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와서
- 작성일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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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 참관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와서
정대훈

1. 다리가 아팠다, 그런데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다리가 아팠다. 서울국제도서전에 들어선 지 네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분명 책을 보러 왔는데 이상하게 계속 걷고만 있었다. 한 부스를 보고 나오면 또 다른 부스가 나타났고, 저쪽에 사람이 몰려 있어, 가보면 또 다른 줄이 있었다.
잠시 앉아 쉬고 싶었다. 그런데 앉을 곳이 없었다. 커피 한잔 마시며 오늘 본 풍경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지만, 행사장 안 카페는 이미 만석이었다. 결국 사람들이 선택한 곳은 전시장 한쪽 벽과 통로였다. 누군가는 가방을 베개 삼아 쉬고 있었고, 누군가는 오늘 받은 전단과 굿즈를 정리하고 있었다.
책은 느린 매체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책을 펼치고, 페이지를 넘기며 머무는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 그런데 책 축제에 온 사람들은 멈추지 못하고 계속 걷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 이상한 것은 아무도 쉽게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와, 너무 많다. 어디부터 봐야 하지?”
“아 힘들다.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은데 자리도 없네.”
힘들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다시 다음 부스를 향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책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 이상한 모순에서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을 바라보는 질문이 시작됐다.
2.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 책을 사러 온 사람들일까, 그냥 책 곁에 있고 싶은 사람들일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사람들이었다. 특히 젊은 여성 관람객들이 많았다. 20대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방문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행사장 곳곳을 누볐다. 그런데 조금 걷다 보면 묘한 장면이 보였다. 길게 늘어선 줄. 그런데 그 줄 끝에는 늘 책이 있지는 않았다.
“여기 줄 서 있는 거예요?”
“이벤트 참여하시려면 저쪽 끝부터 서셔야 해요.”
사람들은 이벤트를 기다렸다. 한정 굿즈를 찾았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 상품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조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책 축제인데 책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처음에는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행사장을 오래 걷다 보니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들은 책을 영영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책 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아닐까.
과거에 비해 지금의 독자는 조금 복잡하다. 좋아하는 출판사의 세계관을 소비하고, 책 주변의 귀엽고 탐스러운 물건들을 소유하고, 작가와 연결되는 어떤 새로운 경험을 꽤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책은 목적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출입구가 되고 있었다.
3. 가장 작은 공간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람들
— 어쩌면 독립 출판이 보여준 취향의 힘?
첫날. 흥미로운 것은 크고 화려한 부스에만 사람들이 몰렸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인파가 가장 천천히 움직였던 공간 중 하나는 바로 독립 출판 부스였다. 한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빠르게 훑고 지나가지 않았다. 다양한 모양의 책과 굿즈들을 하나씩 들춰보고, 귀엽고 깜찍한 디자인의 표지를 살피고, 누군가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작은 세계 앞에서 감탄하며 오래도록 머물렀다.
독립 출판 공간에는 어쩌면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어떤 감각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정해준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내가 발견한 책.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만이 찾아낸 이야기. 대형 출판사가 완성도 높은 세계를 보여줬다면, 독립 출판은 발견하는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었다. 책의 미래가 반드시 규모와 자본에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꽤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 독립출판·아트북 부스에는 수십 개의 소규모 출판사와 창작자가 참여해 각자의 개성과 실험적인 콘텐츠를 선보였다. 대형 출판사가 브랜드와 경험 중심의 공간을 구성했다면, 이곳에서는 창작자의 목소리와 독자의 발견이 중심이 되는 또 다른 출판 생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공간의 활기가 사뭇 다르게 보였다. 다른 부스에서는 사람들이 비교적 빠르게 이동했다. 이벤트를 마치면 다음 줄로, 굿즈를 받으면 다음 부스로, 신간을 훑고 나면 또 다른 공간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독립출판 부스에서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역시 그 흐름이 달랐다. 사람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작은 교통 정체가 계속되는 공간이었다. 책상 하나 앞에서 오래 머물고, 책을 들춰보고, 작가에게 묻고, 설명을 듣고, 다시 책을 들었다. 그리고 꽤 자주 구매로 이어졌다.
