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글틴기자 안동방문기] 이육사 탄생 110주년, 이육사문학관 개관 10주년 기념 이위발 사무국장 인터뷰

  • 작성일 2014-12-01


[글틴기자 안동방문기]



이육사 탄생 110주년 기념,
이육사문학관 이위발 사무국장 인터뷰




글틴기자단 / 김유진, 김선정




‘안동’ 하면 생각나는 게 무얼까? 하회마을, 도산 서원, 안동찜닭 등등. 현대시를 즐겨 읽은 글틴 중에는, 이육사문학관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늘 교과서로만 만났던 시인, 이육사. 그가 태어난 곳이 안동이다. 올해 탄생 110주년을 맞았다. 더불어 시인을 알리는 이육사문학관도 개관 10주년을 맞이했다. 안동이 국내에서 제일 면적이 넓은 도시라 안동역에서 이육사문학관까지는 다소 멀긴 하지만, 안동역에 내렸을 때 꼭 먼저 경유할 곳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버스가 잘 닿지 않으므로 배차 시간은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그곳에 닿으면 조금 낯설지만, 한결 인간적인 작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교과서만으로는 알 수 없던 시인 이육사, 그를 더 깊이 만나는 문학관이다.
지난 10월 글틴문학특!기자단 정기모임에서는 이육사 탄생 110주년과 이육사문학관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이육사문학관의 사무국장인 이위발 시인을 만나, 이육사문학관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육사-1


◆ 글틴기자단(김유진, 김선정) : 올해가 이육사 문학관 개관 10주년인데요. 이위발 사무국장님은 처음부터 이곳에서 일하셨는지요.


◆ 이위발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 : 처음부터는 아니에요. 2004년 10월 1일에 안동에 내려왔어요. 이육사문학관은 2004년 7월 30일 개관했는데, 문학관 개관 뒤에는 4년 동안 안동시 공무원이 파견 나와서 문학관을 운영했어요. 그때는 해설사나 학예연구사도 없었어요. 문학관 왔던 사람들이 질문해도 답변을 못 듣고 가니, 안동 시에 민원도 들어오고 시 게시판에 항의 글도 올라왔어요. 시 입장에선 건물은 잘 지어놓고 운영이 잘 안 되니깐, (사)이육사추모사업회를 설립해서 전문가들에게 민간 위탁을 하게 돼요.
개관 이전에도 ‘이육사연구회’(1988년 발족)가 활동했어요. 이육사를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이육사 정신을 알렸죠. 문학 강연, 시 낭송 등 여러 가지 행사를 해오다가 1994년에 ‘이육사기념사업회’가 발족되고 안동 문화인들이 뭉쳐서 10년 정도 활동했어요. 2004년 이육사문학관을 개관하고 난 뒤, 민간 위탁을 하려다 보니 명칭을 정해야 하는데, 기념사업회가 이미 활동을 하다 중단된 상태여서 똑같은 이름을 쓸 수 없으니 기념사업회에서 같이 활동했던 분들이 이육사추모사업회로 넘어와 새롭게 발족이 된 거예요. 2008년 12월 1일에 이육사문학관이 민간 위탁으로 안동 시와 협약을 맺고, 문학관을 사단법인 이육사추모사업회가 운영을 하게 된 거죠. 운영에 필요한 공공운영비와 인건비 등은 안동 시에서 지원해줘요. 그렇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죠.


◆ 글틴기자단 : 이위발 사무국장님은 문학관과는 어떤 인연으로 일을 하게 되셨나요?


◆ 이위발 : 2004년 7월에 이육사문학관 개관식 때 와서 보고는 서울로 갔어요. 안동에 있는 안상학 시인 만나서 안동에 내려오겠다는 이야길 하고, 몇 달 뒤 10월 1일 정식으로 안동으로 내려오죠. 그 전에는 어떤 역할을 했느냐 하면, 제가 대학원 논술 자격증이 있어서 논술 학원에 있었는데, 매일 근무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육사 문학관을 해설해주는 일도 했어요. 권정생 생가는 안상학 시인이 해설해주고, 이육사 파트는 제가 맡았죠. 마이크 잡고 버스 안에서 해설하고, ‘광야’의 시상지(地)인 윷판대나 ‘절정’의 시상지(地)인 칼선대(갈선대)에 직접 데리고 가서 설명해주고 그랬어요. 그때도 ‘이 일(이육사문학관 일)을 내가 하면 잘할 거 같은데’ 싶었죠. (웃음)
아까 얘기했듯이 저도 우연찮게 이육사기념사업회에서 활동했던 분한테 갑자기 의뢰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해보겠느냐’도 아니었고, 관계자들과 만나서 같이 어디를 갔어요. 거기가 ‘김유정문학촌’이에요. 육사 선생님의 따님인 이옥비 여사도 함께 가셨고, 총 5명이서 김유정문학촌을 벤치마킹하러 간 거죠. 전상국 촌장님 뵙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고, 안동에 내려와 곧바로 일을 맡았어요. 총회 시작해서 이사들 선출하고 (사)이육사추모사업회 조직이 내부적으로 갖춰지면서 2008년 12월 1일부터 민간 위탁을 받아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죠. 그 전에는 공무원 평직원 한 명이 일을 맡고 있었고, 청원 경찰이 있었어요. 1년에 예산 2억 5천을 썼는데 민간 위탁 후로는 운영비를 1억 5천 썼어요. 시에서 비용 절감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죠.


◆ 글틴기자단 : 김유정문학촌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평소에도 다른 문학관과 교류가 있나요?


◆ 이위발 : 예전에는 교류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2004년 문학관협회가 조직된 이후로 지금은 문학관 교류가 활발하죠. 그리고 저희처럼 민간 위탁한 문학관이 몇 군데 안 돼요. 민간위탁으로는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문학관으로 문의가 많이 들어와요. 조직 체계부터 인건비까지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자문을 많이 받아요. 제가 알기로는 지금 문학관협회에 76개 관 정도 등록이 돼 있어요. 등록이 안 된 것까지 합치면, 100개 관 정도 될 거예요. 지금 기획하고 있는 데도 많고요.
제 경우에는, 경북대학교에서 프랑스의 문학관 관련 세미나를 한 적이 있어요. 프랑스의 문학관들의 사례를 얘기하고 이육사문학관 사례와 대비해서 토론자로 나가기도 했어요.


