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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멜버른 국외연수

  • 작성일 2026-09-01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시드니, 멜버른 국외연수

: 로열 보타닉 가든 탐방과 상주작가 레지던시를 중심으로


전수지(중화문학도서관 사서)


  1. 들어가며

  2026년 봄, 뜻밖의 소식이 들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는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우리 중화문학도서관이 전국 우수시설 중 하나로 선정되어 호주 연수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2025년 1월에 갓 문을 연 우리 도서관이, 게다가 이제 사서로서 발을 막 뗀 내가 이런 자리를 얻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이번 연수를 통해 사서로서, 그리고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의 담당자로서 우리나라의 문학 지원 체계와 사업 운영 방식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호주의 선진 문학 생태계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호주의 랜드마크 오페라 하우스-vivid light 


하버 브릿지 앞에서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시드니와 멜버른을 돌아보는 7박 9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시드니에서는 호주의 시그니처 ‘오페라 하우스’ 투어를 시작으로 타롱가 동물원의 기린이 우릴 반겨주었고, Writing Australia 방문, NSW 주립 도서관 탐방,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 참관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체가 문학과 이어져 있었다. 멜버른은 말 그대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의 명성에 걸맞은 곳이었다. 호지어 레인의 그래피티 골목, 예술가들의 수직 공동체 Nicholas Building, 빅토리아 주립도서관과 휠러 센터, 독립서점 Readings와 The Paperback Bookshop, 그리고 Maru의 캥거루 무리와 퍼핑빌리 증기기관차에 펭귄 퍼레이드까지—문학과 자연과 예술이 경계 없이 뒤섞인 도시였다.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부천이 2017년부터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였다는 점이다.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을 때, 과연 사서라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가 내심 부끄러웠다.


  한편, 호주 정부의 문학 지원 체계를 대표하는 Writing Australia의 책임자 Wenona Byrne 디렉터와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호주는 연간 800만 AUD 규모의 문학 전담 예산을 확보하는데, 한국의 문학분야 지원 규모가 호주보다 훨씬 더 크고, 호주는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하나만 해도 연간 70~90개 시설, 수천만 원 규모의 국비가 전국 각지로 분산 투입되며 일자리 창출과 지역 문학 생태계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국가 단위 지원 시스템의 체계성과 지역 침투력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꽤나 선진국이구나 싶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2. 시드니 로열 보타닉 가든(Royal Botanic Garden)

  가. 항구와 오페라 하우스를 품은 정원

  우리 일행은 시드니 도심 한복판의 신호등과 차량 소음을 등지고 로열 보타닉 가든 안으로 발을 들였다. 문 하나를 경계로 도시의 소음이 사라지고, 짙은 녹음과 새소리, 그리고 꽃향기가 그 자리를 채웠다. 오페라 하우스와 시드니 항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이곳은, 1816년 조성된,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원으로 단순히 식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수백 년의 과학 연구와 원주민 문화, 도시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장소다. 


  가든 관리자가 우리를 위해 특별히 버기카를 직접 운전하며 넓은 부지를 안내해주었다. 투어하는 동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봤는데, 이렇게 버기카를 태워주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횡재했다. 걸어서는 다 돌아보기 어려운 방대한 정원을 누비는 특별한 투어였다. 버기카가 흙길을 달리기 시작하자 영화 쥬라기 공원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보타닉 가든


버기카 투어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거뜬히 보호수 타이틀을 달았을 만큼 굉장히 키가 큰 나무들 사이로 하버 브릿지의 아치가 보이는 풍경 속에서, 관리자가 들려주는 식물들에 담긴 이야기나 역사가 생각보다 훨씬 깊고 풍부했다. 수령 기본 100년이 넘는다는 거목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유럽인들이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디기 훨씬 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 앞에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어 가든 내에서 서식 중인 멸종위기 식물들, 세계 각지에서 이식되어 온 희귀 교목들, 그리고 오직 이 정원에서만 자라는 고유종들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한 그루 한 그루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이었다. 버기카 투어가 끝날 무렵, 나는 왜 이 정원이 '창작의 공간'이 될 수 있는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작가란 결국 오래된 것들을 새로운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이 아닌가. 이 정원은 그 원재료를 무한히 품고 있었다. 보타닉 가든은 오페라 하우스 바로 옆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하우스나 하버 브릿지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가든이 없었다면 시드니는 지금처럼 아름답지 않았을 것이라는 보타닉 가든 상주작가 Cheryl Leavy의 말은, 이 공간이 지닌 문화적 의미를 잘 압축하고 있었다.