이곳의 힘은 분명했다. 독립 출판물은 무엇보다 시각적 긴장감이 강했다. 디자인, 장정, 색감, 재료, 크기, 형태가 저마다 달랐다. 어떤 것은 책이라기보다 작은 공작물에 가까웠고, 어떤 것은 이미지와 문장이 결합된 오브제처럼 보였다. ‘귀엽다’, ‘깜찍하다’, ‘신기하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감탄이 곧 질문으로, 질문이 구매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건 어떤 책이에요?”
“직접 만드신 거예요?”
“이 이미지는 어떻게 작업하신 거예요?”
대부분의 부스에는 만든 사람—1인 회사 대표이자 작가이자, 아티스트 혹은 장인?—이 있었다. 그래서 설명이 달랐다. 정해진 홍보 문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읽거나 보아야 하는지 직접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듣다 보면 어느새 그 상품은 나의 가방 속에 들어와 있게 된다. 나 역시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고, 충동구매—아니,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이름하기로 ‘충돌 구매’—를 꽤나 저지르고 말았다. 독립 출판 부스에는 그런 위험이 있었다. 귀엽고, 신기하고, 이상하게 설득력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한편, 이 공간에서 또 하나 눈에 띄었던 새로운 변화는 해외 독립 출판 네트워크의 참여였다. 싱가포르 아트북 페어, 일본 독립 출판 엑스포, 대만 독립 출판협회 등 다양한 나라의 창작자와 출판물이 한 공간에서 소개되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이들이 보여주는 방식이 서로 닮아 있었다는 점이었다. 거대한 출판 시스템보다 창작자의 개성, 책이라는 물성, 직접 만든 이미지와 디자인, 그리고 독자와 얼굴을 맞대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책이라기보다 하나의 작은 작품처럼 보이는 결과물들. 독립 출판은 더 이상 ‘작은 출판’이라기보다, 새로운 감각과 취향을 가장 빠르게 보여주는 세계적인 창작 흐름이 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대형 출판사가 브랜드를 공간화하고, 기업들이 책과의 협업 가능성을 실험했다면, 독립 출판 부스는 책의 가장 작은 단위에서 일어나는 창작의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책이 팔리는 과정도 달랐다. 먼저 시선을 붙잡고, 궁금증을 만들고, 대화를 일으키고, 만든 사람의 설명을 거쳐, 구매로 이어졌다. 어쩌면 도서전에서 가장 이상적인 독서 경험은 이곳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설득되어 한 권을 집어 드는 경험. 책이 상품이기 이전에 관계라는 사실을 독립 출판 부스는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 ‘귀엽다’, ‘신기하다’는 말이 곳곳에서 들렸던 책마을 풍경. 독립출판 부스에서는 책 한 권보다 그 안에 담긴 창작자의 세계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직접 만든 책을 소개하는 작가와 궁금증을 가진 독자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도서전 안에서도 가장 느리고 오래 머무르는 공간을 만들었다.



▶ 세계의 작은 출판들이 모이는 자리. 싱가포르·일본·대만 등 해외 독립출판 부스에서는 각 나라 창작자들의 개성이 담긴 책과 아트북을 만날 수 있었다. 언어는 달라도 손으로 만든 책, 작가의 취향이 선명한 책, 독자와 직접 만나는 방식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독립출판이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 흐름임을 보여준 공간
4. 어떤 출판사는 이제 책만이 아니라 하나의 독특한 세계를 만든다.
그 변화를 가장 빨리 알아차린 것은 출판사들이었다. 올해 도서전에서 예년과 가장 달라진 것은 부스였다.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부스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나의 작은 브랜드 공간이었다. 저마다 선명한 색깔이 있었다. 완성도 높은 콘셉트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가 있었다.
대형 출판사들은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그곳에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었다. 어떤 공간은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팬덤 공간처럼 보였고, 어떤 공간은 책이 놓인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보여주는 쇼룸 같았다. 책을 펼쳐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들어오고 싶도록 만들었다. 예전의 도서전 부스가 책을 최대한 많이 진열하고 판매하는 ‘임시 서점’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출판사가 가진 정체성과 이미지를 구현하는 하나의 전시 공간에 가까워졌다.
