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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길 잃기

  • 작성일 2026-06-01

  [레지던시 일기-협성마리나 G7]


  자유롭게 길 잃기


윤슬빛


  유난히 길을 잘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난히 길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지요. 아무래도 저는 후자 쪽이라 어딜 가나 비슷비슷해 보이는 길 앞에서 매번 난감해지곤 합니다. 누군가에게 정확한 위치를 설명할 수도 없고 이 방향이 맞는지 저 방향이 맞는지 확신할 수도 없으니까요. 다행히 “모든 길은 다 연결되어 있다!”라는 아버지의 강건한 호언장담을 들으며 자란 터라,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하는 대책 없는 낙관으로 매번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간답니다. 언제든 어떻게든 가고자 하는 곳에 다다르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이랄까요. 

  오도카니 앉아 지난 기억을 되새기며 레지던시 일기를 쓰자니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낯선 부산역 주위를 하염없이 빙빙 돌았던 첫날이 떠오릅니다. 분명 지도에는 길이 있는데, 거의 다 온 게 맞는 것 같은데…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어김없이, 도무지 목적지가 보이질 않았지요. 안내문을 꼼꼼히 읽지 않아 자주 곤란해지는 사람에 대해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자분자분 오래 걸었습니다. 무작정 헤매고 있는데도 전혀 조급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오롯이 읽고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게 그저 기뻐서 다른 건 아무래도 괜찮았거든요.

  일상으로 돌아와 비슷비슷한 하루를 무심코 흘려보내다 보면 문득문득 부산역 10번 출구를 가로질러 걷던 하늘광장이 떠오릅니다. 멀리 내다보이던 희부연 바다와 거세게 불던 바닷바람과 공사장의 소음이 제 안에서 소란스럽게 되살아납니다. 흔들거리는 그 길을 빈번히 걸으며,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과 어디선가 돌아온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 도시를 잠깐 사랑하러 온 사람들도요. 혼자, 혹은 여럿이 빚어내고 있는 찰나를 슬쩍슬쩍 엿보며 ‘다들 이렇게 흔들리면서 사는 거겠지’ 싶어 괜스레 애틋해지곤 했지요. 일부러 비워둔 시간 사이사이에 모르는 사람들의 표정과 그림자가 천천히 스며들었습니다.

  차근차근 쓰다 보니 사람, 사람이란 말을 참 많이 적고 있네요. 문학을 하는 일이 삶을,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르지 않아서인가 봅니다.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이 불가해한 세계에서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모두가 무엇을 붙들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지 헤아려보려면 잠깐 멈춰야 한다는 걸 다시금 배운 날들이었습니다.

  돌이켜볼수록 참 귀한 3월이었어요. 호된 꽃샘추위에 웅크리고 다니면서도 종종 등 뒤가 뭉근히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더운물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것 같던 오롯한 충만함 덕분이겠죠.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잘 상상할 수 없었는데 별 의미도 없이 느긋하게 사위를 둘러보던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이렇게만 살면 참 좋겠다’ 싶기도 했답니다.

  헐겁던 읽기 목록이 다시 빼곡해졌고 흘려 쓴 것과 흘려보낸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쉼표와 마침표를 들여다보고, 물음표와 느낌표의 질감을 매만지고, 차마 이을 수 없는 말을 줄임표로 대신하며 ‘쓰는 몸’은 대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짧은 일기조차 쓰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무엇도 남기고 싶지 않다고 종종 생각하는 사람이, 어째서 어떤 목소리들에 붙들려 끝끝내 쓰지 않고 견딜 수 없는 날들을 겪게 되는 건지 고심해보기도 했지요. 여전히 답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진탕 휘저어 놓은 흙탕물의 불순물이 찬찬히 가라앉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듯, 맑게 갠 날들 안에서 새롭게 발견한 마음이 있습니다. 묻어두고 있었거나 짐짓 잊은 척했던 마음이겠죠. 읽고 쓰는 삶에 대한 어렴풋한 동경, 어린이 청소년 독자들을 향한 머쓱할 정도로 순정한 사랑 같은 것들 말이에요.

