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로 꿰맨 사람
- 작성일 2025-11-01
- 댓글수 5
전기로 꿰맨 사람
천선란
그녀에게서 답장이 온 건 3개월 만이었다.
답장이 늦었습니다.
그녀에게 여러 차례 메일과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잊고 있던 희에게 달랑 저 한 문장 쓰인 메일 제목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희는 로그인된 메일이 업무용 메일이 맞는지, 실수로 개인 아이디로 로그인한 것은 아닌지 다시 확인했다. 아주 가끔 희의 핸드폰과 PC가 연동되며 PC의 로그인 정보가 희의 개인 정보로 전부 변경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개인 메일이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연락을 간절하게 기다리지 않았기에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로그인은 업무용 아이디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광고성 메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희가 메일을 클릭했다.
고민이 길어져 답장이 늦었습니다. 업무에 지장이 생기진 않았을지요.
개인 메일로 연락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담당자님이 먼저 읽으시고, 판단하시길 바라서요.
괜찮으시면 이 메일로, 담당자님 개인 메일 주소로 답장 주세요.
내용을 보자 당혹스러움이 더 짙어졌다. 메일의 미궁이 더 깊어진 기분이었다. 광고성 메일은 아닌 듯했고, 그렇다면 피싱 메일인가? 이런 식으로 지인인 척 혹은 중요한 메일인 척 개인 메일을 알아내려는 수단일 수도 있겠다. 이 시대의 피싱이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의심해서 나쁜 건 없었다. 이전에 주고받은 메일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면 편했겠지만, 데이터 용량 기준법이 시행된 뒤로 메일을 한 달에 한 번씩 전부 비워야 했다. 이전 내용이 없는 것을 보고 희는 제목의 ‘늦음’이 적어도 한 달 이상 되었다는 걸 그때야 알아차렸다. 정말 급한 일이었다면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재차 독촉하는 메일을 희가 보냈을 것이다. 희는 그 메일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원칙대로라면 쓰레기통을 바로 비워야 했지만, 알 수 없는 찜찜함에 희는 ‘1’이 표시된 쓰레기통을 그대로 두었다.
메일의 출처가 떠오른 건 그날 점심시간이었다. 팀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칠 즈음 희는 오전에 왔던 의문의 메일을 대화 소재로 꺼냈다. 아무래도 신종 피싱 수법인 것 같다는 희의 말에, 팀원 막내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맞을 거라고 맞장구쳤다.
막내도 몇 달 전 이런 식의 피싱을 당했었더랬다. 자신이 ‘신체 포기자’인데 ‘자원소비세’가 독촉 메일이 자꾸 온다는 항의 메일이었다. 너무나도 옴 직한 내용의 메일이었기에, 막내는 의심 없이 답장했는데 머지않아 욕설이 가득 담긴 메일이 도착했다. 자원소비세를 내지 않기 위해 신체까지 포기했는데 독촉 메일을 받았다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고 공무원들의 안일함과 무능함을 정치 스트리머들에게 알릴 거라는 협박과 함께 이 사태를 막고 싶으면 개인 메일로 답장하는 끝말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개인 메일로 답장했느냐며, 동기가 묻자 막내는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스트리머들에게 잘못 걸리면 안 그래도 자원소비세가 시행된 이후 끊임없이 이어져 오던 불만이 자칫 시위나 폭동으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겁에 질린 투로 말했다. 고작 말단 공무원의 실수 한 번으로 사태가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번질 거로 생각한 것이 우스우면서도 또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은 걸 생각하면 그 순간 막내가 느꼈을 두려움이 안쓰러워지는 거였다.