독자들은 책을 사기 전에 먼저 공간에 들어간다. 색과 조명, 구조물과 체험 프로그램, 굿즈와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가 제안하는 세계를 경험한다.
어떤 곳은 하나의 놀이 공간처럼, 어떤 곳은 전시장처럼, 어떤 곳은 오래된 서재처럼 꾸며졌다. 책은 더 이상 진열대 위에 놓인 상품만이 아니라, 하나의 분위기와 취향 속에서 발견되는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특히 올해 도서전에서 인상적이었던 흐름 하나는 책을 다른 문화 코드와 결합하려는 시도였다. 김영사는 ‘리딩 트레이너(Reading Trainer)’라는 콘셉트를 내세워 마치 피트니스 센터에 온 것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운동을 통해 몸을 단련하듯 책을 통해 생각과 감각을 단련한다는 메시지였다. 작가들은 독자의 지적 체력을 길러주는 ‘트레이너’가 되고, 책은 하나의 훈련 프로그램처럼 제안되었다.
예스24는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러닝 문화를 독서와 연결했다. ‘Reading Run’이라는 콘셉트는 읽는 행위를 정적인 활동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성장하는 경험으로 다시 해석했다.
한편, 이런 변화는 도서전의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질문도 여지없이 남긴다. 공간을 만들 여력이 있는 출판사와 그렇지 않은 출판사 사이의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각 출판사가 가진 고유한 이야기를 ‘어떻게 독자에게 전달할 것인가’일 것이다.

▶ 몸을 단련하듯 생각을 단련한다. 운동과 러닝이라는 동시대의 라이프스타일 언어로 독서를 다시 말하는 출판 브랜드들
이벤트도 치밀했다. 책 소개보다 먼저 경험을 설계했다. 심지어 행사장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들렸다. 올해는 유독 가방 경쟁이 치열했다고. 책 축제에서 가방 경쟁이라니. 처음에는 웃음이 났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주 영리한 전략이었다. 관람객이 들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은 행사장을 돌아다니는 광고판이었다. 출판사는 이제 책 표지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의 하루 전체 동선까지 디자인하고 있었다.



▶ 도서전 고수들의 준비물, 대형 가방. 도서전에 빈손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있어도, 가벼운 손으로 나오는 사람은 없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언론사 계열 출판사 부스였다. 최근 언론 산업 전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지만, 이 공간은 오히려 가장 적극적으로 변화한 모습 중 하나를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이곳에서는 책을 앞에 놓고 ‘사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세상을 향해 던지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
관람객들은 벽면에 걸린 수많은 질문 중 하나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시 연관된 기사와 콘텐츠로 연결됐다. 또 자신의 사진을 넣어 책 표지처럼 만들어주는 체험 프로그램에는 긴 줄이 이어졌다. 자못 흥미로웠다. 과거라면 언론과 출판은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독자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이제는 먼저 독자의 질문을 묻고,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초대한다. 콘텐츠를 보여주는 시대에서 콘텐츠 안에 참여하게 만드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었다.


▶ 책과 뉴스, 질문과 경험이 만나는 공간.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방식도 변하고 있었다.
5. 책 밖에서 온 사람들 — 도서관, 기업, 동네 책방이 들어오다.
그런데 올해 도서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변화는 따로 있었다. 낯선 이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판사가 아닌 참여 주체들이 책 축제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도서관. 민간 문화재단. 브랜드 기업. 그리고 동네 책방. 예전 도서전이 ‘출판사들의 축제’였다면 이제 조금 달라지고 있었다. 책을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책과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서울도서관은 제법 큰 규모의 부스를 마련했다. 관계자에게 물었다.
“올해 처음 나오신 거예요?”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대답하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낯선 곳에 어렵게 들어온 사람의 표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의 그것에 가까웠다. 책을 보관하고 빌려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도서관도 이제 달라지고 있었다. 책이 만들어지고, 팔리고, 읽히고, 다시 사람들과 만나는 과정 속에서 도서관 역시 하나의 중요한 주체가 되고 있었다.