◆ 글틴기자단 : 프랑스와의 차이점을 말씀해주세요.


◆ 이위발 : 예를 들면 프랑스의 문학관은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아와요. 우리는 건물만 지어놓고 관람료를 받아요. 관람료 안 받는 데에도 전시 위주로 보여주죠. 프랑스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길가에서 ‘여기는 어느 작가가 꽃을 심었던 장소다’라고 얘기해요. 그런 것도 스토리가 다 되는 거예요. 큰 건물이 없더라도 사소한 것이라도 고스란히 보존한 상태예요. 큰 건물 안에 전시 해놓고 해설을 하는 게 아니라 다니면서 스토리를 전해 주려고 하죠. 우리도 스토리를 만들어야 해요.
요즘 다들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 하는데 문학 쪽도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이야기를 입힐 수 있어요. 나쁜 건 아니에요. 스토리 입히는 게 황당무계한 게 아니니까요. 그런 쪽으로 얼마든지 작품을 가지고 만들 수 있거든요. 작품 한 편을 가지고서도 ‘이 작가가 살아 있을 땐 이랬습니다’ 하면서 거기에 이야기도 입힐 수 있어요. 이야깃거리들이 많아야 돼요.
우리는 학교에서 문학을 배울 때 흔히 ‘시험공부 때문에’, ‘학교 교과서에 나오니까’ 문학을 공부하죠. 학교에서는 정형화된 수업을 해요. 시도 주입식으로 가르치다 보니깐, 육사의 인간적인 모습은 전달이 안 돼요. 문학관에 오면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얘기를 들을 수 있어요.
이육사문학관에 오는 관람객들에게는 이육사 시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요. 문학 관람객으로 오는 학생들에게 해설할 때 제일 역점을 두는 것도 그런 거예요. 인물을 배우면 아이들이 인간적인 모습도 더 접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는 정답을 두고 시를 가르치잖아요. 예를 들어 ‘청포도’ 시 전문을 실어놓고 ‘내 고장’이 의미하는 것은 뭐야?’ 그러면 ‘조국’이 정답이고, ‘청포도’는 ‘백성’이에요. 그게 정답이다 보니 ‘먼 데’는 ‘조국 광복’이 정답이에요. 그 외의 다른 대답은 틀린 거예요.
그런데 이육사의 고향 원촌(遠村)에 관한 마을지가 1962년에 발견됐는데, 그 조그마한 책자 마을지에 지명 유래와 풍습도 나와 있어요. 거기 보면 원촌 마을이 조선 초창기에 ‘마계촌(馬繫村)’, ‘원원대(原原臺)’였어요. 마계촌 살던 사람들은 ‘말 마(馬)’, ‘맬 계(繫)’를 써서 ‘말 맨 데’ 산다고 했고, ‘멀 원(遠)’, ‘멀 원(遠)’, ‘곳곳 대(臺)’를 써서 ‘원원대’라고도 했죠. 마을이 머니깐, 멀다는 말이 두 개 붙은 것이죠. 정말 멀었어요.
지금 국학진흥원이 있는 곳이 ‘서부리’라는 마을인데, 예전에 거기까지만 버스가 왔어요. 원촌 마을이 진성이씨 집성촌이었기 때문에 종갓집에서 안동 장날에 장보러 갔다가 제사 음식 사갖고 오면 서부리에 내려요. 짐을 갖고 가지 못하니깐 놔두고 원촌까지 들어와서 구루마 끌고 다시 서부리로 와서 장본 것을 싣고 가죠. 그럼 한나절 걸렸어요. 그만큼 멀었어요. 그래서 ‘멀 원 자’를 썼어요. ‘원원대’가 바뀐 게 ‘원촌동’이에요.
원촌동 살던 사람들은 그곳을 ‘먼 데’ 라고 불렀대요. ‘청포도’는 이육사가 고향을 노래한 대표적인 서정시인데, ‘먼 데’를 이중적인 뜻으로 썼더라도 조국광복만 정답은 아닌 거죠. ‘청포도’로 예를 들면 그런 거예요. 시는 다양하게 해석되는 게 맞아요.
또 한 예를 들면 중견 시인 최승호 시인의 ‘북어’, ‘대설주의보’ 같은 시가 수능 모의고사에 출제되어 나온다니까 최승호 시인이 문제집을 구해서 풀어봤대요. 직접 풀었는데, 한 문제도 못 맞혔대요. 거기에 문제 중 하나가 ‘최승호 시인은 어느 파(사조)에 속합니까?’라고 했대요. 모든 시인은 사조에 입각해 시를 쓰지 않아요. 다 쓰면 평론가가 해석할 뿐이죠. 주입식으로 교육하는 게 잘못된 것이죠. 시인이 무슨 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건, 시를 읽고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거예요. 다른 교육은 암기하는 것이지만, 예술은 사고를 확장하는 거니까요.
‘광야’를 예로 들면, ‘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에서 산맥이 한자어인데, ‘뫼 산(山)’, ‘줄기 맥(脈)’ 자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 ‘뫼 산(山)’, ‘마주볼 맥(?)’이 맞아요. 둘이 같은 글자이지만, 문학관에는 원전 그대로 ‘마주볼 맥(?)’으로 ‘광야’ 시를 동판으로 새겨놓았어요. ‘마주볼 맥’이어야 ‘연모(戀慕)’가 나올 때 맞는 거예요. 이육사는 한자 시나 한자 활용에 밝았고, 7살 때 사서오경을 다 떼었어요. 중국어에 능통해서 중국어판 성경을 보고 그랬다니까요. 잘못된 것도 바꾸려고 하는데 힘들죠. 국어 선생님들도 이런 현실을 알지만 잘 안 고쳐져요. 교육부에서 뭐 하나 하려고 해도 정치와 연결돼 있어서 잘 안 고쳐지죠. 오류를 맞는 걸로 생각하고 배우는 사람과 그것을 정답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도 이런 오류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방문객 올 때는 꼭 확인시켜주죠.


