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 작성일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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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곁]
정말뻔하고재미없는말이지만그래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배동훈
“언젠가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어.”
8년 전, 어느 군인의 일기에 적혀있던 문장입니다. 그렇습니다. 뻔하지만 사실 제가 쓴 문장입니다. 오랜만에 여름옷을 챙기러 들렀던 본가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공군에서 근무하던 2018년 당시에 썼던 일기장이었습니다. 아직 군대 내에서 휴대폰이 자율화되기 전이라, 매일 점호가 끝나고 10분씩 짬 내서 썼던 일기들의 조각이 모여있는 다이어리 중간쯤에 써 있는 맥없는 문장,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주면 좋겠다. 시기를 보니 아마 일병 말에 썼던 일기 같은데요. 꿈과 희망이 없는 군부대에서 20대 청춘을 보내다 보면 정신이 반쯤 돌기 마련입니다. 저런 가엾은 문장도 그때의 파편 중 하나일 것입니다. 과연 까까머리 공군 청년은 마침내 시에게 구원 받았을까요? 그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출발 비디오 여행 톤으로).
안녕하세요. 포엠매거진입니다. 이제는 제 본명인 배동훈보다 포엠매거진이라는 이름으로 저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익숙하군요. 그만큼 제가 인스타그램의 망령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포엠매거진은 인스타그램에서 시를 소개하는 채널입니다. 소개한다기보다는 ‘영업’한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제 취향을 배경으로 하거든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시와 시가 가진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마치 시식 코너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거 맛있으니 함 무봐라” 홀로 외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저는 2년 동안 시를 영업하고 있을까요? 이유야 당연합니다.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물론 그 일로 돈을 벌고,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라면 조금 다르겠지만, 저는 정말 감사하게도 어찌저찌 2년째 먹고살 만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만큼 짜릿한 일이 있을까요? 저는 이 상황이 너무 황홀해서 매일 밤 내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지저귀는 새에게 영어로 말을 걸곤 합니다(공주풍 레이스 잠옷을 입고 있음). 물론 포엠매거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어요. 저는 포엠매거진을 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나왔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포엠매거진을 위해 퇴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많은 일의 배후에는 늘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저는 재직하던 회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고, 더 늦기 전에 시를 활용해서 뚜렷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포엠매거진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단지 어떤 형태로든 ‘시를 알리고 싶다!’라거나, ‘최초로 시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막연한 바람뿐.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약 일주일 뒤에 바로 ‘@poemmag’이라는 계정을 만들었어요. 포엠매거진이라는 이름도 아무 생각 없이 1초 만에 지었습니다. 곧 팔로워가 빠르게 늘더니 2년 만에 10만 팔로워를 달성했네요. 모두 여러분 덕분이고, 제 덕도 좀 있습니다. 샤라웃 투 퇴사한 나 자신.

사진1. 인스타그램 포엠매거진 @poemmag
자, 그렇다면 왜 하필 시였을까요? 이 이야기는 공군에 입대하기 전, 20살 새내기 배동훈의 여름 방학에서 시작됩니다. 20살의 배동훈은 코엑스에 위치한 어느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알바가 일찍 끝나면 코엑스 내 영풍문고에서 책을 읽는 것이 소소한 취미였죠. 사실 독서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시끌벅적한 코엑스에서 조용히 숨을 만한 장소가 필요했었고, 그러기엔 서점이 적합했을 뿐입니다. 서점을 거닐다가 우연히 시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제목의 시집 앞에 멈춰 섭니다. 이토록 무책임한 책을 봤나,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사랑을 강요하다니. 과연 얼마나 좋을까 의심하며 책을 펼친 순간―배동훈은 번개를 100번 맞은 것 같은 충격과 각성에 휩싸입니다. 내가 이렇게 좋은 글을 살면서 읽은 적이 있었나?(사실 살면서 책을 많이 안 읽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곧장 책을 구매하고 그 길로 바로 집까지 단숨에 뛰어갔습니다. 땀에 젖은 채로 집에 도착해 책의 나머지를 다 읽고, 노트북을 켜서 나만의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날의 여름밤을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물안개가 낮게 깔린 삼성역의 언덕을 지나, 8차선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뛰어가던 두 다리. 얼굴에 자꾸 달라붙는 습기와 날벌레들. 미칠 듯이 쿵쾅대던 심장. 그러나 지치지 않던 두근거림. 처음이지만 인생이 바뀌는 순간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즐거워 시는 대단해

사진2. 배동훈 산문집 『사랑은 즐거워 시는 대단해』 표지 중
