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산책
- 작성일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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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명동 산책
도재경
몇 해 전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하던 한 학생에게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학생에게 허풍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솔직하게 답변한다는 게 고작 맥주를 마시며 놀 궁리를 한다는 거였다. 대답하고 나니 어쩐지 궁색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며 노는 게 아니라 궁리를 하는 거라고…….
궁리를 한다고?
꼴에 선생이라고 자못 젠체한 듯해서 뒤통수가 가렵다.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끄적거릴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종국엔 멍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대체 온종일 뭘 했나 자책감이 들면서도 그러한 상태야말로 창작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라고 합리화하곤 한다. 지난여름 명동에 자리한 서울프린스호텔의 ‘소설가의방’에 입주한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침구류는 새것처럼 빳빳해져 있었고, 물기 하나 없는 욕실에는 보송보송한 수건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허기질 일도 없었다. 늦잠을 자느라 곧잘 조식을 거르곤 했지만 호텔의 ‘이층서가’나 인근 식당에서 언제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라운지에는 쿠키나 주스 등 간식도 가득했다. 그랬다. 분에 겨울 정도로 호사스러운 일상에서 부끄럽게도 불철주야 온갖 공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중 하나는 전기밥솥에 관한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돌멩이에 관한 거였다. 전자는 탈고를 앞둔 장편소설의 소재였고, 후자는 곧 쓰게 될 단편소설의 글감이었다.
퍽 다행스럽게도 호텔에서의 일상은 밋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집필을 핑계로 죄다 퇴실 이후로 미루었고, 무더운 한여름에 호텔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대부분을 객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좀이 쑤실 때면 산책 삼아 호텔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호텔에서 남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 초입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는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특별할 게 없는 풍경이라 도리어 생경했다. 말없이 멍만 때리다 보면 입안이 퍼석퍼석해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몇몇 동료 작가들이 입주해 있었다. 함께 식사하고선 소화를 시킬 겸 당구를 치며 각자의 공간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서로 위로 삼곤 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어쩐지 반(半)백수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듯해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회적 활동(?)이란 걸 하긴 했다. 7월 초에는 장흥에 계시는 한 원로작가님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7월 말에는 세종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는 딱히 이벤트랄 게 없었다. 어찌 됐든 소설을 쓰기 위해 입주했으니 모쪼록 심심한 날들만 이어지길 바랐다.
비가 그친 어느 날 오전이었다. 객실 창밖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연두색 사마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안경을 벗고 물끄러미 사마귀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창을 톡톡 두드렸다. 화답이라도 하듯 녀석은 낫처럼 생긴 앞다리를 치켜들고 역삼각형 머리를 긁적였다. 며칠 전부터 앞머리가 눈을 찌르기 시작했던 터라 면도기를 들고 거울 앞에 섰다. 나름 정성 들여 잘랐는데 밥그릇을 뒤집어놓은 것처럼 앞머리가 반듯했다. 머리카락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린 후 슈트 케이스가 가지런히 쌓여 있는 프런트 앞을 지나 호텔을 나서자마자 발걸음이 묶였다.
횡단보도 앞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관광객이 뭉쳐 있었다. 히잡을 쓴 여인이 아이스크림이 묻은 아이의 입가를 닦아주는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는데 날이 선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저게 무슨 색이에요?”
중년 남자가 신호등을 가리키며 곁에 있던 어깨가 구부정한 노부인을 향해 소리치는 중이었다. 노부인은 남자를 비스듬히 올려다보며 수줍은 듯 보얀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웃지만 마시고요. 무슨 색인지 말씀해 보시라고요.”
노부인은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두 손을 말고선 남자의 귓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남자는 손등으로 구레나룻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선 한숨을 토해냈다.
“저기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면 건너야 하는 거예요. 아셨죠?”
노부인은 빙그레 웃으며 남자의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남자의 퀭한 두 눈에 우주만 한 불안이 서려 있는 듯했다. 히잡을 쓴 여인은 아이의 손을 잡은 채, 중년 남자는 노부인의 손을 잡고선 횡단보도를 건넜고, 그들은 이내 인파에 묻혔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지? 아니, 무슨 생각에 거리로 나온 거지? 어지간히도 심심했던가 보다. 애꿎은 사마귀 탓을 하다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앞머리를 잘랐어.”
“어디에서?”
“혼자서.”
“한번 봐.”
나는 영상전화 버튼을 눌렀다. 아내는 풋, 웃음을 터뜨렸다.
“꼭 바가지를 쓴 거 같네. 조만간 머리 자르러 가자. 근데 글은 잘 써져?”
“응. 무지.”
거짓말이다.
전기밥솥과 돌멩이에 대해 떠들어대다가 문득 나도 아내처럼 동그란 귀를 갖고 싶다는 바람이 든다.
“어머니와 함께 명동에 왔었더라.”
오래전 어머니와 함께 갔던 설렁탕집과 백화점에 찾았던 일들을 아내에게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어머니가 우리와 작별 인사를 하기까지 보름도 채 남지 않았던 어느 봄날, 명동성당에서 묵주를 샀던 일도.
그날 오후, 아내는 쇼핑백을 들고 명동에 왔다. 쇼핑백엔 내가 부탁한 반바지와 책이 들어 있었다.
“혹시 그날 기억나?”
아내는 갸우뚱 나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아무런 계획 없이 아내와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명동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아내의 에코백에 휴대폰과 지갑을 넣고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명동 거리를 산책하다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아내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어? 금방 아내를 찾을 수 있을 거란 바람과 달리 한참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결국 주저앉아 버렸다. 별수 있나. 버스로 40~50분 거리인 집까지 걸어서 돌아와야 했다. 이야기를 듣고선 아내는 기억난다며 깔깔거렸다.
우리는 그날 마치지 못한 데이트를 했다. 함께 칼국수를 먹은 후 손을 꼭 붙잡고 명동을 거닐며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함께할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저물 무렵 아내를 버스정류장에 바래다주고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호텔 옆 골목 초입에 두 명의 관광객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다가오길 기다렸다는 듯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한 장, 또 한 장 사진을 찍어 주고선 그들이 떠난 자리에 서서 골목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대체 왜 여기에서 사진을 찍는 거지?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이방인의 눈에는 보이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아내에게 호텔 옆 골목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네, 생각하다가 무탈한 오늘 하루에 마냥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훗날 명동을 다시 찾을 때 우리의 지금을 다시 기억해낼 수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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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 일기〉는 문학 레지던시에 머문 작가들의 에세이입니다. 입주 기간 동안의 하루와 작업 과정,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한 감각과 생각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작품 너머 창작의 현장과 작가의 내면을 함께 전합니다.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독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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