◆ 글틴기자단 : 또 궁금한 게 있어요. 이육사 시인이 감옥에 있었을 때 수인번호를 따서 이름을 썼다고 해서 믿었는데요. 사전 취재를 해보니깐 원래 ‘죽일 육(戮)’ 자를 쓰다가 다른 글자로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죄수번호 264’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 이위발 : 이육사 선생님이 처음에 감옥에 가신 게 ‘장진홍 의거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요. 당시 일본은행인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져 터트린 사건이에요. 거기에 연루가 됐어요. 이육사 선생님하고 형 이원기, 동생 이원일, 이원조까지 대구 교도소에 갔어요. 이원조 선생님은 혐의 없다 풀려나고 육사 선생님은 264번 달고 2년 6~7개월 있었어요. 그때 수인 번호가 264번이었어요.
출소해서 글을 쓸 때, 맨 처음 대구라고 한문을 쓰고 그 뒤에 二六四 썼어요(大邱二六四). 사회 평문은 ‘이활(李活)’로 쓰고, 시를 발표할 때는 ‘陸史’ 아니면 ‘李陸史’로 했어요. 처음에 ‘죽일 육(戮)’ 자를 썼는데, 그건 너무 강하다고 들어서 ‘육(陸)’ 자로 바꾼 것이죠. 역사를 되돌리고 싶어서 그런 건데, 죽이는 것과 되돌리는 게 의미는 다르지만 광복의 의미는 있으니까요. 시대가 일제강점기이니, 시 밑바탕에도 독립정신이 깔려 있어요. 육사 선생님은 호를 지을 때 죽일 육, 되돌릴 육, 수인번호 모두 한문으로 만든 거죠.
그런데 수인번호가 64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잘못된 정보예요. 오류가 오류를 생산하다 보니까 잘못된 텍스트가 돌고 있어요.


◆ 글틴기자단 : 문학관에 이육사 선생님의 따님이 사신다고 들었는데요. 지금도 문학관과 관계돼 있나요?


◆ 이위발 : 육사 선생님이 17세까지 고향에 사셨어요. 17세 가을에 가족들이 대구(남산동 662번지)로 이사를 갔는데, 18세에 영천의 안일양 여사하고 혼인을 해서 첫째 아들을 낳았어요. ‘이동윤(李東胤)’으로 호적에 올라 있는데, 2세 때 홍역으로 사망했어요. 그 뒤에 대구에서 서울로 이사 가서 두 번째 딸을 낳았는데 100일 만에 또 홍역으로 잃어서 이름은 호적에 안 올렸죠. 현재 유일한 혈육이신 이옥비(李沃非) 여사가 세 번째 따님이에요. 고명딸이라고 표기하거나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 쓰거나 말하는 겁니다. 이옥비 여사는 1남 2녀의 막내딸이죠. 지금은 문학관에 상임이사로 계십니다. 문학관 프로그램 중에 ‘나의 아버지 육사’가 있어요. 따님이 10~15분 강의를 해줘요. 삼촌이나 어머니에게 들었던 얘기 중에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죠.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완전히 달라요. 육사 선생님의 인간적인 모습이 담겨 있는 얘기를 주로 해주십니다.
문학관에 따님이 계시니, 오시는 분들도 사진이라도 한 장 더 찍고 사인 받고 싶어해요. 문학관에선 상징적인 존재예요. 따님이 이곳에 없다면 이렇게까지 운영되지 못했을 거예요. 중요한 역할을 하시고 계시죠.


◆ 글틴기자단 :또 이육사 문학관이 다른 문학관과의 차이점이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이위발 : 행사 부분이에요. 문학관 행사를 초창기에는 3박 4일 한 번에 몰아서 했어요. 해보니 뭐가 문제였느냐 하면, 보조금 받아서 하는 건데 개막식 때 가수 부르고 무대장치 하다 보면 거기에 돈을 다 쓰는 거예요. 굉장히 돈이 많이 나가고 실제적 행사는 안 되겠다 싶어서, 봄?여름?가을?겨울 나눠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그게 완전히 정착됐어요. 육사 선생님이 태어난 4월 4일 즈음 봄에는 학술대회와 낭독회를 같이 하고, 여름에는 이육사문학학교, 청포도사생대회, 육사문학상시상식 등 다양하게 해요. 가을에는 육사백일장, 시낭송대회, 시노래공연 등을 해요. 겨울에는 안동 지역 문인들을 초청해서 독자와의 만남을 가져요. 이육사문학관이 지역 문화 공간의 사랑방이기 때문이에요.
예산을 더 받는 게 아니라 나눠서 실질적인 행사를 하는 것이죠. 이젠 고정 팬들이 생기고, 대구에서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고, 외지에서도 많이 보러 옵니다. 그런 부분은 다른 문학관과 차별화가 돼 있어요.


◆ 글틴기자단 : 행사에 문학관계자가 아닌, 다른 방문객들도 많이 오나요?


