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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나라공화국의 이야기 요정을 보았니?

  • 작성일 2026-06-01

  [레지던시 일기 – 남이섬 호텔정관루]


  나미나라공화국의 이야기 요정을 보았니?


하신하


  편집회의까지 마치고 마감을 이미 한번 연기한 장편 동화의 원고를 머릿속에 짊어지고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배에 올랐다. 배는 물길을 헤치고 유유히 남이섬으로 다가갔다. 나는 저 섬을 거나한 술판이 벌어지는 대학생 MT 장소로, 한여름의 활기와 젊음의 싱그러움이 가득 담긴 노래가 흘러나오는 강변가요제로, 또 유명한 드라마의 한 장면을 찍어 관광객이 북적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원지로 알고 있었다. 이후 남이섬에서 국제 규모의 어린이책 축제가 열린다는 유명세는 익히 들었지만, 직접 참여한 경험은 없었다.

  배 안에서 들리는 말들이 서로 다른 걸로 보아 아시아의 다양한 국적으로 짐작되는 낯선 관광객 무리 속으로 조용히 스며 들어갔다. 남이섬에 도착해 배에서 내렸을 때 나는 ‘나미나라공화국’이라는 소인국 안에서 눈을 뜬 거인 걸리버가 된 기분이었다. 언제나 함께하는 물리적인 몸의 무거움에 마감을 넘겼다는 마음의 무게까지 더해져 나는 이미 거인만큼 천근만근이었다.

  내가 지낼 숙소인 YUSOF 방의 문을 열자 말레이시아의 그림책 작가 유소프가 그린 코끼리들이 나를 반겼다. 나에겐 2주 안에 원고를 마무리해서 보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코끼리보다 더 무거웠기 때문에 벽을 가득 채운 코끼리 그림은 한없이 천진난만하게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여행의 즐거움에 들떠 남이섬 안을 훑고 다니는 관광객들의 무리에 속해있었던 터라 레지던시 숙소 근처의 한적함은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듯 낯설었다.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빠져나간 밤에는 침묵과 어둠이 숙소 주위에 깊게 내려앉았다.



  남이섬을 산책하는 새벽과 저녁 시간에 나는 거인국에 도착한 작디작은 걸리버가 되었다. 화려한 깃털로 있는 힘껏 자신을 뽐내는 공작과 내가 방문을 열고 나오면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와 내가 가지고 다니는 견과류를 뺏어가는 토끼들. 일정한 동선으로 직원처럼 일하는 듯한 오리와 거위 무리. 뺏어갈 천적이 없는 듯한데도 무언가를 숨기느라 바쁘디바쁜 다람쥐와 청설모, 그리고 마감의 시간 또한 지나가리라며 천천히 흐르는 물과 이 모든 풍경을 내려다보며 감싸주는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작고도 작은 사람이었다. 자연의 한구석을 차지한 작은 걸리버는 조용하고 겸손하게 다른 생명체들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며 돌아다녔다.

  식당이나 카페, 도서관이나 미술관에는 최대한 관광객처럼 위장하고 들어갔다.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면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있던 남이섬의 직원들이 “작가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며 반갑게 웃으며 다가온다. 어디를 가든 늘 한 사람쯤은 다가와 혹시 우리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무리 속 위장술이 뛰어난 내가 관광객이 아니라 레지던시 작가라는 것을 남이섬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직원들은 미소를 띠고 심리적 안정을 보장하는 일정한 사회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지만, 내가 신호만 보내면 당장이라도 뛰어오겠다는 서비스직 특유의 친절함을 감추고 있다.



  주말이 되면 가족 단위로 찾아온 관광객의 숫자가 늘어난다. 유모차를 탄 어린이와 강아지들이 제법 눈에 많이 뜨인다. 자전거를 타며 이 시간과 공간을 즐기며 웃는 연인들의 미소는 눈부시다. 나는 눈맞은 강아지처럼 아이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웃음을 조금씩 채집한다. 피터팬은 웬디에게 아이들의 웃음은 수천 조각으로 쪼개져서 이리저리 통통통통 뛰어다니다 요정으로 변한다고 알려주었다. 동화작가에게 아이들이 웃음과 눈물은 이야기를 만드는 요정이기도 하다.

