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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Schildkröte und der Tiger 거북이와 호랑이

  • 작성일 2026-08-01

   [레지던시 일기]


  Die Schildkröte und der Tiger

  거북이와 호랑이

  ― 한국에서 ‘레지던스 작가’로 보낸 4주의 시간


하인츠 야니쉬

(번역 김서정)


  I.


  존중받는 느낌.

  한국에서 보낸 4주간(2026년 3월 28일부터 4월 24일까지)을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이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이 받은 대접,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정성, 나의 책과 문학 작업에 대한 존중.


  내 책들(원서와 한국어 번역본)은 남이섬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림책 홀이나 서울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건물 진열장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 모두 내 책을 잘 알고 있더군요. 희한하게도, 내 책의 글과 그림에 대한 명확하고도 박학한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희한하게도, 그림책의 언어와 그림의 어울림에 대해 아주 꼼꼼하게 인지하고 언급하는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나는 내 책을 한국에서 낸 출판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책의 어떤 부분은 원본을 살짝 벗어나 새로운 포맷을 입기도 했는데, 그 섬세한 만듦새에 완전히 납득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볼프 에를브루흐가 그림을 그린 <왕과 바다>(한국어본 제목 : <우리 모두 왕>)의 한국어본은 원본과 달리 세로가 더 긴 포맷으로 나왔습니다. 책 속의 작은 왕에게 갑자기 더 큰 공간이 주어졌는데, 그게 이야기와 아주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머무르는 4주 동안 나는 출판인, 번역자들과(글자 그대로 모두 여성이었지요)(* 역주 : 독일어의 명사에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있습니다. 작가는 보통의 경우 남성형 명사와 여성형 명사를 모두 씁니다. ‘대화 상대(남성형)과 대화 상대(여성형)’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출판인과 번역자의 여성형만 쓰고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모두 여성인 게 아주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성) 그림책 작가들과 (남성) 그림책 작가들, (여성) 글 작가들과 (남성) 글 작가들과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책을 보여주고, 의견을 주고받고, 책도 주고받았습니다. 친절한 통역의 도움을 받아 이 ‘책나라’ 사람들은 특별한 책들에 대한 사랑으로 확실히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II.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그쳤던가?

  짧은 되돌아봄.


  모든 것은 트리에스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에서 나는 내 문학 작업에 주어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습니다. 

  경사스러운 시상식은 말 그대로 경사스러운 잔치가 되었습니다. 16살 난 우리 딸은 “내 생애 최고의 파티”였다고 하더군요. 70개국에서 온 600명 이상의 사람들이 IBBY 총회에 모였습니다. 어린이문학에 대한 사랑 하나로 뭉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었지요. IBBY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의 약자입니다. 어린이‧청소년문학의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국제적 단체이지요. 현재 80개 이상의 회원국이 있습니다. IBBY는 2년에 한 번씩 각국을 돌아가며 총회를 여는데, ‘어린이문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시상식도 이때 열립니다. 이 멋진 상을 2024년 트리에스테 총회에서 받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일러스트 부문의 수상자는 캐나다 그림책 작가인 시드니 스미스였습니다.

  재즈 밴드가 연주를 했고, 모두들 어울려 춤을 추었습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었습니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국의 남이섬에 있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홀’이라는 특별한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곳은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을 기리고, 전 세계의 수상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남이섬으로 초대하겠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1년 반 뒤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여행이 결정되었지요.

  2026년 3월 28일부터 모험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작가 레지던스’로 4주를 보내는 모험이요.


  III.