◆ 이위발 : 비문학인들도 많이 옵니다. 문학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예를 들면 시노래 공연은 문학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올 수 있어요. 또 ‘청포도사생대회’는 초등학교나 유치원 대상 대회라서, 문학과 관련된 사람만은 아닌 거죠.
이육사문학관에 근무하면서 제일 감사한 게, 육사 선생님은 독립운동과 문학을 같이 하셨다는 거죠. 이육사 문학관이 현충시설로 돼 있어서 국가보훈처의 보조금을 받아요.
그래서 광복절 행사도 하는데, 그때는 지역의 12개 초, 중등학교 학생들 대상으로 나라사랑글짓기대회를 해요. 지역에 있는 학생들을 위한 문화 행사가 없어서 글짓기 대회를 시작한 거예요. 문학관이 지역민들을 배척하지 않고 안고 가야 하는데, 특히 학생들이 배우고 느끼는 게 중요하거든요. 문학관을 토대로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키는 글짓기 외에도 계획 잡고 있는 것들이 있어요. 올해 3회째 재능나눔 시낭송 대회도 하고 있어요. 안동의 특수학교인 진명학교 지체장애자 아이들이 참여해서 시낭송 대회를 해요. 지역의 시낭송 단체인 ‘문낭회’ 회원들이 참여해서 지체장애 학생들에게 시를 일대일로 가르쳐서 낭송을 하게 해요. 재능나눔 대회는 올해도 11월 19날 진명학교에서 열려요. 선정된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낭송하고, 헤어질 땐 울고 그래요. 애들이 감정 기복이 심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니깐, 나중엔 안 떨어지고 싶은 거죠.
문학관에 앉아서 관람 손님만 받는 게 아니라, 그렇게 직접 찾아가서 해요. ‘찾아가는 문학관’ 일환으로 문학관 파견 작가들이 지체장애인들 찾아가서 책 읽어주고 같이 낭독도 했어요. 앞으로는 지역 노인정을 돌면서 잠깐 동안 책도 읽어주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순회 행사들을 할 계획입니다.


◆ 글틴기자단 : 지난가을에 ‘연변이육사문학제’도 하셨던데요.


◆ 이위발 : 이번이 4회째예요. 지난달 9월 18일부터 22일까지 갔다 왔죠. 지금은 연변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이틀은 연변에서 하고 그 다음 날은 상 받은 사람들하고 문학 및 문화 유적 탐방하는 일정이 있어요. 하루는 이육사 시인이 독립운동을 했던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가요.
육사 선생님은 북경 일본 총영사관 감옥소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당시 돌아가신 감옥소가 그대로 있어요. 군인 가족들이 살고 있었어요. 북경 시내 중심에 있는데, 언제 허물어질지 몰라요. 남의 땅이라 표지석도 못 세워요. 중국 정부의 허락을 못 얻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거기는 당 지시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 시스템하고 달라요. 연변작가협회의 회장, 부주석, 사무국장이 모두 공무원이에요. 우리 협회는 민간단체인데, 거긴 당 소속의 조직이에요. 북경에 갔을 때 우리가 ‘우야면 좋노?’ 그랬어요. 나라와 나라의 협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해야 하는데 쉽지 않죠. 감옥소 건물 밑에 조그만 창살 구멍이 있는데, 안으로 들여다보니 옛날 모습 그대로 있어요. 녹이 슬은 수갑이 보여요. 지하에는 사람이 안 살고, 위에서만 살고 있어요. 거기 탐방 가서, 육사 선생 따님은 많이 울었죠. 작년에 처음 가 본 거예요.
올해는 남경에 갔어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가 있던 곳이에요. 남경 시내에서 떨어진 야산인데요. 산 밑의 동네가 산하촌(山下村)인데요, 정상에서 보면 남경 시내가 다 보여요. 총을 겨누고 시내를 보고 감시하던 벙커가 아직 그대로 있어요. 안에 들어가면 시내 방향으로 총구를 놓고 주시하던 창틀도 그대로 있어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가 3기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육사 선생님이 1기 졸업생이에요. 거기선 변장술, 폭파술, 사격술 외에 인문철학도 가르쳐줬어요. 거기 졸업할 때 육사 선생님이 연극을 무대에 올렸어요. 그 학교 교장이 의열단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이에요.
이육사가 의열단원이 맞다, 아니다 분분한데, 육사 선생님이 일본 경찰 조사 과정에서는 의열단원이 아니다 했어요.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갔을 때 조사한 부분만 남은 거예요. 육사 선생님이 의열단이라고 한 게 김원봉 단장이에요. 의열단이 아닌 사람을 가르치겠어요? 이육사 처남인 안병철도 졸업생이었는데 국내 들어와서 안병철이 잡히면서 고문에 의해서 단원 이름을 다 불었어요. 그 일로 육사 선생 사모님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제가 생각할 땐 의열단원이 확실해요.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변 박물관에 가보면 육사 선생 소개에 정확하게 의열단원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어요. 남경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 학교 터에 가서 묵념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죠.
내년에는 상해에 가요. 상해는 육사 선생님에게 중요한 장소예요. 거기서 루쉰을 만났거든요. 정신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루쉰이 죽고 난 뒤 추도문을 조선일보에 3회 걸쳐 연재했어요. 굉장히 마음속으로 흠모했던 분인데, 그때 루쉰을 만났던 장소가 아직 상해에 그대로 있어요. 쑨원의 비서 출신이자 중국사회과학원 부주석인 양싱포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갔었는데, 거기서 만난 거예요. 루쉰도 문상을 왔던 거죠.
내년에는 그곳과 임시정부를 돌아볼 계획이에요. 연변 이육사문학제는 주 핵심이 공모전이에요. 조선족 대학생만 참가하는 게 아니라 비조선족, 한족 대학생이 다니는 한국어과 학생 등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해요. 이번에 대상 받은 대학생은 정말 잘 썼어요. 그쪽 지역에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나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효과가 커요. 아이들에게 상을 조금 주는 게 아니라 많이 줘요. 한 50명씩 줘요. 다들 좋아해요. 이번에도 연변대학에서 행사를 했는데 그 외 시낭송, 학술대회도 하고, 상 받은 학생들과 문학탐방도 하죠.


◆ 글틴기자단 : 마지막 질문이에요. 올해 이위발 사무국장님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도 출간됐는데요. 다음 책은 언제 나오나요?