“시가 뭐가 그렇게 좋은가?” 아마 포엠매거진을 운영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인 것 같습니다. 도대체 시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좋길래 10년 동안 매일 읽고, 아예 없던 직업을 만들어서 생업으로 삼을 생각까지 할 수 있는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2025년에 출간된 제 산문집 『사랑은 즐거워 시는 대단해』(2025, 포르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결론적으로는 “그냥 좋다”라는 상당히 힘 빠지는 답변이긴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처럼,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은 자의가 아닌 것처럼, 제가 시를 이토록 아끼는 데에도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첫 만남부터 좋았고, 10년째 읽어도 여전히 좋습니다. 이젠 숨 쉬듯 자연스레 좋아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고작 ‘그냥’이 전부라면 구태여 시간 내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미안한 일이겠죠. 그래서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나를 10년째 끌어당기는 시의 대단한 매력은 무엇일까……. 일단 시는 짧아요. 그래서 부담 없이 읽기 좋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롱폼 대신 숏폼만 보는 것처럼요. 비유가 좀 별로인가요? 하지만 저는 진지하게 시가 텍스트계의 숏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집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되고, 한 편만 읽고 책을 덮어도 아무 문제 없거든요. 그렇다고 감흥이 떨어지는 장르도 아닙니다. 오히려 시를 읽고 난 뒤에 찾아오는 여운은 소설, 산문보다 더 클 때가 많아요. 그리고 시집은 지금 읽고 1년, 2년, 시간이 흐른 뒤에 읽어도 달라요. 시는 그대로지만, 시를 읽는 ‘나’의 삶이 변했기 때문이죠. 한 권의 책으로 다양한 인상을 느낄 수도 있으니, 가성비가 좋은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시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시를 통해 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감정을 응시하고, 나만의 언어로 이름을 붙여줄 수도 있지요. 가령 이런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단순히 ‘너를 많이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너는 내 왼쪽 가슴 아래에 온 통증이야1)’ 라고 편지를 써줄 수도 있습니다. 내 심장에 찾아온 이 통증은 너일 수밖에 없다는 고백. 그것은 ‘사랑해’라는 말을 선물 상자에 포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고가의 백자를 헝겊으로 깨끗이 닦듯 ‘사랑해’라는 가장 투명하고 아름다운 상태로 상대방에게 전하는 것이죠. 이처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세상을 고해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시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께 시를 영업하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그건 이미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좋아하는 일을 하자’입니다. 뻔하디뻔하죠. 미디어에서는 꼭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걸 하라고 강요하듯이 말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따라오는 장점들을 나열하면서 꼭 한번 해보시라고, 스마트폰 속 대머리 외국인 남성이 팟캐스트에서 귀에 딱지가 지도록 떠듭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저 역시 시를 언급하며 여러분께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고리타분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것이 여러분의 행복을 보장하는 가장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을 하면 건강해집니다’라는 말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습니다. ‘에이, 운동한다고 어떻게 건강해져?’라며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진다’는 말도 똑같습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너무나 당연한 수순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불행해진다던데?’라는 말로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이때 불행이란 것은 단순히 ‘행복하지 않다’는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여러 감정이 뒤얽힌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평생 지속되는 하나의 상태가 아니란 말입니다. 좋아하는 일 뒤에 찾아오는 불행 속에는 잔잔한 행복도 숨어있고, 반대로 행복 안에는 권태와 불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생 커피를 사랑해 온 사람이 자신의 카페를 차렸다고 해서 앞으로 영원히 행복하거나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행복과 불행을 외줄타기처럼 왕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원래 우울과 평안, 권태와 불안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불행보다 행복의 빈도가 더 잦다는 사실입니다. 살면서 수차례 저 자신에게 실험해 본 결과가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같은 일을 해도 덜 피곤하고, 밤을 새워도 지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하루가 24시간인 것이 아까워서 자의로 내일 할 일을 미리 앞당겨 할 때도 있습니다. 순수하게 나의 의지로 일을 벌이고, 더 많은 업무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본 사람은 압니다. 내가 주도하는 나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시는 제가 온갖 마음을 퍼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대상이었습니다. 저울처럼 마음을 재지 않고, 그저 하염없이 좋아할 수 있는 것, 여러분의 삶에도 그런 존재가 있었으면 합니다. 시가 아니어도 됩니다. 시를 읽지 않아도 되고, 문학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미래에 꼭 문학과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좋아하게 되실 겁니다. 그것들을 꾸준히 하세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만의 방법을 찾아서 어엿한 직업을 만들어도 좋겠습니다. 아무튼 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는 것, 그것만은 이 글에서 여러분께 강요하고 싶었습니다.
