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순례
- 작성일 20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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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순례
여한솔
징검다리를 건너는 동안 저녁이 왔네. 내 등 뒤로 흘러내리는 물비린내 검푸른 하늘, 네 등 뒤에는 푸른 십자가가 두 개나 보여. 교회들이 빼곡한 동네다. 가난하고 믿음이 충만하고 불 켜진 집들은 자기도 모르게 별이 되는 동네. 우리는 그 사이를 걸으며 나는 관심도 없는 신앙 이야기를 듣고 있다. 우리 앞에 별이 이렇게 많은데 북적이는 피자집과 알전구 늘어뜨린 상점에 나는 매료되는데, 너는 솔아 여기 서 봐, 사진을 찍어 주다가도 길을 떠나면 다시 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 서울의 거리가 너에게는 순례길이구나. 너의 골목은 참배로 아득하구나. 2호선에서 한강을 마주할 때 내 마음도 그랬어. 너의 신앙처럼 나에게도 간절한 것이 있지. 저녁의 거리는 뭐든 믿고 싶게 만들고 아니 불신하게 만들고, 집을 별처럼 읽는 착각도 늘어난다. 멍이 드는 일처럼 밤사이 탄생되는 어떤 일기는 기억도 없이 아프기만 해. 정신병자들이 튀어나오는 세계에서 나는 매일 소름이 돋는데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순간이란 게 있지. 네가 찾는 신처럼 나도 사실은 무언가 찾고 있어. 황홀하고 자유로운 조각. 비행기도 장미정원도 알려 주지 못하는 완성에 가까운 환상. 나에게도 부끄러운 환상이 있어서 너의 신앙 이야기는 도무지 신화 같지 않고, 그냥 지금 쓰는 이 일기 같기만 하다. 그래도 너는 무거운 피아노로 사랑의 무게를 말하는 데 가까워졌지만 내가 짓는 상상은 쉽게 깨지고 부질없어서 결국 네 앞에서 지는 것 같아. 피아노 앞에서 네가 기도 노트를 보여 줬을 때 나는 알았어. 네가 어떤 착한 신의 손바닥에서 조금만 더 헤매도 좋겠다고. 네 가방에서 쏟아지는 악보로 네가 얼마나 많은 마음을 누르고 있었는지 내게도 그런 선율이 있다는 걸 너 때문에 알았다는 걸 너는 알까. 그게 얼마나 탐이 났는지 너는 흰 철쭉 같은 신앙 때문에 계속 모르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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