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
- 작성일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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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김현
아주 간다
끌려서
끌고 가는 줄 알고
모르고 간다 아주 간다
개 끌고
개에 이끌려 설상가상
냅다 뜀 인생
본다 뒤에서 우하하 푸하하 웃으며 간다
점심 먹고 얼죽아 마시러
끌려서 끌고 가는 듯 보이지만
죽어가면서
제정신일 때마다
근황
차분한 준비
메리 크리스마스
해시태그를 붙여서
누구라도 괜찮다는 식으로
좋아요
다른 시라면
이쯤에서 꿈이 나올 텐데
다른 삶이라면
이쯤에서 개똥을 치우게 해줬을 텐데
부고
모월 모일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던
천둥벌거숭이 ○○씨
(시에 이름을 쓰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며 내 이름은 언제? 묻고. 그럼 살짝 묻어 둡니다. 어느 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겨울 무 뽑듯 거두려고. 깊게 묻으면 파헤쳐야 하니까. 사람 속을 가지고 그러면 안 되니까. 그냥 갉아먹으려고.)
숙취 해소를 위해
오전 반차 써본 사람은 다 알지
오는 데 순서 있지만
가는 데 순서 없다
생각하고 침을 퉤퉤 뱉지 않으면
가보면
다 끌려갔다
영정은 다 애매한 얼굴
평소엔 확실히 울상이었는데
(자기야, 웃어야 웃는 얼굴이 되는 거야.)
한때 손을 잡고 다녔지
겨울 산 겨울 강
천하절경
로또부지
온 김에 보러 가자
대자연 뷰
같이 살자는 가짓부렁
믿는 발등 도끼 찍기
생이 별거니
코로나19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장례식장에서 나와
천변을 걸었다
마흔 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
답하지 못해서
좋아요
누를까 말까
이런 태그에 목매는 사람은 어떤 사람
(마흔살까지, 마흔살까지살아야해, 마흔살까지만, 마흔살까지만살자, 마흔살까지써야지)
크리스마스이브에
대궐 같은 옥탑에서 혼자 사는 중년 게이
우리 죽기 전까지 가까이
어울려 지내요
말을 받들었다
이 악물고
간다 아주 간다
개
죽음에
끌려 곧
곤두박질치겠지
아아 마시고 사무실에 들어가면서
똥 치우는 사람
개 얼굴에 (팀원) 은주 씨 얼굴을
주인 얼굴에 (팀장) 용희 씨 얼굴을 따 붙이고 싶네
크게 웃었다
한 번뿐인 인생
막 살자
막사막사 이런 건배사도 하는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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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받쳐 물 주기손 받쳐 물 주기 김현 실도라지 화분을 샀다. 죽일 거면서, 예전 같으면 생각 한 번으로 스쳐 갔을 테지만. 이번에는 달라. 살(리)고 싶어. 보랏빛 꽃바람에 흔들려도 투명했다. 영혼이 있니? 사람과는 달라. 나와는 달라. 짐승과도 달라. 꽃 파는 사람은 매일 물을 주세요, 빛을 충분히 쬐게 해 주세요. 내가 듣고 싶던 말을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 다음날 한 손 받쳐 물을 주었다. 이번 생도 망칠까 봐. 그 행위가 알려 주었다. 식물이 어떻게 인간을 깨우치는지. 볕 잘 드는 창가에 두고 보았다. 미동도 없이 하루가 지났다. 소파 위에 여러 권의 책을 펼쳐 놓고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기억해 둔 것. 그때 한덕수를 족쳐야 했는데. 손가락을 넓게 벌리면 물줄기 세차고 좁게 벌리면 가느다랗고 벌리지 않으면 물은 다른 행방을 찾는다. 손 받쳐 식물에 물주는 사람이 된다고 무얼 배우겠는가 중얼거리는 사람이 되면 알게 된다. 정성을 다해 가꾸지 않으면 죽는다. 우리가 그랬다.
