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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책방에는 쉬라즈의 풍미와 앨리스의 꿈이 있다.

  • 작성일 2026-09-01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책방에는 쉬라즈의 풍미와 앨리스의 꿈이 있다.


남규조(시옷책방지기)


  감사하게도 시옷살롱책방이 2025년 문학상주작가 우수기관 서점 부문에 선정되었고, 포상으로 호주 연수를 가게 되었다. 아르코에서 두 명, 도서관·문학기관·서점 각 기관의 담당자와 작가님 두 명씩, 총 여덟 명이 함께했다. 시옷책방에서는 그림책 작가 김중석 선생님과 동행했다. 작가님 덕분에 이런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중석 작가님

그림책 제작 워크숍 결과 발표회

그림책 제작 워크숍 결과 발표회 이후 김중석 작가님의 프리페인팅



  5월 19일 오후 인천공항을 출발해 다음 날 아침 시드니에 도착했다. 여행 내내 여러 곳을 다녔지만, 연수기는 각 작가님과 기관의 특성에 맞게 나누어 쓰기로 했다. 시옷책방은 ‘책방’을 중심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방문한 책방은 네 곳이다. 시드니 뉴타운의 Better Read Than Dead, 멜번의 Readings Kids, The Paperback Bookshop, 그리고 사사프라스 마을의 Through the Looking Glass.



  Better Read Than Dead — 시드니 뉴타운




  뉴타운의 엔틱한 거리에 힙한 장소 Better Read Than Dead 책방. 서가와 매대는 분야별로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주요 도서는 포인트가 돋보이도록 진열되어 있었다. 동선도 잘 확보되어 있어 손님의 이동이 자연스럽고, 간섭이 적어 책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Better Read Than Dead 책방 앞에서 구입한 도서와 함께

서점 내부, 1층

서점 내부. 1층은 서가와 매대, 2층은 북토크와 전시 공간

서점 내부. 1층과 2층 사이 중층, 스킵플로어 구조, Cooking Zone


  스킵플로어 공간을 활용해 1층과는 다른 섹션을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선의 지루함을 줄이고, 분야별 집중도와 서가의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었다. 조금 올라가면 북토크와 전시가 가능한 아늑한 공간이 나온다. 공간의 온도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전통이 쌓인 책방의 외관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 이미지는 책갈피와 다양한 굿즈로 확장되어, 방문객들에게 만족도 높은 기념품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너른 자연과 독특한 생태가 공존하는 호주답게 동물·식물·생태 관련 큐레이션이 돋보였고, 이주민의 나라라는 특성과 맞물려 원주민 문화에 대한 내용도 곳곳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 세계 원주민을 다룬 《Origin》이라는 책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구입하게 되었다. 또 서가에서 영화 ‘미나리’를 발견했을 때는 반가움이 밀려왔다.


서점 내부, 2층 북토크 및 전시 공간

서점 외관을 모티브로 한 일러스트 작품

서가에서 발견한 ‘미나리’


  귀국 후 서점에 대해 추가로 찾아보았다(https://www.betterreadevents.com/). 저자 행사, 북클럽, 어린이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이 운영되고 있었다. 특히 북클럽이 잘 운영되는 것으로 보였다. 매달 셋째 주 화요일에 열리는 Better Reader Book Club은 신간, 고전, 단편, 장르소설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었고, 번역문학 클럽, 제인 오스틴 및 고전문학 클럽, 여성 캐릭터를 분석하는 Bad Women Book Club 등 다양한 모임이 각각 정기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어린이 대상 스토리타임은 주말마다 진행된다고 한다. Better Read Kids, Better Read Cooks, Better Read Tours, Talking Words Podcast처럼 책방 이름 아래 분화된 브랜드도 별도로 운영 중이다.


  시옷책방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와의 만남, 독서모임, 그림책 제작 프로그램, ‘내책만세’, 북페어, 전문가 연속 강좌, 그리고 문학상주작가·길 위의 인문학·지혜학교 같은 지원사업도 함께한다. 이 책방을 보며 든 생각은 ‘프로그램의 수’보다 ‘구조’였다. 이곳의 북클럽은 정해진 요일에 매달 반복된다. 한 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같은 사람들이 매달 다시 찾아오는 리듬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시옷책방 역시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더 정교하게 다듬을 여지가 있어 보였다. 또 하나의 궁금증도 남았다. 이들은 지원사업에 얼마나 의존할까? 혹은 자생적으로 운영이 가능한 구조일까? 우리나라와 다른 상황이니 기우일까? 오가는 손님 수로는 호주는 여전히 독서 인구가 두텁고, 책방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여졌다.

