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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책장지기의 기록

  • 작성일 2026-10-01

  [문학의 곁]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책장지기의 기록

  ― 문학이 동사가 되는 시간


하림



  올해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일 년 동안 문학 행사를 함께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이라는 이름의 행사였다.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문학 행사라는 설명과 함께 진행을 부탁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문학 관계자도 아닌 내가, 북플루언서도 아닌 내가 이런 자리를 맡아도 될까 싶었지만, 노래라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 계절 나주로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3회차까지 마치고 처음으로 쫑파티를 제안했다. 요즘은 공연이 끝나도 쫑파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이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회식 자체를 권하는 일이 괜히 민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탓도 있는 것 같다. 

  우려와 달리 모처럼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동안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무엇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은 성공이 누구의 공인지 서로에게 돌리며 웃고 떠들다가, 그 자리에서 이 원고를 청탁받았다. 맥주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흔쾌히 쓰겠다고 했다.

  제안받은 글의 주제는 ‘문학의 곁’. 하지만 나는 문학의 ‘곁’에 있기보다는 문학의 ‘주변인’에 가깝다. 주변에 작가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을 향한 나의 애정도 친구들에 비하면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최근에는 꽤 많은 양의 책을 좋은 곳에 입양 보냈다. 작업실과 집 구석구석을 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책더미를 바라보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생긴 책장의 빈 공간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을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전자책도 많이 산다. 전자책은 공간에 대한 죄책감 없이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전자책은 특유의 손맛이 없어 정이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움이 될 팁을 하나 건네자면 서점에 들러 실물 책을 조금 만져보고 물성을 느끼고 나면 조금 나아진다. 어쨌든 언젠가는 내 스마트폰의 e북 앱이 SNS를 누르고 스크린 타임 1위에 오르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책들을 대거 정리하고 달라진 점이 또 있다. 마치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가듯 도서관을 드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 종종 오전 러닝을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동선에 구립 도서관이 포함되어 있다. 의미 없는 찬사와 자기과시로 점철된 술자리를 보낸 다음 날, 털려버린 영혼을 다시 채우고 전날의 죄의식을 씻어내 주는 곳은 천천히 달리는 하천가 산책로와 도서관이다.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서는 것이 조금 쑥스럽고 미안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얼른 들어와 책장 사이를 가만히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마르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늑한 골목 같은 서가에서 책등을 훑으며 거닐다 눈에 걸린 책 한 권을 들고 나온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이 마음에 들면 ‘득템’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는 조금 이상한 독서 습관이 있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일단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도망가서 책을 뒤지는 일이다. 당면한 문제를 외면한 채 책 속으로 피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홀로 고민에 빠져드는 것보다 에너지 소모가 적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고민 대비 해결에 대한 가성비가 뛰어나다.

  신혼 초 부부싸움을 한 뒤 밖으로 나와 부부 관계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고 들어간 적이 있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으며 잘잘못을 따지다가, 아내에게 읽으라고 건네지는 못하고 식탁 위에 무심한 척 올려두었다. 여기서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부부싸움은 책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계절마다 찾아오는 책장지기 역할은 나의 이상한 독서 습관까지 정갈하게 다듬을 기회였다.


  첫 번째 문학책장의 게스트는 나태주 시인이었다. 때마침 봄이라 해가 좋았다. 아내와 도서관 안팎을 산책하며 책을 나누어 읽었다. 집으로 돌아와 피아노 앞에서 다정한 시와 어울릴 노래를 골라보았다. 그의 시에는 꽃이 많이 등장하니 일단 꽃이 들어간 노래를 찾아보았다. 〈꽃〉, 〈꽃밭에서〉,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온통 꽃밭일까> 이것저것 불러보다 박효신의 〈눈의 꽃〉을 불러보았다.

  “어느새 길어진 그림자를 따라서…” 

  곡의 뒷부분에 다다르자마자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학 행사에 이런 격정적인 열창은 어울리지 않을 거야…’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정밀아의 〈꽃〉을 부르기로 했다. 


  드디어 행사 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1층 로비에는 고급스러운 나무 의자가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로비를 리모델링한 후 첫 번째로 대중에게 공개하는 자리라고 했다. 관계자는 모든 신청이 마감됐음을 알리며 기뻐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엔 일렀다. 이런 무료 행사일수록 예약만 해두고 오지 않는 이른바 ‘노쇼’가 잦기 때문이다. 일단 신청부터 해두고 당일에 나타나지 않는 이들이 참 많다. 오지 못한다면 미리 취소라도 해주면 참 좋을 텐데…. 당일 노쇼는 대기자에게 미처 소식을 전할 겨를도 없어서 노쇼가 많으면 비어 있는 좌석들을 바라보며 행사를 치러야만 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언젠가 누군가 뾰족한 수를 내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나태주 시인편)