  나. 식물의 향기를 품은 도서관

  버기카 투어를 마친 뒤 가든 안쪽 깊숙이 자리한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식물원 안에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바깥의 탁 트인 풍경과 달리 조용하고 아담한 공간이었다. '이런 곳에 도서관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였고 외관만 보면 그저 조용한 연구동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식물 표본, 희귀 고문서, 정밀한 식물 세밀화, 수백 년에 걸친 연구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인 식물학 아카이브의 보고(寶庫)였다.


보타닉 가든 도서관1


  서가에는 오래된 식물학 전문 도서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식물 세밀화와 표본 자료들이 함께 보존되어 있었다. 수백 년에 걸쳐 연구자들이 기록하고 남긴 자료들이었다. 종이들이 누렇게 바랬고 딱 봐도 오래된 고서같은데 방문객들이 쉽게 만져볼 수 있게끔 펼쳐져 전시된 점이 신기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시드니 왕립 식물원 '브랜치 아웃(Branch Out)' 팟캐스트 진행자 및 프로듀서 Vanessa Fuchs가 우리를 맞이했다. 버네사는 실제로 그가 쓴 도서의 일러스트들이 모두 이 도서관 소장 자료에서 발췌된 것이라고 했다. 자료를 연구하는 것이 곧 창작의 출발점이 되는 구조였다.


  서가 안내 가이드마저 꽃과 식물을 배경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도서관 내부에 있는 것만으로도 식물원의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아담하다'는 표현이 이 공간에 정말 잘 어울렸다. 크기보다 깊이로 승부하는 도서관이랄까? 그러나 작다고 해서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꼭 필요한 것만 남긴 듯한 밀도가 있었다. 


보타닉 가든 도서관


  3. 보타닉 가든 상주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가. 프로그램 탄생의 배경


보타닉 가든 상주작가들과의 인터뷰


보타닉 가든 도서관 안에서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버네사와 함께 올해 첫 가든 상주작가로 선정된 두 사람을 만난 일이었다. 어린이 문학가 셰릴 리비(Cheryl Leavy)와 만화가 제스 호우드(Jess Horwood).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의 지원으로 이제 막 첫발을 뗀, 아직은 시범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다. 본격적인 인터뷰 시간이 이어졌다.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 대화였지만, 각자가 이 프로그램에 담은 마음은 언어를 넘어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에게 전해졌다.

  Vanessa는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배경을 알려주었다. 시드니 보타닉 가든은 오래전부터 작가, 예술가, 스토리텔러들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였다. 과학과 원예,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 공간을 더 많은 사람들이 글과 예술로 만나게 하고 싶었고, 가든을 알릴 수 있는 이야기와 행사를 기획하고 싶었다. 그 바람이 NSW 주 정부의 관심으로 이어졌고 올해 처음 프로그램이 출범하게 되었다.


  레지던시는 총 3곳의 보타닉 가든 중 선택하여 진행할 수 있다. Royal Botanic Garden(시드니), Mount Annan Garden(씨앗 은행과 식물 표본관 등 과학 시설이 집중된 곳), Blue Mountain Garden 이렇게 3곳이다. 프로그램 운영 주체는 보타닉 가든이지만 예산은 NSW 주 정부에서 지원한다. 선정된 작가들은 3개월간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각각 15,000 AUD를 지원받는다. 호주의 Writing Australia가 추구하는 문학 생태계 지원 철학—특정 장소와 창작이 만나 시민 참여를 이끌어낸다—이 이 프로그램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었다.


