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이미지
- 작성일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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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차 밑에서 죽은 고양이를 봤다
친구는 늘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팔을 괸 채 창밖 바다를 보며 오기로 한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며
나의 얼굴은 상상 속에서만 정확히 떠올릴 수 있는데 도화지 위로 옮기는 순간 전부 흩어져 버린다고 했다 친구는 지우개 가루를 가리키며 얼굴은 사실 이런 것이라고 했다
내가 죽은 고양이를 볼 때
친구는 죽은 고양이의 미래를 볼 것이다
흙에 스며들고 하수구 밑을 흐르다 봄비가 되어 내리는
쓰러진 가로수의 뿌리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친구가 기다리던 사람들의 발끝에 겨우 닿은 길이 되기도 하는 미래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그것을
큰 비닐에 담아 흙에 묻었다
아니면 투명한 방탄유리 벽 너머에 박제하자고
기계처럼 견고하게 만들자고
사라지는 것들에게서 들리는 망가지는 소리는 무서우니까
쇠로 적힌 일기와 겨울바람 새어 나오는 악몽을 납땜하면 안전해지는 걸까
더 부서지기 전에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비스듬히 걸으며
흙 속 뿌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리 벽 뒤에서 얼굴 잃은
금속 소음이 되어 사는 미래의 친구를 생각한다
다음날 깨끗해진 골목에서 친구를 부르면 친구가 나타날 것 같다
차 밑에 손을 넣으면 젖은 흙냄새
골목 모퉁이를 돌며
길처럼 고요해지는 자세를 연습하고
그늘진 판잣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상에 앉아 그림 그리는 친구가 있다
지우개 가루가 테이블 위에 흩어진다
이렇게 많은 얼굴이라니 조금 징그럽지 않아?
물으면 친구는 휘파람을 불며
이렇게 많은 얼굴들이 온다니 기쁘지 않아? 물었다
창밖 파도가 잦아들었다 친구의 뺨을 만지면 차갑고 선명했다 하지만 친구는 이런 건 얼굴이 아니라고 했다 선분으로 그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기록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는 잠시 말이 없다 약간 젖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둔다 네 개의 희고 작은 발이 나란히 테이블 밑에 있다
매번 무섭고 이상하도록 늦게 도착해서 미안해
여기는 조용하구나
친구는
고양이를 고양이에게로 나무를 나무에게로 되돌릴 때라고 한다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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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소멸된 존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뭘까? 형용모순 같지만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상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상상은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타인의 상상이며(친구는 죽은 고양이의 미래를 볼 것이다.)그 타인의 상상조차 죽은 타인의 상상이다.불가능한 것을 떠올리는 것이야말로, 그 불가능한 것에 불가능한 것(친구가 그런 걸 상상한다는 게 말이 안되니까)이 나타나는 것이야말로 상상의 본질이니까. 그 불가능성, 불확실성에 대한 상상은 모순을 부정하는 현실을 겹겹이 에워싸면서 한꺼풀씩 벗겨낸다. 죽은 타인의 상상에서 타인의 상상으로, 나의 상상까지 침하되는 과정에서 현실의 모순은 사라지고 고양이는 고양이로, 나무는 나무로 돌아가게 된다. 상상은 사후 이미지이지만 선험적인 본령을 갖추고서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바라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네 개의 희고 작은 발이 가지런히 놓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