<짧은 시집 추천>
자, 다시 정신 차리고 시 이야기를 해봅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대부분 이미 시를 꽤 좋아하는 분들이겠죠. 그래서 시집을 추천해야 할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시잘알’인 여러분이 보기에 괜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그러나 반대로,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꽤나 포용적인 분일 것이라고 혼자 마음껏 착각해 봤습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존중의 태도가 기저에 깔려있을 분이라고……. 저는 여러분을 그렇게 오해하겠습니다.

사진3. 마종기,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2008, 문학과지성사)
참 맑은 시집입니다. 제목과 다르게 이토록 맑은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보면 사랑의 나라가 보일 것만 같습니다. 저는 시집을 구매할 때 시집의 표지력(표지 디자인의 느낌이 좋은 정도)을 중요하게 보는데요, 이 시집은 표지력이 상당합니다. 연갈색 테두리 안을 채운 연분홍 직사각형. 제가 채도가 낮은 색을 좋아해서 그런지 표지를 보면 일단 펼쳐서 읽고 싶어요. 자꾸만 손이 가는 시집입니다.

사진4. 김이듬,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2025, 민음사)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익히 아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포엠매거진 피드에서 아주 추천했던 시집이거든요. 개인적으로 2025년에 나온 시집 중에서 제일 좋았습니다. 김이듬 시인은 이제 어떤 경지에 도달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시 도사’가 되신 것 같습니다.

사진5. 조해주, 『가벼운 선물』 (2022, 민음사)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있는 것처럼, 첫 페이지부터 사랑에 빠지는 시집이 있습니다. 이 시집이 근래 저에게 가장 사랑스러웠던 시집입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읽다가 그 자리에서 완독했고, 포엠매거진에 콘텐츠도 올렸었네요. 타인의 존재와 관계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좋아하실 겁니다.
이렇게 가볍게 세 권의 시집을 추천해 봤는데요. 세 권을 고르며 이 원고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만큼 신중히(?) 골랐으니……. 한 번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세상에는 좋은 시집이 너무나 많습니다.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버겁기도 합니다. 부지런하게 읽지 않으면 어느새 신간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거든요. 저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해서 평소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디깅해서 듣는 편인데요. 좋은 음악을 찾는 과정이나, 시를 읽는 과정이나 똑같은 것 같아요. 가만히 있는다고 좋은 작품이 저에게 찾아오지 않고, 누가 더 노력했느냐, 누가 더 많이 두 발로 뛰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성이 게으르지만 의도적으로 바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법처럼 좋은 시를 만나게 되고, 콘텐츠로 만들어 구독자분들께 소개해 드리고 싶고, 좋은 시를 알려줘서 고맙다는 댓글을 보게 되면 하루 종일 히죽대며 웃습니다. 그 변태 같은 즐거움으로 저는 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포엠매거진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힘이 닿는 데까지는 포엠매거진을 해야죠’라는 말을 했었는데, ‘굳이 왜 그래요. 힘들면 그만하세요.’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가끔 그 단순한 응원의 말을 떠올리며 살아갑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겠구나. 힘들면 또 다른 일 찾아서 해봐야지. 굳이 나를 혹사하지는 말자. 그러니 지금, 제가 아직 시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시기에 여러분을 만나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시는 제 인생을 순식간에 구원해 주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바라는 순간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조금씩 구원해 주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인생을 살게 된 것은 모두 시의 장기적인 계획일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시는 저를 구원해 주고 있습니다. 야금야금,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열렬히 나를 응원하며. 저도 세상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응원하는 제 모습이 보이면 부담스러우실 테니, 300미터 떨어진 뒤에서 전봇대에 숨어 10데시벨 정도의 목소리로 조용히 혼자 외치고 있겠습니다.