  나. 선정 기준과 인원

  이 프로그램이 올해 처음 시작되었음에도, 소셜 미디어를 통한 공모에 무려 135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5명이 면접 대상자로 올랐고, 최종적으로 2명이 선정되었다. 심사는 다섯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① 글의 퀄리티, ② 창의적인 콘셉, ③ 가든의 가치와 비전과의 부합성, ④ 시민 참여도, ⑤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이 그 기준이다. 지원 자격은 18세 이상 호주 거주자로, 신진 작가와 출판 경험이 있는 기성 작가 모두 지원할 수 있다. 지원 서류는 프로젝트 기획서와 이력서로 구성되는데 단순히 '좋은 작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가든이라는 장소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를 찾는 과정에 가깝다. 또한 프로그램의 취지가 의도적으로 드러나있어, 가든의 자원과 소장품을 독창적으로 활용하는 제안을 반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 두 작가, 두 개의 이야기

  선정된 두 작가는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작가들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분들이 왜 선정되었는지 자연스럽게 깨닫고 느끼게 되었다.


  1) 만화가 Jess Horwood

  신진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만화도 그리고 글도 쓰는데, 더 가디언(The Guardian)이라는 온라인판에 작품이 실리기도 했다. Jess가 레지던스 기간에 계획한 일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고무나무(Gum tree)에 대한 작은 만화 잡지를 제작한다. 둘째, 호주 자생 식물의 씨앗을 수집하는 식물 은행(seed bank)을 직접 방문해 식물 은행에 대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셋째, 마지막 한 달 동안은 언젠가 쓰고 싶었던 책의 첫 챕터를 집필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2) 어린이 문학가·시인 Cheryl Leavy

  쿠마와 응구리(Kuma-ngurii) 부족 출신의 수상 경력이 있는 원주민 작가다. 2024년에 출간한 도서로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에 깊은 열정을 가진 것이 느껴졌다.

  Cheryl이 이번 레지던시에서 추진하고 싶은 일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아동 도서 집필이다. 특정 장소와 깊이 연결되고 그 장소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런 생각은 원주민 문화의 일부라고 한다. 보타닉 가든이 없었다면 시드니는 지금처럼 아름답지 않았을 것이라는 Cheryl의 이야기는, 장소가 지닌 문화적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두 번째 계획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그는 가든 안에 '작가의 오두막'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딜런 토마스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많은 유명 작가들이 자신만의 집필 공간을 가졌던 것처럼, 또한 방문객들이 직접 그 공간에 와서 글을 쓸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핵심 콘셉은 씨앗이 박혀 있는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것이다. 그 종이를 땅에 심으면 글이 자라나는 것인데, 우리가 내뱉는 말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사람들에게 상기시켜 주는 프로젝트이자 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했다. '시는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마음과 바로 연결되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언어'라는 Cheryl의 말이 유난히 마음 속에 영글었다.


  라. 상주작가의 하루 — 공간과 자유

  두 작가가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은 가든이 작가에게 열어주는 접근의 반경이었다. 도서관, 회의실, 다른 직원들 사이의 공간, 정원 안 카페, 온실, 식물 은행—이 모든 시설에 작가들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고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다. 두 작가는 이미 여러 공간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창작 리듬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레지던시 기간을 단순히 '작업'으로만 채우지 않고, 가든의 시설과 전문 인력들과 맞닿아 직접 탐사하고 기록하는 과정 자체가 창작의 일부였다. 두 작가는 도서관도 다녀왔고 가든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해 온실을 돌며 고사리들을 관찰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했다. 가든 안 카페에 앉아 글을 쓰기도 하고 다른 직원들 사이에서 함께 일하기도 한다며, 상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공간을 몸으로 익혀가는 과정임을 두 사람의 표정과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숙박은 가든 내부에서 하지 않고 근처 호텔에 머문다고 한다. 그 점이 크게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Cheryl은 캐나다에서도 벤프 레지던스 프로그램(Banff Centre for Arts and Creativity)에 참여했었는데 그곳은 작가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숙식을 제공했다고 한다. 가든 내 거대한 호텔 시설이 있어 작가들이 아예 상주하며 교류가 가능하다 하니 시너지효과도 있겠지만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4. 도서관 사서의 시선으로

  가. 호주 상주작가 시스템의 시사점

  보타닉 가든 레지던시는 단순히 '작가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정원의 생태, 식물학 아카이브, 과학 커뮤니티, 그리고 창작이 한데 얽혀 전혀 새로운 문학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실험이었다.

