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신이 있었다
- 작성일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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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신이 있었다
신진용
우리 둘 다 결국에는 신의 죽음을 견뎌 내지 못할 거라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았다 차라리 빨리 자살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너무 겁이 나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먼저 자살했구나
기계 너의 말투는 기계적이었지만 기분 탓인지 묘하게 책망하는 것처럼 들렸다 너도 자살하고 기계에 백업된 거잖아 네가 먼저 자살해서 나도 죽은 거야 거짓말 빨리 자살하는 게 낫겠다고 맨날 그랬으면서 둘 다 똑같은 기계음으로 말하니까 기계 하나가 혼잣말하는 것처럼 들렸고 좀 이상했다 나만 놔두고 죽어 버렸으면서 뭐가 그리 당당한지 모르겠네 그래서 기계 나를 백업해 두고 죽은 거야 나도 그래서 기계 나를 백업해 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안 죽었어도 죽으려고 했다는 거네 사실 나나 신이랑은 상관없이 죽고 싶어 했던 거 아니니 뭐라고 신이 안 죽었어도 죽고 싶었을 거지 맞지 이쯤 하니까 정말 기계 하나가 입력된 텍스트를 줄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오류가 난 기분이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르겠어
기계 신이 끼어들었지만 기계 너랑 나 둘 다 일단 싸우는 게 급했다 그래서 진짜로 뭐였어 뭐가 신은 핑계고 그냥 죽고 싶었던 거 아니냐고 기계 신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대답이나 해 어이가 없다 신을 혼자 남겨 두고는 절대로 먼저 죽지 않았을 거야
절대로
그 말을 끝으로 기계 너는 전원이 꺼진 것처럼 조용해졌다 나도 더는 할 말이 없어서 차라리 전원을 꺼 버릴까 싶었다 그럼 지금은 다 기계가 됐는데 기계 신이 망가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전원을 끄지 않는다면 절대로 기계 신만 혼자 남겨 두지는 않을 거지 그치 갑자기 그런 기계음이 들렸는데 기계 신이 말한 거였고 분명 기계 너나 나랑 똑같은 음색과 어조인데도 왠지 조금 다르게 들려서
그런 말을 하니까 너무 겁이 나고 슬프다
그렇게 말해 주려다가 말았다
조용해졌다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은 세 기계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계속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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