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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신간 이야기] 한국의 근현대사와 어우러져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김만수 씨의 인생

  • 작성일 2014-09-20


[2014년 신춘문예 당선자들과 함께하는
함께 읽는 신간 이야기]



한국의 근현대사와 어우러져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김만수 씨의 인생

- 성석제의 『투명인간』


이서수(소설가)



book-5나신의 남자가 뒤돌아서 있다. 비쩍 마른 몸통과 비대칭의 두 다리로 위태로운 듯 강인하게 버티며. 두 손은 얼굴과 목을 감싸 쥐고 있다. 표지 속의 남자는 아마도 울고 있거나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어기적거리며 금방이라도 앞으로 걸어 나갈 것 같다가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금세 주저앉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자의 이름은 김만수. 그는 투명인간이다.
투명인간. 이 단어를 들으면 우리의 금기된 욕망은 꿈틀거린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디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을 것이고, 갖고 싶은 물건을 들키지 않고 훔칠 수도 있을 것이며, 미운 사람의 뒤통수도 몇 대 때릴 수 있다. 어떤 일에 그러한 능력을 쓰는가에 따라서 악당도 될 수 있고, 영웅도 될 수 있다.
악당 혹은 영웅. 이러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 책을 펼쳐 든 사람은 아마도 놀랄 것이다. 투명인간 김만수는 악당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웅도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서민, 그것도 ‘힘 없는 서민’이다. 도대체 왜 그러한 능력을 갖고도 힘 없는 서민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그 이유를 알아내려면 먼저 그가 살아온 삶부터 살펴봐야 한다.
“뭔 아가 대가리만 절구통겉이 크고 팔다리는 쇠꼬챙이겉이 빌빌 돌아가고 저카나. 저기 지대로 커서 인간이 될랑가 걱정이구마.” (p.12)
산골마을 개운리에서 태어난 김만수는 처음부터 영웅이나 악당이 될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거리감이 좀 좁혀진다. 어쨌거나 그는 영웅이 될 만한 잘난 외모를 가진 인물은 아닌 거다. 게다가 머리도 좀 나쁘다고 한다. 그의 조부모는 그런 만수를 애틋하게 여기지만 걱정과 달리 만수는 착하고 바른 아이로 자란다. 지나치게 착한 탓에 동생인 석수에게도 수시로 무시를 당할 정도이니 우리는 그가 언제쯤 투명인간으로 변신해 동생을 혼쭐내줄지 내심 궁금해진다. 그러한 기대로 책장을 넘기는데, 뭔가 좀 수상하다. 만수가 일인칭 화자가 되어 버르장머리 없는 동생 석수에게 얼마나 분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착하고 머리까지 좋은 맏형 백수를 얼마나 존경하는지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없다. 모두 만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만수가 화자가 되어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페이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게 어찌된 걸까.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갖고 언젠가 만수가 나타나 진심을 털어놓길 바라며 책장을 넘겨본다. 설마 모두가 말하듯 이렇게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건 아니겠지, 하며.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만수를 제외한 만수 주변인들의 목소리만 연달아 이어진다. 그런데 그 사연들이 참 딱하다. 맏형 백수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하지만 산골 출신인 그가 감당하기엔 학비의 벽이 너무 높다. 그는 피까지 뽑아서 팔다가 결국 월남전에 참전하지만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으로 허무하게 죽고 만다. 슬픔에 잠겨 있던 가족들은 만수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비극은 또다시 그들을 덮친다. 이번엔 연탄가스 중독 사고다. 만수는 큰누나 금희와 작은누나 명희를 연달아 업고 뛰어 병원에 도착하지만 비어 있는 고압 산소 탱크는 하나뿐이다. 의사는 만수를 재촉한다.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빨리 정하라니까. 지금 너희 뒤에도 사람들 줄섰어.” (p.180)
당시에 연탄가스 중독 사고는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명의 누나 중 한 명만 선택해야 했던 만수의 고통과 비애는 연탄가스 중독을 가난한 자의 비극적이고도 일상적인 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선택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제로 목록을 만들어 본다면 단연코 맨 첫줄에 기재될 딜레마인 것이다. 가족 중 누구의 목숨을 선택할 것인가.
만수는 그러한 상처를 견디고 다시 살아간다. 살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책임져야 할 동생 석수와 옥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학비를 벌고 생활비마저 마련해야 하는 만수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 전경으로 입대한 만수는 무장한 탈영병들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려다가 총에 맞는다. 이 장면을 목격한 식당 주인은 의문에 휩싸인다.