- 김현
-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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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Ⅲ바다Ⅲ 김현 저는 지금 홀로 있습니다. 청정한 마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여전히 지난밤입니다. 지난밤에 벌어진 일은 적지 않을게요. 그날, 조용히 책장을 덮으며 제가 읊조린 말을 기억하시나요? 눈이 왔으면, 바다에 가고 싶다. 밤 기차를 타고 홀로. 완행으로. 작은 모래알로. 해변에 앉아, 눈, 눈, 눈, 눈 위에 갈매기 똥 바다, 바다, 바다, 바다 위 천사의 나팔 소리 홀로라는 메아리 되기. 홀로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잊은 채 살고 있다는 것. 지난밤에 나는 뛸 수 있었지만, 나는 헤엄칠 수 있었지만, 나는 건널 수 있었지만, 나는 변할 수 있었지만, 홀로 되면 더는 나를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그럴 땐 내 안의 나를 너라 부르고 너를 생각합니다. 안의 너. 아네가 이사 가자 합니다. 다 버리고 새살림을 차리자고 합니다. 아네의 헌 살림에는 너무 많은 구멍과 누수 자국, 그을음과 깨진 손톱, 눈물 부스러기 찍어 먹으면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마음에 벽지가 들뜨면 찢어 버리는 수밖에. 찢겨야만 드러나는 금빛 해변과 흰 파도의 나날. 홀로 노래하는 사람이 좋아요. 둘도 싫고 셋도 싫어요. 어쩔 땐 그래요. 눈이 와서 그래요. 눈 오는 날엔 우리 모두 홀로 내버려둬요. 그러다 죽어 버려도 모르게. 남모르게 하는 생각 속에 사는 짐승을 홀로라 이르면 아네는 기어이 자기 뺨을 후려칩니다. 천천히 차오르는 분홍빛 물듦. 청아한 눈물. 울려 퍼지는 메아리. 저는 지금 홀로입니다. 리얼 탄산 100% 청정 라거를 두 컵 마셨고 지난밤과의 사투 끝에 기어이 이 시를 적었습니다. 지나가겠지, 지나갈 리 없어. 쓰고 싶었는데 쓸 자리를 찾지 못하여 이렇게나마 당신께 보냅니다. 홀로 되어 네 발 달린 완행에 몸을 싣고 넘실넘실 안의 너에게 당도하거든 얼얼하게 말해 주세요. “여기가 끝이야, 다시 시작할래?”
- 김현
-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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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연옥은그날 저녁 연옥은 김현 어디든 가고 싶어서 가야지 하고 보면 남들 다 가는 금수강산 호박엿 장수가 8090히트팝을 틀어 놓고 (셀린 디옹의 마이 하트 윌 고 온 나옴) 가위 흔드는 산에는 늙은 멧돼지 (죽은 멧돼지 이미지 삽입) 멧돼지도 죽기 전에 아이고 스님 한 번 들어가서 날뛰는 절간 절간에는 스님 고기 먹는 어린 스님 그런 스님도 스님이랍시고 염불을 외고 그런 스님에게도 구원을 원하는 중생이여 그런 중생의 죽음이랄까 뭐 그런 비슷한 것이 휘청휘청 나부끼는 아침 (바람소리 삽입) 휘파람 불며 둥둥 떠가는 잠시 가만히 지켜보시죠 (한편, 지금 이 순간 다방에는 나란히 앉아 김난도의 트렌드 2022를 읽고 있는 어린 연인. 필기까지 하면서. 웃으면서. “이 사람도 옛날 사람.” “왜?” “요즘 사람들이라는 단어를 자꾸 쓰잖아.”) 떠돌다가 해 뜨는 강가에 앉네 한때 요즘 사람이었던 이 가까이 있을 땐 한 번도 돌아보지 않더니 애련하게 멀리멀리 가서 돌아보는 강에는 입질하는 붕어 밤새 붕어 잡은 사람 뜬눈으로 사는 어려움은 다들 알 테고 너나 나나(어린 연인도) 알 턱이 없는 건 그렇게 없이 어렵게 살아도 나중엔 남는 건 염원뿐 귤이나 까라 야 이 십장생아 시베리아야 에라 이 쌍화차야 염원이 지나쳐서 속이 훤히 보이는 사람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으며 영혼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장소 삽입) 죽은 이를 긍휼하면서 염병 속병이 나서 붕어를 고아서 잡수신 중생의 적막강산 어디든 절간이다 스님, 배를 따고 싶은 놈들이 몇 있는데 잠시 가만히 지켜보시죠 달궈진 무쇠 솥뚜껑에 삼겹살을 올리며 (산 멧돼지와 거니는 중생 이미지 삽입) 고기 굽는 스님을 보면서 “트렌드 하네요.” 거기 있었다
