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 view
- 작성일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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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 일기 – 협성마리나 G7]
공허 view
정용준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하지 않기’였다. 뭘 하려는 노력은 그만두고 뭘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일찍 일어나는 것. 까다로운 연락을 주고받는 것. 확인하고 결정하고 결심하는 것. 크고 작은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 사느라 바빴다. 어떤 이유로, 혹은 이유도 모른 채, 분주했다. 급한 일에 시달렸다. 곰곰이 따지고 보면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는데 처리하려 들었고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정작 소중한 일이나 가치 있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뒤로 미루었다. 이상하다. 의미 있는 일은 안 하고(못하고) 무가치한 일에 온 힘을 다하는 삶이라니.
살기와 쓰기는 겨룰 수 없다. 둘은 체급이 다르다. 쓰기는 살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살기의 눈치를 봐야 쓰기는 존재할 수 있다. 살기가 자리를 비우거나 잠이 들어야 비로소 초원에 나올 수 있는 약하고 약한 쓰기. 일상의 사각에 숨어 읽고 쓰는 것. 그것도 대단하지만, 그만큼 소중하지만, 때로는 생각한다. 삶의 운동장 전체를 다 사용해서 쓰면 얼마나 좋을까. 페소아가 그랬듯이 온종일 허구의 존재들하고만 놀면 얼마나 좋을까. 두려움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몇 개로 가능하다면 수십 개로 분화해서 모두에게 삶을 허락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과 공상으로 사면을 채워 그 안에서 영원해지고 무한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협성마리나 G7 39층 숙소. 그곳을 떠올리면 차가운 2월의 허공이 느껴진다. 커다란 창밖으로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 1,200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 창문에 이마를 대고 멍하니 그것들을 봤다. 그렇게 있는 것이 좋았다. 허공에 떠서 아래를 바라보는 3인칭 화자의 기분은 이렇겠지. 높은 고도와 그만큼 텅 빈 풍경. 이따금 새가 날고 몇 차례 비가 내리는 것 외엔 언제나 비어 있던 저 허공. 거기에 눈을 두고 오래 있으면 곧 공허해졌다. 나는 그 풍경을 미술관의 그림처럼 응시했고 그 작품의 이름을 ‘공허 view’라고 지었다.

‘공허’의 정의가 궁금해서 사전에서 찾아봤다.
내부 감정이 황폐해지고 환상과 소망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하지 못하거나 단순히 기계적인 반응만을 보이는 주관적인 정신 상태. 이런 상태에서 개인은 확신, 열성, 타인들과의 연결됨을 상실하고 무감각, 권태 그리고 피상적인 감정에 시달린다.
대부분의 설명과 표현에 동의하지만 ‘황폐’, ‘기계적인 반응’, ‘시달린다’에는 수긍하기 어렵다. 내부 감정의 구조와 지탱하고 있는 것들이 무너질 수는 있다. 무너질 필요도 있다. 그러나 그 풍경을 황폐하다고 할 수는 없다. 대청소를 하려고 물건을 빼놓은 빈방을, 새 물을 채우려고 물을 다 뺀 수영장을, 더럽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처럼. 그 ‘뷰’는 공허했지만, 그래서 나 자신이 황폐하고 무의미해지는 무력감 비슷한 것도 느꼈지만, 그 황폐와 무의미가 마련한 텅 빈 공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비워진 만큼 들어차는 것들. 여기 아닌 저기가 보였다. 지금이 아닌 옛날이 나타났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느꼈다. 현실이 아닌 비현실, 때로는 초현실을 경험했다. 가능이 아닌 불가능의 꿈을 꾸었다. 선악이니, 미추니, 정의니, 정의가 아니니, 아… 속 시끄러운 단순하고 멍청이 같은 이분법에서 벗어나 복잡하고 다단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이상한 것과 괴상한 것과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초대했고 엉뚱한 상상과 불편한 예상을 마음껏 열심히 했다. 불안했고, 무서웠고, 때로는 공포스러웠던 순간도 있었는데(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그저 이야기라고 믿었다. 문장이라고 믿었다. 왜 안 써지는걸까? 고민하다가 구상과 구성을 수정했고 몇 개는 삭제했다. 마음의 방에서, 감정의 창고에서, 물건과 단어들을 모두 빼버렸다. 생각보다 넓고, 생각보다 좁았던 방. 어떤 것들은 버리고 어떤 것들은 새로 구입해야 했다. 빼는 것도 버리는 것도 너무 무거웠지만 빈방을 보고 있으니 어째서인지 힘이 났다. 다시 채워질 것이다. 새것들로 가득 차고 그 방에 들어간 나도 새것이 될 것이다. 마음이 허공이 됐다. 연기 같은 희미한 것이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됐다. 깨끗하게 지워낸 백지와 여백 속에 한 줄씩 새기는 시간. 엉망진창 문장은 지웠지만, 그래서 사라졌지만, 필압으로 생긴 흔적은 마음에 남아 믿음이 됐다. 쓴 것과 지운 것과 쓸 것들 모두 언젠가 소설이 되겠지, 나는 믿었다. 아니, 믿기로 했다.