이번 도서전에서 가장 새롭게 느껴졌던 점은, 단연 기업들의 참여다. 민간 문화재단이 들어왔고, 여러 브랜드 기업이 책을 통해 자신들의 철학을 이야기했고, 어떤 기업은 출판사와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를 만났다.
오뚜기는 자사의 친숙한 제품 이미지를 활용해 ‘음식’과 ‘책’이라는 일상의 경험을 연결했다. 단순한 상품 홍보가 아니라 인문 출판 분야와의 협업, 문화 지원의 의미를 함께 소개하며 기업과 출판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접점을 보여주었다.
신한은행 역시 출판 콘텐츠와 결합한 체험형 공간을 마련했다. 금융이라는 다소 딱딱한 영역이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조금 더 부드러운 문화 경험으로 바뀌는 모습이었다.
책은 더 이상 출판 산업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책을 만드는 사람. 책을 보관하는 사람. 책의 재료를 만드는 사람. 책으로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싶은 사람. 그들이 모두 모이는 장소. 서울국제도서전은 출판 산업 행사를 넘어 책을 둘러싼 생태계 플랫폼으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모레퍼시픽의 참여는 조금 특별했다. 화장품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왜 이 기업이 도서전에 참여했을까’라는 의문과 조심스러운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의 설명은 달랐다. 아모레퍼시픽은 오랫동안 인문·문화 분야 지원과 출판 활동을 이어왔으며, 앞으로도 책과 지식문화 영역에서 역할을 확대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질문은 ‘출판사가 아닌 기업이 왜 여기에 있는가’가 아니라, ‘책과 문학은 누구와 더 만날 수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도서전은 이제 출판 관계자만의 행사가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산업과 시민이 만나는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며 자연스럽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역할도 떠올랐다. 문학 분야 역시 도서전 안에서 더 적극적으로 독자를 만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창작지원 사업의 성과, 작가와 작품, 문학 향유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공간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기존에 협력 관계를 이어온 기업들과 함께 참여한다면 가능성은 더 커진다. 문학을 매개로 연결되어 온 파트너들과 공동 부스를 구성한다면 단순 홍보를 넘어 공공지원·기업후원·문학 생태계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책을 만드는가‘만이 아니라, ’누가 책의 가치를 함께 확장해 갈 것인가‘이다.
가구 기업 일룸의 참여 또한 흥미로운 사례였다. 가구 브랜드인 일룸은 ‘책을 읽는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책 자체가 아니라 책을 읽는 시간과 자세, 공간에 주목하며 침대와 가구를 활용한 독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했다.
부스 역시 단순 제품 전시가 아니라 실제 독서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됐고,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 이벤트에는 긴 줄이 이어질 만큼 높은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참여 방식이었다. “가구 회사가 왜 도서전에 왔느냐”는 질문에 현장 직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책과 공간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별도의 복장과 운영 콘셉트를 준비한 모습에서도 이번 참여를 단순 마케팅이 아니라 새로운 독자 경험을 만드는 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고, 나만의 공간에서 이야기에 몰입하는 경험을 실제 가구와 함께 구현했다. 관람객들은 단순히 제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책 읽는 생활’을 체험했고, 현장 직원들 역시 왜 가구 브랜드가 도서전에 참여했는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새로운 독서 문화를 제안했다.
동네 책방의 움직임도 흥미로웠다. 작년까지는 경기도 내 지역 서점들이 연합하여 참여하는 형태가 눈에 띄었다면, 올해는 동네 책방 스스로 연결된 네트워크의 존재감이 유독 커 보였다. 부스 한쪽에는 전국 곳곳의 동네 책방들이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었다. 서울의 큰 서점 몇 곳이 아니라, 지역 곳곳에 흩어진 작은 점들이 하나의 지도가 되고 있었다. 작은 점들은 모이면 흐름이 된다.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도 결국 이것 아니었을까.
