장에서의 교사와 학생 간의 공간에 주목했다. 2025년 10월 23일, 합정역의 한 카페에서 조인혜 선생님을 만났다. 9년 전 모교의 국어 교사였던 조인혜 선생님은 인터뷰 내내 진지하고 활기차게, 자신의 독서론과 더불어 서포터즈 질문에 답해 주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조인혜입니다. 배우는 경험을 좋아합니다. (사진1. 조인혜 선생님의 오브제인 뉴욕도서관 에코백) Q. 평소에 문학을 즐겨 접하시나요? 특히 즐기시는 장르나 분야가 있다면요? - 음, 소설을 제일 많이 읽어요. 제일 좋아하는 장르이고요. 책 대화 모임을 4년째 하고 있기도 합니다. 잡지 독서평설과 출판사 사계절 콘텐츠에서 청소년 소설을 읽고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문학을 접하고 읽고 소개하고 가르친다는 건, 일적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에요. 물론 시도 좋아해요(웃음). 쉽지 않지만 시창작 모임을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시 창작 활동을 같이 하기 전에 먼저 저 스스로 배우고 체득하려고 그래요. 그래서 소소하게 문집도 내고요. 시가 어렵지만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희곡은 상대적으로 적게 읽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SF 소설을 많이 읽었고요. 딱히 가리는 건 없고, 그때마다 빠지는 장르나 분야가 있어요. 무엇보다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 아무래도 좋은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Q. 최근에 그런 작품이 있었는지요? - 박지리 작가의 작품입니다. 다만 어두워서 아이들에게 쉽게 풀어서 얘기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최진영, 김애란 작가의 작품도 좋았어요. Q. 국어교사로서 문학작품을 접할 때와 개인 독자로서 접할 때의 다른 점이 있나요? - 정체성을 나누고 있진 않습니다. 불쑥불쑥 나와요. 그런 게 혼재되어 있죠. Q.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어떻게 문학적인 활동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작품을 다 읽고 대화하게 하려고 합니다. 어떤 활동을 하든 반드시 하도록 했던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책 대화’와 ‘글쓰기’입니다. 같은 소설을 원하는 아이들끼리 묶은 다음, 질문하고 대화하는 활동을 해요. 그 이후 개인 서평을 쓰게 하고요. 사회적 독서인데(정의가 모호하긴 하지만 같이 공유하면서 읽기가 필요합니다. 먼저 선생님들과 경험해보니 그렇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게 참 중요하다고 여러 번 느껴요. 그런 활동을 하고 나면, 혼자 개인적으로 읽었을 때와 사회적 독서 활동 후의 감상의 결과 차이가 커요. 일단 혼자 읽을 때 몰랐던 점들을 알게 돼서 좋은 점이 있고, 내가 잘 몰랐던 같은 반 아이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 김성호
  • 2025-12-29