  첫 주는 ‘가족 시간’이었습니다. 아내와 딸이 함께 와서 한 주 동안 서울에 머물게 되었지요. 우리는 번화가에 있는 한 호텔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여행객으로 살았습니다. 전통 의복들로 넘쳐나는 아주 인상적인 궁전, 경복궁을 방문했습니다. 경복궁은 ‘빛나는 행운의 궁전’이라는 뜻이라는군요. 1994년 세워진 군대의 역사에 관한 박물관, ‘전쟁 박물관’에서 몇 시간을 보낸 뒤에는 이 나라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움―삼성 예술 박물관’에서는 어떤 퍼포먼스에 참석했는데, 깊은 감동을 받았지요. 인간 조각상들이(* 역주 : 조각상처럼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박물관 소장품인 돌 조각품들과 대화를 나누더군요. 우리 딸도 두 무용수의 지극히 섬세한 몸짓에 이끌린 채 공간을 가로질러 한 조각품 앞으로 갔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습니다. 

  우리는 도시의 여러 다양한 구역들을 돌아다녔습니다. 인사동에서는 골동품을 구경했고, 강남 구역에서는 구름을 찌르는 현대적 초고층 건물들을 보았습니다. 동대문 시장을 어슬렁거렸고, 붐비는 골목길의 수많은 가판대에서 방금 요리한 음식들을 맛보았습니다. 

  “나 꼭 서울에 다시 와야 해.” 우리 딸은 서울에서 며칠을 지낸 뒤 선언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수많은 K팝 가게들에 열광한 건 물론이고요. 

  우리는 작은 찻집에서 달콤한 떡을 먹으며 앉아 있기도 했고, 길거리의 바글거리는 음식점에서 다양한 내용물의 만두를 먹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지하 쇼핑몰인 코엑스 스타필드에도 갔고, 555미터 높이의 롯데월드타워에도 갔습니다. 이태원의 조그맣고 귀여운 빈티지 선물 가게에도 들렀고요. 

  우리는 부지런히 다니며 예스러운 서울과 새로운 서울을 보았습니다. 천백만의 인구가 ‘빨리빨리, 신속하게’를 외치며 살아가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느릿느릿 신중하게 다니는 거북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Go! Go! Go!” 보행자 신호등의 숫자가 30에서 카운트다운될 때 옆에 있는 경찰이 외치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느렸던 거죠.

  서울은 매혹적인 모순의 도시이고, 창의성과 원칙이 동시에 요구되는 도시이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로 보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참 많은 것을 요구하는 도시였지요. 일주일에 52시간 일하는 건 보통이고, 고층 건물 안의 많은 주거지 크기가 고작 5~6평방미터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 역주 :

고시원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 쓸 돈도 공간도 시간도 부족하기야 하겠지요. 가족이 살 집은 오죽할까요.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엄두도 못 내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보살피고, 지원해주고, 교육을 시키겠지요. 

  한국에서 어린이문학이 소중히 여겨지는 이유가 설명이 됩니다. 사람들은 아이들 앞길에 좋은 책과 이야기를 놓아주고 싶은 것입니다. 



  IV.


  서울에서 닷새를 지낸 뒤 우리는 일정표에 따라 서울 북동쪽으로 60km쯤 떨어진 작은 섬으로 갔습니다. 나는 남이섬에 첫눈에 반했습니다.

  아내와 딸은 이틀을 함께 있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두 주 동안 머물게 될 곳을 보고 싶어 했거든요. 남이섬에 대해서는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한 가문이 꾸려가는, 강원도 강 한가운데의 작은 섬은, 하나의 공화국이었습니다. 나미나라공화국. 거기 들어가려면 ‘비자’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TV 시리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는군요. 

  신선한 공기를 가득 들이쉬고 싶은 사람에게 남이섬은 천국입니다. 나무가 천 그루쯤 서 있고, 수많은 작은 정원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백 개가 목표라는데, 현재 70개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섬에 벚꽃이 필 무렵이면 꿈같이 아름다운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오솔길 어디에든 꽃이 가득한 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남이섬은 우리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섬 곳곳을 돌아다니는 작은 기차, 노 저을 수 있는 작은 배, 놀이터와 휴게소… 그리고 곳곳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각품, 전시물, 콘서트, 도예원, 전 세계의 어린이책을 모은 유네스코 도서관, 그리고 아주 특별한 박물관이 있습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림책 홀입니다. 이 덴마크 작가를 기릴 뿐만 아니라 (안데르센의 사진과 책이 전시되어 있지요), 세계 각국의 안데르센상 수상자들을 기념하는 전시물들도 있습니다.

