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시계

  • 작성일 2025-12-01

   시계


권기덕


   영상을 촬영했다 

   시계를 톱으로 잘랐다 

   말복이었다 


   너는 졸업작품전에 내 행위가 담긴 영상을 

   발표한다고 했었다 


   여치 울음소리가 들렸다 

   타조가 죽은 타조를 찾아 

   도롯가를 뛰어가는 

   내일 뉴스가 오늘 흘러나왔다 


   비가 내렸다 

   해가 쨍쨍했다 

   해가 배구공처럼 탱탱했다 

   나는 배구공을 톱으로 잘랐다 


   너는 공산품을 자르는 내 얼굴이 

   시계 같다고 했다 

   배구공 같다고 했다 

   영상은 되감기의 방식으로 재생된다고 했다 


   내가 톱에 잘렸다 

   시계가 완성되고 

   배구공이 탱탱해지고 

   죽은 네가 돌아왔다 


   가창 백숙집에 갔다 

   예전에 집단 총살 희생이 있었던 곳이 멀지 않다고 했다 

   닭을 잘랐다 

   7월이었다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까마귀 떼였다 


   영상 속에서 바다제비를 봤다 

   버려진 생명에 눈을 맞추다 보면

   눈에서 멀어진 사람이 울었다


   눈물은 금지였다 

   시를 발표했다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여우의 빛

여우의 빛 권기덕 나는 악역 배우다. 한때는 유명한 서부극 주인공이었다. 지금은 추락하는 중이다. 방금도 TV 시리즈 촬영장에서 총을 맞고 쓰러졌다. 쓰러진 것은 그래도 쓰여지는 것, 쓸모 있는 시절은 언제나 나 자신보다 빠르다. 나로부터 악마를 꺼내 어린이 앞에 마주하게 한다. 악마 또한 배우의 실감 나는 죽음을 기대한다. 배우는 삶에서 끊임없이 배우는 자다. 어느 날엔 세트장에 이상한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빛은 호텔 기둥에 매달린 밧줄에 한동안 머무르다 술통 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술통은 스스로 굴러 가기 시작했다. 술통에서는 어떤 여행자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울부짖는 짐승의 거친 포효가 들리기도 했다. 술통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올라갔다. 술통은 새가 되어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어떤 빛에 대해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다 그곳에서 길을 잃었다. 빛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불안했다가 섬세해졌다. 빛을 향해 대사를 던지니 그림자가 걸어왔다. 사라진 빛은 자유로웠고 나는 끊임없이 솟구치는 분노가 이 세트장을 불태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불타는 세트장에서 대역 스턴트맨이 나 대신 죽고 영화는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나는 그제서야 이곳이 어린 여우와 대화를 나눴던 트루디 프레이저* 의자 앞이라는 걸 깨달았다. 빗속에서 빛이 다시 보였다. 빛을 따라 다시 걸었다. 개가 뿔 달린 인간의 다리를 물어뜯고 있었고 총에 맞은 히피족들은 머리가 없었다. 살인 영화를 보며 자란 살인자는 공중에 칼을 휘두르다 빛에 눈동자를 잃는다. 빛은 누군가에겐 빚이 되어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를 위해 추억이 되기도 했다. 나는 그저 빛의 동작을 흉내 냈다. 가끔 빛이 내 안에 머물다 빠져나갔다. 그해 배우의 수영장에는 이웃에 사는 여우들이 밤새 술을 마시며 빛과 함께 놀곤 했다. * 영화 〈원스 어 폰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등장하는 소녀.

  • 권기덕
  • 2025-12-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