◆ 이위발 : 지금도 시를 쓰고 있고, 발표도 하고 있어요. 두 번째 시집이 내년 초에 나올 거예요. 등단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 첫 시집만 상재되어 있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요. 다작 스타일이 아니라서 뜸을 많이 들이죠. 사실 게을러서 그렇다고 하는 게 편할 것 같네요. (웃음)



이번 인터뷰는 이위발 시인의 자택에서 진행했다. 대화 후 글틴 기자들은 사인이 들어간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을 받았고, 여담을 나누다 안동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까지도 시인이 직접 배웅해줬다.


글틴 기자단(김유진, 김선정)은 안동 취재 전, 세 개의 일정을 두고 고민했다. 권정생 문학관을 가느냐, 이육사 문학관을 가느냐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다. 게다가 안상학 시인이 다른 시인들과 안동 소풍에 나섰다는 소식을 건너듣고, 그 세 자리 중 어디라도 문의를 하고 가야겠다던 찰나, 이육사문학관에 먼저 연락이 닿았고 이위발 사무국장의 해설을 직접 들을 수 있단 얘기를 들었다. 10월 첫째 주말 바로 안동으로 향했다. 하루 안에 이곳저곳을 다 도는 것은 무리인지라, 최종으로 이육사 문학관에 가서 이위발 시인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사전 스케줄을 짰다. 중간에 인터뷰 장소가 바뀌면서 이육사문학관 방문은 놓쳤으나 안동에 거주 중인 글틴기자가 있기에 후속 취재는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
참고로, 문학특!기자단 1기로 안동에 거주 중인 김유진 기자가 짰던 하루 일정들과 (아직 취재하지 못했으나) 안동을 소재로 준비했던 글틴기자단 아이템들도 함께 덧붙인다.



[김유진 기자가 짠, 안동기행 하루 취재 일정 공개]


1. 고전 관련, 문학 취재 여행기를 쓰려면?
이육사문학관 → 한국 국학진흥원 일정.
이육사 문학관 취재 뒤 국학진흥원에서 국학이나 중세문학, 목판본 관련 아이템을 찾아 취재한다. 단 장소들이 안동 시내에서 꽤 멀다. 버스타고 2~30분, 아무래도 시골이라 버스가 몇 대 없어서 시간을 잘 잡아야 한다.


2. 문학과 관광을 한꺼번에 하려면?
권정생문학관 →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 벽화마을 경로.
안동찜닭도 먹고, 미슐랭가이드에서 별 세 개 받았다고 알려진 ‘맘모스 제과’에도 가서 빵도 먹는다. 복합적인 기행 느낌으로 안동 시내 위주로 돌아다닌다.


3. 요즘 새로운 안동의 관광지는?
안동에서 엄청 공들여 만드는 온뜨레피움(http://www.ontrepieum.com/)을 방문한다. 온뜨레피움(허브공원, 동물농장, 각종 박물관과 민속촌)을 구경하고 월영교, 나들이길을 걷고, 시립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을 구경한다. 요즘 안동에서 투자 많이 한다고 약간 말도 많은 곳이다.



[최종 예비 아이템]

1. 김주환 안동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글틴 편집위원, 초기 글틴 창립 공로자, 김주환 교수에게 듣는 글틴의 초창기 역사
2. 안상학 시인 : 안동의 시인,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신간 발간
3. 이육사 문학관 관람 사전 신청 : 문학관 소개
4. 그 외 안동 아이템 : 권정생문학관, 이야기하는 할머니 외 안동 특색(전반적 안동 여행 소식)



[10월 4일 실제 진행 일정]


안동찜닭 거리, 탈춤국제페스티벌 방문 → 이위발 시인(이육사문학관 사무총장)과 안동간고등어 식사 → 이위발 시인 자택 마당과 서재에서 인터뷰


[예고] 다음 달에는 김유진, 김선정 글틴기자의 안동 방문 뒷이야기가 후속으로 연재된다. 이육사문학관 방문기를 비롯해, 안동의 문학적 아이템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육사-2



《글틴 웹진 11월호》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모색

명동 산책

[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명동 산책 도재경 몇 해 전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하던 한 학생에게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학생에게 허풍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솔직하게 답변한다는 게 고작 맥주를 마시며 놀 궁리를 한다는 거였다. 대답하고 나니 어쩐지 궁색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며 노는 게 아니라 궁리를 하는 거라고……. 궁리를 한다고? 꼴에 선생이라고 자못 젠체한 듯해서 뒤통수가 가렵다.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끄적거릴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종국엔 멍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대체 온종일 뭘 했나 자책감이 들면서도 그러한 상태야말로 창작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라고 합리화하곤 한다. 지난여름 명동에 자리한 서울프린스호텔의 ‘소설가의방’에 입주한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침구류는 새것처럼 빳빳해져 있었고, 물기 하나 없는 욕실에는 보송보송한 수건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허기질 일도 없었다. 늦잠을 자느라 곧잘 조식을 거르곤 했지만 호텔의 ‘이층서가’나 인근 식당에서 언제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라운지에는 쿠키나 주스 등 간식도 가득했다. 그랬다. 분에 겨울 정도로 호사스러운 일상에서 부끄럽게도 불철주야 온갖 공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중 하나는 전기밥솥에 관한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돌멩이에 관한 거였다. 전자는 탈고를 앞둔 장편소설의 소재였고, 후자는 곧 쓰게 될 단편소설의 글감이었다. 퍽 다행스럽게도 호텔에서의 일상은 밋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집필을 핑계로 죄다 퇴실 이후로 미루었고, 무더운 한여름에 호텔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대부분을 객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좀이 쑤실 때면 산책 삼아 호텔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호텔에서 남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 초입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는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특별할 게 없는 풍경이라 도리어 생경했다. 말없이 멍만 때리다 보면 입안이 퍼석퍼석해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몇몇 동료 작가들이 입주해 있었다. 함께 식사하고선 소화를 시킬 겸 당구를 치며 각자의 공간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서로 위로 삼곤 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어쩐지 반(半)백수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듯해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회적 활동(?)이란 걸 하긴 했다. 7월 초에는 장흥에 계시는 한 원로작가님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7월 말에는 세종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는 딱히 이벤트랄 게 없었다. 어찌 됐든 소설을 쓰기 위해 입주했으니 모쪼록 심심한 날들만 이어지길 바랐다. 비가 그친 어느 날 오전이었다. 객실 창밖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연두색 사마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안