  나는 나와 시드니 스미스의 커다란 사진 앞에 벅찬 마음으로 섰습니다. 우리 책도 있었지요. 두 개의 유리 진열장 안에 원서와 번역서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내게는 커다란 영예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남이섬에 대한 내 시 하나가 돌에 새겨져서 박물관 입구에 영구 전시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존중받는 느낌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가에 있는 예쁜 별장에서 셋이 하룻밤을 보낸 뒤 나는 안데르센 박물관 뒤쪽에 있는 방으로 옮겨 갔습니다.

  말레이시아 출신 예술가 유소프 가자(202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가 꾸민 그 방은, 온갖 크기와 모양의 사랑스러운 코끼리 그림과 작품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생기 가득한 방에서 나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두 주 동안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다정한 코끼리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지켜주는 동안에요. 

  아내와 딸은 하루 뒤 서울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집으로 가야 했지요. 부활절 방학이 끝났으니까요. 둘은 나를 너무나 부러워했습니다. 두 주 동안 더 머물 수 있었으니까요.

  섬에서의 나날은 정말 매혹적이었습니다. 조그만 배들이 아침마다 방문객을 실어 날랐습니다. 대부분 가족이었는데, 그들은 섬의 자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작들이 으스대며 거닐었고, 토끼들은 자유롭게 뛰어다녔고, 호기심에 찬 다람쥐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팔짝거리며 옮겨 다녔습니다.

  저녁이면 배가 대부분의 방문객을 다시 뭍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호텔이나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도 몇 있었고요. 

  저녁이면 섬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날마다 주머니에 노트를 넣은 채 섬을 산책했고, 가끔은 새벽이나 늦은 밤 별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도 걸었습니다. 보고, 걷고, 쓰고, 고개를 들고, 온전히 나로 존재한 시간들. 붙임성 있는 토끼, 꽃이 만발한 나무, 온 세계에서 온 조각품, 찻집과 음식점의 다정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황홀한 시간들.

  나는 섬에 있으면서,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했던 모차르트에 관한 책, <모차르트의 불안>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건 어린이를 위한 탐정 시리즈 <야로미를 위한 사건>의 제11권입니다. 사라진 값비싼 악기에 관한 이야기지요. 모차르트는 실제로 어린 시절, 트럼펫의 우렁찬 소리를 불안해했다고 합니다. 그 새된 소리는 모차르트의 섬세한 귀에 “총소리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소리였다고 한 편지에 쓰여 있지요.

  나는 모차르트에 대한 원고를 다 쓰면 열심히 읽으려고 했던 책 하나를 한국으로 가져왔습니다. <한국 메르헨과 이야기들>인데, P. 안드레아스 에크아르트가 엮고 상트 오틸리엔 선교출판사가 1928년에 펴낸 책입니다.

  남이섬에 있는 동안 나는 한국 메르헨을 다시 쓰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일고여덟 편이 완성이 됐고, 아직 몇 편이 좀 남아 있습니다.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들과 공동으로 그림책을 내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지요. 성공을 빌어주세요!


  V.


  섬에서 근사하게 두 주를 보낸 뒤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프린스호텔로 가니 나를 친절하게 반겨주며 ‘작가의 방’으로 알려진 객실로 안내하더군요. 그 호텔은 정기적으로 작가들에게 방을 내주어 조용히 글을 쓸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129번째 작가이자, 최초의 외국 작가였지요. 거기 묵으면서 쓴 글 덕분에 나온 책들이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꼭 그 책만이 아니라 작가들의 다른 저작물들도 있었고요. 내 책들도 일주일 동안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전시되었습니다.