다시 공허 view. 하늘색과 바다색은 비슷할 때가 많다. 가끔 회오리 같은 것이 가벼운 물건을 하늘 끝까지 쏘아 올릴 때가 있다. 배를 타고 먼바다로 향하는 승객들이 놓고 가는 주차장의 자동차들은 쓸쓸해 보였다.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까만 차와 하얀 차를 좋아하는 걸까. 바둑돌 같은 주차장을 보며 어떤 날은 오목을 상상했고 어떤 날은 바둑을 상상했고 가끔은 알까기를 상상했다. 고요하고 부끄러움 많은 자동차들끼리 서로 쾅쾅 충돌한다면 그래서 굉음이 들리고 가끔 불꽃과 화염이 솟구친다면 즐거울 것 같았다. 그리고 내내 눈이 오길 바랐다. 부산은 눈 구경하기 힘들다던데. 거짓말처럼 눈이 내렸으면 싶었다. 허공을 가득 채우는 눈송이들을 바라본다면 황홀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 않기’는 ‘다른 하기’로 이어졌다. 생각하기. 기꺼이 지루해하기. 느리게 움직이기. 가급적 움직이지 않기. 바라보기. 눈은 뭔가를 보고 있지만 마음은 딴 곳을 보기. 망상하기. 망상 속에서 이야기를 떠올리기. 이야기를 뚫고 달리는 인물의 얼굴을 생각하기. 생각난 것을 다시 생각하면서 허상과 허구의 디테일을 만들어냈다. 밤에 잠이 안 오면(올 리가 없다. 늦게 일어났고 에너지도 거의 소비하지 않았으니까) 바깥에 나가 공원을 걸었다. 바닷물이 강처럼 고요히 흐르는 새벽의 공원. 늦겨울 새벽은 제법 추웠고 공원을 걷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따금 전력 질주하는 사람과 자전거를 마주쳤다. 사연 있어 보이는 사람이 코트 속에 몸을 구겨 넣고 계단에 앉아 그림자처럼 캄캄해지는 모습을 봤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나타난 두 개의 이미지. ‘스노우 크리스털’과 ‘나비’, 세상에.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서도 눈과 나비가 나오는데. 이건 운명이 아닐까. 나보고 소설 잘 쓰라는 신호 같은 것이 아닐까. 그 밤. 몹시 신이 났고 노트북을 활짝 펴고 소설을 썼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모종의 인물이 찾아왔다. 소설의 주인공인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옛 친구인가. 내 곁을 떠나 이제는 유령이 된 누구인가. 모르겠지만 함께 있었다. 같이 공허 view를 보고 주변을 걷고 긴 시간 줄을 서서 만두를 먹었다. 공중에 뜬 다리 위를 그림자처럼 걷고 또 걸었다. 그에게 내가 쓴 소설을 보여줬다. 그는 좋은데요, 라고 말하면서도 이건 내가 아닌데요, 이건 내 말이 아닌데요, 했다. 이건 소설이니까. 당연히 당신이 아니죠, 민망한 나는 중얼거렸다. 나는 너무 졸렸고 눈을 감았다. 그는 거실에 앉아 내가 쓰던 문장 뒤로 몇 문장을 낙서하고 거실을 어슬렁거렸다. 다음에 뭐 했더라. 너무 졸렸다. 간만에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된다.
바다를 묘사할 때 부산 바다를 봤다. 먼 나라. 먼 풍경. 차가운 겨울과 뾰족한 나무들. 고요한 사람들과 춤추는 오로라를 상상할 땐 공허 view를 응시했다. 뭐가 보여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내 안에서 끄집어 올려지는 것들. 눈 덮인 겨울 평원에 작은 텐트를 만들어 겨울을 나는 사람. 추위에 벌벌 떨며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 동식물 하나 없이 텅 비어 얼어붙은 우주의 행성. 그것을 별이라 부르며 바라보는 눈먼 눈동자. 삶에서는 용기내지 못했던 겁쟁이의 일기장. 내면과 상상 속에서만 되살아나는 인물과 사건. 추위를 상상했더니 손끝이 시릴 때 얼마나 기쁘던지. 쏟아지는 눈을 떠올릴 때 쏟아져 주는 빛줄기가 얼마나 끝내주던지.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혼자 망상에 빠져 힘도 열기도 입체도 없는 허공의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좋던지. 하마터면 이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일 뻔했다. 하마터면 소설에 쏟아야 할 마음과 언어를 말과 편지로 쏟아버릴 뻔했다. 아무도 몰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타이핑을 하고 어쩐지 아쉬운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을 때 우물처럼 차오르던 평안과 외로움. 그리고 생각했다. 소설이 오고 있어. 소설이 내게 오고 있어.
써질 것 같았다.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썼고 완성도 했다. ‘겨울통’이라는 제목을 짓고 원고를 기다리는 편집자님께 송고했을 때 좋았다. 겨울에 관한 그 소설은 여름에 출간됐다. 종종 그 공허 view가 그립다. 나 아닌 다른 작가들도 거기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까. 무엇이 보이는 걸까. 그것들 문장으로 바꾸고 있겠지. 이야기로 바뀌고 있겠지. 응원하는 마음 반. 질투하는 마음 반. 그들에게도 소설이 오길. 미래가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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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 일기〉는 문학 레지던시에 머문 작가들의 에세이입니다. 입주 기간 동안의 하루와 작업 과정,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한 감각과 생각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작품 너머 창작의 현장과 작가의 내면을 함께 전합니다.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독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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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inz Jani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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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훈
-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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