  안락한 은신처가 되어준 북두칠성 도서관 구석에 앉아 손에 잡히는 책들을 맘껏 읽다 보면 반짝이는 별 조각들을 두 손 가득 쥔 것처럼 뿌듯해졌습니다. 마음에 남는 문장과 단어를 기껍게 옮겨 적고 무작위로 떠오르는 장면들을 받아쓰는 동안 ‘아, 내가 이런 시간을 정말 좋아했지. 이런 시간이 꼭 필요했지’ 하고 무뜩 깨닫곤 했지요. 읽는 일이 숙제처럼 느껴지고 쓰는 일이 업보처럼 느껴지던 때였는데 그저 여백과 여유가 필요했던 것뿐이란 걸 알아차리게 된 거죠. 

  많은 문장을 버리고 약간의 문장을 건지며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을 느루 곱씹었습니다. 빽빽하게 들어찬 일들에 매여 꾸역꾸역 무언가를 견디던 고단한 날들이 조금씩 희미해져 갔습니다. ‘숨길’이 되어줄 이 시간과 공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간절할 텐데 싶어 혼자 숙연해지기도 했지요. 

  얼마든지 실패가 허락된 공간에서 슬픔을 받아다 기르는 시를 쓰고 성글게 짜인 이야기를 다듬고 좀체 잘 모르겠는 나의 작품 속 인물을 거듭 들여다봤습니다. 답이 없는 질문에 한없이 골몰하다 지치면 익숙하지 않은 거리를 하릴없이 걸으며 생경한 풍경을 차곡차곡 쌓아보기도 했습니다. 지하철을 잘못 타도 허둥거리지 않았고 복대기는 버스에서도 태연자약할 수 있었습니다. 

  살풍경까지 아름다운 도시에 한 달 남짓 머무는 동안, 어디든 가보고 싶었지만 어디서든 적응 기간이 필요한 기질을 이기지 못해 결국 숙소 언저리만 맴돌다 온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래도 아주 근사한 뭉게구름과 첨벙거리는 환한 빛을 만나 애석하진 않아요. 한데, 이렇게 적고 나니 위안과 별개로 애써 시간을 내 찾아갔던 곳들이 유독 선명하게 남아있음을 선선히 인정하게 되네요. 자갈치시장의 활기와 보수동 헌책방 길목의 호젓함이 얼마나 좋았던지요. 특히, 자주 보는 남쪽의 바다와는 사뭇 다르던 짙푸른 바다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그 위로 아무렇게나 뻗어나가던 빛과 수런거리던 사람들과 잠깐 허락되었던 완전한 고요에 대해 생각합니다. 좀처럼 잠들 수 없어 뒤척이던 밤들과 빈 종이를 앞에 두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문장들을 잠잠히 기다리던 날들이 설핏 스칩니다. 이상하죠. 적막과 고독이 반가울 수 있다는 게. 

  글을 쓰기 위해 제일 많이 하는 일은 엉뚱하게도 기다리는 일입니다. 제자리걸음으로 한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또 돌며 나만의 언어를 기다립니다. 한껏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어떤 목소리들을 기약 없이 기다립니다. 목적지까지 가장 빨리 도달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누군가에겐 그 기다림이 참 한심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효율과 쓸모만 따지는 사람이라면 어처구니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며 혀를 찰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쓸데없어 보이는 그 기다림과 몸짓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네가 있는 자리까지, 딱 한 걸음을 내디뎌보는 용기로 이어집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기꺼이 타자의 자리에 서보려는 사람들, 서로의 값진 조각을 기어코 발견해내려 안간힘 쓰는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어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방에 덩그러니 앉아 있으면서도, 전혀 쓸쓸하지 않았습니다. 잘 알아챌 수 없는 은연한 방식으로 그곳에 머물다간, 머물다 갈 누군가와 깊이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내 것이 아닌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 이전에 앉은 사람과 이다음에 앉을 사람을 덧그려보던 기억이 선연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유한 빛깔로 빚어낸 문장들이 언젠가 우리를 부드럽게 이어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종잡을 수 없이 알쏭달쏭 한 말만 늘어놓던 글이 끝나 갑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제 독자는 대부분 어린이, 청소년들이라 그 당시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말을 작가의 말에 쓰곤 하지요. 어디로든, 원하는 곳으로 달려가길 바라요- 같은 말들 말이에요.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도 그러길 바랍니다. 부디 자기 안에서 부단히 헤매보길 바라요. 그리고 두려움 없이 성큼성큼 나아가길 바라요. 그러기 위해 우리는 더 기꺼이, 더 자유롭게 길을 잃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레지던시 일기