- 김현
- 202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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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니혼니 김현 오늘은 사평이 말했다 엄마, 바다 화났어? 아직 화났어? 사평은 난생처음 바다를 보고 꽃게를 보고 꽃게처럼 옆으로 걷다가 모래사장에 꽃게를 그리고 그 순간 죽을 때까지 기억하게 된다 그날 사평의 가슴에 남들은 모르게 슬픔이 밀려왔다 밀려가지 않았지 아직 어린 나이에 망망대해의 진리를 알 수 없을 텐데도 사평은 짐작했다 엄마, 엄마 냄새는 너무 예뻐. 아직, 예뻐. 사평은 파도가 높아 부모가 신선해물탕집에서 간장에 고추냉이를 너무 많이 풀어서 알을 먹다가 눈물바람으로 휘청거리는 걸 보고 들었다 여보, 이맘때면 자꾸 현이 오빠 생각이 나 그 오빠가 그렇게 쉽게 갈 오빠가 아닌데 어쩌다가 그리 쉽게 가냐 가길 여보, 저기는 참 어두컴컴하다 보이는 게 없네 여보, 이맘때면 자꾸 현이 언니 생각이 나 그 언니 그렇게 쉽게 갈 거면서 뭘 그렇게 어렵게 살았을까 여보, 우리는 모두 연약해 앞뒤가 꽉 막혀서 부모가 소주잔을 들고 우두커니 창밖을 보는 사이에 사평은 펄펄 끓는 해물탕에서 꽃게를 꺼내려다가 눈물이 터졌다 인생의 뜨거운 맛을 보았다 처음으로 부모는 사평 때문에 바다에서 멀어졌다 자러 갔다 꿈에서도 미더덕을 씹어서 입안에 물이 가득했다 엄마, 화났어? 아직 화났어? 사평은 부모가 신선하게 잠든 사이에 깨어나서 햇빛 창가에 앉아서 부모가 그리워하던 이와 대화했다 너도 부모 되어 알리라 사평은 놀라 검푸른 바다를 마음에 엎지르고 커나가리라 그땐 몰랐으나 사평은 부모의 슬픔 냄새를 그때부터 잊지 못했다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이었다
- 김현
-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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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한 인생의 고소미근면한 인생의 고소미 김현 주인님 오늘은 출근하며 저도 모르게 말해버렸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우수에 젖어서 바늘로 손목을 흠뻑 찔렀습니다 과연 제게 한이 있을까요 주인님은 한이 있는 사람을 매질하고 싶다고 하셨죠 울음이 없는 사람을요 매미 울고 작은 개 한 마리가 화단을 뛰어 다녔습니다 저는 죽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주인님은 싫어하시겠죠 살아 있는 것이 한을 쌓는 것이니까요 핏방울을 꿰뚫어보면 보입니다 저의 밑바닥 숙변이요 냄새는 지독해도 먹음직스러워서 주인님이 제 숙변을 저의 가장 나중 지닌 것으로 여겨 주면 간질이면 해죽해죽 웃었습니다 인간의 우주란 이토록 광활하지요 저는 주인님이 일하고 온 발가락을 핥으라고 하면 좋아요 어쩔 줄 몰라요 허공을 향해 불알을 까고 두 손 두 발을 들었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영롱하죠 맛있는 겁니다 인간사는 주인님은 저한테 그렇게 예쁘게 굴어 놓고 가정에서는 점잔을 빼고 앉아 시대와 역사를 고려하며 혀를 차고 욕을 