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누워
- 작성일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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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누워
오은경
너에 대해 말해야겠다 너는 조금 특별하고 어딘가 유별난 데가 있어 (눈을 자주 깜빡거려, 나는 그게 거짓을 말할 때 버릇인 줄 알았어, 진실은 모르겠는데,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입장한 사람, 나타난 누군가
네게는 늘 동행이 있었다(나는 그걸 친구라 불렀지만) 어떤 관계인지 물어 볼 만큼 우리가 가깝다거나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너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이름을 알고 싶었다
내가 너를 불렀더라면, 네가 돌아봤다면
나에게도 한 번쯤은 기회가 있었을 텐데
×
갑자기 변명이 하고 싶어진다
클럽 안
사람들은 대개 말이 통하지 않았고 외국인이었으며, 잔뜩 술에 취해 있었다
너와 닮은, 비슷비슷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네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계속 클럽을 돌았고
왜 내가 혼자 남아 있는지 묻다가
너와 춤추던
(옷차림부터 머리 모양까지 똑같던)
네 옆 사람을 떠올렸다 나는 잠깐 그를 너라고 착각했는데, 정말 잠깐이었다 웃을 때 입 모양이 달랐다 슬프고
화가 났다 무섭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아주 많았으니까 (나는 혼자 남겨질 때만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분명 익명이었다 그런데
너와는 어떻게 만났을까?
×
너의 비웃음, 너를 통과할 때
되찾은 내 그림자
(너라면 이걸 외투에 비유하겠지만
지금은 빛이 강해
더워, 더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만 너는
손닿지 않는걸)
×
계절이 돌아와 봄이 되었다
며칠 전에는 설레는 기분을 느꼈는데
완연한 봄이다 계속
창문을 열어 놓으니까, 벚꽃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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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컵세 개의 컵 오은경 너의 더벅머리에서 눈을 발견한 것 같다 머리카락이고 너의 시선이 닿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 순간의 너는 머리를 흩날리면서 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반짝이는 눈, 너의 눈빛은 네가 너라는 것을 알려준다 나는 유리컵을 내려놓는다 커피가 남지 않아서 더는 마실 것이 없다 마실 수가 없다 컵을 다시 들어야 할 이유도, 우리는 바닥에 컵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물을 엎지를 일도, 물과 분간되지 않는 유리 파편에 다칠 일도 생겨서는 안 된다 × 나는 유리컵을 내 몸과 같이 여긴다 겨울에는 히터를,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 온도를 조절한다 바람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닫고, 에어캡을 붙인다 방풍 테이프로 창문 틈새를 막는다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사고 싶은 항목을 정리한다) 나 없이도 이 집은 괜찮을까 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올 텐데 낯선 이가 침입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신경이 쓰일 테고 닫힌 것들, 밀폐된 것만 보면 열어 보고 싶어져 큐브는 여섯 개의 면을 가졌잖아 모서리부터 맞추면 돼 너는 거리에 서서 시범을 보여준다 우리는 공원에서 공연도 함께 본다 저글링을 하는 사람, 인파 속에 공연하는 이가 가려져 숨었을 때도 높이 튀어 오르는 공 여러 개의 컵 중에서 공이 든 컵은 하나다 공이 든 컵을 맞춰야 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계속 배치가 바뀐다 더벅머리, 너는 알까? 너는 언제부터 연습을 하고 있었을까 공원에 와 있었을까 * 영화 렛미인(Let The Right One In, 2008)에서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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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몽자각몽 오은경 네가 곁에 없었을 때 나는 잠만 잤어 널 편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네가 이렇게 빨리 올지 몰라서 아니, 이번에도 내가 잘못한 거지 뭐 무슨 변명을 더 할 수 있겠어 조금도 기쁘지 않았어 그래도 재밌었잖아 내가 봤어 너 좋아하는 거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눈 안에 속눈썹이 들어간 것 같은데 좀 불어 줄래? 이리로 가까이 와서 같이 누울래? 너는 나를 이해하지? 그래서지? 이야기를 듣고 나눌 상대가 필요했던 거잖아 그게 나였고 너였으니 이불을 덮어 줄 사람1)이 부족했던 거구나 추위를 견디며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자신이 더는 없었으니까 나는 주위를 배회했어 누구도 나를 좋아할 것 같지 않았는데 너는 여기에 있어 전과 같은 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을 때는 어떤 꿈을 주로 꿔? 네가 등장하지 않는 너의 꿈 1) 이부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들면 아무도 당신에게 이불을 덮어 주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질 들뢰즈, 클레르 파르네, 〈디알로그〉 중에서.
-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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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서클 오은경 네가 네 입으로 말했지 오물거리는 입술로 더위 속에서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며 나를 떠날 거라고 네가 떠나겠다고 하지만 내게 다른 선택권은 없는 것 같았어 전에 만나던 사람과 함께 있었으니까 단 하루였지만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 나는 더는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꿀 먹은 벙어리 같은 네 표정을 돌려놓기 어렵겠지만 노력할 거야 봐봐, 사납게 짖던 도베르만은 흔적도 목줄을 잡아 두던 쐐기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는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데 네가 만족하려면 나는 얼마나 여기 더 머물러 있어야 해? 믿음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이기에 네가 떠나는 거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리까지 가버리면 나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 너와 만났던 나는 누구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정체가 뭐야? 내가 누군가가 되었던 것처럼 너도 나를 이해해 줄 순 없었어? 너는 왜 나랑 만난 거야? 나는 너를 보고 겁내지 않았지 그때 우리는 단둘이었잖아
- 2019-10-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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