작은 책방들이 모인 공간. 하지만 그곳의 움직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 행사 일정표를 보고 조금 놀랐다. 거의 빈 시간이 없었다. 작가와의 만남, 워크숍, 체험 프로그램이 빼곡했다. 궁금해서 물었다.
“이걸 정말 여기서 다 하시는 거예요?”
관계자는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네. 저희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 짠한 말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지금 작은 책방들이 살아남는 방식이기도 했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 책을 꽂아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연결하는 것. 책방 역시 이제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책방은 책을 파는 장소에서 사람과 책을 연결하는 장소로 점차 변하고 있었다.
6.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국제’라는 이름
국제도서전이라는 이름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해외 부스는 있었지만, 행사의 중심이라기보다 별도의 전시 공간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프랑스. 독일. 캐나다. 대만. 그리고 그 외의 여러 나라에서 참여한 해외 출판사 부스들. 여러 국가의 부스에서는 단순 홍보 이상의 움직임도 선보였다. 각국의 출판 관계자들이 마주 앉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책을 소개하고, 권리를 논의하고,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자리. 국제도서전의 힘은 유명 작가의 방문 하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가와 독자, 출판 관계자와 해외 파트너, 번역가와 기획자가 만나는 수많은 접점에서 만들어진다.
그런 면에서 특히 캐나다 부스는 인상적이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테이블과 의자들 사이. 몸을 돌릴 틈조차 없을 정도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캐나다관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준비 방식이었다. 단순히 책 목록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한국을 찾은 출판사와 편집자, 관계자들을 소개하는 별도의 브로슈어가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가 이런 책을 가지고 왔다’가 아니라,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는 소개였다. 국제 출판 교류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콘텐츠 이전에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또한 주빈국 프랑스관은 단순히 프랑스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프로그램표를 보니 정말 빼곡했다. 작가와의 만남, 대담, 사인회, 문화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참여 작가들의 면면도 인상적이었다. 한 나라가 자신의 출판물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자신의 문학 생태계 전체를 가지고 온 느낌이랄까. 책 뒤에는 작가가 있고, 작가 뒤에는 언어가 있고, 언어 뒤에는 한 사회가 있다. 국제도서전이 보여줘야 하는 것은 결국 그 연결구조 아닐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유명 작가 한두 명을 앞세운 이벤트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소설가, 일러스트레이터, 시인, 연구자,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가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한 나라의 책 문화를 보여준다는 것은 베스트셀러 몇 권을 소개하는 일이 아니라 그 문화가 만들어지는 토양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7. 성공한 축제에서 들려온 작은 목소리
그러나 성공한 축제일수록 더 어려운 질문을 종종 만나게 된다. 사람들 분명 많았다. 하지만 행사장을 걷다 보면 정작 곳곳에서 다른 목소리도 미세하게 들려왔다.
“예전 같지 않아요. 책이 잘 안 팔려요.”
한 출판 관계자의 말이었다.
“사람은 정말 많은데, 책에 관해서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조금 전까지 보았던 뜨거운 열기와는 결이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어느 관람객은 말했다.
“볼 게 너무 많아요.”
반면 출판사는 말했다.
“책을 보는 사람이 없어요.”
두 말 모두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이 마주한 질문의 난해함이 있었다. (연도별 출판사 판매 추이 등을 살펴볼 수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대형 출판사의 부스는 더 커졌다. 멋진 공간을 만들었고, 강렬한 콘셉트를 보여주었으며, 사람들의 발길을 쉽사리 붙잡았다. 반면 작은 출판사들은 조금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부스 하나 들어오는 것도 어려운 선정 과정을 거쳤는데, 결국 좋은 자리는 큰 출판사들이 다 가져가는 것 같아요.”
어느 출판사 관계자가 남긴 볼멘소리였다. 도서전에서 부스 공간의 점유 면적은 단순한 면적이 결코 아니다. 관람객들에게 발견될 가능성이다. 또한 중앙에 있다는 것은 우연히 만날 기회가 많다는 뜻이고, 외곽에 있다는 것은 누군가 일부러 찾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책 속의 세계에서는 작은 목소리가 큰 울림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행사장에서는 작은 목소리가 정말 말 그대로 작게 들릴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크고 작고의 차이가, 차별이 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단독부스를 사용하는 출판사들을 변방으로 내몬 듯한 느낌은 저만 갖고 있는 걸까요?”