문장웹진 모색

미래 설계 - 우리는 집을 짓고 그 안엔 사람이 살고

[문장서포터즈] 미래 설계 - 우리는 집을 짓고 그 안엔 사람이 살고 - 《문장웹진》 다시 읽기 문장 서포터즈 2기 김성호 설계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만들거나 짓기 위해서다. 2024년, 작년에 기획 연속좌담으로 진행되었던 ‘창작, 노동: 4차〈대학(원)생 작가들의 미래 설계〉’를 다시 읽자는 취지에서 특별한 형태랄 것 없는 이 ‘대화’가 이루어졌다. 대화는 1년 반 전의 좌담에서 이루어졌던 미래 설계를 돌아보고, 2025년 대학생 작가의 현재는 어떠한지 톺아 보려는 데 목적이 있다. 설계를 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지어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집’이라 명명하고, 그 집 안에 어떠한 사람이 살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2024년 《시와산문》 문예지 시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올해 여름 첫 시집 『네가 오렌지를 먹는 동안 나는 시집을 읽었다』(달아실 출판사)를 펴냈으며 현재 대학 재학 중인 임수민 시인과 함께 대화를 시작했다. 김성호(이하 김): 오늘 인터뷰일로부터 2학기 개강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해요. 작년 여름에 시인으로 등단하시고 나서 올해 여름 첫 시집을 펴내셨는데, 1년간 집필 활동에 학부 생활에 많이 바쁘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무얼 하고 계시나요? 임수민(이하 임): 첫 시집을 출간하고 나서 두 번째 시집을 바로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 시편 원고를 투고했는데, 좋은 기회로 계약이 되어서 준비하는 중입니다. 김: 오, 바로 두 번째 시집이라니. 활동이 왕성하시네요. 개강을 앞둔 소감은 어떠신가요? 개강을 앞둔 건 저도 마찬가지지만(웃음). 저와 같은 문예창작과이기도 하니까요. 임: 창작 수업이 많아서 잘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조금 있고, 학점을 잘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어요. 학교생활과 집필 작업을 같이 잘 병행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고요. 성호 님은 방학 때 무얼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김: 저는 일단 종강날 교수님의 조언대로 전작주의자가 돼서 한 작가를 좀 깊게 파 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빠지게 된 작가가 2018년 타계한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예요. 단편소설도 세 편 정도 썼습니다. 곧 신춘문예와 공모전 시즌이기도 하니까요. 그러고 보면 수민 님은 등단에 대한 압박에서 조금 벗어나 있으신 것 같아 부럽기도 해요. 아니면 제가 모르는 다른 고충이 있을까요? 임: 등단을 했지만, 작은 곳에서 등단했기 때문에 작품 청탁이나 시집 출간, 홍보에 관련해 조금 어려움이 있어요. 예를 들어 ‘대학생’이라서 원고료를 제대로 못 받는다거나, 저를 알리는 데 많은 기회가 없다거나. 아까 한 작가를 팠다고 하셨는데, 어떤가요? 확실히 글쓰기에 도움이 되나요? 김: 한 작가에 빠져서 읽는다는 건 일종의 ‘사랑’의 형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랑의 대상이 작가든 작품이든 간에 느끼는 감정이 그렇

  • 김성호
  • 2025-10-01

문장웹진 모색

활자 뒤의 설계자, 또는 조언자 ‘북디자이너’

[문장서포터즈] 활자 뒤의 설계자, 또는 조언자 ‘북디자이너’ ―홍선우 북디자이너 인터뷰 문장서포터즈 2기 김성호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 하면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 다소 가려져 있는 존재는 바로 북디자이너일 것이다. 책의 판권 면에 작가와 편집자만 기재되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북디자이너와 마케터 등 말 그대로 책을 ‘만들고’ 온전히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힘쓴 모든 사람들이 대체로 기재되는 편이지만. 나는 북디자이너가 책의 외형을 만들고, 꾸미고, 문자 그대로 독자들에게 가닿는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동시에 활자 뒤에서 소리 없이 책을 설계하는 설계자라고도. 그러던 차에 이번 문장 웹진 지면을 빌려 평소 친분이 있던 자음과모음 출판사 북디자이너이자 독립 출판을 시도하는 홍선우 디자이너와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Q: 평어로 인터뷰를 하는 것도 처음이고, 북디자이너를 실제로 만나는 것도 처음이라서 조금 떨리네. 너는 어때? A: 나도 평어로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이야(웃음).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그래도 이번 기회에 이렇게 대화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Q: 먼저 자신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줄 수 있어? A: 자기를 소개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내가 어디에서 일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나의 일부분이니까, 그걸로만 나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북디자이너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인터뷰니까 일단 북디자이너라고 소개할 수 있겠네. 홍선우 북디자이너의 대표작 1 (『할도』,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Q: 내가 인터뷰 제목을 지을 때 북디자이너를 활자 뒤의 설계자라고 명명했는데, 어떻게 생각해? 공감하는 편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A: 활자 뒤의 설계자라는 표현이 참 멋있어. 다만, 내가 실무에서 느낀 걸 토대로 생각해 보면 설계라는 표현에 조금 독단적인 뉘앙스가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선 정정이 필요할 듯해. 작가와 편집자, 마케터, 일러스트레이터 등 여러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책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북디자이너 혼자 설계해 나가는 과정은 아니라고 느껴.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내가 뭔가를 설계한다고 한들, 언제나 그 의도대로 독자들이 읽어 주진 않는다는 점이야.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자유롭기도 하고, 일방적이지 않아서 좋아. Q: 좋아, 활자 뒤의 설계자라고 이름을 지었을 때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구나. 독자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너도 알다시피 요즘은 텍스트힙이라고 해서 책에 주목하는 현상이 있기도 해. 그럴 때 표지에 이끌려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단 말이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A: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책을 미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반감이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접근이 조금 우려스럽기도 해‧‧‧. 그 이유는, 획일

  • 김성호
  • 2025-08-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