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
- 작성일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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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
김지민
아버지와 경포호를 걷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
그럭저럭요
호수는 지겹도록 넓다
근처에는 허난설헌이 살았던 집터가 있고
그는 내 나이에 죽었다
머리 위로 볕이 쏟아진다
나를 늙게 하는 햇볕
가능한 한 깊숙이 쬔다
만나는 남자는 있니?
그런 거 없어요
정말?
할 말이 바닥났는데
호수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술은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그럼 내가 무슨 재미로 사니?
아버지가 해쭉 웃으며
나를 앞지른다
재밌자고 사는 저 뒤통수가 내 아버지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짓이기며 걷는다
호수가 참 온화하지 않니?
그런가요
호수는 빛을 받아 고요히 웅성거리고
바닥을 드러내는 호수를 보고 싶다
호수가 가려 둔 바닥을
난도질당한 빈터를
보여주고 싶다
아버지가 쩍 하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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