  • 도재경
  • 2026-10-01

문장웹진 모색

506호에서 기다린 것들

[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506호에서 기다린 것들 권희진 호텔 앞에서 어떤 외국인을 보았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듯 옷을 차려입었다. 옆에는 커다란 트렁크도 있었다. 누구를 만나려는 걸까. 연인? 친구? 아니면 오래전에 한국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만났던 누군가? 나는 여러 상황을 상상했다. 산책하기 위해 나왔을 때 그 사람은 여전히 호텔 앞에 서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상대는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군, 하면서 그 사람 곁을 지나쳤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을 때도, 밤 산책을 위해 나왔을 때도 그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그때부터는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공항에 가려고 차를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숙소를 잡지 못한 걸까.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고 산책을 나왔는데 그 사람을 다시 마주쳤다. 호텔 앞에서 밤을 지낸 모양이었다. 새벽에 조금 쌀쌀했는지 트렁크에서 얇은 겉옷 하나를 꺼내 입고 눈을 감고 있었다. 선 채로 졸고 있는 그 사람을 보니 어쩐지 조금 쓸쓸해졌다. 점심쯤에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그림을 그렸다. 작은 메모지에 연필로 슥슥 소리를 내면서. 모종의 이유로 그 그림은 공개할 수 없다. 절대 못 그려서는 아니다. 지금도 이렇게 글로 그 사람을 남기고 있는 걸 보면 꽤 인상 깊은 이미지였던 것 같다. 호텔을 나온 후에도 종종 그 사람이 생각났다. 왜일까. 프린스호텔에서 내가 주로 한 일도 기다리기였다. 무언가 생각나기를 기다리고, 좋은 문장을 기다리고, 흔히 말하는 영감이라는 걸 기다렸다. 기다리는 일이 지루해지면 나는 썼다. 결국 다 지울 문장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조금 이상한 일이다. 문장이 오길 기다리면서도 계속 썼으니까. 내가 머문 506호는 트윈룸이었다. 침대 두 개를 하루씩 번갈아 썼다. 하나만 쓰면 괜히 아까운 느낌이 들어서 두 개를 다 사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침대 얘길 왜 하느냐고? 침대만큼 뭔가를 기다리기에 적합한 곳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물론 침대에서는 생각도, 사랑도, 꿈꾸는 일도 전부 가능하다. 다만 나는 침대에서 무언가를 먹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시트를 더럽히면 다음 일이 골치 아파진다. 아무튼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냥 잠만 잤다는 얘기는 아니다. 침대에 앉아서 소설도 쓰고 책도 읽었다. 정말이다. 잠깐 빨래 얘기를 해보자. 호텔에 머물면서 총 여섯 번의 세탁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니까 아마도 맞을 것이다. 로비 구석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데, 세탁과 건조가 진행되는 약 80분 동안 나는 로비의 테이블에 앉아 소설을 썼다. 정확히 말하면 뭐라도 떠오르길 기다렸다. 로비는 기다림에 어울리는 곳이니까. 프런트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직원들, 택시를 기다리는 관광객, 내 세탁이 끝나길 기다리는 투숙객, 그리고 주인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많은 트렁크들과 함께 기다렸다. 그래도 빨래는 80분이면 끝이 났다. 그러면 나도 손을 멈췄다. 그리고

  • 권희진
  • 2026-10-01

문장웹진 모색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책장지기의 기록

[문학의 곁] 책장지기의 기록 ― 문학이 동사가 되는 시간 하림 올해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일 년 동안 문학 행사를 함께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라는 이름의 행사였다.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문학 행사라는 설명과 함께 진행을 부탁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문학 관계자도 아닌 내가, 북플루언서도 아닌 내가 이런 자리를 맡아도 될까 싶었지만, 노래라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 계절 나주로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3회차까지 마치고 처음으로 쫑파티를 제안했다. 요즘은 공연이 끝나도 쫑파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이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회식 자체를 권하는 일이 괜히 민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탓도 있는 것 같다. 우려와 달리 모처럼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동안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무엇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은 성공이 누구의 공인지 서로에게 돌리며 웃고 떠들다가, 그 자리에서 이 원고를 청탁받았다. 맥주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흔쾌히 쓰겠다고 했다. 제안받은 글의 주제는 ‘문학의 곁’. 하지만 나는 문학의 ‘곁’에 있기보다는 문학의 ‘주변인’에 가깝다. 주변에 작가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을 향한 나의 애정도 친구들에 비하면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최근에는 꽤 많은 양의 책을 좋은 곳에 입양 보냈다. 작업실과 집 구석구석을 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책더미를 바라보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생긴 책장의 빈 공간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을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전자책도 많이 산다. 전자책은 공간에 대한 죄책감 없이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전자책은 특유의 손맛이 없어 정이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움이 될 팁을 하나 건네자면 서점에 들러 실물 책을 조금 만져보고 물성을 느끼고 나면 조금 나아진다. 어쨌든 언젠가는 내 스마트폰의 e북 앱이 SNS를 누르고 스크린 타임 1위에 오르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책들을 대거 정리하고 달라진 점이 또 있다. 마치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가듯 도서관을 드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 종종 오전 러닝을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동선에 구립 도서관이 포함되어 있다. 의미 없는 찬사와 자기과시로 점철된 술자리를 보낸 다음 날, 털려버린 영혼을 다시 채우고 전날의 죄의식을 씻어내 주는 곳은 천천히 달리는 하천가 산책로와 도서관이다.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서는 것이 조금 쑥스럽고 미안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얼른 들어와 책장 사이를 가만히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마르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늑한 골목 같은 서가에서 책등을 훑으며 거닐다 눈에 걸린 책 한 권을 들고 나온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이 마음에 들면 ‘득템’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는 조금 이상한 독서 습관이 있는