“몇몇 작은 출판사들은 연대해서 부스 여러 개를 함께 사용하기도 해요. 각자 개성을 고집하느니 불편하더라도 그게 더 낫다는 거죠.”
도서전 곳곳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실험도 보였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출판지식창업보육센터 단체관이 그런 사례였다.
규모는 작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출판사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 모여 있었다. 각각의 출판사가 혼자였다면 쉽게 발견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모이자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졌다.
결국 공공의 역할은 모든 것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만들어진 시장 안에서 쉽게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 작은 출판사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무대를 마련하는 것. 그것 역시 중요한 공공성이다.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지식창업보육센터 단체관. 공공의 역할은 작은 가능성이 독자와 만날 수 있는 첫 무대를 만드는 데 있다.
또 하나 달라진 풍경도 분명 있었다. 아이들이 적었다. 아니,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예전 도서전에서는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림책 앞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아이들. 아이 책을 한 아름 고르고 구매하는 부모들. 그런데 올해 풍경은 사뭇 달랐다. 젊은 관람객들이 새로운 활기를 만들고 있었지만, 가족 단위 방문객과 아동 출판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였다.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반드시 물어야 한다. 새로운 문을 여는 동안 혹시 닫힌 문은 없는가. 물론 평일이라는 특수성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 도서 분야의 참여와 존재감이 예전보다 줄어든 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최근들어 성장세에 있는 어린이 출판 도서전이 여럿 등장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말 그 여파일까?
어떤 출판사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공모에 통과하려면 점점 더 힘들어져요. 아예 도서전 시기에 맞춰 전략적으로 미는 신간도서를 뽑아내야 해요.”
또 다른 출판사 측의 말이다.
“티켓 장사는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출판사들이 점점 소외된다면 이게 과연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요?”
‘듣는 마음’. 성공이란 신화를 향해 나아가는 길 위에서 어쩔 수 없이 그늘에 가려진, 듣기 불편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
8. 인간을 묻는 축제에서 발견한 가장 인간적인 것 — 주제에 관해
그리고 올해 도서전은 또 하나의 큰 질문을 독자와 관람객들을 향해 내던졌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AI가 문장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질문에 답하는 시대. 책을 만드는 인간은 무엇이고, 읽는 인간은 무엇인가.
지금 출판계가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올해 도서전이 던진 화두는 매우 적절했다. 하지만 행사장을 걸으며 내내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좋은 질문이 있었음에도 그 질문이 행사장 전체에 충분히 전파되고 있었을까 하는 점에서다.
주제관에서는 인간과 기술, AI 이후 시대의 담론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수많은 부스에서는 각자의 이벤트와 홍보가 각자의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 모든 부스가 하나의 주제 아래 움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좋은 축제의 주제는 포스터에 쓰이는 문장이 아니라 행사장 곳곳에서 발견되는 작은 경험이어야 한다.
올해 던진 질문이 흥미로웠기에 더 기대가 컸다. 출판사는 AI 시대에 무엇을 고민하는가. 편집자는 어떤 변화를 맞고 있는가. 작가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 독자는 왜 아직도 사람이 쓴 이야기를 찾는가. 그 질문들이 조금 더 많이 행사장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면 어땠을까.

▶ 도서전이 던지는 질문 — 《인간선언 Homo duduri : 2×2=5》 주제전시관. 2026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관은 책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경험하는 공간이었다. 효율과 정답, 계산 가능한 가치가 강조되는 시대에 ‘때로는 2×2=5라고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인간을 이야기하는 도서전에서 내가 가장 절실하게 확인한 인간의 조건은 아주 단순했다. 사람에게는 앉을 곳이 필요하다. 몇 시간 동안 걷다 보면 결국 심오한 철학보다 잠시 몸을 쉴 의자가 먼저 생각난다. 커피 한잔 마시며 방금 산 책을 펼쳐볼 곳. 방금 들은 강연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할 곳. 잠깐 멈춰 오늘 만난 문장을 적어볼 곳. 그런 공간이 조금 더 많았으면 했다.
