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곡차곡 차분차분
- 작성일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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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차분차분
유병록
눈이 내린다
차갑고 포근하게 세상을 덮는다
누구든 용서할 수 있다면
아무도 죄를 묻지 않는다면
이런 밤이리라
말하는 것만으로도 얼마쯤 용서받는 기분이 드니까
아무도 없는 눈밭에서
용서받지 못한 일을 늘어놓고 싶다
눈밭에 잘못을 차곡차곡 써둔다면
푸른 싹이 돋을 때쯤
죄책감도 다 녹아 사라질까
용서할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잘못은
무릎이라도 꿇고 뉘우쳐야겠지
그럼 좀 나아지겠지
지금껏 지고 다닌 죄를 내려놓고
조금 가뿐한 마음으로 걸어 다니고 싶다
눈 차분차분 내리는 날
그리하여 순백의 마음을 간직하는 날
어떤 죄도 용서받을 것만 같은 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용서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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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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