하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홍동백서조율이시를 따지겠죠 하찮은 인간이라는 것 그게 제가 주인님을 따르는 유일한 이유랍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저만 흉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점심에는 매콤달콤한 주꾸미를 깻잎 위에 올려 먹으며 공 이사와 허 부장이 들려주는 지난한 노조의 역사를 청취하였습니다 노조 부심 오지고요 그런데도 공 이사는 전립선비대증에 시달리고 허 부장은 우울하여 개를 내다버렸습니다 그런 이들이 지난날 강성노조의 일환으로 투석하였다는 허풍선만으로도 알이 터졌습니다 식감이 재밌죠 알 중의 알은 임의 알 임의 알을 입에 넣고 굴려 보았습니다 어디까지 가나 가나 하니까 아주 가더라고요 태초로 임의 알에서 태어난 비굴과 치욕을 저는 어린 나이에 좋아했지요 대머리가 되려고요 그러니 주인님이 밤이면 밤마다 제게 가발을 씌울 때면 사타구니가 뻐근하고 눈물이 솟습니까 안 솟습니까 명색이 저도 과장인데요 저도 주인님의 갈라진 턱이 싫어요 핥고 싶어요 죽여주세요 다 먹었으면 일어나지 저는 쌈무 위에 마지막 주꾸미와 날치알을 얹어 먹으며 기원했어요 오늘은 임도 먼 곳에서 헐벗은 마음이길 거룩하게 다리를 들고 오줌을 찔끔찔끔 싸다가 눈물 육수가 터져 마음으로 흘러 건널 수 없는 강을 이루길 주인님 주인님에게도 버젓이 임이 있겠죠 어딘가로 흘러가 버린 둘이서만 하다가 셋이서도 하고 넷이서도 하고 인류애를 배우는 것이라고 하셨죠 그래도 오늘은 단둘이 해요 공이 허리를 숙이자 허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개새끼를 생각하노라 오늘은 세상이 참 아름답고 죽을래요 잠시라도 주인님의 밧줄에 목을 끼고 낑낑거릴래요 매질을 독점할래요 주중에는 고소하게 근면하게 살아 있었으니까요
- 김현
- 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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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마음 6조선 마음 6 김현 옛 남자를 생각한다 가령 낙엽이 멀어졌어 낙엽을 주었구나 옛 남자는 옛 생각을 말한다 불멸이 그것이다 지금은 닫혀 있으나 곧 열리게 될 저 물건의 뒤 유리창이 있다 지금은 부서지지 않았으나 훗날 부서지게 될 저 물건의 뒤에 허공이 있다 허공으로 붉은 옛날이 멀쩡히 지나간다 가령 낙엽이 멀어졌어 낙엽을 계속해 보겠니 옛 남자는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얼굴 노래하던 죽은 사람에 관하여 남는 시간을 내게 주세요 가령 낙엽이 멀어졌어 낙엽은 하얘지는구나 죽은 사람의 얼굴로 죽은 사람이 금이 간 불멸을 깨뜨린다 옛 남자는 옛 남자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제 희다 생각하며 슬프다 “좀 더 멀리 와, 좀 더 가까이.” 흩어진 꽃잎을 보았고 실수로 손목을 그었다. 비로소 실감났다. 잠이 깰 때까지 누워서 죽은 남자와 산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일만 지나면 더는 희고어둔지빠귀가 되지 않겠다. 순정이 떨어졌다. 순정은 어디에도 떨어지는구나. 순정은 어디에서든 밟히는구나. 남자는. 피곤한데 불을 꺼도 될까? 그럼. 너무 멀리 가지 마, 좀 더 가까이 와. 마음을 들어. 그 빈민가 같은 마음이 들어. 이곳은 아주 컴컴하고 희구나. 빛이 없구나. 어둠으로 환하구나. 잠이 들 때까지 산새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침묵이 흐르고 꽃나무를 흔들고 순정을 뚝뚝 버린다. 더럽혀질 거야. 불멸의 손목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남자는.