  문학에 대한 존중. 그것도 아침 먹는 자리에서부터! 유럽에도 이런 호텔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한국 체류 마지막 주에는 서울에 머물렀습니다. 대체로 아르코(ARKO, Arts Council Korea,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손님 자격이었지요. 아르코는 IBBY, 남이섬, 프린스호텔과 함께 나의 한국 체류를 가능하게 해준 기관입니다.

  나는 아르코의 한 공간에서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그 부모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빈에서 공부했다는 뛰어난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서요.

  나는 남이섬의 풀밭에서 발견한 나뭇가지를 워크숍에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원래 가지고 있던 평범한 돌멩이 하나도요. 그걸로 뭘 알려주고 싶었냐고요? 이런 것입니다.

  문학에는 작은 것이라고는 없다. 모든 것에는 풍성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나뭇가지는 역사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나는 눈이 동그래져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뭇가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우산도, 칼도, 망원경도, 현미경도, 깃발도, 돛도, 마술지팡이도, 국경도, 다리도, 이정표도, 모래에 글을 쓸 붓도, 지팡이도 된다. 모든 이야기가 다 가능하다.

  돌멩이?

  이건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안에 들어 있는 값진 보물일 수 있다. 그런데 진열장 안내판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이 돌멩이는 왜 그렇게 값진 걸까? 이건 어떤 이유로 소중한 걸까?

  아이들의 상상력은 곧 사방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돌은 바닷속 깊은 곳, 어쩌면 아틀란티스에서 나오기도 하고, 먼 우주 어쩌면 화성에서 온 것이기도 합니다. 범죄 현장의 범행 도구일 수도 있습니다. 마법이 있는 사랑의 돌일 수도 있습니다. 건드리기만 하면 사랑에 빠지는 거지요. 언어 마법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손에 들고 있으면 전 세계 어떤 언어든 알아들을 수 있는 거죠.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 모두는 판타지를 품고 있습니다. 가끔가다 깨워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르코에서는 또 며칠 동안 북적북적한 북 토크도 가졌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나의 책 <다리>와 <할아버지의 붉은 뺨> 낭독도 있었습니다.

  번역가, 평론가와의 대담도 있었습니다.

  저널리스트와 인터뷰도 많았고, 일러스트레이터들과의 만남도 가졌습니다. 멋진 만남과 흥미로운 대화 덕분에 신나는 날들이었습니다. 

  일정이 없는 날에는 서울을 돌아다녔습니다. 이 나라의 역사를 말해주는 전시물이 가득한 국립박물관에서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시품 중 청동 조각 하나는 한국의 첫 번째 거울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읽은 한국 메르헨 중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걸 새로 써보았습니다. 위험한 거울.

  박물관의 특정 장소에 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호랑이를 쓰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모니터 앞에 서 있어야 보이는 호랑이였지요. 모니터에는 자기 모습도 떠오르는데, 조심스럽게 그 디지털 호랑이를 쓰다듬으려고 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무 천천히 움직이니까 호랑이는 위엄 넘치는 걸음을 옮겨, 나를 지나쳐서 모니터 밖으로 나가버렸답니다. 

  거북이와 호랑이…

  이게 아마 나의 한국 체류에 대한 상징일 것입니다. 호랑이는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잡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처럼요. 

  한국 신화에서 호랑이는 용기와 힘의 상징입니다. 한국 창조 설화에서도 호랑이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설화와 전래동화에도 호랑이는 자주 등장합니다. 어떤 때는 수호자로, 어떤 때는 악당으로요. 한국의 유명한 호랑이 그림 중 하나가 지금 우리 침실에 걸려 있지요. 

