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텍스트가 등장하는 여섯 가지 기획
- 작성일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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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곁]
문학/텍스트가 등장하는 여섯 가지 기획
― 웹진 《비유》 기획‧운영자가 소개하는, 문학으로 향하는 여러 갈래들(@webzineview)
이세옥
이 글은 일을 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여러 문을 여닫으며 장소들에 드나들고, 밥을 먹고 쓰레기를 버리며 사는 한 생활인의 삶에, 문학 텍스트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살펴본다. 내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길러진 환경과 현재의 활동을 단편적으로 기록해보는 글이기도 하다. 예술과 문학은 세계에서 가치 있는 위치를 점하면서도, 사실 시급한 이슈에 해당되지 않는 편이라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은 처음 말을 꺼낼 때는 보통 압축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썼다.
주민센터 한켠 작은 책장
어릴 때 살던 동네 주민센터에는 작은 책장이 두어 개가 있었다. 집에서 가깝고 생활 반경 내에서 손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에 있는 그야말로 ‘작은 도서관’이었다. 여러 종류의 책들이 어떤 일관된 취향을 파악하기 어렵게 꽂혀 있었는데, 그중 문학상 수상작들이 많았다. 토니 모리슨과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작들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종종 그 책장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돌이켜보면, 문학상이라는 제도가, 수상작이라는 선택이, 주민센터 한켠을 경유해서 청소년 시절 나의 독서목록을 구성했다. 이는 공공 인프라와 문학 제도가 연결되는 방식이다. 공공 도서관이 충분하지 않던 시기, 주민센터나 작은 도서관 같은 생활권 내 독서 공간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돌이켜보면, 문학 텍스트는 시장만이 아니라 행정과 복지 체계를 통해서도 유통되어 왔다.
읽기와 쓰기 훈련의 학교
학부 학업 과정 중에 내가 한 것은 텍스트를 읽는 훈련인 것 같다. 영문학과에서 시와 소설 그리고 희곡 등을 촘촘히 읽던 시기였다. 문장별, 단락별, 챕터별로 읽어가며 전체 작품을 조망하는 시점 이동을 학습했다. 가령 흔하지 않은 각종 식물명까지 찾아서 읽으며, 가까이서 텍스트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단어의 선택, 문장의 리듬과 속도, 단락의 호흡 같은 것들을 읽다가, 다시 텍스트의 맥락을 살펴보기도 했다.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언제 출판되었는지, 어떤 독자를 향하고 부르는지, 이 글은 어떤 제도를 기반으로 완성되었는지, 그리고 생략된 부분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난 특정 주제에 따른 작품들을 모아 읽으며 그걸 바탕으로 창작하는 수업에도 참여했다. 그중 소설가 최윤 교수님의 성평등 글쓰기 워크숍 수업이 내게 오랜 기간 기준점이 되어주었다. 그 워크숍은 내가 창작 글쓰기를 자유롭게 전개해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기술적인 부분들을 연습하기보다는 내게 보이는 세상을 글로 쓰는 데 필요한 태도를 다질 수 있었다. 실제로는 자기 폭로에 가까운, 표현 자체에 치우친 짤막한 글들을 쓰고 공유했지만, 이 워크숍이 끝난 한참 뒤까지 내게 이 모임은 창작 자체가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와 관계 맺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운 경험으로 남아있다.
읽는 생활을 위한 열린 장소, 웹진 《비유》
나는 최근 3년간 웹진 《비유》를 만들면서 문학이 작가의 집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체감하고 있다. 편집위원, 편집자, 기획·운영 담당자, 디자이너, 웹 퍼블리셔의 회의와 편집, 구성과 제작, 원고 청탁과 검토 같은 과정들은 모두 문학 텍스트 생산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문학 편집과 출판 현장 출신의 편집위원 및 편집자는 실제로 잡지의 구조를 안정시키고, 동시에 기존 문학 제도의 규준을 놓치지 않게 한다. 무엇이 문학으로 소개되어 왔는가, 어떤 형식이 독자에게 낯설고 익숙한가에 대한 이해 바탕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는 시도 역시 가능하기 때문이다. 웹진 《비유》는 문학과 인접한 여러 분야의 창작자, 편집자, 기획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로 역할도 하고 있다. 이렇듯 《비유》는 문학에 직접 속하는 작품뿐만 아니라, 그 주변을 형성하는 여러 움직임들을 함께 담는 온라인 잡지로 기능하고 있다. 이곳은 창작자들이 자신이 하는 활동을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장소이다.