  남이섬을 제대로 즐기려면 아무리 올빼미 작가라 해도 잠시 아침형 작가가 되어야 한다. 올빼미보다는 아침새가 되어야 하루하루 바뀌는 풍경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눈에 담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위가 온통 어둡고 조용해지는 저녁에는 올빼미도 잠들기에 안성맞춤이다. YUSOF 방에 걸린 그림 속 코끼리들이 밤만 되면 그림 밖으로 튀어나와 잠을 지키는 요정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남이섬에서 일주일이 지나자 산책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작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작업을 위해서 산책을 하는 게 아니라 산책을 위해서 글을 쓰는 주객전도의 모양새로 바뀌었다. 3월 말의 남이섬은 아침과 오후가 다르게 꽃들이 여기저기에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아침에 보았던 꽃봉오리가 오후에는 조금 벌어져 있고, 다음날에는 더욱 몽글몽글하게 터질 준비에 들어갔다. 이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두려면 작업을 서둘러야 했다.



  2주는 쏜살같이 지났고 나는 막 터지기 시작한 목련과 보랏빛을 머금은 벚나무들을 뒤로 하고 남이섬을 떠나야 했다. 소인국의 걸리버는 다시 평범한 걸리버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원고를 보냈기에 돌아가는 배에서 맞이하는 바람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남이섬의 새 소리와 나무 냄새가 한동안은 내 주위를 맴돌았다.

  서울에도 봄꽃이 활짝 핀 4월 말, 초록이 봄 햇살과 만나 눈이 부신 대학로에서 2024년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하인츠 야니쉬 작가와 한국의 어린이책 작가들의 대담회가 열렸다. 야니쉬 작가는 4월 초에 2주 동안 남이섬 레지던시에 머물렀다고 한다. 내 뒤를 이어 YUSOF 방에서 코끼리 요정의 요술 담요를 덮고 지낸 것이다. 야니쉬와 나는 코끼리 방에서 묶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내적 친밀감을 다졌다. 언어의 벽을 넘어 작가로서 가장 궁금한 것은 남이섬에서 얼마나 작업을 했느냐였다. 기다렸다는 듯 야니쉬는 남이섬에서 구상한 새 이야기를 자랑하듯 소개했다. 야니쉬는 아름다운 남이섬을 산책하며 거인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또 하나의 걸리버가 여행을 마치고 자기 배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5월에는 남이섬에서 세계책나라축제가 열렸다. 레지던시 참여작가로서 책나라축제에 함께 했다. 남이섬에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온 작가와 출판인이 벌이는 책 축제였다. 많은 어린이들이 책을 읽고 체험하며 웃음을 수천 조각씩 쪼개어 통통통통 날리는 모습을 눈에 담고 돌아왔다. 나에게 이제 남이섬은 넉넉한 자연 속에서 한껏 싱그러운 생명체들이 책과 함께 웃고 뛰노는 곳으로 남았다. 나의 경험은 기억으로 저장되어 다시 이야기로 태어날 것이다. 남이섬에서 만난 이야기 요정의 마법이 함께 하기를!