그런데 커피 브랜드 부스에서 잠시 쉬다가 우연히 전시된 책들을 발견했다. 궁금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 브랜드는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커피와 관련된 문화와 이야기를 직접 출판하는 출판 사업도 함께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담당자는 “우리가 이런 출판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도서전에 참여했다”라고 설명했다.
가구 브랜드는 침대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제안하고, 커피 브랜드는 커피를 둘러싼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다. 이제 책은 서점과 출판사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표현하는 하나의 매개가 되고 있었다.
이번 도서전 곳곳에서는 ‘책을 만드는 사람’의 경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출판사가 책을 만드는 시대를 넘어,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책이라는 형식을 선택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커피 한 잔 옆에 놓인 또 다른 책 이야기. 커피 브랜드 COFFEE LIBRE는 커피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커피 문화와 경험을 기록하는 출판 활동도 함께 소개했다. 올해 도서전 곳곳에서는 출판사가 아닌 다양한 주체들이 책이라는 형식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이날 조금 이상한 행운도 있었다. 어렵게 예매했던 티켓이었다. 그런데 행사장에 도착해 화장실을 들렀는데, 뜻밖에도 누군가 새 티켓 하나를 세면대 위에 살포시 놔두고 나간 걸 발견했다. 나는 주워 든 출입용 밴드를 손목에 두르고 화장실 한편에 서서 조용히 예매했던 티켓의 취소 버튼을 눌렀다. 마치 도서전의 신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주에서 여기까지 열심히 찾아왔으니 오늘 입장료는 공짜인 줄 알거라.”
인간과 AI의 미래를 고민하러 온 곳에서 내가 경험한 것은 뜻밖에도 아주 인간적인 작은 행운이었다.
프로그램 운영 면에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강연과 행사는 빠르게 마감됐다.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분명 많았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는 빈자리가 보였다. 기대와 참여 사이의 거리. 이것 역시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더 좋은 환경. 더 책임 있는 예약. 더 깊은 참여. 도서전이 커진 만큼 운영 방식도 보다 진일보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9. 성공 이후의 질문 — 새로운 공공성을 위하여
몇 년 전을 생각하면 지금 모습은 참으로 놀랍다. 코로나 시기. 우리는 온라인으로 도서전을 만났다. 화면 속 부스를 클릭하고, 영상으로 작가를 만났다. 그때는 그것이 새로운 미래처럼 보였다. 그런데 몇 년 뒤 찾아온 미래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은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부지런히 줄을 섰다. 그리고 행사장 안에서 걷고 또 걸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모든 것이 가벼워지는 시대에 사람들은 여전히 무거운 책 주변으로 모이고 있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변화에는 분명 민간의 감각이 만들어낸 성취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빠른 판단과 기민한 의사 결정 구조. 과감한 기획과 브랜드 협업 도전. 창의적인 관람객 경험 설계 아이디어 등. 과거 공공 행사에서 종종 느껴졌던 딱딱함과 촌스러움을 어느 정도 벗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성공했기 때문에 더 공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몇 명이 왔는지를 넘어 누가 왔는지. 무엇을 경험했는지. 어떤 출판사가 성장했고 어떤 영역은 소외됐는지. 해외 비즈니스는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이런 데이터와 분석은 특정 운영 주체만의 성과 자료가 아니라 우리의 도서 생태계 전체가 공유해야 할 자산이다. 공공성 회복은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 아니다. 성공한 방식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성공의 이유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연구하고, 더 많은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한 출판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여기 나온다고 큰 이익이 남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오는 거죠. 여기 오면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니까.”
어쩌면 그 말속에 도서전에 참여하는 오래된 이유가 담겨 있었다. 책은 혼자 읽지만 책 문화는 혼자 만들 수 없다. 쓰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읽는 사람.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자신이 독자인지 모르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일 년에 한 번 이곳에서 만난다.