〈레지던시 일기〉는 문학 레지던시에 머문 작가들의 에세이입니다. 입주 기간 동안의 하루와 작업 과정,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한 감각과 생각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작품 너머 창작의 현장과 작가의 내면을 함께 전합니다.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독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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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명동 산책 도재경 몇 해 전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하던 한 학생에게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학생에게 허풍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솔직하게 답변한다는 게 고작 맥주를 마시며 놀 궁리를 한다는 거였다. 대답하고 나니 어쩐지 궁색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며 노는 게 아니라 궁리를 하는 거라고……. 궁리를 한다고? 꼴에 선생이라고 자못 젠체한 듯해서 뒤통수가 가렵다.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끄적거릴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종국엔 멍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대체 온종일 뭘 했나 자책감이 들면서도 그러한 상태야말로 창작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라고 합리화하곤 한다. 지난여름 명동에 자리한 서울프린스호텔의 ‘소설가의방’에 입주한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침구류는 새것처럼 빳빳해져 있었고, 물기 하나 없는 욕실에는 보송보송한 수건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허기질 일도 없었다. 늦잠을 자느라 곧잘 조식을 거르곤 했지만 호텔의 ‘이층서가’나 인근 식당에서 언제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라운지에는 쿠키나 주스 등 간식도 가득했다. 그랬다. 분에 겨울 정도로 호사스러운 일상에서 부끄럽게도 불철주야 온갖 공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중 하나는 전기밥솥에 관한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돌멩이에 관한 거였다. 전자는 탈고를 앞둔 장편소설의 소재였고, 후자는 곧 쓰게 될 단편소설의 글감이었다. 퍽 다행스럽게도 호텔에서의 일상은 밋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집필을 핑계로 죄다 퇴실 이후로 미루었고, 무더운 한여름에 호텔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대부분을 객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좀이 쑤실 때면 산책 삼아 호텔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호텔에서 남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 초입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는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특별할 게 없는 풍경이라 도리어 생경했다. 말없이 멍만 때리다 보면 입안이 퍼석퍼석해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몇몇 동료 작가들이 입주해 있었다. 함께 식사하고선 소화를 시킬 겸 당구를 치며 각자의 공간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서로 위로 삼곤 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어쩐지 반(半)백수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듯해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회적 활동(?)이란 걸 하긴 했다. 7월 초에는 장흥에 계시는 한 원로작가님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7월 말에는 세종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는 딱히 이벤트랄 게 없었다. 어찌 됐든 소설을 쓰기 위해 입주했으니 모쪼록 심심한 날들만 이어지길 바랐다. 비가 그친 어느 날 오전이었다. 객실 창밖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연두색 사마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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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곁] 책장지기의 기록 ― 문학이 동사가 되는 시간 하림 올해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일 년 동안 문학 행사를 함께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라는 이름의 행사였다.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문학 행사라는 설명과 함께 진행을 부탁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문학 관계자도 아닌 내가, 북플루언서도 아닌 내가 이런 자리를 맡아도 될까 싶었지만, 노래라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 계절 나주로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3회차까지 마치고 처음으로 쫑파티를 제안했다. 요즘은 공연이 끝나도 쫑파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이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회식 자체를 권하는 일이 괜히 민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탓도 있는 것 같다. 우려와 달리 모처럼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동안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무엇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은 성공이 누구의 공인지 서로에게 돌리며 웃고 떠들다가, 그 자리에서 이 원고를 청탁받았다. 맥주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흔쾌히 쓰겠다고 했다. 제안받은 글의 주제는 ‘문학의 곁’. 하지만 나는 문학의 ‘곁’에 있기보다는 문학의 ‘주변인’에 가깝다. 주변에 작가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을 향한 나의 애정도 친구들에 비하면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최근에는 꽤 많은 양의 책을 좋은 곳에 입양 보냈다. 