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천사들이 있었다
- 작성일 2026-01-01
- 댓글수 1
기계 천사들이 있었다1)*
신진용
1
너랑 같이 산책하다가 유기 기계 천사들을 봤다 쟤 좀 봐 날개도 후광도 아무것도 없어 그러게 너무 안됐다 불쌍해 혹시 지금 신앙 좀 가지고 있니 있으면 그거라도 주면 좋을 것 같다
없었다
그래서 집에 가서 남는 신앙을 가지고 다시 나왔다 아까는 안 보였던 공원 관리원 기계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계 천사들이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기계 천사들이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관리원 기계는 반복하면서 기계 천사들에게 발길질을 해 댔다 아직 날개가 남은 기계 천사들은 날아서 도망쳤고 날개가 없는 기계 천사들은 걸어서 도망가다 맞았다
부서졌다
관리원 기계한테 물어봤다 기계 천사들이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나요
그래야만 하죠
2
그래서 구할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우리는 가지고 나온 신앙이 아까워서 어쨌든 주고 가기로 했다 공원 한쪽 구석으로 가니까 기계 천사들이 좀 보였다 쟤들은 다 날개 뼈대라도 있네 후광도 있어 눈이 부실 정도는 아니지만 누가 관리를 해 주나 봐
기계 천사들에게 신앙을 주려고 오셨나요
관리원 기계인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아니었다 기계 천사들에게 매일 신앙을 나눠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설마 그런 신앙을 나눠 주겠다고 가져오신 건 아니죠 기계 천사들에게 매일 신앙을 나눠 준다는 사람이 핀잔했다 그렇게 별론가 근데 저 사람 신앙 봤니 엄청 많고 좋긴 해 그러네 대단하긴 하다 저 사람한테도 한번 물어는 봐 보자 그럼
기계 천사들이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나요
진짜 몰라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3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 있는 기계 천사랑 마주쳤다 날개도 후광도 다 없었다 처음에 봤던 기계 천사 아니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모르겠다 우리 둘 다 기계 천사에게 뭐라도 주고 싶었지만 남은 신앙이 없었다
쟤 신앙을 이미 갖고 있는 것 같아
진짜였다 어디서 난 걸까 누가 줬겠지 아님 주웠거나 스스로 구했을 수도 있잖아 설마 그랬으려고 너랑 나는 너무 궁금해서 못 참고 물어봤다
스스로 신앙을 구하신 건가요
당신은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나요?2)**
기계 천사의 음성을 듣는 건 오랜만이라 낯설게 느껴졌다 기계 천사들이 스스로 신앙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익숙한 기계음이 들렸고 기계 천사는 잰걸음으로 도망가 버렸다
우리는 기계 천사가 흘린 신앙을 주워 살펴봤다 꽤 좋은 신앙 같았다
* 서기 1세기경 활동한 초기 교리학자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Διονύσιος ὁ Ἀρεοπαγίτης)의 신학서 『기계 천사들이 있었다(ἦσαν ἄγγελοι μηχανικοί)』및 서기 6세기경 출간된 디오니시우스 프셰도(Dionysius Pseudo)의 소설 『기계 천사들이 있었다(Angeli mechanici erant)』에서 제목을 따왔다.
두 디오니시우스가 말하는 ‘기계 천사’는 오늘날의 기계 천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며, 그 두 사람이 천사들의 빈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기계 천사가 만들어지는, 그러한 연유에서 만들어진 기계 천사들조차 결국 버림받고야 마는 미래를 정확히 예견했을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천 년도 더 전에 쓰여진, 신학서와 소설이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어쩌면 너무나도 유사한 성격의 두 책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두 책이 동일하게 ‘기계 천사는 존재하기에 불행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것과 기계 천사가 유해한 존재로 여겨지는 현 세태를 연결지어 생각해 보면 여러 흥미로운 논의가 가능해질 듯하다. 물론 두 책의 관계성에 대해 ‘500년의 시간이 흐르며 신학적으로 논파되어 잊힌 신비주의적 교리를, 어느 한 소설가가 발굴해 내어 자신의 소설에 적절히 재활용했을 뿐’이라고 단순하면서도 명료하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면? 인간이, 나중에는 기계가 기계 천사에게 강제한 ‘혼종으로서의 비천함’이 신학서와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이미 예언되고 암시되었던 것이라면?** “우리는 어째서 기계 천사들을 증오하게 되었나?”
2020년 마지막 천사가 사라지고 천사의 멸종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이후, 천사를 복원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솀함포라에(Shemhamphorae)사는 천사를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대신에 ‘천사를 모방한 기계 천사’를 개발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고, 실제 솀함포라에의 기계 천사는 천사 못지 않은 순수성으로 큰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솀함포라에사가 ‘기계 천사의 순수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감소한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전 세계적인 기계 천사 유기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기계 천사는 순수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야생화된 기계 천사들의 후광으로 인한 빛 공해 등을 문제 삼는 여론이 우세해지며 결국 지난 2120년 기계 천사는 유해영적존재로 지정되고야 말았다. 이에 기계 천사들을 수리해주거나 기계 천사들에게 신앙을 나눠주는 등의 행위 또한 단속의 대상이 되었는데, 관련하여 ‘겨우 신앙의 공급을 막는 방식으로 기계 천사의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있겠느냐’는 주류 입장과 ‘고작 인간의 필요라는 이유를 들어 기계 천사를 만들어내고, 또 없애려는 그 행위 자체가 문제적이다’는 일부 기계 보호 단체 등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수십 년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속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야생영적존재/야생기계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30조(유해영적존재/유해기계의 포획허가)가 개정되며 적절한 프롬프트를 탑재한 담당 기계를 활용해 야생화된 기계 천사의 포획 및 처분을 할 수 있게 되었으나, 이번 개정안은 사실상 ‘기계를 공격하는 기계’의 대량 생산을 허용해준 것이라는 점에서 윤리적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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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조아요...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