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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없는 목련화

  • 작성일 2025-03-01

   꽃도 없는 목련화

   -영옥 누부 생각


안상학


   병상의 누부 마른 손을 놓치고 돌아온 늦가을 어느 날 

   나는 남들 다 좋다는 고운사 단풍을 보러 가서

   단풍도 단풍이지만 

   벌써 나목이 된 목련나무만 어루만지다 돌아왔습니다

   그 푸르고 너른 잎 다 놓치고 

   벌써부터 꽃맹아리만 입 꼭 다물고 선 목련나무 한 그루


   지리산 실상사에 첫얼음이 얼었다는 새벽 

   누부의 손을 딴 세상에 빼앗기고 나는 그 목련나무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요, 

   누부는 환한 꽃 다 져 버린 

   오월의 목련나무 한 그루로 이 세상에 왔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허망한 목련나무 그 가난한 마음을 알아서 

   세상의 가난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보듬으며 살았습니다 

   일찍이 세상의 슬픔을 배워서 이긴 사랑으로

   세상의 슬픈 마음을 찾아가 하나하나 사랑을 가르치며 살았습니다 

   일찍이 그 아픈 절망을 알아서 

   세상의 절망을 낱낱이 일으켜 세우며 살았습니다


   단 한 번도 당신을 위해서는 꽃 한 송이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 뜨겁던 여름도 그 푸르고 너른 잎 속에 

   근질거리는 자신의 꽃맹아리는 한사코 감춰 두고

   오직 세상의 가난한 낱낱의 가슴을 찾아가 

   꽃 한 송이씩 피워 주며 살았습니다


   나는 당신 평생 자신을 위해서 피운 꽃을 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도 누부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누부는 언제나 환한 목련꽃으로 내 마음속에 되살아납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분명 당신과 헤어지고 있습니다만 

   그 환한 기억과는 결코 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병상의 누부 마른 손을 생각하면 가슴이 어두워지다가도

   일생의 당신을 생각하면 어두운 가슴이 금방 환해지는 까닭입니다 


   평생 꽃이 없어도 꽃이었던 당신

   저 고운사 목련나무는 꽃맹아리를 물고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언제나처럼 사월의 하늘을 환하게 밝힐 겁니다

   이 겨울 천 개의 꽃맹아리 입에 물고서 먼길 떠나는 누부

   저기 가시거든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부디 이 세상 모든 가난과 슬픔과 절망은 다 잊고서 

   오직 당신만을 위해서 

   당신만의 꽃을 환하게 피우는 사월의 봄날로 영원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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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상학
  •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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