‘화잇띵…★’
1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대 킹갓 인플루언서 포엠매거진 배동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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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곁〉은 창작자뿐 아니라 문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확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책이 독자에게 닿기까지의 과정에 머무는 사람들, 문학과 독자 사이 어딘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
1) 장석남,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2001, 창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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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산책[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명동 산책 도재경 몇 해 전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하던 한 학생에게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학생에게 허풍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솔직하게 답변한다는 게 고작 맥주를 마시며 놀 궁리를 한다는 거였다. 대답하고 나니 어쩐지 궁색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며 노는 게 아니라 궁리를 하는 거라고……. 궁리를 한다고? 꼴에 선생이라고 자못 젠체한 듯해서 뒤통수가 가렵다.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끄적거릴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종국엔 멍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대체 온종일 뭘 했나 자책감이 들면서도 그러한 상태야말로 창작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라고 합리화하곤 한다. 지난여름 명동에 자리한 서울프린스호텔의 ‘소설가의방’에 입주한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침구류는 새것처럼 빳빳해져 있었고, 물기 하나 없는 욕실에는 보송보송한 수건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허기질 일도 없었다. 늦잠을 자느라 곧잘 조식을 거르곤 했지만 호텔의 ‘이층서가’나 인근 식당에서 언제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라운지에는 쿠키나 주스 등 간식도 가득했다. 그랬다. 분에 겨울 정도로 호사스러운 일상에서 부끄럽게도 불철주야 온갖 공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중 하나는 전기밥솥에 관한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돌멩이에 관한 거였다. 전자는 탈고를 앞둔 장편소설의 소재였고, 후자는 곧 쓰게 될 단편소설의 글감이었다. 퍽 다행스럽게도 호텔에서의 일상은 밋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집필을 핑계로 죄다 퇴실 이후로 미루었고, 무더운 한여름에 호텔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대부분을 객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좀이 쑤실 때면 산책 삼아 호텔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호텔에서 남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 초입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는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특별할 게 없는 풍경이라 도리어 생경했다. 말없이 멍만 때리다 보면 입안이 퍼석퍼석해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몇몇 동료 작가들이 입주해 있었다. 함께 식사하고선 소화를 시킬 겸 당구를 치며 각자의 공간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서로 위로 삼곤 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어쩐지 반(半)백수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듯해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회적 활동(?)이란 걸 하긴 했다. 7월 초에는 장흥에 계시는 한 원로작가님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7월 말에는 세종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는 딱히 이벤트랄 게 없었다. 어찌 됐든 소설을 쓰기 위해 입주했으니 모쪼록 심심한 날들만 이어지길 바랐다. 비가 그친 어느 날 오전이었다. 객실 창밖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연두색 사마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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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호에서 기다린 것들[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506호에서 기다린 것들 권희진 호텔 앞에서 어떤 외국인을 보았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듯 옷을 차려입었다. 옆에는 커다란 트렁크도 있었다. 누구를 만나려는 걸까. 연인? 친구? 아니면 오래전에 한국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만났던 누군가? 나는 여러 상황을 상상했다. 산책하기 위해 나왔을 때 그 사람은 여전히 호텔 앞에 서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상대는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군, 하면서 그 사람 곁을 지나쳤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을 때도, 밤 산책을 위해 나왔을 때도 그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그때부터는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공항에 가려고 차를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숙소를 잡지 못한 걸까.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고 산책을 나왔는데 그 사람을 다시 마주쳤다. 호텔 앞에서 밤을 지낸 모양이었다. 새벽에 조금 쌀쌀했는지 트렁크에서 얇은 겉옷 하나를 꺼내 입고 눈을 감고 있었다. 선 채로 졸고 있는 그 사람을 보니 어쩐지 조금 쓸쓸해졌다. 점심쯤에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그림을 그렸다. 작은 메모지에 연필로 슥슥 소리를 내면서. 모종의 이유로 그 그림은 공개할 수 없다. 절대 못 그려서는 아니다. 지금도 이렇게 글로 그 사람을 남기고 있는 걸 보면 꽤 인상 깊은 이미지였던 것 같다. 호텔을 나온 후에도 종종 그 사람이 생각났다. 왜일까. 프린스호텔에서 내가 주로 한 일도 기다리기였다. 