  저녁이 되고, 다행스럽게도 거의 모든 자리가 들어찼다. 역시 나태주 시인의 대중적인 인기 덕분이다. 그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에 활력이 넘쳤다. 소박하면서도 진지한 관객들의 고민들에 적당히 유머를 곁들여가며 답을 건넸다. 객석에서는 소소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서 작은 실수 하나를 고백하자면, 정밀아의 〈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태주 시인이 “그 노래 가사가 내 시잖아요”라고 말씀하셨다. 모르고 있었다. 잠깐 등에 땀이 났지만, 다행히 몰랐다는 사실을 들키지는 않은 것 같았다. 미안해서 노래를 더더더 열심히 했다.


사진.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루리 작가편)


  두 번째 초대 손님은 무려 8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긴긴밤》의 루리 작가였다. 마침 행사 당일이 식목일 휴일이라 어린이 관객들이 참 많이 왔다. 첫 회의 좋은 반응 덕분에 객석도 키웠고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무대도 높이 올렸다. 때마침 내가 국립극장에 올리기 위해 준비하던 공연인 ‘먼 아리랑’이 전쟁을 주제로 했던 터라, 같은 주제인 《나나 올리브에게》를 특히 감명 깊게 읽었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작품 후반부에 나오는 주인공의 얼굴 삽화에 눈물이 터지는 바람에 다음 날 만개한 벚꽃을 보고도 마음껏 기뻐할 수 없는 하루를 보냈다. 

  루리 작가와 함께한 무대에서는 준비된 곡 외에도 즉석에서 골라 부른 노래가 많았다. 나는 오래전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노래를 많이 만들었는데, 《긴긴밤》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 시절의 노래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생각나는 대로, 루리 작가의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자연스럽게 노래를 찾아 불렀다. 워낙 오랜만에 불러서 가사조차 기억나지 않았지만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모두 생각이 났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그곳의 뜨거운 햇볕과 붉은 먼지, 냄새와 사람들의 표정이 떠올라 그곳에 잠시 다녀온 듯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음악과 책이 서로 끌고 당기며 돕는 순간.

  행사 전 대기실에서 루리 작가와 나눈 몇 개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에도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에 매일 출근하며 소박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제 직장은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살아도 되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일상의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아서요”라고 답했다. 첫 책의 성공 이후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은 없냐는 질문에는 “이제 대표작이 하나 생겼으니, 오히려 앞으로는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발랄하게 답했다. 오랫동안 무언가 만들며 살아온 나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 마침 그날은 나의 생일이기도 해서, 마지막에는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깜짝 생일 축하를 받았다. 잠시 울컥했지만 이상한 말들을 아무렇게나 하면서 잘 넘겼다.


사진.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정지아 소설가편)


  세 번째 초대 손님인 정지아 작가를 만나기 전에는 도서관의 상호대차 서비스를 총동원해야 했다.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휴대폰으로 ‘상호대차 도서 도착 알림’ 문자가 연달아 울릴 때 조금은 압박감이 들었다. 덕분에 한동안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정지아 작가의 책만 읽었다. 한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는 일은 색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젊은 시절에 쓴 《빨치산의 딸》과 한참 후에 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앞뒤로 이어 읽으니, 그 아득한 세월 동안 작가가 지나왔을 생각의 변화가 느껴졌다. 

  사실 내게도 비슷한 가족사가 있어서 더 몰입해 읽었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진보당 조봉암 사건과 관련한 사법살인의 피해자다. 조봉암 사건은 1958년 이승만 정권이 진보당 당수 조봉암 등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서 사형시킨 정치 탄압사건이다.1) 다행히 사형은 면하고 훗날 무죄로 판명되었지만 그로 인해 외갓집 식구들은 살던 집도 잃었고 주변의 차가운 시선 속에 고통받았다. 장남이었던 큰삼촌은 수사기관에 끌려가 심한 고초를 겪었으며, 그 일 이후 오랫동안 방랑의 삶을 살았다. 또 다른 삼촌은 5·18민주화운동 때 군인에게 폭행을 당했는데, 그로 인해 평생 고통에 시달리다 후유증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정지아 작가의 책들을 읽으며 나는 시대의 비극이 가족과 개인에게 까지 닿으며 결국 오랜 세월 되물림 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외갓집 식구들의 고통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런 순간은 더 좋다. 책과 내 이야기가 맞닿는 순간.