작업실과 집 구석구석을 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책더미를 바라보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생긴 책장의 빈 공간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을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전자책도 많이 산다. 전자책은 공간에 대한 죄책감 없이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전자책은 특유의 손맛이 없어 정이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움이 될 팁을 하나 건네자면 서점에 들러 실물 책을 조금 만져보고 물성을 느끼고 나면 조금 나아진다. 어쨌든 언젠가는 내 스마트폰의 e북 앱이 SNS를 누르고 스크린 타임 1위에 오르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책들을 대거 정리하고 달라진 점이 또 있다. 마치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가듯 도서관을 드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 종종 오전 러닝을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동선에 구립 도서관이 포함되어 있다. 의미 없는 찬사와 자기과시로 점철된 술자리를 보낸 다음 날, 털려버린 영혼을 다시 채우고 전날의 죄의식을 씻어내 주는 곳은 천천히 달리는 하천가 산책로와 도서관이다.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서는 것이 조금 쑥스럽고 미안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얼른 들어와 책장 사이를 가만히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마르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늑한 골목 같은 서가에서 책등을 훑으며 거닐다 눈에 걸린 책 한 권을 들고 나온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이 마음에 들면 ‘득템’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는 조금 이상한 독서 습관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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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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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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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만난 호주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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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마음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기다리는 마음 김홍(중화문학도서관 상주작가) 내게 여행은 몇 권의 책으로 남는다. 이번 연수를 떠나는 길에도 트렁크 한켠에 책을 잔뜩 넣었다. 그중에 손이라도 한 번 닿게 되는 책이 몇 권이나 될는지 스스로도 궁금했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줄여보려고 중고로 구입한 이북리더기에도 도서관 대출 범위가 허락되는 만큼의 책을 잔뜩 다운로드했다. 결론적으로 돌아보면 이번 연수에서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은 사람들로 남았고 나머지 시간은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정리해 보자면 애나 친의 을 주의 깊게 읽었고, 루리의 을 다 읽었다. 1권을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의 책을 두 권 읽었다. 반 정도 남아 있던 을 완독하고 를 시작하고 끝냈다. 이 중 종이책은 이고 나머지는 전부 전자책이었다. 이 과정을 생각해 보면 분명히 낭비가 존재한다. 가방에 넣어 가져간 종이책 5권 중에 실제로 읽은 것은 한 권에 불과했기 때문에 4권의 책만큼의 무게가 바다를 건너는 동안 탄소 발자국은 간데없이 낭비된 셈이고, 가방을 밀고 다니면서 소모된 나의 열량에 관해서도 (적어도 책 4권의 무게만큼은) 최고의 효율을 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좋았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오차범위가 필요하고, 그걸 이해하고 용납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소중하고, 공공성이라는 것이 전부 그런 토대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번 연수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 연수에서 말도 안 되게 새롭고 놀라운 것들을 잔뜩 보고 온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자주 한 생각은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예술 지원 정책에 있어 많은 부분은 우리가 이미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한국문학번역원, 한국출판문화진흥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의 여러 기관을 통해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내용들이었고, 충분히 검토되고 있는 내용이었다. 정책의 중요한 부분인 예산 규모에 있어서도 대체로 우리나라 기관들이 확보한 단위가 적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호주의 경우 문학 분야를 독립시켜 Writing Australia라는 기구 아래 통합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우리처럼 예술 전 범위가 통합돼 있다는 것에 비교해서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았다. 도서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연수단이 방문한 주립도서관은 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처럼 공공 납본을 받는 관내 열람 도서관이었고, 대출이 가능한 시립 도서관도 있었다. 장서량은 우리도 도서관마다 차이가 있는 만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조금 달랐던 부분은 주립도서관이 마치 공공 갤러리처럼 운영되는 것이었다. 다양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시민들 입장에서는 도서관에서 여러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점이 편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실정과는 맞지 않았다. 이미 우리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은 책의 안과 밖에서 전천후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도 충분