서울에서의 날들은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나는 그 도시의 큰길, 작은 길들의 분위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몇 시간이고 걸어 다녔습니다. 내 사진이 몇몇 신문에 실린 덕분에 사람들이 자주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나를 환영해주면서, 서울에서 즐겁게 보내라고 격려해주더군요. 존중받는 느낌.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존중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머무는 동안에 나는 가져온 책들을 모두 아르코에 기증하고, 만났던 번역가들에게도 선물했습니다. 

  나는 가방을 꼭 비워야 했습니다. 서울과 남이섬에서 받은 멋진 선물들을 집으로 가져가야 했으니까요. 

  2026년 4월 26일, 한국에서의 4주 체류를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왔습니다. 흠뻑 맛본, 존중받는 느낌에 감사하면서 말이에요. 


  꼭 덧붙일 말


  감사할 사람들 이름을 늘 잊어버리는 바람에 모두 적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꼭 이름을 들어야겠습니다. 생각하면 언제나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할 이름입니다.

  IBBY의 카롤리나 발레스터. 이 일들을 연결시켜주어 감사합니다.

  나를 초청해주고, 행사를 완벽하게 진행하고, 극진하게 돌보아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모든 진행자들에게 감사합니다. 

  전 문화부장관이자 현 아르코 위원장인 정병국 님, 감사합니다. 내게 특별한 커피를 끓여주었어요!

  아르코의 김나영 님과 박성훈 님. 행사를 완벽하게 기획하고 진행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세종사이버대학의 김수영 님. 내 책을 열심히 읽고 낭독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다리>의 번역자 김서정 님. 내가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영어로 된 한국 메르헨 책 세 권을 보내주어서 감사합니다. 

  남이섬의 케니와 프레드 민. 멋진 두 주를 선물해주어서 감사합니다. 그 진심과 넉넉함에 깊이 감명받았습니다. 

  제이크, 섬에서 나를 친절하게 돌봐줘서 고마워요.

  ‘애프터눈’ 에이전트의 에이미 김이 내 한국방문을 기획해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이전트의 지민 님. 늘 세심하고 친절하게 모든 일정을 챙기고 다정하게 동행해주어서 감사했습니다. 우리 가족과는 정이 담뿍 들었어요. 

  프린스호텔에서 나를 진심으로 환영해주고 돌봐준 프린스호텔 매니저 YG 장에게도 감사합니다. 

  나를 안전하게 이곳저곳 데려다준, 인내심 많은 방 기사님, 고맙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내 책이 한국에서 읽힐 수 있도록 해준 모든 관계 출판인들과 번역자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처럼 판타지의 힘을 믿으면서 내 책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커다란 감사를 드립니다.


  GAMSAHAEYO!



〈레지던시 일기〉는 문학 레지던시에 머문 작가들의 에세이입니다. 입주 기간 동안의 하루와 작업 과정,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한 감각과 생각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작품 너머 창작의 현장과 작가의 내면을 함께 전합니다.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독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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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울제대로도서전, 또 하나의 작은 책 축제를 만나다