《비유》는 온라인 잡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작은 시도들은 해보고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서로 다른 매체/장르 작가 간의 협업 지면 운영이다. 협업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것은 웹진 내에서 오래 지속되어 왔지만, 개편하면서 직접 “해상도 높은 장면”이라고 이름 지었던 시리즈로도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문학으로 향하는 다양한 갈래들로 보이는 작품들에서, 작가들과 독자들 조금은 낯선 감각을 깨워가는 것 같다.
또 다른 시도 중 하나는 호별 원고들을 두 달에 걸쳐 몇 편씩 나눠서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편집위원회의에서 호별로 원고들을 기획하고 발행까지 호 단위로 추진하지만, 호별로 묶어 발행하는 인쇄물 형태의 문예지가 아니다 보니, 원고별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나눠 발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부분은 다른 방식으로의 시도가 또 가능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독자들이 개별 원고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게 하는 기제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의 읽는 생활을 조금이나마 조력할 수 있도록, 《비유》는 한 달에 두 번씩 구독자의 이메일함과 소셜 미디어 피드를 채우고 있다.
웹진 《비유》는 주민센터 한켠에 놓인 책장과 닮았다. 어릴 적 마주했던 그 작은 책장이, 이제는 웹진 《비유》의 화면으로 연결되어 보인다. 로그인 없이 무료로 접할 수 있는 글들은 다양한 읽기 모임의 재료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공공성은 이 웹진 제작이 놓인 조건 그 자체다. 나는 이렇게 만드는 《비유》를 무엇보다 읽는 생활 혹은 읽기 연습을 위한 열린 장소라고더 알리고 싶다.
▷ 웹진 《비유》 바로가기 : https://www.sfac.or.kr/literature

웹진 <비유> (서울문화재단 문학지원팀)
공적자금으로 만드는 온라인 문학 잡지, 웹진 《비유》
이 단락은 공적자금 운영의 특징에 대해 언급하며 시작하려고 한다. 웹진 《비유》는 서울문화재단 문학지원팀이 만드는 온라인 문학 잡지이다. 난 문화재단에서 다원예술, 지역문화·도시문화, 문학 분야 업무를 거치면서, 공적자금이 단순한 재정 지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가령 예술지원금은 개인 창작자에게 활동의 물적 조건을 제공하는 수단이지만, 동시에 그 활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예술지원금은 흔히 ‘창작을 위한 돈’으로 설명되고 통용되지만, 실제로는 사회가 어떤 활동을 공적인 가치로 인정하는가에 대한 반영된 것이다. 무엇이 예술인가, 누가 예술가인가, 어떤 활동이 지원 대상인가, 어떤 결과물이 공공적 가치로 설명될 수 있는가는 모두 제도의 언어를 통해 실행된다. 특히 ‘예술노동’이나 ‘창의노동’이라는 개념은 단순하지 않다. 창작활동은 오랫동안 개인의 열정이나 재능으로 설명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노동으로서의 성격은 자주 가려졌다. 그러나 지원금은 개인의 창작활동이 시간과 기술, 관계와 지속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동시에 지원 제도는 기준과 심사를 동반한다. 공공성, 형평성, 예산 집행의 타당성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적자금은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특정한 언어와 형식을 요구하는 체계이다. 공적 자금 사용에는 원고료 지급 기준, 개인 계약 방식, 결과 보고 체계 같은 행정적 조건들이 따른다.
구체적으로 공적자금으로 문학 웹진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자금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계약서부터 기획·제작 절차에 이르기까지 고유의 출판·발행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이를 만들어 가야 하는 필연성이 있다는 점을 떠올릴 수 있다. 또한 공적 자금의 특성을 활용해 필요한 영역에 실무 지침이나 운영 매뉴얼, 각종 가이드를 고안하고,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민간이 하기 어려운 연결과 실험을 시도하는 일 역시 고려 대상이 된다.
문학을 통해 모이는 자리들, 〈문학으로 모이는 방법들 2025〉
한편 사실 온라인 잡지라는 매체는 불안정성도 가진다. 간단한 예로는, 모든 외부로 가는 하이퍼링크들은 사라질 수 있다. 웹사이트는 물리적 보관장소가 없기 때문에 유실될 수 있다. 서버가 닫히거나 운영이 중단되면 흔적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플랫폼이 종료되거나 도메인이 만료되면 축적된 텍스트들이 한 번에 사라질 수도 있다. 디지털 아카이빙의 불안정성은 온라인 문학 매체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이슈이다.