- 김현
- 201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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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마음 4조선 마음 4 김현 기도하자 속삭인다 비가 와 속삭인다 비가 와요 속삭인다 비가 오지 속삭인다 비가 오니 속삭인다 비가 기도를 지나올 때 그러면 기도하자 비의 숨통으로 들어가자 뼈만 남은 손목을 잡고 속삭인다 비의 숨통으로 들어가요 속삭인다 비의 숨통으로 들어가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단내가 나는 입술을 벌리며 속삭인다 비의 숨통으로 들어가자 달콤하게 속삭인다 비의 숨통으로 들어가면 비가 계속 내릴까 내리는 비는 딱 멈출까 비 사라지고 해 뜰까 그렇다고 기도하자 비의 숨으로 들어가고 비의 결에 서 있어 봐요 앙상한 손목을 손뼈에서 빼내며 속삭인다 이곳은 여전히 비가 와 그곳은 어때 잘 듣지 못하고 속삭인다 이곳은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어 그곳은 어때 들리지도 않게 듣지도 못하고 속삭인다 이곳은 아직도 비가 온다고 그곳은, 그곳은 어떠하기에 도대체 꺼져 가는 분수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어쩔 수 없어 기도하자 비 오는 예배당을 거닐며 속삭인다 이곳은 비가 멈춰 있다 비 사이에서 속삭인다 비는 아래로부터 딱딱해지고 먹구름은 공증인처럼 흘러간다 속삭인다 그곳은 어떠니 왜 아무런 말이 없니 비가 다 부러질 때까지 예배당으로 들어가지 않고 돌아설 거야 기다릴래 나도 갈래 예배당 문이 열린다 조선은 화사하다 텅 빈 해변에서 눈으로 와 속삭여 조선은 기도하고 조선이 기도하자 눈이 와 눈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밤은 두 눈으로 덮인다. 덮이는 것 위로 떨어지는 것. 떨어져서 합쳐지는 것. 합쳐질 때 토해 나오는 것. 눈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눈으로 속삭인다. 눈으로 속삭일 때 눈은 내려온다. 내려온 눈은 발등을 본다. 발등에 떨어지는 것을 본다. 발등에서 산산이 조각나는 것. 그것 비가. 비가 시작된다. 비로부터 시작되는 비가. 들이친다. 두 손을 모으고. 들을 수 있다. 소리를. 그 소리를. 조각나는 소리를. 조각조각 떨어지는 소리를. 그는 눈을 시작한다. 눈에 가까워진다. 눈으로부터 멀어질 수 없다. 그는 발등에 떨어진 눈동자를 본다. 발등의 눈은 얼굴의 눈을 본다. 비치는 것. 비추는 것. 비껴가는 것. 떨어지는 것. 멀어지는 것. 그것 노래가. 노래가 시작된다. 음으로부터 시작되는 노래가. 두 손을 모으고.
- 김현
- 201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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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적인 밤비인간적인 밤 1)2)3)4)5) 김현 밤이 떠돌아 왔습니다. 인간은 헐벗은 몸 어둡고 웅크린 인간의 욕조 속으로 들어갑니다. 처음 물이 닿은 인간의 발가락 끝부터 쑥빛 비늘이 쑥쑥 돋습니다. 인간은 오랜만에 미끈거리는 감촉에 젖습니다. 인간은 두 다리보다 지느러미에 맞는 생물이야. 인간은 되뇝니다. 인간의 침대에 걸터앉아서 인간은 목을 늘립니다. 늘어진 목과 머리는 인간의 둥근 밥상을 두리번거리며 불어터진 먼지를 쓸고 인간의 욕실까지 흘러갑니다. 흘러온 얼굴이 인간의 지느러미를 따라 흩어집니다. 인간은 아가미로 숨 쉬고 숨죽입니다. 인간의 호흡을 잃었구나, 인간. 인간의 표정이 백랍처럼 빛납니다. 인간의 어깻죽지가 납빛으로 찢어집니다. 점점 희미해지는 어린 인간이 찢어지는 인간 곁으로 와 앉습니다. 어린 인간은 자라나는 혀를 불규칙적으로 잘라내며 모처럼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발명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인간의 말을 하지 않아도 돼! 늘어난 인간은 더듬거리고, 사라지는 인간의 혀들은 꿈틀거리고, 변신한 인간은 한결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갖고, 멈춰 있습니다. 욕조의 수면이 밤의 수면까지 밀려갑니다. 돌아온 밤 고공은 기중기처럼 깊습니다. 인간들은 각자의 생활을 발견합니다. 인간들은 인간적이게 따로 놉니다. 인간이 곁에 없는 인간의 말은 뜻 없습니다. 인간들은 조용합니다. 침묵합니다. 그림자 없이 농성을 시작한 한 유령이 집으로 들어와 촛불의 노동을 밝힙니다. 인간 인간 인간은 마침 표 사라집니다. 1) 인간들로부터 밤은 왔다 2) 이 밤 인간들의 집회는 시인을 앞장세운다 3) 밤의 인간들은 우리도 인간이 되고 싶다는 불구의 구호를 외친다 4) 한 소설가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어느 밤에 대한 인간이란 시를 쓴다 5) 인간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밤으로 유령 한 자루가 꺼질 듯 걸어가고 있다
- 김현
- 20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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