[도서전 참관기] 제1회 서울제대로도서전, 또 하나의 작은 책 축제를 만나다 정대훈 프롤로그 서울국제도서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늘 또 하나의 도서전을 찾았다.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최근 출판계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새로운 시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현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시간은 개장 약 30~40분 전. 예상했던 것처럼 행사장은 한산했다. 몇 년 전 서울국제도서전이 지금처럼 대규모 축제로 자리 잡기 전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드문드문 모여 있었고,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도서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들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 노들섬에 도착했을 때. 서울국제도서전의 여운을 안고 또 하나의 책 축제를 찾아왔다. 맑은 하늘만큼이나 오늘은 조금 여유로운 도서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개장 전 풍경. 아직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 있었다. 오래전 서울국제도서전이 지금처럼 북적이기 전, 그 시절의 익숙한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느긋하게 책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 책의 열기 개장과 동시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행사장 규모는 서울국제도서전의 대형 부스 몇 개를 합친 정도에 불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게다가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가지 않았다. 부스마다 멈춰 서서 책을 펼쳐 보고, 출판사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이동했다. 덕분에 행사장의 동선은 한참 느렸지만, 그만큼 책을 중심으로 한 시간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족 단위 관람객과 어린이를 동반한 방문객도 많았고,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단체 관람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어린이책과 그림책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출판사 부스의 분위기였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젊은 직원들이 운영하는 부스를 많이 볼 수 있었다면, 이곳에서는 작은 출판사의 대표나 편집장이 직접 독자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책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 더 깊게 이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 불과 몇 분 만에 달라진 풍경. 조금 전까지 한산했던 공간은 개장 시간이 다가오자, 순식간에 긴 대기 줄로 바뀌었다. ‘오늘은 여유롭게 둘러보겠구나’ 했던 기대는 이때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던 내부.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출판사와 독자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발걸음은 느렸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대부분 책 위에 머물러 있었다. 도서전의 또 다른 즐거움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이번에도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조선대학교 양경언 문학평론가였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그랬지만, 도서전은 책만 만나는 공간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업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묻고, 짧은 대화 속에서 새로운 소식도 듣게 된다.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다시 연결되는 장소라는 점에서

  • 정대훈
  •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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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와서

[도서전 참관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와서 정대훈 1. 다리가 아팠다, 그런데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다리가 아팠다. 서울국제도서전에 들어선 지 네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분명 책을 보러 왔는데 이상하게 계속 걷고만 있었다. 한 부스를 보고 나오면 또 다른 부스가 나타났고, 저쪽에 사람이 몰려 있어, 가보면 또 다른 줄이 있었다. 잠시 앉아 쉬고 싶었다. 그런데 앉을 곳이 없었다. 커피 한잔 마시며 오늘 본 풍경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지만, 행사장 안 카페는 이미 만석이었다. 결국 사람들이 선택한 곳은 전시장 한쪽 벽과 통로였다. 누군가는 가방을 베개 삼아 쉬고 있었고, 누군가는 오늘 받은 전단과 굿즈를 정리하고 있었다. 책은 느린 매체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책을 펼치고, 페이지를 넘기며 머무는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 그런데 책 축제에 온 사람들은 멈추지 못하고 계속 걷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 이상한 것은 아무도 쉽게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와, 너무 많다. 어디부터 봐야 하지?” “아 힘들다.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싶은데 자리도 없네.” 힘들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다시 다음 부스를 향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책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 이상한 모순에서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을 바라보는 질문이 시작됐다. 2.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 책을 사러 온 사람들일까, 그냥 책 곁에 있고 싶은 사람들일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사람들이었다. 특히 젊은 여성 관람객들이 많았다. 20대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방문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행사장 곳곳을 누볐다. 그런데 조금 걷다 보면 묘한 장면이 보였다. 길게 늘어선 줄. 그런데 그 줄 끝에는 늘 책이 있지는 않았다. “여기 줄 서 있는 거예요?” “이벤트 참여하시려면 저쪽 끝부터 서셔야 해요.” 사람들은 이벤트를 기다렸다. 한정 굿즈를 찾았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 상품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렀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조금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책 축제인데 책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처음에는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행사장을 오래 걷다 보니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들은 책을 영영 떠난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책 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아닐까. 과거에 비해 지금의 독자는 조금 복잡하다. 좋아하는 출판사의 세계관을 소비하고, 책 주변의 귀엽고 탐스러운 물건들을 소유하고, 작가와 연결되는 어떤 새로운 경험을 꽤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책은 목적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출입구가 되고 있었다. 3. 가장 작은 공간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람들 — 어쩌면 독립 출판이 보여준 취향의 힘? 첫날. 흥미로운 것은 크고 화려한 부스에만 사람들이 몰렸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인파가 가장 천천히 움직였던 공간 중

  • 정대훈
  •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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