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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작성일 2026-09-01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지원금을 지급하는데, 기성 학자뿐만 아니라 가능성 있는 신진 청년 작가(최저 연령 20세)부터 74세의 원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수용하고 있었다. 선정된 작가들에게는 도서관 내 전용 연구 공간(레지던스)이 주어지고, 무엇보다 전담 사서가 배정되어 밀착 연구 지원을 제공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결과물 제출에 대한 압박 대신 "책이 나오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준다"는 레이첼 박사의 말에서 공공기관이 창작자를 대하는 깊은 사회적 신뢰를 읽을 수 있었다. 

  인터뷰 후 호주와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 파멜라 앨런의 특별전 《The Curious World of Pamela Allen》을 관람하였다. 전시장은 단순히 원화를 벽에 진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그림책 속 공간을 실제로 재현해 놓았다. 관람자는 '미스터 맥기의 나무'를 오르거나, 거대한 그림책 페이지를 넘기고, 작품 속 등장인물의 모자를 써보며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파멜라 앨런의 원화, 스케치, 창작 노트 등 기록물을 활용해 그림책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어 작가의 아카이브를 문화콘텐츠로 재해석하여 대중과 공유한 것이 흥미로웠다.



  나. 달링 스퀘어 도서관(Darling Square Library):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복합문화공간

  시드니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달링 스퀘어 도서관은 외관부터 거대한 '새둥지'를 연상시키는 나선형 목재 건축물, '더 익스체인지(The Exchange)' 빌딩 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서관 내부에 들어서면 버려진 플라스틱 장난감을 재활용해 만든 노란색 거대 공룡 조형물이 눈길을 끌며, 두 개 층을 연결하는 중심부의 푸른색 구조적 계단이 강렬한 시각적 포인트를 더한다. 계단 위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안내데스크를 비롯한 1층 메인 홀이 한눈에 들어오는 개방적인 구조이다. 천장의 노출형 배관과 밝고 둥근 조명들이 서로 어우러져 현대적이면서 탁 트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은 전통적인 도서관의 개념을 넘어 디지털 기술과 지역 커뮤니티가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이자 첨단 창작 기지로 운영되고 있다. 도서관 내부에는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등 제작 장비를 갖춘 ‘메이커 스페이스’와 다양한 창작․세미나 활동이 가능한 ‘랩(Lab)’, 어린이 전용공간 그리고 몰입을 돕는 학습, 독서, 작업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주민들의 일상을 세심하게 지원하는 커뮤니티 허브로서의 역할도 돋보인다. 연수 당시 열리고 있던 ‘시드니 작가 축제’ 안내 등 지역문화 소식과 이웃 분쟁이나 채무 문제 등 주민들에게 필요한 법률상담, 실용적인 건강 정보를 담은 리플릿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었다. 여기에 자연광이 풍부한 열람 공간과 야외 테라스는 도서관이 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문화적 쉼터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다. 시드니 로열 보타닉 가든(Sydney Royal Botanic Garden) 내 도서관 

  시드니 중심부, 푸른 항구와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는 곳에 도시의 오아시스 같은 식물원이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품은 이 식물원 깊숙한 곳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식물학 전문 자료를 소장한 도서관이 숨겨져 있다. 


  이곳 식물원에서 과학 커뮤니티 매니저인 Vanessa Fuchs를 비롯해, 최초의 가든 상주작가로 선정된 어린이 문학가 Cheryl Leavy와 만화가 Jess Horwood를 만났다.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의 지원으로 올해 첫발을 뗀, 식물원의 인프라와 문학 작가의 영감이 결합한 창작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살펴볼 수 있었다.


작가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도서관의 규모는 아담하지만 식물 표본, 희귀 도서, 식물 세밀화 및 연구 기록 등 식물학 아카이브를 종합적으로 보존하는 중심지다. 특히, Vanessa Fuchs 매니저 도서의 일러스트들이 모두 이 도서관의 자료에서 발췌되었을 만큼 깊이 있는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서가의 안내 가이드마저 꽃과 식물을 배경으로 디자인되어 도서관 내부에서도 식물원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도서관은 오랜 세월 축적해 온 소중한 역사적 자료와 연구 기록을 창작자들에게 아낌없이 개방하고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고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이끄는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단순한 정원과 서재를 넘어, 자연과 과학, 그리고 문학이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진정한 창작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었다.