대형 부스의 화려함 사이에서 또 하나 눈에 들어온 것은 ‘함께 모인 작은 출판사들’이었다.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의 부스가 그랬다. 부산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 지역에서 자기만의 색깔로 출판을 이어가는 출판사들이 하나의 이름 아래 모였다.
서울 중심의 출판 환경 속에서 지역 출판사가 혼자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흩어진 작은 목소리가 모이면 하나의 장면이 된다.
부스 앞 안내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부산에서 책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장 몇 권을 더 판매하는 것보다, 이곳에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도서전은 판매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 지역 출판사들이 함께 만든 또 하나의 지도. 서울국제도서전 안에서 부산의 책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하나를 증명했다. 사람을 모으는 데에는 어느덧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 더 어려운 질문이 남아 있다. 모인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인가. 누군가는 굿즈를 가져갔다. 누군가는 사진을 가져갔다. 누군가는 새로운 출판사와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방 속에 넣어 두었던 책 한 권을 펼쳤을지도 모른다. 그 한 사람 때문에라도 아마 이 도서전은 여전히 필요한 곳일 것이다.
0. 사진으로 보는 도서전 참관 외전
❶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새로운 방식 — 이슬아 작가의 초상화 이벤트
‘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는다’라는 익숙한 관계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내가 도서전 현장에서 만난 흥미로운 풍경 중 하나는 이야기장수 부스에서 진행된 이슬아 작가가 직접 독자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이벤트였다. 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독자들의 모습은 이제 독자가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라 작가와 새롭게 관계 맺고 싶어 하는 참여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책 한 권에 사인을 받는 것을 넘어, 잠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는 경험. 앞으로의 문학 행사는 결국 작품만큼이나 작가와 독자가 어떤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가 중요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❷ 도서전이라는 거대한 ‘동창회’
넓은 행사장을 걷다 보면 뜻밖의 얼굴들을 만난다. 오랜 시간 문학 현장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출판 관계자들,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히 책을 만들고 읽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다시 연결된다.
이번 도서전에서도 농부 철학자 윤구병 선생님, 과거 글틴 운영과 청소년 문학 활성화에 힘쓰셨고 지금은 출판 교육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신 박종호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그 밖에도, …….
어쩌면 도서전의 진짜 힘은 부스와 판매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책을 매개로 살아온 사람들이 ‘아직 여기 있다’라고 서로 확인하는 자리, 그것 역시 도서전이 가진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
❸ 책은 결국 ‘보이는 것’으로도 말할 것이다!
수많은 책이 한 공간에 모이는 도서전에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디자인의 힘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독자의 첫 시선을 붙잡는 것은 결국 표지와 장정, 책이라는 물성이다.
특히 해외 출판사 부스를 둘러보면서 오히려 확인하게 된 것은 한국 출판물의 높은 제작 수준이었다. 종이, 인쇄, 제본, 표지 디자인까지 한국 책들이 가진 완성도와 감각은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책은 읽는 대상이지만, 동시에 만지고 간직하고 싶은 물건이기도 하다. 도서전은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❹ 책을 넘어 취향으로 — 굿즈 전성시대
도서전의 또 하나 친숙한 풍경은 ‘굿즈’였다. 해외 부스에서 만난 이 양말은 유명 화가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해 만든 고급 선물용 상품이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책보다 굿즈가 더 주목받는 것 아닌가’라는 걱정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책과 예술 콘텐츠가 사람들의 일상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것은 굿즈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세계관이다. 결국 사람들이 갖고 싶은 것은 물건 하나가 아니라 좋아하는 작품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❺ 그리고… 도서전 생존의 증표(?)
마지막 사진은 조금 다른 의미의 기록. 행사장 밖 화장실에서 우연히 발견해, 나를 공짜로 행사장 내로 진입하게 해준 행운의 입장 팔찌.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팔찌 하나를 차고 책 사이를 걸었다. 누군가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 누군가는 한정판 책을 사기 위해, 또 누군가는 그냥 책 냄새가 좋아서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결국 도서전은 책만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책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이고, 걷고, 기다리고, 우연히 만나는 공간이다. 어쩌면 이 팔찌 하나가 그 하루의 가장 작은 기념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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