이러한 온라인 지면이 갖는 불안정성과 물리적 실체의 부재를 인식하면서부터일까. 독자와 시민과 작가들이 실제로 만나는 오프라인 접점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한 〈문학으로 모이는 방법들 2025〉이다. 다섯 번의 모임 자리와 한 종의 소책자로 구성된 기획 프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을 모으는 일, 공간을 운영하는 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텍스트 앞에서 말을 시작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드는 일이 공공적인 기관이 잘 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완성된 결과를 제공하기보다, 그런 움직임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직해 제안하는 일에 더 가깝다. 그리고 기획자는 사람들을 직접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사람이다.


(사진) 문학으로 모이는 방법들 2025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염두에 둔 것은, 문학이 내게 주는 경험 중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이다. 즉, 무언가를 빠르게 결론 내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과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문학은 좋은가, 나쁜가. 맞는가, 틀린가.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와 같은 요청들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공간이다. 내가 기획하는 자리들도 문학 텍스트를 통해 부정적 능력(Negative Capability)1), 즉 불확실함과 의문을 성급히 해소하지 않은 채 머무르는 힘을 연습하는 곳이 되기를 바랐다. 판단을 유보하고 질문을 조금 더 오래 붙들 수 있는 자리. 고민하고, 주저하고, 질문하고, 멈춰 설 수 있는 자리. 나는 그것이 문학과 문학을 통한 활동들이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올해 나는 또 다른 상상을 하고 있다. 문학 작가, 번역가, 편집자, 출판인, 독자, 그리고 문학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글쓰기 워크숍이자 퍼포먼스 작품인 ‘이어쓰기’를 해보고 싶다. 한 사람이 문장을 쓰고, 다른 사람이 이어받아 다음 문장을 쓴다. 그렇게 텍스트가 이어진다. 온라인으로 공유된 문서상에서 참여할 수도 있고, 연필로 직접 종이에 써나갈 수도 있다. 화면에 프로젝션하여 과정을 공유할 수도 있고, 최종적으로 도출된 글을 각자 가져갈 수 있는 방식으로 기획할 수도 있다.
내가 구상하는 이어쓰기는 앞 문장을 보고, 읽고, 반응하는 방식이다. 서로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글쓰기 시도이다. 이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이어쓰기나 20세기 아방가르드의 협업적 글쓰기 전통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고, 오늘날 온라인 협업 문서나 공동 번역 작업처럼 여러 사람이 하나의 텍스트를 수정하고 이어가는 디지털 환경과도 닿아 있다. 그리고 이것은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망설임과 결정의 순간들이 공간 안에 가시화될 것이다.
퍼레이드 & 패치워크 – 예술 활동의 프레임워크이자 가상의 회사
개인적으로 나는 창작자로서의 활동 경력을 바탕으로, 주로 텍스트로 구성되는 예술적 활동을 수행하는 프레임워크를 ‘퍼레이드 & 패치워크’라고 이름 지었다. 퍼레이드는 어떤 존재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고 거리를 일정 시간 점유하며, 장면의 일부로 나타나는 시간적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다. 패치워크는 서로 다른 조각들이 나란히 놓이며 기억과 상처, 맥락들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본다. 이 두 단어를 조합한 이름 아래에서는 일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활동, 아직 미완의 시도들도 잠시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그것은 장면이 되기도 하고, 기록이 되기도 하며, 느슨한 관계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퍼레이드 & 패치워크는 창작과 기획, 기록과 대화가 놓일 수 있는 장소이다.
최근에는 내가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을 초대해 글과 인터뷰 기록을 남기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개인적으로 청탁한 원고와 인터뷰 기록을 퍼레이드 & 패치워크 웹사이트에서 공개했다. 리뷰와 에세이 형식으로 청탁할 때는 작가에게 특정한 주제와 조건을 함께 제안했다. 우선 내가 그 작가의 문장으로 읽고 싶은 글을 의뢰했다. 인터뷰와 대화 형식의 기록에서는 요즘의 생각, 실제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일하는 태도, 작업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을 초대한 분과 일대일 대화로 나누었다. 이렇게 만든 글들을 예술·문화 분야 종사자와 애호가들, 특히 혼자서 여러 질문들을 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씩 읽어나가고 싶다.
또한 퍼레이드 & 패치워크는 ‘창의적 실천’을 시도하는 예술가와 조직들을 위한 가상의 스튜디오이다. 나는 2024년부터 퍼레이드 & 패치워크를 단순히 창작의 프레임워크를 넘어서, 예술가 혹은 혁신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조직의 가치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서사와 맥락과 언어를 만드는 가상 스튜디오처럼 다루어 보기 시작했다, (조용히). 이 회사는 예술적, 사회적, 기술적 환경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분야를 넘어 연결되며, 새로운 실천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들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테다. 예술적 통찰과 비판적 시각에 기반해 쌓아온 활동들이, 정체성을 구성하고 복잡한 질문들을 다루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예술적, 사회적, 기술적 영역/씬에 새롭게 등장하는 시도들이 보다 해상도 높은 방식으로 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돕는 모습을 그려본다.
