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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 작성일 2026-01-01

   가호


임어지니


   식을 올리기로 했다


   결혼식을


   이후 가장 먼저 베란다에 꽃을 심었다 골목 화단의 꽃들을 옮겨 와 가꾸기 시작했다 잘 자랄 수 있도록 예쁜 말 좋은 말만 해 주었고 화분을 앞에 두고서 다투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책임을 약속할 사이여서


   커튼을 몸에 둘렀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체형에 맞추어 매일 조금씩 재단했다 어제보다 더 넉넉해지는 것은 가능했으나 모자라서는 안 되는 법이어서


   매일 조금씩 더 왜소해졌다


   방에는 조금씩 더 해가 든다


   이런 거구나 밝은 미래라는 거 햇살 쬐며 잠에서 깨고 꺼지지 않은 불빛을 수면등 삼아 잠드는 우리의 화창한 생활 어둠에 잠기는 법이라곤 없는


   가정 정말 좋다

   그 무렵 우리는 신도 하나 들이기로 했다


   으레 가정이라면 은총 하나쯤은 깃들어야 하니까


   전단지며 물티슈며 가리지 않고 수급했다 가전 알아보듯 이 신과 저 신을 비교했고 판촉하는 이들에게 사람 좋은 웃음으로 화답하기도 했다 가끔은 면접처럼···


   숙식 제공

   상주 수호신 구합니다


   어느 날 만난 신 하나는


   인재라고 들었어요 여기저기서 모셔 가려고 한다고요 교회에서도 성당에서도, 신이라는 게 다 그렇죠 기사 자격증이나 마찬가지죠 그런데 말이에요 말입니다 그러니까요 그게 있잖아요


   생각보다 번듯하고

   생각보다 훤칠했다


   삼 개월간은 90%만큼의 믿음만 베풀어도 될까요?


   생각한 뒤 연락 주겠다던 그에게서는 답장이 없었고 화단에는 새로운 꽃이 심어졌다 지난번보다 조화로운 조합이었다 우리는 피고 지기를 반복하기도 전에 파헤쳐지고 옮겨 심어지는 꽃들을 엿보다 


   서로의 등을 부둥켜안고 잠에 들었다


   일찍 해가 졌다 

   그랬나?


   뒤척일 때마다 등 뒤에서 쏟아지는 빛을

   구경하며 체온을 감싸안으며 역시 정말 좋구나 가전도 가구도 신의 가호도 들지 않은 집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단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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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망과 섬광 임어지니 불빛이 터지는 것을 본 적 있어요? 아니, 폭죽 말고 불빛이요 사람들은 내가 말장난에 능하다고들 합니다 무엇 하나라도 재능이 있다면 다행인 일일까요 나는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엄마는 자주 웃었지요 몰두하는 사람이 아름답다고요? 내 눈은 얼마만큼 구슬을 닮아 있습니까 그보다는 비상구 등이 나은지도 모르겠어요 태양이 깨지는 상상, 부서진 조각을 전구 삼았습니다 그곳에서 지새웠지요 불면은 아니고 온종일이요 낮이고 밤이고 환할 때 얼마큼의 피로는 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엄마는 너무 오래 앓았던 거예요 적당히 미치고 적당히 무감하게, 터져 본 사람조차 터지는 감각을 기억하지 못한다더군요 거품 문, 쓰러진, 도트 무늬 속옷과 길들지 않은 신발, 경찰은 금방 돌아갔습니다 나는 차에 앉아 있었고 비가 쏟아졌지요 그때 내리친 거예요 천둥 말고 직감이요 우리에게는 터질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 불꽃 되어 본 적 있나요? 틀린 질문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불꽃을 점지받았으니까요 유구한 농담을 해 보겠습니다 엄마는 재가 되었어요 헛돌고 있네요 심장에는 나사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요 그러나 나는 도로에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이성이란 건 생각보다 질겨서, 이런 풍경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아요 아직 리허설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터지기까지는

  • 임어지니
  •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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