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피스
- 작성일 2026-07-01
- 댓글수 1
하우스 오브 피스
안지은
우리가 나눈 대화 사이에 홀로 남은 나는 오래도록 배회합니다. 버리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나를 보며 당신은 내게 말했죠.
구름이 부딪혀서 멍이 들면 먹구름이 된대요.
당신은 가죽을 뒤집어쓴 나무 같아요. 내가 보는 당신은 한 그루이지만, 가죽나무의 뿌리는 땅속에서 끝을 모르고 퍼져나가거든요. 옆으로, 옆으로. 버려진 땅에서 더 잘 자라는 나무. 나는 옆이 두려워요. 옆은 자꾸 나를 붙드니까
순환선만 타는 버릇. 손잡이를 잡지 않고 흔들리는 진동에 몸을 맡겨도, 무섭습니다. 순환하는 열차에도 종착지가 있다는 게. 나는 당겨야 열리는 문을 항상 밀어 보는 사람인데, 열차의 문은 언제나 미닫이. 영원히 한 방향으로 열리는 문.
영원 앞에 나는 자주 체해서, 당신의 문장을 조각냅니다. 조각난 문장을 계단처럼 밟으며 집으로 향해요. 평서형을 쓰지만 물음표가 가득하던 얼굴. 나는 그 표정을 잘 압니다. 나무는 바람이 불면 울거든요. 당신에게는 언제나 울 준비가 된 뿌리가 돋아나잖아요.
먹구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겨울이에요.
찬바람이 불어오면 눈빛으로 마음을 깎는 당신과, 먹구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여름이라고 생각하는 나. 나는 한여름에도 찬바람을 잘 느껴요. 고약한 계절. 뜨거운 혹한기는 믿음으로 견뎌낼 수 있습니다.
왜 제게 대답하지 않냐 물었죠. 신앙은 조용하지만, 영원하진 않아서 나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넘어지지 않는 훈련. 쏟는 것은 쉬워도 주워 담는 것은 어려우니까. 내게 대화란 그런 거예요. 집에 가는 길은 길고, 길고, 길어지고, 그사이 무한히 증식하는 조각난 침묵.
집에 도착했음에도 나는 결국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어요. 집에서도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이라서, 내 방 창문에 비친 나와 눈싸움. 나를 붙드는 건 나. 환기가 필요합니다.
창문을 열면
쏟아지는 진눈깨비와
벽을 뚫고 번식하는 뿌리.
징그러운 평화.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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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오랫동안 시인의 시를 기다렸는데 문장웹진에 시를 발표하셨네요. 앙팡테리블 시집 잘 읽었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