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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소년의 올바름

  • 작성일 2018-11-01

유도소년의 올바름

조인호


내가 유도소년이었던 시절


나는 흰 띠 돼지 녀석에게 깔린 채
벌레처럼 버둥거리고 있었다


빅맥버거 빵 사이에 낀
싸구려 패티 한 장처럼
깔린 채


나는 약 30억 년 전
암모나이트처럼


생각이 한없이 굳어져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난 맛없다 날 먹지 마! 난 맛없다 날 먹지 마!


돼지 녀석은 착했다
유도 관장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고,
특히 이가 하얘서 웃을 땐
아 ······ 인정하기 싫지만 멋졌다


나는 그 녀석에게 깔린 채
그 녀석의 살 냄새를 맡으며 그 녀석의 땀에 젖은 유도복에서
아직도 섬유유연제 냄새가 난다는 사실에
어쩐지 꽃밭에 누워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녀석과 내가
도장 바닥을 다이슨 진공청소기처럼
이리저리 쓸고 다닐 때


세상의 모든 유도소년들이 녀석과 날 보며


아, 씨발 저 새끼들 봐라,
존나 웃기네


처웃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서로 부둥켜 얽힌 채로
녀석은
날, 지그시 눌러 주며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지,


야이, 씨발아, 내가 우습지? 내가?


나는 그 녀석에게 깔린 채
숨을 헐떡이며


아니, 네 웃는 모습은 약간 설레고
넌 특히 이가 하얗고 네 엄마가 빨아 준 유도복에선
봐라, 이렇게 좋은 꽃 냄새가 난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그 힘 속에서
내 얼굴은 자꾸만 붉은 노을처럼 부끄러워지고
이윽고 내려앉는 저녁의 어스름처럼
녀석의 힘은 그렇게


내 세상에 눌러앉았다


*
독자여, 당신도 똑같다


당신이 내 병신 같은 시를 읽을 때
숨겨진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은 단 하나다


야이, 씨발아, 내가 우습지? 내가?


어느 날 길을 걷는데 그림자가 내게 말했다


이봐 친구,
할 수만 있다면
가위로 네 녀석의 두 다리를 잘라내고 싶다
경고하는데
내게서 충분히 떨어지는 게 좋을 거야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법원에 내고 싶은 심정이니까


그럴 땐 그림자라도 업어치기 한판으로
땅바닥에 눕혀 주고 싶지만


어차피 그림자는 땅바닥에 붙어 있다


내 인생이 옥스퍼드 백과사전쯤 되는 두께로
기록된다면 좋을 테지만,
옥스퍼드 사전 맨 마지막 장 맨 마지막 줄에 깔린
그 낱말을,
누가 신경이나 쓸까


난 내 유도복이 빨랫줄에 걸린 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좋았다


봐라, 흰 띠로 묶은 유도복을 어깨에 걸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걷는
유도소년이었던 나를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돼지 녀석은 엄마의 손을 붙잡고
유도관에 들어선다


우리 아들이 힘이 참 약해요 겁도 참 많죠
유도소년 중 가장 마른 애로
하나 골라 주세요


그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 돼지 녀석에게 깔린 채 누르기 한판으로
질 때까지


세상의 모든 올바름을 배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블 위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지만


봐라, 성경책을 들추면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그러므로 나 역시 그것에 맹세한다


야이, 씨발아, 내가 우습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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