  한국에서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타닉 가든의 레지던시 모델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우리나라도 작가가 레지던시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문학관이나 도서관에 한정하지 않고, 국립수목원이나 생태공원, 박물관, 갤러리처럼 비문학적 공간으로 확장한다면 어떨까?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일상을 함께하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지 않을까.


호주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창작물들-NSW 주립 도서관


  나. 도서관이 창작을 품을 때

  이번 방문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도서관이 '자료를 보관하고 이용하는 곳'을 넘어 '창작을 품는 곳'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보타닉 가든 도서관은 규모 면에서 결코 크지 않다. 하지만 수백 년에 걸쳐 쌓인 식물학 아카이브를 소장하고, 그 자료가 실제로 작가의 책 일러스트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우리 중화문학도서관은 작년에 개관한 작은 규모의 문학 주제 특화 도서관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어쩌면 이 보타닉 가든 도서관처럼 특색 있는 소장 자료와 방향성을 가질 여지가 더 크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도서관 옆으로는 중랑천이 흐르고 매년 장미축제를 진행하는 장미공원과 장미터널이 널따랗게 이어져있다. 도서관 뒤편에는 최근 조성된 공원이 있다. 규모로 경쟁하기보다 지역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도서관—그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일 수 있겠다는 고민이 생겼다.


  다. 상주작가 지원사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이번 연수 전까지 나는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을 운영하면서, 주로 '작가가 우리 도서관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우선적으로 보았다. 프로그램 기획, 참여자 수, 이용자 반응—이런 것들이 늘 머릿속에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Cheryl과 Jess를 만나고 나서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 도서관이 작가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라는 방향으로. 두 작가는 보타닉 가든의 도서관을, 가든의 공간을, 가든의 전문가들을 자신의 창작에 연결짓고 있었다. 상주한다는 것이 작가에게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창작의 깊이를 더하는 경험이 되도록, 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기관의 역할 아닐까 싶다.


  5. 나오며


  이번 호주 연수는 시드니와 멜버른의 도서관, 서점, 작가 축제, 레지던시 현장 등을 두루 돌아보며 호주의 문학 생태계 전반을 체험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많다.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은 빅토리아 주립도서관의 멋진 돔 천장 아래 늘어선 책상을 따라 공부에 몰두하던 시민들, 시드니 작가 축제에서 정보라 작가(이날은 번역가로 오셨다)와의 미팅과 대담 현장을 가득 채운 독자들, 독립서점에서 본 손글씨로 정성껏 큐레이션된 책들과 한국 젊은 작가들의 책, 고유가로 인한 무료 대중교통 개방으로 원없이 탔던 트램... 그리고 한국에 온 지금까지 여운이 길게 남아있는 첫날 야외 카페에서 마신 정말 맛있는 플랫화이트까지. 우리는 메뉴 고민이 필요 없었다. 아이스크림이든 카페든 어디서 뭐가 유명하다 하면 일심단결 대동하고 일주일 간 호주에 있으면서 그 누구도 김치찌개를 찾지 않은 게 생각나 웃음이 난다.


첫날 방문했던 카페


플랫화이트



  그러나 가장 핵심은 도서관 사서로서, 그리고 상주작가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실무자로서 호주의 케이스를 통해 도서관이 가진 자원을 어떻게 상주작가와 연결하고, 작가의 창작물을 어떻게 다시 지역사회에 환원할 지—순환의 고리를 잇고 그 저변을 확장하게끔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중화문학도서관이 앞으로도 상주작가와 어떤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고 시간을 알차게 채워갈 수 있을지 많은 질문들을 품고 돌아왔다.

  단순한 도서관과 문학시설이 아니라 자연과 과학, 그리고 문학이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진정한 창작의 산실. 호주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 도서관도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품는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연수 기회를 마련해주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담당자 분들과 7박 9일의 여정을 함께한 작가님들, 사업 담당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문학상주작가지원사업 2025년 우수시설에 선정된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호주 시드니작가축제 및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인 멜버른을 탐방하고 우수사례를 경험하였습니다.
  2026년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7박 9일간 참여자들의 호주 국외연수 후기는 문장웹진-모색 9월호에서 총 6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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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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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만난 호주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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