〈레지던시 일기〉는 문학 레지던시에 머문 작가들의 에세이입니다. 입주 기간 동안의 하루와 작업 과정,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한 감각과 생각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작품 너머 창작의 현장과 작가의 내면을 함께 전합니다.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독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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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명동 산책 도재경 몇 해 전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하던 한 학생에게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학생에게 허풍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솔직하게 답변한다는 게 고작 맥주를 마시며 놀 궁리를 한다는 거였다. 대답하고 나니 어쩐지 궁색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며 노는 게 아니라 궁리를 하는 거라고……. 궁리를 한다고? 꼴에 선생이라고 자못 젠체한 듯해서 뒤통수가 가렵다.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끄적거릴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종국엔 멍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대체 온종일 뭘 했나 자책감이 들면서도 그러한 상태야말로 창작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라고 합리화하곤 한다. 지난여름 명동에 자리한 서울프린스호텔의 ‘소설가의방’에 입주한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침구류는 새것처럼 빳빳해져 있었고, 물기 하나 없는 욕실에는 보송보송한 수건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허기질 일도 없었다. 늦잠을 자느라 곧잘 조식을 거르곤 했지만 호텔의 ‘이층서가’나 인근 식당에서 언제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라운지에는 쿠키나 주스 등 간식도 가득했다. 그랬다. 분에 겨울 정도로 호사스러운 일상에서 부끄럽게도 불철주야 온갖 공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중 하나는 전기밥솥에 관한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돌멩이에 관한 거였다. 전자는 탈고를 앞둔 장편소설의 소재였고, 후자는 곧 쓰게 될 단편소설의 글감이었다. 퍽 다행스럽게도 호텔에서의 일상은 밋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집필을 핑계로 죄다 퇴실 이후로 미루었고, 무더운 한여름에 호텔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대부분을 객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좀이 쑤실 때면 산책 삼아 호텔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호텔에서 남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 초입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는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특별할 게 없는 풍경이라 도리어 생경했다. 말없이 멍만 때리다 보면 입안이 퍼석퍼석해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몇몇 동료 작가들이 입주해 있었다. 함께 식사하고선 소화를 시킬 겸 당구를 치며 각자의 공간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서로 위로 삼곤 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어쩐지 반(半)백수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듯해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회적 활동(?)이란 걸 하긴 했다. 7월 초에는 장흥에 계시는 한 원로작가님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7월 말에는 세종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는 딱히 이벤트랄 게 없었다. 어찌 됐든 소설을 쓰기 위해 입주했으니 모쪼록 심심한 날들만 이어지길 바랐다. 비가 그친 어느 날 오전이었다. 객실 창밖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연두색 사마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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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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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만난 호주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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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마음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기다리는 마음 김홍(중화문학도서관 상주작가) 내게 여행은 몇 권의 책으로 남는다. 이번 연수를 떠나는 길에도 트렁크 한켠에 책을 잔뜩 넣었다. 그중에 손이라도 한 번 닿게 되는 책이 몇 권이나 될는지 스스로도 궁금했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줄여보려고 중고로 구입한 이북리더기에도 도서관 대출 범위가 허락되는 만큼의 책을 잔뜩 다운로드했다. 결론적으로 돌아보면 이번 연수에서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은 사람들로 남았고 나머지 시간은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정리해 보자면 애나 친의 을 주의 깊게 읽었고, 루리의 을 다 읽었다. 1권을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의 책을 두 권 읽었다. 반 정도 남아 있던 을 완독하고 를 시작하고 끝냈다. 이 중 종이책은 이고 나머지는 전부 전자책이었다. 이 과정을 생각해 보면 분명히 낭비가 존재한다. 가방에 넣어 가져간 종이책 5권 중에 실제로 읽은 것은 한 권에 불과했기 때문에 4권의 책만큼의 무게가 바다를 건너는 동안 탄소 발자국은 간데없이 낭비된 셈이고, 가방을 밀고 다니면서 소모된 나의 열량에 관해서도 (적어도 책 4권의 무게만큼은) 최고의 효율을 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좋았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오차범위가 필요하고, 그걸 이해하고 용납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소중하고, 공공성이라는 것이 전부 그런 토대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번 연수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 연수에서 말도 안 되게 새롭고 놀라운 것들을 잔뜩 보고 온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자주 한 생각은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예술 지원 정책에 있어 많은 부분은 우리가 이미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한국문학번역원, 한국출판문화진흥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의 여러 기관을 통해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내용들이었고, 충분히 검토되고 있는 내용이었다. 정책의 중요한 부분인 예산 규모에 있어서도 대체로 우리나라 기관들이 확보한 단위가 적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호주의 경우 문학 분야를 독립시켜 Writing Australia라는 기구 아래 통합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우리처럼 예술 전 범위가 통합돼 있다는 것에 비교해서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았다. 도서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연수단이 방문한 주립도서관은 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처럼 공공 납본을 받는 관내 열람 도서관이었고, 대출이 가능한 시립 도서관도 있었다. 장서량은 우리도 도서관마다 차이가 있는 만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조금 달랐던 부분은 주립도서관이 마치 공공 갤러리처럼 운영되는 것이었다. 다양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시민들 입장에서는 도서관에서 여러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점이 편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실정과는 맞지 않았다. 이미 우리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은 책의 안과 밖에서 전천후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도 충분