  • 하림
  • 2026-10-01

문장웹진 모색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 권예진
  • 2026-09-01

문장웹진 모색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 2026-09-01

문장웹진 모색

30년 만에 만난 호주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문장웹진 모색

기다리는 마음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기다리는 마음 김홍(중화문학도서관 상주작가) 내게 여행은 몇 권의 책으로 남는다. 이번 연수를 떠나는 길에도 트렁크 한켠에 책을 잔뜩 넣었다. 그중에 손이라도 한 번 닿게 되는 책이 몇 권이나 될는지 스스로도 궁금했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줄여보려고 중고로 구입한 이북리더기에도 도서관 대출 범위가 허락되는 만큼의 책을 잔뜩 다운로드했다. 결론적으로 돌아보면 이번 연수에서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은 사람들로 남았고 나머지 시간은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정리해 보자면 애나 친의 을 주의 깊게 읽었고, 루리의 을 다 읽었다. 1권을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의 책을 두 권 읽었다. 반 정도 남아 있던 을 완독하고 를 시작하고 끝냈다. 이 중 종이책은 이고 나머지는 전부 전자책이었다. 이 과정을 생각해 보면 분명히 낭비가 존재한다. 가방에 넣어 가져간 종이책 5권 중에 실제로 읽은 것은 한 권에 불과했기 때문에 4권의 책만큼의 무게가 바다를 건너는 동안 탄소 발자국은 간데없이 낭비된 셈이고, 가방을 밀고 다니면서 소모된 나의 열량에 관해서도 (적어도 책 4권의 무게만큼은) 최고의 효율을 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좋았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오차범위가 필요하고, 그걸 이해하고 용납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소중하고, 공공성이라는 것이 전부 그런 토대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번 연수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 연수에서 말도 안 되게 새롭고 놀라운 것들을 잔뜩 보고 온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자주 한 생각은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예술 지원 정책에 있어 많은 부분은 우리가 이미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한국문학번역원, 한국출판문화진흥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등의 여러 기관을 통해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내용들이었고, 충분히 검토되고 있는 내용이었다. 정책의 중요한 부분인 예산 규모에 있어서도 대체로 우리나라 기관들이 확보한 단위가 적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호주의 경우 문학 분야를 독립시켜 Writing Australia라는 기구 아래 통합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우리처럼 예술 전 범위가 통합돼 있다는 것에 비교해서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았다. 도서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연수단이 방문한 주립도서관은 우리의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처럼 공공 납본을 받는 관내 열람 도서관이었고, 대출이 가능한 시립 도서관도 있었다. 장서량은 우리도 도서관마다 차이가 있는 만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조금 달랐던 부분은 주립도서관이 마치 공공 갤러리처럼 운영되는 것이었다. 다양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시민들 입장에서는 도서관에서 여러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점이 편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실정과는 맞지 않았다. 이미 우리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은 책의 안과 밖에서 전천후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도 충분

  • 김홍
  • 2026-09-01

문장웹진 모색

호주 책방에는 쉬라즈의 풍미와 앨리스의 꿈이 있다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책방에는 쉬라즈의 풍미와 앨리스의 꿈이 있다. 남규조(시옷책방지기) 감사하게도 시옷살롱책방이 2025년 문학상주작가 우수기관 서점 부문에 선정되었고, 포상으로 호주 연수를 가게 되었다. 아르코에서 두 명, 도서관·문학기관·서점 각 기관의 담당자와 작가님 두 명씩, 총 여덟 명이 함께했다. 시옷책방에서는 그림책 작가 김중석 선생님과 동행했다. 작가님 덕분에 이런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중석 작가님 그림책 제작 워크숍 결과 발표회 그림책 제작 워크숍 결과 발표회 이후 김중석 작가님의 프리페인팅 5월 19일 오후 인천공항을 출발해 다음 날 아침 시드니에 도착했다. 여행 내내 여러 곳을 다녔지만, 연수기는 각 작가님과 기관의 특성에 맞게 나누어 쓰기로 했다. 시옷책방은 ‘책방’을 중심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방문한 책방은 네 곳이다. 시드니 뉴타운의 Better Read Than Dead, 멜번의 Readings Kids, The Paperback Bookshop, 그리고 사사프라스 마을의 Through the Looking Glass. Better Read Than Dead — 시드니 뉴타운 뉴타운의 엔틱한 거리에 힙한 장소 Better Read Than Dead 책방. 서가와 매대는 분야별로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주요 도서는 포인트가 돋보이도록 진열되어 있었다. 동선도 잘 확보되어 있어 손님의 이동이 자연스럽고, 간섭이 적어 책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Better Read Than Dead 책방 앞에서 구입한 도서와 함께 서점 내부, 1층 서점 내부. 1층은 서가와 매대, 2층은 북토크와 전시 공간 서점 내부. 1층과 2층 사이 중층, 스킵플로어 구조, Cooking Zone 스킵플로어 공간을 활용해 1층과는 다른 섹션을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선의 지루함을 줄이고, 분야별 집중도와 서가의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었다. 조금 올라가면 북토크와 전시가 가능한 아늑한 공간이 나온다. 공간의 온도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전통이 쌓인 책방의 외관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 이미지는 책갈피와 다양한 굿즈로 확장되어, 방문객들에게 만족도 높은 기념품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너른 자연과 독특한 생태가 공존하는 호주답게 동물·식물·생태 관련 큐레이션이 돋보였고, 이주민의 나라라는 특성과 맞물려 원주민 문화에 대한 내용도 곳곳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 세계 원주민을 다룬 《Origin》이라는 책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구입하게 되었다. 또 서가에서 영화 ‘미나리’를 발견했을 때는 반가움이 밀려왔다. 서점 내부, 2층 북토크 및 전시 공간 서점 외관을 모티브로 한 일러스트 작품 서가에서 발견한 ‘미나리’ 귀국 후 서점에 대해

