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 신호 시 유턴
- 작성일 2020-02-01
- 댓글수 0
보행 신호 시 유턴
이병국
좁은 길 안쪽, 숨어 있던 걸음이 머뭇거리면 생선 굽는 냄새가 저녁놀처럼 퍼졌다 희미한 술렁거림이 낮게 가라앉고 먼 데서 바람은 투명했다
속수무책으로 나는, 길을 망설였다 골목을 메운 거짓이 한 무더기의 불빛을 비껴가고
흰 종이를 채우는 하루가 밀려나고 주린 말을 돌이켜 문장 속에 밀어 둔다 목차가 순서를 잃었다는 듯
폐허가 된 도시의 그림자처럼 깊게 새겨진 우연의 습관
계속된 기다림 곁으로 누군가 빈 걸음을 짓는다 비스듬히 흐른 것들을 피해 몸을 옮긴다
어떤 차이가 군중의 환호가 되는지 낮달의 밀도만큼 낯설게 다가오고
뒤늦은 서지(書誌)가 구겨지고
조각난 말들이 한숨에 부드럽게 박힌다 땅을 짚고 겨우 일어서도 나는, 갈피를 깁지 못한다
허공을 맴도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디뎌야 할 저만치의 고요
보행 신호가 떨어져도 길 복판에 선 허기가 지고
가쁜 책을 펼치듯 좌우로 갈라진 말이 느릿한 발치에 머뭇거린다 골목으로부터 비롯된 발자국처럼 나는, 얼룩으로 매어 있다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시
열역학 제2법칙열역학 제2법칙 이병국 어제 나는 너와 만나 우리가 되었고 잡은 손을 기울여 서로의 바닥을 짚었다 무른 마음에 멍울이 흘러내리고 우리의 결을 따라 오랫동안 스며 우주가 생성되던 날 로 이어질 수 있다지만 무수한 배열을 이루며 안정된 혼란을 향한다 내일 우리는 나와 네가 될 것이다 열이 조금 나고 무질서가 증가하고 엎드려 읽는 나날의 바람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길을 낸다 그러므로 너와 나의 우리가 고개를 돌려 아직 잃지 않은 시간을 어루만진다 오늘의 테이블은 정리되어 있다
- 이병국
- 2024-04-01
문장웹진 시
대기의 강대기의 강 이병국 제 몫의 우산을 기다리는 아이가 천변을 걷는다 풀 위로 허리가 베인 풀 위로 비는 쏟아지고 적요한 걸음에 놓인 무성한 층계참 날카롭게 긋는 물비린내 넘실거리며 밀려난 이들의 빗금 친 얼굴 사이로 일렁이는 그림자 둔한 발끝과 저물녘 강물에 끓어 넘친 삶과 붉은 터널과 기록적인 폭우 멈추지 않더라는 닫힌 결말을 상상하며 젖은 몸을 뒤집어쓴 아이가 납작한 거울 속에서 모르는 이름을 줍는다 완만한 깊이로 잠든 물빛과 기다리던 꿈의 얼룩 외면한 채 질척거리는 여름과 뒤틀린 이후의 필연 쾌청한 날을 알고 있던 아이가 기울어진 우산 너머에 있다
- 이병국
- 2024-04-01
문장웹진 시
안경을 쓰면 눈이 작아진대요안경을 쓰면 눈이 작아진대요 이병국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러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느냐고 대답했어요 얼버무린 건 아니에요 동네에선 흔한 일이죠 짧은 여행은 비행기는커녕 차도 타기 어려워요 아무려나 되는 대로 해요 얼굴을 씻는 것만큼 지치는 일도 없어요 마트에서 집어온 빼빼로가 몽땅 부러졌어요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안부는 알아보기 힘들어요 돌아올 때를 대비한 동선을 짜야 해요 내일이라도 당장 출근할 수 있다는데 마음이 좋지 않아요 불을 피운 흔적을 덮으며 처지를 생각해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주소를 잃었어요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있었나요 미처 빠져나오질 못했잖아요 스트리트 뷰로 내려다본 맵은 지도 한 장 들고 헤맸던 이야깃거리를 낚아채요 화면 속 멍울이 지평선을 밟고 대신 설명해 줘요 마땅히 그러해야 해요 캐리어를 끌며 놓치지 않을 거라죠 이건 비정상적인 행동이에요 은밀한 염탐을 포기해야 해요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요 처음 해본 일이라는 말 뒤에 숨지 말아요 쉼 없이 달려왔잖아요 우리가 그때 보았던 건 무엇이었나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데 우리는 오류에 머무르곤 해요 그러니 안경을 쓰지 않아도 평소와 다를 게 없다는 말을 들었죠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안경 너머를 볼 수가 없네요 그런데 우리 집은 해발 몇 미터인가요
- 이병국
- 2020-02-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