  • 김홍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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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책방에는 쉬라즈의 풍미와 앨리스의 꿈이 있다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책방에는 쉬라즈의 풍미와 앨리스의 꿈이 있다. 남규조(시옷책방지기) 감사하게도 시옷살롱책방이 2025년 문학상주작가 우수기관 서점 부문에 선정되었고, 포상으로 호주 연수를 가게 되었다. 아르코에서 두 명, 도서관·문학기관·서점 각 기관의 담당자와 작가님 두 명씩, 총 여덟 명이 함께했다. 시옷책방에서는 그림책 작가 김중석 선생님과 동행했다. 작가님 덕분에 이런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중석 작가님 그림책 제작 워크숍 결과 발표회 그림책 제작 워크숍 결과 발표회 이후 김중석 작가님의 프리페인팅 5월 19일 오후 인천공항을 출발해 다음 날 아침 시드니에 도착했다. 여행 내내 여러 곳을 다녔지만, 연수기는 각 작가님과 기관의 특성에 맞게 나누어 쓰기로 했다. 시옷책방은 ‘책방’을 중심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방문한 책방은 네 곳이다. 시드니 뉴타운의 Better Read Than Dead, 멜번의 Readings Kids, The Paperback Bookshop, 그리고 사사프라스 마을의 Through the Looking Glass. Better Read Than Dead — 시드니 뉴타운 뉴타운의 엔틱한 거리에 힙한 장소 Better Read Than Dead 책방. 서가와 매대는 분야별로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주요 도서는 포인트가 돋보이도록 진열되어 있었다. 동선도 잘 확보되어 있어 손님의 이동이 자연스럽고, 간섭이 적어 책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Better Read Than Dead 책방 앞에서 구입한 도서와 함께 서점 내부, 1층 서점 내부. 1층은 서가와 매대, 2층은 북토크와 전시 공간 서점 내부. 1층과 2층 사이 중층, 스킵플로어 구조, Cooking Zone 스킵플로어 공간을 활용해 1층과는 다른 섹션을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선의 지루함을 줄이고, 분야별 집중도와 서가의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었다. 조금 올라가면 북토크와 전시가 가능한 아늑한 공간이 나온다. 공간의 온도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전통이 쌓인 책방의 외관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 이미지는 책갈피와 다양한 굿즈로 확장되어, 방문객들에게 만족도 높은 기념품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너른 자연과 독특한 생태가 공존하는 호주답게 동물·식물·생태 관련 큐레이션이 돋보였고, 이주민의 나라라는 특성과 맞물려 원주민 문화에 대한 내용도 곳곳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 세계 원주민을 다룬 《Origin》이라는 책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구입하게 되었다. 또 서가에서 영화 ‘미나리’를 발견했을 때는 반가움이 밀려왔다. 서점 내부, 2층 북토크 및 전시 공간 서점 외관을 모티브로 한 일러스트 작품 서가에서 발견한 ‘미나리’ 귀국 후 서점에 대해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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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발루의 작가견문록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구루발루의 작가견문록 오시은(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상주작가) 여행객들은 나를 까치라고 하더군. 이곳 사람들은 맥파이라고 하는데 말이야. 뭐라고 부르 건 내 진짜 이름은 따로 있어. 구루발루. 그게 내 이름이지. 가까운 친구들은 그냥 ‘발루’라고 불러. 나더러 “까치네.”라고 말하던 이들을 만난 곳은 포트 잭슨이었어. 언제나 여행자들이 넘쳐나는 항구 말이야. 파라마타강 하구 바닷가인데, 멋들어지게 생긴 공연장과 철재로 만들어진 아치교가 유명하잖아.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솔직히 나도 그걸 보려고 갔던 거야.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을 만나러 갔구나 싶어. 아, 참고로 나는 운명 어쩌고 하는 걸 믿지 않아. 친구들이 점성술 하는 까마귀 집에 재미 삼아 몰려갈 때도 슬그머니 도망칠 정도니까. 그런 내가 그들을 운명이라고 여기게 된 건 좋아하는 게 같아서였어. 그들이 커피를 마시며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책과 작가들에 대해 말하더군. 실제로 그 중 몇은 작가라던데, 유독 눈길이 가는 이가 있더라고. 때때로 시선을 먼 곳에 두는 작가였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찾으려는 탐험가 같더란 말이야. 그때 감이 왔지. 그가 뭘 찾고 있는지 말이야. 이야기. 그것도 엄청나게 재미난 이야기. 나도 많이 해 본 일이라 금세 알 수 있었어. 그렇다고 나도 작가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야기를 사랑하는 건 작가 못지않다고 자부해. 쫄깃하고, 숨 막히고, 따뜻하고, 울컥하고, 기품 있는 언어로 가득한. 왜 있잖아, 시간을 잊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 참고로 내 둥지는 오래된 서점으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에 있어. 이만하면 내가 책과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겠지? 나는 먹는 거 다음으로 이야기를 좋아해. 재밌는 이야기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라고. 그래서 그날 포트 잭슨에서 결심했지. 여행객들, 아니 이야기를 찾는 작가를 따라다니기로. 그의 눈동자가 빛나던 순간이 기억나는군. 작가들을 지원하는 곳의 책임자를 만났을 때였지. 작가에게 상금도 주고, 한 명의 시인을 뽑아 국립 시인상도 주고, 여행 기금도 주고, 문화유산에서 작업할 기회도 제공한다는 설명을 들을 땐 고개만 끄덕이더라고. 하지만 도서관에 책이 비치되면 작가에게 보상한다는 대목에서 눈동자가 커졌어. 출판사와 작가에게 반반씩 보상하다가, 삼 년 후부터는 작가에게만 보상하는데, 유명 작가에게 쏠리지 않게 상한제를 둔다고 했지. 그 모든 게 법에 따라 지켜진다는 말을 듣는 그의 눈에 부러움이 흘러넘치더군. 나한테는 전혀 새롭지 않은 얘기라 그런 반응이 신기했지. 인간의 시간으로 치면 삼십 년도 더 된 일이라 고전이나 마찬가지였거든. 그토록 당연한 걸 부러워하는 게 흥미롭더라고. 다음으로 간 곳은 오페라 하우스 옆에 있는 로열 보타닉 가든이었어. 마침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던 차라 반가웠지. 말이 가든이지 여긴 원시 식물원이라고 봐야