  • 김홍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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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책방에는 쉬라즈의 풍미와 앨리스의 꿈이 있다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책방에는 쉬라즈의 풍미와 앨리스의 꿈이 있다. 남규조(시옷책방지기) 감사하게도 시옷살롱책방이 2025년 문학상주작가 우수기관 서점 부문에 선정되었고, 포상으로 호주 연수를 가게 되었다. 아르코에서 두 명, 도서관·문학기관·서점 각 기관의 담당자와 작가님 두 명씩, 총 여덟 명이 함께했다. 시옷책방에서는 그림책 작가 김중석 선생님과 동행했다. 작가님 덕분에 이런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중석 작가님 그림책 제작 워크숍 결과 발표회 그림책 제작 워크숍 결과 발표회 이후 김중석 작가님의 프리페인팅 5월 19일 오후 인천공항을 출발해 다음 날 아침 시드니에 도착했다. 여행 내내 여러 곳을 다녔지만, 연수기는 각 작가님과 기관의 특성에 맞게 나누어 쓰기로 했다. 시옷책방은 ‘책방’을 중심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방문한 책방은 네 곳이다. 시드니 뉴타운의 Better Read Than Dead, 멜번의 Readings Kids, The Paperback Bookshop, 그리고 사사프라스 마을의 Through the Looking Glass. Better Read Than Dead — 시드니 뉴타운 뉴타운의 엔틱한 거리에 힙한 장소 Better Read Than Dead 책방. 서가와 매대는 분야별로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주요 도서는 포인트가 돋보이도록 진열되어 있었다. 동선도 잘 확보되어 있어 손님의 이동이 자연스럽고, 간섭이 적어 책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Better Read Than Dead 책방 앞에서 구입한 도서와 함께 서점 내부, 1층 서점 내부. 1층은 서가와 매대, 2층은 북토크와 전시 공간 서점 내부. 1층과 2층 사이 중층, 스킵플로어 구조, Cooking Zone 스킵플로어 공간을 활용해 1층과는 다른 섹션을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선의 지루함을 줄이고, 분야별 집중도와 서가의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었다. 조금 올라가면 북토크와 전시가 가능한 아늑한 공간이 나온다. 공간의 온도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전통이 쌓인 책방의 외관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 이미지는 책갈피와 다양한 굿즈로 확장되어, 방문객들에게 만족도 높은 기념품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너른 자연과 독특한 생태가 공존하는 호주답게 동물·식물·생태 관련 큐레이션이 돋보였고, 이주민의 나라라는 특성과 맞물려 원주민 문화에 대한 내용도 곳곳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 세계 원주민을 다룬 《Origin》이라는 책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구입하게 되었다. 또 서가에서 영화 ‘미나리’를 발견했을 때는 반가움이 밀려왔다. 서점 내부, 2층 북토크 및 전시 공간 서점 외관을 모티브로 한 일러스트 작품 서가에서 발견한 ‘미나리’ 귀국 후 서점에 대해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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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발루의 작가견문록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구루발루의 작가견문록 오시은(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상주작가) 여행객들은 나를 까치라고 하더군. 이곳 사람들은 맥파이라고 하는데 말이야. 뭐라고 부르 건 내 진짜 이름은 따로 있어. 구루발루. 그게 내 이름이지. 가까운 친구들은 그냥 ‘발루’라고 불러. 나더러 “까치네.”라고 말하던 이들을 만난 곳은 포트 잭슨이었어. 언제나 여행자들이 넘쳐나는 항구 말이야. 파라마타강 하구 바닷가인데, 멋들어지게 생긴 공연장과 철재로 만들어진 아치교가 유명하잖아.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솔직히 나도 그걸 보려고 갔던 거야.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을 만나러 갔구나 싶어. 아, 참고로 나는 운명 어쩌고 하는 걸 믿지 않아. 친구들이 점성술 하는 까마귀 집에 재미 삼아 몰려갈 때도 슬그머니 도망칠 정도니까. 그런 내가 그들을 운명이라고 여기게 된 건 좋아하는 게 같아서였어. 그들이 커피를 마시며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책과 작가들에 대해 말하더군. 실제로 그 중 몇은 작가라던데, 유독 눈길이 가는 이가 있더라고. 때때로 시선을 먼 곳에 두는 작가였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찾으려는 탐험가 같더란 말이야. 그때 감이 왔지. 그가 뭘 찾고 있는지 말이야. 이야기. 그것도 엄청나게 재미난 이야기. 나도 많이 해 본 일이라 금세 알 수 있었어. 그렇다고 나도 작가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야기를 사랑하는 건 작가 못지않다고 자부해. 쫄깃하고, 숨 막히고, 따뜻하고, 울컥하고, 기품 있는 언어로 가득한. 왜 있잖아, 시간을 잊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 참고로 내 둥지는 오래된 서점으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에 있어. 이만하면 내가 책과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겠지? 나는 먹는 거 다음으로 이야기를 좋아해. 재밌는 이야기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라고. 그래서 그날 포트 잭슨에서 결심했지. 여행객들, 아니 이야기를 찾는 작가를 따라다니기로. 그의 눈동자가 빛나던 순간이 기억나는군. 작가들을 지원하는 곳의 책임자를 만났을 때였지. 작가에게 상금도 주고, 한 명의 시인을 뽑아 국립 시인상도 주고, 여행 기금도 주고, 문화유산에서 작업할 기회도 제공한다는 설명을 들을 땐 고개만 끄덕이더라고. 하지만 도서관에 책이 비치되면 작가에게 보상한다는 대목에서 눈동자가 커졌어. 출판사와 작가에게 반반씩 보상하다가, 삼 년 후부터는 작가에게만 보상하는데, 유명 작가에게 쏠리지 않게 상한제를 둔다고 했지. 그 모든 게 법에 따라 지켜진다는 말을 듣는 그의 눈에 부러움이 흘러넘치더군. 나한테는 전혀 새롭지 않은 얘기라 그런 반응이 신기했지. 인간의 시간으로 치면 삼십 년도 더 된 일이라 고전이나 마찬가지였거든. 그토록 당연한 걸 부러워하는 게 흥미롭더라고. 다음으로 간 곳은 오페라 하우스 옆에 있는 로열 보타닉 가든이었어. 마침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던 차라 반가웠지. 말이 가든이지 여긴 원시 식물원이라고 봐야