“오래된 가로등이 꺼졌다 켜졌다 하는 것처럼 손은 보였다 말았다 했다.” (p. 212)
드디어 투명인간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처음부터 만수가 주인공인 것은 눈치 채고 있었지만 도무지 투명인간의 특질이 드러나지 않고 있던 차에 만수 주변인들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느라 그만 그가 투명인간인 것도 잊고 있었다. 이제부터 만수의 인생은 달라지려나? 하지만 기대와 달리 착실한 만수는 여전히 일만 한다. 제대 후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자동차부품회사의 관리직으로 입사한 것이다. 그의 동료들은 노조를 설립하려 하고, 회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한다. 만수의 동료는 만수에게 현실에 눈을 뜨라고 말한다.
“올림픽하고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뒤부터 경기장 짓네 도로 공사 하네 하면서 얼마나 생돈을 썼어?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이지. 호텔이나 건설회사 가지고 있는 재벌들 아가리로 안 써도 될 세금이 다 들어갔지. 재벌들은 그 돈을 노동자들한테 나눠준 게 아니고 저희한테 일감 몰아준 권력자들한테 돈을 도로 갖다 바쳤고. 군부독재 후계자들은 그 망할 놈의 올림픽을 업적으로 해가지고 역사적인 반민주, 반민족의 중대 범죄에서 축재 같은 파렴치한 범죄까지 무슨 죄든 다 빠져나가고 있어요. 심지어 정권을 더 연장해서 평생을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게 지금 현실이야.” (p.250)
훗날 회사가 망하자 만수를 비롯한 “최후의 칠인”은 회사를 지키기 위해 채권단에 대항한다. 하지만 소송에 패함으로써 막대한 빚만 지고 만수는 그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스무 시간 가까이 노동에 몰두한다. 대공과에 끌려갔다가 고문을 당한 뒤 자취를 감춘 석수의 아들 태석을 자신의 아들로, 최후의 칠인 중 한 명이었던 송진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하지만 그들의 삶은 점점 더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든다. 도무지 살 길이 보이지 않아 갑갑하다. 어쩌면 만수는 초능력자 투명인간이 아니라, 노동과 고뇌로 닳고 닳아 투명해질 때까지 무지하게 고생을 한다는 의미에서 투명인간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투명인간이 된 형제가 마주 서서 대화를 나누는 마지막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다. 만수 주변인들의 진술을 통해 만수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 우리는 만수가 왜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만수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도 무슨 이유로 투명인간이 된 건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오래도록 신용불량자였고 그때 은행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는 투명인간이었다.” (p.363)
석수는 오랜만에 만난 형을 붙잡고 많은 것을 묻는다. 그 모든 질문 중에서도 왜 그렇게 가족에게 집착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만수의 답변은 그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나의 뿌리이고 울타리이고 자랑이다. …내가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기쁨이 내 영혼을 가득 채우며 차오른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느낌, 개인의 벽을 넘어 존재가 뒤섞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진짜 나다.” (p.366)
마지막 장에서 석수는 그토록 무시했던 만수를 ‘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만수의 대답은 이어지지 않고 이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결국 이 책 어디에도 만수가 일인칭 화자가 되어 자신의 심경을 서술하는 페이지는 없다. 모두의 입을 빌려 만수는 모자이크 그림처럼 그려질 뿐이다. 완성된 그림 속에서 그는 놀랍게도 환하게 웃고 있다.
어쩌면 작가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어우러져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만수의 인생을 그저 관조만 할 게 아니라, 펜을 들고 만수의 인생을 이야기해 달라고. 이 책 어디에도 없는 만수의 시선으로 말이다.
악당 혹은 영웅. 이 책을 읽고 나면 투명인간을 바라보는 판에 박힌 시선이 달라진다. 오로지 가족을 위한 삶을 꾸려나가는 김만수의 우직함에 혀를 내두르다가도 그런 올곧은 마음도 그를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는 없었다는 사실에 이 사회의 부조리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게 된다.
무엇이 그를 투명인간으로 몰고 갔나. 무엇이 그를 투명인간이 되어도 “사람 사는 노릇” 하고 살게 만들었나.




이서수(소설가)


단국대 법학과졸.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으로 등단



《글틴 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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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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