  1996년에 문을 연 이 서점은 ‘뉴타운의 지적 역동성을 키워온 문학의 랜드마크’로 불린다고 한다. 곱씹어볼 만한 책방이다.


  Readings Kids — 멜버른


ReadingKids에서 구매한 그림책

서점 외부, 그림책 장면을 설치물로 구성한 디스플레이


그림책 읽어주는 프로그램

마법사 복장으로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다.

주제별로 큐레이션된 그림책

주목할 그림책 매대

성에 대한 질문과 솔직한 답변을 담은 책


  멜버른에 있는 Readings를 방문했다. ‘2016년 런던도서전 올해의 서점상 수상, 자체 문학상 및 지역 작가 지원 프로그램 운영’이라는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Readings는 칼튼에 본점이 있고, 바로 옆 315 Lygon Street에 어린이 전문 매장 Readings Kids가 따로 있다.


  들어서는 순간,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꾸민 ‘어린이 공간’이 아니라, 원래 그런 공간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우측 벽화는 책방전체를 꿈꾸듯 분위기를 잡아주었다. 마침 방문 직후 그림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된 장면처럼 느껴졌다. 마법사 복장을 한 진행자는 애니메이션 속 인물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냈고,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웃으며 집중했다. 서점 전체가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자체로 행복한 풍경이었다.


  추가로 찾아보니, Readings Kids는 2016년 본점에서 분리되어 문을 열었다고 한다. “모든 아이에게 맞는 이야기를 찾아주고, 평생 독서를 사랑하게 만든다”는 책방 슬로건이 있다고 한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0세부터 8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문 스토리텔러가 진행하는 무료 스토리타임이 열린다고 했는데, 우리가 마침 방문한 시간과 정확히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곳에서는 저자 사인회나 신간 런칭 행사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책, 음악, 게임을 포함한 어린이·청소년 전문 서점”이라고 한다. 특히 쇼윈도에 그림책 장면을 입체 설치물로 구현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방으로 들어오는 아이들과 부모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시옷책방은 어린이 전문 서점은 아니지만, 파주출판도시의 ‘어린이 책 축제’나 ‘북소리축제(북앤컬처)’와 연계한 오픈하우스, 여름방학 체험 프로그램 등 어린이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전문 스토리텔러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림책 읽어주는 아저씨’나 마법사 콘셉트를 한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부산 사투리를 쓰는 마법사를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조금 고민이 필요하다. 

좋은 어린이 서점을 만나 기쁘다. 지금은 태백으로 간 ‘동화나라’ 책방이 그립다.



  The Paperback Bookshop — 멜버른


서점 외부. 통창으로 보이는 서점의 책들이 따뜻하다.

심플한 간판과 가로를 보고 있으면 연남동 어디에 서 있는 듯하다.

작은 서점의 입구에는 뭔가 신비로움이 스며 있다.

집중하게 만드는 서가

빼곡한 책들과 적당히 드나드는, 끝없는 손님


  The Paperback Bookshop을 찾았다. 일정표에는 ‘1960년대 개점한 독립서점의 원형, 수준 높은 문학 큐레이션과 심야 운영으로 지역 문학 커뮤니티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적혀 있었다. Bourke Street 끝자락, 작은 간판이 플라타너스 아래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소리 없는 탄성이 나왔다. 아담하고 밀도 높은 공간이었다. 길가로 난 통창은 인사동 골동품 가게를 떠올리게 했다. 빼곡한 책들,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기, 그리고 은은한 향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 서점은 1960년대 후반, 당시 호주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미국 페이퍼백, 특히 비트 시인들의 책을 들여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트 시인은 1950년대 미국에서 물질적 풍요와 획일화된 사회에 저항하며 등장한 문학운동의 시인을 말한다.) 바로 옆의 Pellegrini's Espresso Bar와 함께 멜번의 밤 문화를 만들어낸 공간이기도 했다. Pellegrini's는 1954년에 문을 연 이탈리아식 카페로, 작가·예술가·배우·지식인들이 모이던 보헤미안 아지트였다. 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옆에서 에스프레소와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한다.

  책과 커피, 그리고 쉬라즈가 멜번의 문학적 장면을 함께 만들어온 것은 아닐까. 이 책방에서 운영하는 Salon Series가 있다고 한다. 작가와 독자가 한자리에 모여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으로, 여러 작가가 함께 낭독하고 이야기하는 형식으로도 진행된다고 한다. 책방은 좁아서 별도의 공간(Coates Community Arts)을 빌려 와인을 마시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점도 재미나 보였다. 아마도 책 판매만으로는 공간 대여비나 인건비 등 타산이 맞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아무튼 자유롭고 부러운 문화다. 우리나라도 책방에서 종종 막걸리나 와인, 맥주를 마시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시옷책방도 주류 판매 허가를 가지고 있어 일부 프로그램에서 막걸리를 곁들이기도 했다. 다만 방문객 대부분이 차량을 가져오기 때문에 지속적인 운영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책과 술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쉽지는 않지만… 이젠 시옷책방에도 쉬라즈의 풍미가 필요할 때다.