무언가 생각나기를 기다리고, 좋은 문장을 기다리고, 흔히 말하는 영감이라는 걸 기다렸다. 기다리는 일이 지루해지면 나는 썼다. 결국 다 지울 문장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조금 이상한 일이다. 문장이 오길 기다리면서도 계속 썼으니까. 내가 머문 506호는 트윈룸이었다. 침대 두 개를 하루씩 번갈아 썼다. 하나만 쓰면 괜히 아까운 느낌이 들어서 두 개를 다 사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침대 얘길 왜 하느냐고? 침대만큼 뭔가를 기다리기에 적합한 곳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물론 침대에서는 생각도, 사랑도, 꿈꾸는 일도 전부 가능하다. 다만 나는 침대에서 무언가를 먹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시트를 더럽히면 다음 일이 골치 아파진다. 아무튼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냥 잠만 잤다는 얘기는 아니다. 침대에 앉아서 소설도 쓰고 책도 읽었다. 정말이다. 잠깐 빨래 얘기를 해보자. 호텔에 머물면서 총 여섯 번의 세탁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니까 아마도 맞을 것이다. 로비 구석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데, 세탁과 건조가 진행되는 약 80분 동안 나는 로비의 테이블에 앉아 소설을 썼다. 정확히 말하면 뭐라도 떠오르길 기다렸다. 로비는 기다림에 어울리는 곳이니까. 프런트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직원들, 택시를 기다리는 관광객, 내 세탁이 끝나길 기다리는 투숙객, 그리고 주인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많은 트렁크들과 함께 기다렸다. 그래도 빨래는 80분이면 끝이 났다. 그러면 나도 손을 멈췄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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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책장지기의 기록[문학의 곁] 책장지기의 기록 ― 문학이 동사가 되는 시간 하림 올해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일 년 동안 문학 행사를 함께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라는 이름의 행사였다.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문학 행사라는 설명과 함께 진행을 부탁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문학 관계자도 아닌 내가, 북플루언서도 아닌 내가 이런 자리를 맡아도 될까 싶었지만, 노래라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 계절 나주로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3회차까지 마치고 처음으로 쫑파티를 제안했다. 요즘은 공연이 끝나도 쫑파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이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회식 자체를 권하는 일이 괜히 민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탓도 있는 것 같다. 우려와 달리 모처럼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동안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무엇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은 성공이 누구의 공인지 서로에게 돌리며 웃고 떠들다가, 그 자리에서 이 원고를 청탁받았다. 맥주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흔쾌히 쓰겠다고 했다. 제안받은 글의 주제는 ‘문학의 곁’. 하지만 나는 문학의 ‘곁’에 있기보다는 문학의 ‘주변인’에 가깝다. 주변에 작가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을 향한 나의 애정도 친구들에 비하면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최근에는 꽤 많은 양의 책을 좋은 곳에 입양 보냈다. 작업실과 집 구석구석을 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책더미를 바라보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생긴 책장의 빈 공간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을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전자책도 많이 산다. 전자책은 공간에 대한 죄책감 없이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전자책은 특유의 손맛이 없어 정이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움이 될 팁을 하나 건네자면 서점에 들러 실물 책을 조금 만져보고 물성을 느끼고 나면 조금 나아진다. 어쨌든 언젠가는 내 스마트폰의 e북 앱이 SNS를 누르고 스크린 타임 1위에 오르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책들을 대거 정리하고 달라진 점이 또 있다. 마치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가듯 도서관을 드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 종종 오전 러닝을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동선에 구립 도서관이 포함되어 있다. 의미 없는 찬사와 자기과시로 점철된 술자리를 보낸 다음 날, 털려버린 영혼을 다시 채우고 전날의 죄의식을 씻어내 주는 곳은 천천히 달리는 하천가 산책로와 도서관이다.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서는 것이 조금 쑥스럽고 미안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얼른 들어와 책장 사이를 가만히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마르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늑한 골목 같은 서가에서 책등을 훑으며 거닐다 눈에 걸린 책 한 권을 들고 나온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이 마음에 들면 ‘득템’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는 조금 이상한 독서 습관이 있는
- 하림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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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문학광장에 포엠매거진의 등장이라니 ... 아무 생각 없이 읽어내리다 주인장 발견에 깜짝 놀랐습니다.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에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해진다 ! 라는 문장도 어느 수식어구가 필요 없다는 것 ..본인의 삶으로 증명해낸 사람이 적어 내린 글이라 더더욱 마음이 와닿네요좋아하는 것에 대해 그냥 좋다고 말하면서도누구보다 구체적이고 유려하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본받고 싶어집니다 ! 앞으로도 오래오래 좋아하는 시들과 행복하시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