  • 2026-09-01

문장웹진 모색

구루발루의 작가견문록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구루발루의 작가견문록 오시은(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상주작가) 여행객들은 나를 까치라고 하더군. 이곳 사람들은 맥파이라고 하는데 말이야. 뭐라고 부르 건 내 진짜 이름은 따로 있어. 구루발루. 그게 내 이름이지. 가까운 친구들은 그냥 ‘발루’라고 불러. 나더러 “까치네.”라고 말하던 이들을 만난 곳은 포트 잭슨이었어. 언제나 여행자들이 넘쳐나는 항구 말이야. 파라마타강 하구 바닷가인데, 멋들어지게 생긴 공연장과 철재로 만들어진 아치교가 유명하잖아.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솔직히 나도 그걸 보려고 갔던 거야.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을 만나러 갔구나 싶어. 아, 참고로 나는 운명 어쩌고 하는 걸 믿지 않아. 친구들이 점성술 하는 까마귀 집에 재미 삼아 몰려갈 때도 슬그머니 도망칠 정도니까. 그런 내가 그들을 운명이라고 여기게 된 건 좋아하는 게 같아서였어. 그들이 커피를 마시며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책과 작가들에 대해 말하더군. 실제로 그 중 몇은 작가라던데, 유독 눈길이 가는 이가 있더라고. 때때로 시선을 먼 곳에 두는 작가였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찾으려는 탐험가 같더란 말이야. 그때 감이 왔지. 그가 뭘 찾고 있는지 말이야. 이야기. 그것도 엄청나게 재미난 이야기. 나도 많이 해 본 일이라 금세 알 수 있었어. 그렇다고 나도 작가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야기를 사랑하는 건 작가 못지않다고 자부해. 쫄깃하고, 숨 막히고, 따뜻하고, 울컥하고, 기품 있는 언어로 가득한. 왜 있잖아, 시간을 잊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 참고로 내 둥지는 오래된 서점으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에 있어. 이만하면 내가 책과 이야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겠지? 나는 먹는 거 다음으로 이야기를 좋아해. 재밌는 이야기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라고. 그래서 그날 포트 잭슨에서 결심했지. 여행객들, 아니 이야기를 찾는 작가를 따라다니기로. 그의 눈동자가 빛나던 순간이 기억나는군. 작가들을 지원하는 곳의 책임자를 만났을 때였지. 작가에게 상금도 주고, 한 명의 시인을 뽑아 국립 시인상도 주고, 여행 기금도 주고, 문화유산에서 작업할 기회도 제공한다는 설명을 들을 땐 고개만 끄덕이더라고. 하지만 도서관에 책이 비치되면 작가에게 보상한다는 대목에서 눈동자가 커졌어. 출판사와 작가에게 반반씩 보상하다가, 삼 년 후부터는 작가에게만 보상하는데, 유명 작가에게 쏠리지 않게 상한제를 둔다고 했지. 그 모든 게 법에 따라 지켜진다는 말을 듣는 그의 눈에 부러움이 흘러넘치더군. 나한테는 전혀 새롭지 않은 얘기라 그런 반응이 신기했지. 인간의 시간으로 치면 삼십 년도 더 된 일이라 고전이나 마찬가지였거든. 그토록 당연한 걸 부러워하는 게 흥미롭더라고. 다음으로 간 곳은 오페라 하우스 옆에 있는 로열 보타닉 가든이었어. 마침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던 차라 반가웠지. 말이 가든이지 여긴 원시 식물원이라고 봐야

  • 오시은
  • 2026-09-01

문장웹진 모색

호주 시드니, 멜버른 국외연수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시드니, 멜버른 국외연수 : 로열 보타닉 가든 탐방과 상주작가 레지던시를 중심으로 전수지(중화문학도서관 사서) 1. 들어가며 2026년 봄, 뜻밖의 소식이 들어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하는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우리 중화문학도서관이 전국 우수시설 중 하나로 선정되어 호주 연수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2025년 1월에 갓 문을 연 우리 도서관이, 게다가 이제 사서로서 발을 막 뗀 내가 이런 자리를 얻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이번 연수를 통해 사서로서, 그리고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의 담당자로서 우리나라의 문학 지원 체계와 사업 운영 방식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호주의 선진 문학 생태계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호주의 랜드마크 오페라 하우스-vivid light 하버 브릿지 앞에서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시드니와 멜버른을 돌아보는 7박 9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시드니에서는 호주의 시그니처 ‘오페라 하우스’ 투어를 시작으로 타롱가 동물원의 기린이 우릴 반겨주었고, Writing Australia 방문, NSW 주립 도서관 탐방,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 참관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체가 문학과 이어져 있었다. 멜버른은 말 그대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의 명성에 걸맞은 곳이었다. 호지어 레인의 그래피티 골목, 예술가들의 수직 공동체 Nicholas Building, 빅토리아 주립도서관과 휠러 센터, 독립서점 Readings와 The Paperback Bookshop, 그리고 Maru의 캥거루 무리와 퍼핑빌리 증기기관차에 펭귄 퍼레이드까지—문학과 자연과 예술이 경계 없이 뒤섞인 도시였다.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부천이 2017년부터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였다는 점이다.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을 때, 과연 사서라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가 내심 부끄러웠다. 한편, 호주 정부의 문학 지원 체계를 대표하는 Writing Australia의 책임자 Wenona Byrne 디렉터와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호주는 연간 800만 AUD 규모의 문학 전담 예산을 확보하는데, 한국의 문학분야 지원 규모가 호주보다 훨씬 더 크고, 호주는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하나만 해도 연간 70~90개 시설, 수천만 원 규모의 국비가 전국 각지로 분산 투입되며 일자리 창출과 지역 문학 생태계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국가 단위 지원 시스템의 체계성과 지역 침투력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꽤나 선진국이구나 싶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2. 시드니 로열 보타닉 가든(Royal Botanic Garden) 가. 항구와 오페라 하우스를 품은 정원 우리 일행은 시드니 도심 한복판의 신호등과 차량 소음을 등지고

  • 2026-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