  • 오시은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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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멜버른 국외연수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시드니, 멜버른 국외연수 : 로열 보타닉 가든 탐방과 상주작가 레지던시를 중심으로 전수지(중화문학도서관 사서) 1. 들어가며 2026년 봄, 뜻밖의 소식이 들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는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우리 중화문학도서관이 전국 우수시설 중 하나로 선정되어 호주 연수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2025년 1월에 갓 문을 연 우리 도서관이, 게다가 이제 사서로서 발을 막 뗀 내가 이런 자리를 얻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이번 연수를 통해 사서로서, 그리고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의 담당자로서 우리나라의 문학 지원 체계와 사업 운영 방식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호주의 선진 문학 생태계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호주의 랜드마크 오페라 하우스-vivid light 하버 브릿지 앞에서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시드니와 멜버른을 돌아보는 7박 9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시드니에서는 호주의 시그니처 ‘오페라 하우스’ 투어를 시작으로 타롱가 동물원의 기린이 우릴 반겨주었고, Writing Australia 방문, NSW 주립 도서관 탐방,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 참관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체가 문학과 이어져 있었다. 멜버른은 말 그대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의 명성에 걸맞은 곳이었다. 호지어 레인의 그래피티 골목, 예술가들의 수직 공동체 Nicholas Building, 빅토리아 주립도서관과 휠러 센터, 독립서점 Readings와 The Paperback Bookshop, 그리고 Maru의 캥거루 무리와 퍼핑빌리 증기기관차에 펭귄 퍼레이드까지—문학과 자연과 예술이 경계 없이 뒤섞인 도시였다.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부천이 2017년부터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였다는 점이다.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을 때, 과연 사서라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가 내심 부끄러웠다. 한편, 호주 정부의 문학 지원 체계를 대표하는 Writing Australia의 책임자 Wenona Byrne 디렉터와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호주는 연간 800만 AUD 규모의 문학 전담 예산을 확보하는데, 한국의 문학분야 지원 규모가 호주보다 훨씬 더 크고, 호주는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하나만 해도 연간 70~90개 시설, 수천만 원 규모의 국비가 전국 각지로 분산 투입되며 일자리 창출과 지역 문학 생태계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국가 단위 지원 시스템의 체계성과 지역 침투력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꽤나 선진국이구나 싶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2. 시드니 로열 보타닉 가든(Royal Botanic Garden) 가. 항구와 오페라 하우스를 품은 정원 우리 일행은 시드니 도심 한복판의 신호등과 차량 소음을 등지고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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