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 작성일 202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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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이원석
새벽마다 나를 태우려는 택시가 집 앞을 지나갑니다 나는 타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고 있습니다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택시는 밤거리를 달립니다 기사는 라디오를 켭니다 채널이 한 바퀴, 두 바퀴 돌기 시작합니다 치익-칙 한곳에 머물고 음악이 흐립니다 비가 옵니다 와이퍼가 작동합니다 소매로 우는 아이처럼 빗물을 닦습니다 기사는 어디까지 가는지 묻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디까지 가고 싶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아니 현실입니다 아니 꿈입니다 아니 마음입니다 차가 멈출 때마다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됩니다 기사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봅니다 아는 얼굴입니다 그런데 누군지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빨간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누군지 알지 못합니다 택시가 나를 내려 줍니다 높고 긴 벽을 끼고 돌아 언덕 위입니다 멀리서 한 사람이 올라옵니다 당신이 맞습니다 당신에게는 내가 맞습니다 손을 들어 알은체를 합니다 당신이 가까이 옵니다 나는 손을 내밉니다 당신이 내민 손을 바라볼 때 택시가 옵니다 집 앞에서 택시가 나를 지나칩니다 당신이 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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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편지겨울 편지 이원석 날이 매우 추워 독감이 유행이래 한번 걸리면 일주일을 아프다고 했어 로이는 전자식 자연관찰소에 박제되어 있으니 가끔 만나 보러 가도 좋을 거야 다행이다 그치 고통도 수치도 망각하고 일그러진 표정 그대로 멈춰 있을 테니 시간을 탈각시킨 고통은 중심을 잘라 얇게 저며 낸 뇌의 단면처럼 아주 잠깐이자 영원일 테니까 플래시처럼 터지는 한순간의 고통이 영원의 기억 속에 끼얹어져 그걸 불러일으킨 존재를 쉼 없이 재생시키고 있을 거야 행복하게 그가 떠나기 전에 내게 메시지를 남겼는데 읽어 보지 않았어 타이레놀과 알코올은 함께 먹으면 안 된대 〈Duo showdown〉은 잘 읽었어 둘의 이야기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아주 세세한 것까지 그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무슨 일로 돈을 벌고 어디에 집을 얻었는지 사는 곳 근처에 차이니즈 레스토랑은 있는지 아직도 양장피를 좋아하는지 그 둘의 친구 이야기와 우리의 맹세와 어릴 적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생각하다가 보면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고 그러면 너는 거기 가서 너의 슬픔을 위해 울 수 있을 거야 전자식 자연관찰소까지 찾아와 로이를 만나 줘서 고마워 아마 로이도 조금은 외롭지 않았을 거야 -This is Roy. I sent you a reply, over. -I'll run to you, Roy··· over. -This is Roy, copy.
- 이원석
- 2025-04-01
문장웹진 시
당신의 것이 아닌당신의 것이 아닌 이원석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우리는 알 수 있을까?” 바닥에 떨어진 구슬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참지 못하고 아이들이 뛰쳐나간다 문 앞에 선 아이는 허둥대며 쪽지를 나눠준다 오십 걸음 밖에서만 읽을 수 있는 쪽지엔 뒤돌아보지 말라고도 돌아오라고도 쓰여 있다 모두 그들 자신이 쓴 글씨다 펼쳐 볼 수 없는 책은 가늠할 수밖에 펼쳐지지 않은 쪽지는 버려질 수밖에 흩어져 돌아오지 않는 아이는 멀리까지 가 있을 거다 염려보다 빠르게 자라는 아이는 문 밖에서도 문 안에서도 잘 자란다 길에는 버려진 쪽지가 틈틈이 자란다 돌아올 아이는 진작에 돌아왔다 더럽힌 옷은 빨면 그뿐이니까 세탁기 속 바지주머니에서 꺼낸 쪽지는 여러 번 접혀 있다 어렵게 쪽지를 펼쳐 든 아이는 번진 글씨를 읽으려고 애를 쓴다 지난 마음은 알아볼 수가 없다 방에 누우면 문은 전보다 단단히 잠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려야 신을 신을 수 있을 거다 눈을 감고 쪽지의 글씨를 가늠해 본다 「 지금 」 이라고 적혀 있다 모자로 얼굴을 가린 아이들이 뛰어나간다 「 눈을 감고 」 라고 적혀 있다 아이들이 넘어진다
- 이원석
- 2020-08-01
문장웹진 시
서로의 것서로의 것 이원석 우리는 맞잡은 손을 바이트로 조이고 구리관들이 촘촘히 자란 B1숲을 걷는다 텅빈 관은 저음으로 운다 1구역에서 44구역까지 푸른 녹이 자욱하다 이 길을 산책하고 싶다고 넌 몇 번이나 그러고 싶다고 말했지 우리가 서로를 떼어 놓고 싶을 땐 자기 손목을 자르기로 하자 그러자 난 쇠톱으로 천천히 자를 거야 과정을 모두 감각할 수 있게 넌 도끼로 단번에 결별한다고 했지 하지만 그전에 몇 번 더 조이면 우리 손목이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지 않을까 그래도 불안하니까 한 번만 더 조이자 돌아갈 수 없게 래칫 렌치1)를 돌리자 조인 손이 새파래진다 이별이 오기 전에 갑작스레 찾아오는 결별의 표정은 금속적이다 견고한 시대에 조립한 장기는 유격이 없다 내부에서 내부로 가는 파이프와 내부에서 외부로 가는 파이프 외부에서 내부로 오는 파이프와 신주 체크밸브2) 역류에 의한 내상을 막기 위해 수압에 의해 한쪽으로만 개폐되는 방식으로 사랑했다 금속상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금속상자 속 상자 돌고 있는 환풍기 쇠날개 사이로 박절된 빛이 철제 선반을 반복해서 두드린다 선반 위엔 교착된 손과 공구들이 맞물린 채로 녹슬어 있다 우리가 팔을 떼어낸 건 확신이 있었던 자만 정비가 있는 날이면 넌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흉부에서 떼어낸 회로를 끝없이 분해하고 구간별로 나열하고 다시 역순으로 조립하고 부품을 바꿔 끼고 정형 행동3)을 하고 분해하며 기다렸다 매번 똑같이 조립되지 않았다 조금씩 달라졌다 숲에서 눈을 바꿔 가졌다 네가 보는 것을 보고 싶어 이미 본 것도 흉측할 텐데 그래도 렌즈의 가장자리를 따라 볼트와 너트와 볼트와 너트가 떨어진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부속이 떨어져 나왔는지 알 수 없다 수은은 신 금속의 기적은 온도 참을 수 없을 때 흐른다 무너지듯 바닥에 첫발을 디딘다 시작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구르는 거야 누구도 멈추지 못하겠지 응 그러자 눈을 감아도 26000m를 자라는 파이프 은빛 나사가 촘촘히 박힌 하늘 볼트와 너트가 떨어지는 마지막 밤 쇳물 위로 흔들리는 철판 몸 위로 쏟아지는 은빛 서로의 것 1) 미늘 톱니바퀴가 달린 렌치. 바퀴쐐기에 의해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을 하는 기어가 적용됨. 2) 유체의 흐름을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여 액체의 역류를 방지하는 방향 제어 밸브를 말한다. 3) 격리 사육하는 동물이나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증상.
- 이원석
- 20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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