  행사를 한참 앞둔 어느 날, 광화문에서 열린 백기완 추모제 무대에서 우연히 정지아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던 내 바로 앞 순서가 정지아 작가의 낭독이었는데, 방금 전까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을 막아서며 뚝딱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나를 잠시 뚱하게 바라보고는 급히 자리를 떠났다. 행사를 앞두고 있던 나는 ‘초대 손님이 너무 무뚝뚝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그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나주에서 다시 만난 정지아 작가는 무척이나 유쾌했다. 첫 곡으로는 '빨치산의 딸'로 살아온 그의 시간을 위로하고 싶어서 강산에의 〈라구요〉를 준비했다. 나는 드라마틱한 반전을 위해 일부러 곡 제목을 미리 밝히지 않는데, 그는 전주가 흘러나오자마자 무슨 노래인지 단번에 알아챘다고 했다. 이번에도 나 혼자 뚝딱거리고 만 셈이다. 술에 대한 에세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술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자 몇몇 관객의 눈빛에서 ‘뭐 저런 이야기까지 저렇게 열정적으로 하나’ 하는 표정을 읽었다. 작가의 세계관에 지나치게 몰입했던 것 같다. 잊고 싶은 순간이다. 나의 술에 대한 기호가 지나치게 노출되었던 순간.


사진.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문학책장은 나에게 공연과 비슷하다. 나는 봄가을이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전국으로 공연을 다니는데, 그렇게 열심히 다니는 이유를 물을 때마다 늘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라고 대답한다. 직접 만나서 듣는 노래는 음반보다 생생하다. 그래서 라이브라고 부른다. 라이브로 부르는 노래가 그렇듯, 라이브로 듣는 작가의 이야기는 책 속에 있던 문장을 사람들 사이로 생생하게 끌어내 준다.

  행사가 끝나고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며 사진을 남기는 다정한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게 문학책장은 좋아하는 책이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좋아하는 노래가 같으면 금세 마음이 통하는 것처럼 책도 그렇다. 이렇게 책과 노래를 통해 나와 닮은 사람의 존재를 소박하게 확인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문학을 읽는 것이 타인의 삶에 닿는 일이라면 작가의 단어들은 징검다리일 것이다. 단어들이 손을 잡고 문장이 되고 가사들이 이어져 노래가 되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게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행사를 마치고 나면 내 기분도 징검다리처럼 둥글둥글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문학의 ‘주변인’이라 소개했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주변’이란 ‘곁’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학 책장과 함께 몇 번의 계절을 건너오면서, 문학에는 중심도 주변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쓰는 이와 읽는 이, 노래하는 이, 그리고 책을 핑계로 마주 앉은 이들 모두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동사로써의 문학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음악학자 크리스토퍼 스몰은 그의 저서 《뮤지킹(Musicking)》에서 음악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바라본다. 음악을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나 대상이 아니라, 연주하고 듣고 춤추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행위 속에서 음악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2) 문학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완성된 책이라는 명사가 아니라, 함께 읽고 나누는 동사의 시간. 관객이 들어줌으로써 노래가 완성되듯, 문학도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


  ‘가을에는 시가 좋지 않을까요…’

  가을 일정을 준비하던 중, 다음 작가 섭외를 두고 기획자에게서 문자가 한 통 왔다. 누가 좋을까 생각하며 알고 있는 시인들의 이름을 하나씩 떠올리다가 청소년 시절 짝사랑에 빠져 일기장 귀퉁이에 끄적이던 낱말들이 떠올랐다. 온갖 꽃 이름, 바다, 하늘, 그리고 하늘소…. 하늘소는 왜 적었을까. 왠지 이번엔 사랑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좋아하는 이를 향해 마음으로 시를 쓰던 소년 시절도 있었고, 지식을 채우기에 급급해 실용서만 뒤적이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문학책장 덕분에 급한 마음에 치여 읽지 못했던 고전들을 하나씩 찾아 읽는 시간이 늘었다.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이제 두 번의 계절이 남았다. 혼자 읽는 책도 좋다. 하지만 다 함께 모여 읽고 노래하며 서로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문학은 내 옆자리에 앉은 다정한 친구가 된다. 미국 작가 어빙 스톤은 “같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싹트는 유대만큼 세상에서 빠르게 깊어지는 우정은 없다”3)라고 했다. 이렇게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이 모여 노래하는 곳이 바로 사계절 문학책장이다.


사진.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포스터



〈문학의 곁〉은 창작자뿐 아니라 문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확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책이 독자에게 닿기까지 그 과정에 머무는 사람들, 문학과 독자 사이 어딘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이번 문학의 곁에서는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책장지기로서 문학과 음악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하림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1) “진보당 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4703.

2) Christopher Small, Musicking: The Meanings of Performing and Listening, Wesleyan University Press, 1998.

3) “There are no faster or firmer friendships than those formed between people who love the same books.” — Irving Stone, Clarence Darrow for the Def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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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 권예진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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