  Through the Looking Glass — 사사프라스 마을, 5월 25일


Throuhg the Looking Glass 서점 전경

유리창에 씌여진 서점 이름


  단데농 산맥으로 향했다. 재미난 꿈의 퍼핑빌리 증기기차를 타고, 레이크사이드 역에서 내려 사사프라스 마을로 갔다. 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Through the Looking Glass를 만날 수 있었다. 들어가니 중고책 향긋한 냄새가 났다. 꿈 같은, 뭔가 요정 같은 귀여운 옛것이 숨어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 공식 소개 문구는 "단데농 산맥과 멜버른의 아름다운 곳들에서 중고책과 다른 호기심의 물건들을 다루는 서점." 고전과 컬트 문학, 호주 문학, 어린이책에 강하다"고 한다. "누구나 한 권쯤 만날 수 있는 포근한 작은 가게"라 한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비밀의 방. Stop!~ Kids only / No Grown ups!"

비밀의 방 내부

비밀의 방에서 바라본 창밖

왠지 모르게 신비로운 주인 아저씨


  사진을 찍었던 것 중에 무심코 세 권의 책을 찍은 사진을 검색해봤다. 이 책들에게는 책방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서점 이름이 Through the Looking Glass 인데, 유리 진열장 안에 루이스 캐럴의 희귀본 세 권이 놓여 있다. 서점 이름의 출처가 되는 바로 이 책들이 서점에서 가장 의미있는 책들이었다. 검색을 해도 주인이 왜 제목에서 책방 이름을 차용했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지만, 거울 속으로 들어가면 상상하지 못한, 이상한 것만 나오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아마도 중고서점은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꿈과 상상, 낭만이 펼쳐지는 곳으로 책과 의미를 같이 하는 것은 아닐까? 알 수 없는 무엇, 예상하지 못한 일이 펼쳐지듯 선물과도 같은 책의 발견, 그런 의미로 책방 이름을 지은 것은 아닐까? 사진 속 책 정보를 찾아봤다.


앨리스 책 3권


  왼쪽 — 1946년판 ($400)

  흰 바탕에 고양이와 체셔 캣, 트럼프 병정 문양이 그려진 표지이다. 1946년판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출판된 판본으로, 전쟁 중 용지 부족이 해소되던 시기에 재출간된 것이고, 삽화 스타일이 단순화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가운데 — 1954년판 ($300)

  제목이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and Through the Looking-Glass" — 두 권을 합본한 판. 원화가 존 테니얼(John Tenniel)의 목판 삽화를 기본으로 하되, 다이애나 스탠리(Diana Stanley)가 8점을 컬러로 재작업한 J.M. Dent 출판사의 1954년 초판 합본이라고 한다. Dent & Dutton의 Children's Illustrated Classics 시리즈 중 하나로, 컬러 도판이 포함된 첫 합본이라는 점에서 수집 가치가 있다고 한다. 


  오른쪽 — 1893년판 ($1,500)

  진녹색 천 표지에 금박 글씨.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맥밀란 출판사가 존 테니얼 삽화와 함께 펴낸 19세기 판본으로, 1865년 초판 이후 수십 년간 꾸준히 인쇄된 빅토리아 시대 판입니다. 이 시리즈의 1865년 초판은 현재 단 23부만 현존하며 경매가가 수억 원대에 이르지만, 1893년판도 보존 상태에 따라 고가 희귀본 시장에서 거래된다고 한다.


  재미난 책방이다. 누군가 책방 문을 연다면, 책방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Stop!~ Kids only. No Grown ups!”


  모두 재미나고 특색있는 책방이었다. 연수를 하는 중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고, 궁금한 부분을 찾아보니 너무 재미나고 소중한 책방들이었음을 새삼 느낀다.


  마지막으로 우수기관으로 선정해 주신 아르코와 세심하고 알차게 연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이끌어 주신 윤지현, 서유미 차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문학상주작가지원사업 2025년 우수시설에 선정된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호주 시드니작가축제 및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인 멜버른을 탐방하고 우수사례를 경험하였습니다.
  2026년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7박 9일간 참여자들의 호주 국외연수 후기는 문장웹진-모색 9월호에서 총 6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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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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