퍼레이드 & 패치워크 바로가기 : https://seirhee.com/

퍼레이드 2026 (ChatGPT(Open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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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곁〉은 창작자뿐 아니라 문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확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책이 독자에게 닿기까지 그 과정에 머무는 사람들, 문학과 독자 사이 어딘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
1) 소극적 수용력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존 키츠는 1817년,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과 이성을 조급하게 찾아내려 하지 않고, 불확실성과 신비와 의심 속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썼다. 그는 이것을 ‘Negative Capability’라고 불렀다. 쉽게 해석하거나 결론짓기보다, 이해되지 않는 상태를 견디는 능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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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Schildkröte und der Tiger 거북이와 호랑이[레지던시 일기] Die Schildkröte und der Tiger 거북이와 호랑이 ― 한국에서 ‘레지던스 작가’로 보낸 4주의 시간 하인츠 야니쉬 (번역 김서정) I. 존중받는 느낌. 한국에서 보낸 4주간(2026년 3월 28일부터 4월 24일까지)을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이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이 받은 대접,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정성, 나의 책과 문학 작업에 대한 존중. 내 책들(원서와 한국어 번역본)은 남이섬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림책 홀이나 서울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건물 진열장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 모두 내 책을 잘 알고 있더군요. 희한하게도, 내 책의 글과 그림에 대한 명확하고도 박학한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희한하게도, 그림책의 언어와 그림의 어울림에 대해 아주 꼼꼼하게 인지하고 언급하는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나는 내 책을 한국에서 낸 출판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책의 어떤 부분은 원본을 살짝 벗어나 새로운 포맷을 입기도 했는데, 그 섬세한 만듦새에 완전히 납득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볼프 에를브루흐가 그림을 그린 (한국어본 제목 : )의 한국어본은 원본과 달리 세로가 더 긴 포맷으로 나왔습니다. 책 속의 작은 왕에게 갑자기 더 큰 공간이 주어졌는데, 그게 이야기와 아주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머무르는 4주 동안 나는 출판인, 번역자들과(글자 그대로 모두 여성이었지요)(* 역주 : 독일어의 명사에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있습니다. 작가는 보통의 경우 남성형 명사와 여성형 명사를 모두 씁니다. ‘대화 상대(남성형)과 대화 상대(여성형)’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출판인과 번역자의 여성형만 쓰고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모두 여성인 게 아주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성) 그림책 작가들과 (남성) 그림책 작가들, (여성) 글 작가들과 (남성) 글 작가들과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책을 보여주고, 의견을 주고받고, 책도 주고받았습니다. 친절한 통역의 도움을 받아 이 ‘책나라’ 사람들은 특별한 책들에 대한 사랑으로 확실히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II.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그쳤던가? 짧은 되돌아봄. 모든 것은 트리에스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에서 나는 내 문학 작업에 주어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습니다. 경사스러운 시상식은 말 그대로 경사스러운 잔치가 되었습니다. 16살 난 우리 딸은 “내 생애 최고의 파티”였다고 하더군요. 70개국에서 온 600명 이상의 사람들이 IBBY 총회에 모였습니다. 어린이문학에 대한 사랑 하나로 뭉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었지요. IBBY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의 약자입니다.