  2. 멜버른(Melbourne): 유네스코 문학 도시의 심장부에서


  가. 빅토리아 주립도서관(State Library of Victoria): 역사성과 개방성이 공존하는 공간

시드니 일정을 마치고 5월 23일 콴타스 항공(QF433) 편으로 호주의 문화·예술 수도라 불리는 멜버른으로 이동했다. 멜버른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1854년에 설립된 공공도서관이자 무료 개방 도서관 중 하나인 '빅토리아 주립도서관' 방문이었다. 


  도서관 외부 입구 양옆으로 설치된 대형 체스판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체스를 두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로비를 지나 '라 트로브 열람실(La Trobe Reading Room)'에 들어선 순간, 우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라는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방사형 구조로 배치된 서가 위로 웅장하게 솟은 거대한 돔형 천장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천창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은은한 자연광 아래 수많은 시민들이 책을 읽고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과 4층과 5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열람실의 기하학적 뷰는 가히 환상적이었고 절로 책이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외에도 주요 연구 및 독서 공간 중의 하나인 레이먼드 배리 열람실, 예술 열람실, 신문 및 가족사 열람실을 비롯해 다채로운 갤러리와 폴린 갠델 어린이 구역, 정보 센터, 이벤트 공간 그리고 서점과 카페까지 매력적인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용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거대하고 엄숙한 역사적 공간 안에서, 한쪽에서는 연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노트북을 사용하는 이용자를 보며 입구의 거대한 체스판이 다시금 떠올랐다. 고전적 권위와 역사를 유지하면서도 시민들에게 문턱을 낮춘 개방적 운영 철학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3. 연수 총평

  이번 연수 기간 동안 주립 도서관과 공간 혁신 도서관을 둘러보았을 뿐만 아니라, Writing Australia(호주 문학 전담 독립 지원 기구)의 책임자 Wenona Byrne과의 인터뷰, 시드니 작가 축제에 참가한 정보라 작가 대담 참관, 그리고 멜버른의 자부심인 독립서점 '리딩스(Readings)'와 '페이퍼백 북숍(The Paperback Bookshop)' 등을 두루 거치며 호주의 탄탄한 문학 생태계를 체험했다.


  호주 역시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긴 글(Long-form)을 읽는 독자가 줄어드는 문제로 깊이 고심하고 있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27년부터 정부 차원의 가족 독서 캠페인과 문화 소외 지역에 작가를 파견하는 'Live Literature'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 했다. 이를 보며 이미 한국이 독서국가를 선포하고 인천광역시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책 읽는 학교, 책 읽는 마을, 책 읽는 가정’ 융합 독서사업이 떠올랐다. 학교와 마을, 가정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활발히 운영되는 우리의 독서사업이 모범적인 선행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의 사례처럼, 도서관에 상주하는 작가가 창작에 필요한 지역의 역사 자료, 아카이브, 전문 서적을 신속하고 깊이 있게 발굴할 수 있도록 도서관 사서와 작가를 1:1로 매칭하여 밀착 연구를 지원하는 전담 사서 시스템은 상주작가의 창작 퀄리티를 높이고 사서의 전문성을 확장한 사례로 보인다. 그리고 시드니 로열 보타닉 가든의 사례처럼 문학상주작가 지원 대상을 도서관, 서점, 문학관에서 국립수목원, 생태공원 혹은 지역 박물관 등으로 확장하여 융복합 문학 콘텐츠 개발을 유도하면 지역 주민의 문화 접근성을 향상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결과 중심에서 과정과 신뢰 중심의 사후 관리로 전환하여 단기적인 결과물(출판, 정산)에 무게를 두기보다 작가가 안심하고 창작에 몰입할 수 있도록 네트워킹과 연구 공간 연장 혜택을 주는 등 사회적 신뢰에 기반한 인내심 있는 지원 패러다임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 연수는 도서관과 문학 그리고 지역사회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호주의 고풍스러운 도서관의 돔 천장 아래에서 독서에 몰두하던 시민들의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번에 보고 배운 값진 경험을 도서관 현장에 충실히 적용하여 주민들의 문학적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모든 일정을 더없이 유익하고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하고 지원해 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한 담당자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문학상주작가지원사업 2025년 우수시설에 선정된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호주 시드니작가축제 및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인 멜버른을 탐방하고 우수사례를 경험하였습니다.
  2026년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7박 9일간 참여자들의 호주 국외연수 후기는 문장웹진-모색 9월호에서 총 6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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