  • 오시은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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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멜버른 국외연수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시드니, 멜버른 국외연수 : 로열 보타닉 가든 탐방과 상주작가 레지던시를 중심으로 전수지(중화문학도서관 사서) 1. 들어가며 2026년 봄, 뜻밖의 소식이 들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는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우리 중화문학도서관이 전국 우수시설 중 하나로 선정되어 호주 연수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2025년 1월에 갓 문을 연 우리 도서관이, 게다가 이제 사서로서 발을 막 뗀 내가 이런 자리를 얻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이번 연수를 통해 사서로서, 그리고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의 담당자로서 우리나라의 문학 지원 체계와 사업 운영 방식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호주의 선진 문학 생태계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호주의 랜드마크 오페라 하우스-vivid light 하버 브릿지 앞에서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시드니와 멜버른을 돌아보는 7박 9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시드니에서는 호주의 시그니처 ‘오페라 하우스’ 투어를 시작으로 타롱가 동물원의 기린이 우릴 반겨주었고, Writing Australia 방문, NSW 주립 도서관 탐방,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 참관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체가 문학과 이어져 있었다. 멜버른은 말 그대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의 명성에 걸맞은 곳이었다. 호지어 레인의 그래피티 골목, 예술가들의 수직 공동체 Nicholas Building, 빅토리아 주립도서관과 휠러 센터, 독립서점 Readings와 The Paperback Bookshop, 그리고 Maru의 캥거루 무리와 퍼핑빌리 증기기관차에 펭귄 퍼레이드까지—문학과 자연과 예술이 경계 없이 뒤섞인 도시였다.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부천이 2017년부터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였다는 점이다.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을 때, 과연 사서라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가 내심 부끄러웠다. 한편, 호주 정부의 문학 지원 체계를 대표하는 Writing Australia의 책임자 Wenona Byrne 디렉터와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호주는 연간 800만 AUD 규모의 문학 전담 예산을 확보하는데, 한국의 문학분야 지원 규모가 호주보다 훨씬 더 크고, 호주는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하나만 해도 연간 70~90개 시설, 수천만 원 규모의 국비가 전국 각지로 분산 투입되며 일자리 창출과 지역 문학 생태계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국가 단위 지원 시스템의 체계성과 지역 침투력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꽤나 선진국이구나 싶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2. 시드니 로열 보타닉 가든(Royal Botanic Garden) 가. 항구와 오페라 하우스를 품은 정원 우리 일행은 시드니 도심 한복판의 신호등과 차량 소음을 등지고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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