- Heinz Janisch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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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라디오 드라마를 만났을 때[문학의 곁] 소설이 라디오 드라마를 만났을 때 ― 책 읽는 사회를 위한 서현이 1. ON AIR 스튜디오 출입문에 불이 들어왔다. 붉은색의 ‘ON AIR’ 글씨가 선명하다. 드디어 큐 사인이 떨어지고 소설이 라디오 드라마를 만났다. 이제 소설 속 단어는 목소리 연기자 성우들을 만나 살아 움직일 것이며 쉼표ㅇ와 숨표는 호흡이 되어 깊이를 더할 것이다. 숨을 쉬기 시작한 문장은 음향효과를 만나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질 것이고 음악을 만나 날개를 달 것이다. 소설이 라디오 드라마를 만나면 또 하나의 생명을 얻게 된다. 사진. KBS 제작 모습 2. 오프닝 혹은 여정의 출발 소설이 라디오 드라마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전부터 시작된다. 1년 전부터 작품을 준비하는 경우는 특별히 의미가 있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작가의 탄생 100주년이라든가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 삼일절 특집 같은 기획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별한 기획이 아닌 경우 통상 3~4개월 전부터 준비한다. 라디오 드라마가 만나고 싶은 소설에 제한은 없다. 다만 어려운 점은 존재한다. 만남을 방해하는 가장 큰 방해 요소는 2차 저작물 저작권료다. KBS 측에서 책정한 저작권료를 상대측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만남은 성사될 수 없다. 라디오 드라마와 소설의 만남을 방해하는 또 다른 장애물은 다시 듣기(=다운로드)다. 다시 듣기도 넓은 의미에서 저작권에 포함이 되겠지만 다시듣기만을 제한하는 곳도 있다. 이 경우 최대한 조정해 보지만 불발되면 소설과 라디오 드라마는 만날 수 없다. 3. 소설과 라디오 드라마의 주파수 맞추기 라디오 드라마의 주파수와 잘 맞는 소설은 어떤 작품일까? 주파수를 궁합으로 바꿔도 무방하다. 소설과 라디오 드라마 사이에 궁합이라는 게 존재할까? 당연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궁합이 잘 맞는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 간단하게 정리하면 ‘소설을 읽었을 때 그림이 그려지면서 쉽게 이해되는 작품’이다. 소설가들은 반문할지 모른다. ‘소설 문장은 서술과 묘사로 이뤄져 모든 상황을 그림으로 그릴 수는 없다. 그리고 소설은 책을 덮은 후에도 깊이 사유하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게 소설의 힘이자 매력이다. 더구나 90년대 이후 한국소설은 의미와 가치보다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경향이 뚜렷했고 그 결과 기발한 방법으로 형상화하는 소설들도 대거 발표되었다. 다양화된 소설 중에는 읽는 즉시 이해가 되는 작품도 있지만 두세 번 읽어야 하는 작품도 있다. 그런데 라디오 드라마 청취자들은 방송을 듣는 동시에 그림그리기를 원하고 듣는 즉시 이해하기를 원한다. 바로 그 차이, 읽는 소설과 듣는 라디오 드라마 주파수의 차이를 맞추는 게 라디오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방송 글의 기본은 구어체이면서 쉬워야 한다. 방송 진행자들이 하는 말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간혹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있을 때 진행자는
- 서현이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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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울제대로도서전, 또 하나의 작은 책 축제를 만나다[도서전 참관기] 제1회 서울제대로도서전, 또 하나의 작은 책 축제를 만나다 정대훈 프롤로그 서울국제도서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늘 또 하나의 도서전을 찾았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최근 출판계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새로운 시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현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시간은 개장 약 30~40분 전. 예상했던 것처럼 행사장은 한산했다. 몇 년 전 서울국제도서전이 지금처럼 대규모 축제로 자리 잡기 전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드문드문 모여 있었고,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도서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들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 노들섬에 도착했을 때. 서울국제도서전의 여운을 안고 또 하나의 책 축제를 찾아왔다. 맑은 하늘만큼이나 오늘은 조금 여유로운 도서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개장 전 풍경. 아직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 있었다. 오래전 서울국제도서전이 지금처럼 북적이기 전, 그 시절의 익숙한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느긋하게 책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 책의 열기 개장과 동시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행사장 규모는 서울국제도서전의 대형 부스 몇 개를 합친 정도에 불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게다가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가지 않았다. 부스마다 멈춰 서서 책을 펼쳐 보고, 출판사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이동했다. 덕분에 행사장의 동선은 한참 느렸지만, 그만큼 책을 중심으로 한 시간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족 단위 관람객과 어린이를 동반한 방문객도 많았고,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단체 관람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어린이책과 그림책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출판사 부스의 분위기였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젊은 직원들이 운영하는 부스를 많이 볼 수 있었다면, 이곳에서는 작은 출판사의 대표나 편집장이 직접 독자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책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 더 깊게 이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 불과 몇 분 만에 달라진 풍경. 조금 전까지 한산했던 공간은 개장 시간이 다가오자, 순식간에 긴 대기 줄로 바뀌었다. ‘오늘은 여유롭게 둘러보겠구나’ 했던 기대는 이때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던 내부.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출판사와 독자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발걸음은 느렸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책 위에 머물러 있었다. 도서전의 또 다른 즐거움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이번에도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조선대학교 양경언 문학평론가였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그랬지만, 도서전은 책만 만나는 공간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업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묻고, 짧은 대화 속에서 새로운 소식도 듣게 된다.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다시 연결되는 장소라는 점에서
- 정대훈
-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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