자원소비세가 시행된 지 15년이 흘렀다. 한정적인 지구의 자원을 아껴 쓰기 위한 인류의 마지막 정책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3세가 되기 전까지는 자원소비세를 내지 않지만, 이 시기에 필요로 하는 각종 검사와 접종은 보험 항목에서 제외되었고 전부 개인이 감당해야 했다. 영유아 생존율은 그해 전 세계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3분의 1가량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아이들은 4세가 되는 순간부터 자원소비세를 내야 한다. 자원소비세는 1가구 단위로 책정되었고, 나이에 따른 차등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1가구의 자원소비세는 1가구 수입의 절반이었다. 내지 않으면 보급품을 받을 수 없다. 가족 수를 속이는 곳도 있지만 그래봤자 신고된 가족 수만큼의 보급품만 지급되기에 보급하는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한정된 자원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잔머리는 치사했고, 이런 환경에서 난처한 사람들을 꿰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머리는 비상했다. 누군가 자신의 핸드폰에 자신을 ‘업로딩’한 후 자신의 자원소비세를 내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고, 그가 자원소비세를 내야 하느냐 마느냐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는데 국제 법원에서는 그가 존재함은 맞지만(하여 투표 및 정당 활동, 온라인을 통한 경제활동이 모두 인정되었다), 지구의 자원을 소비할 필요가 없는 상태임을 인정하여 자원소비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날을 기점으로 자원소비세의 원래 명칭이었던 ‘생존세’는 그 형태를 더 분명하게 하려고 지금의 ‘자원소비세’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뒤로 세상은 엉망이 되었고, 희는 생각했다. 자원소비세를 내지 않기 위하여 신체를 완전히 포기하고 업로딩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 정도 선이었으면 좋았으련만 한 번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지자 그것이 가지를 뻗으며 기존에 없던 형태의 ‘존재’를 만들며 무한히 증식하기 시작했다. 미납된 자원소비세를 수급하는 희의 단순했던 업무가 복잡해진 것도 이 탓이었다. 희의 부서 전체가 자원소비세를 납부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 지를 구분하는 판별사가 되었다. 너무 많은 사례로 국제 법원은 손을 놓은 상태였고, 사람들은 각양각색으로 존재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삶을 포기하는 것과 신체를 포기하는 것은 묘하게 닮아 있었기에 희는 ‘이제 나에게는 몸이 없다’고 말하는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마다 명복을 빌어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고는 했다.
어쨌거나 형국이 이러하니 막내가 느낀 섣부른 두려움을 이해 못 할 바 없었다. 그래도 꼬박꼬박 자원소비세를 내고 있었으므로 본인이 가진 자산 자체가 원체 없던 덕에 많은 돈을 뜯기지는 않았다고 웃으며 말하는 막내에게 어정쩡하게 웃던 희에게 다른 팀원이 문득 물었다.
참, 선배 그건 어떻게 됐어요?
뭐?
예전에 인격을 분리한 사례요. 자원소비세를 두 명분을 받는 게 맞는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 의문이 짧게 스침과 동시에 희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사례가 뇌리를 스쳤다. 자리로 복귀하자마자 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쓰레기통 ‘1’을 도로 살리는 것이었다.
너무 늦게 답장하여 연락해 주실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개인 메일로 답장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 정보를 노출하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 우리의 용건이 끝나면 담당자님과 나누었던 메일은 전부 영구 삭제하고 메일 주소도 폐기하겠습니다.
담당자님이 그러셨지요. 모두가 신체를 포기하는 시대에서, 애써 신체를 가지려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요. 그러니까 굳이 식구 한 명을 늘려 자원소비세를 더 낸다는 것이. 이해합니다. 무슨 뜻인지도 잘 알아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떤 이들의 삶에서는 그렇게 인정받아 내 몫의 목숨값을 낸다는 게 더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아직 저희 같은 선례가 없는 걸로 압니다. 그러니 담당자님의 결정이 이 사례의 길잡이 되겠지요. 단언컨대 우리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와 같은 사례들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그게 이 시대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구의 수가 줄어야 하는 상황에서 아메바가 몸을 찢듯이 인간이 증식하는 게 좋은 방향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할 수 있는 한 담당자님을 설득하고 싶어요.
저희 말을 듣고 싶으시다면 회신해 주세요. 없다면 아닌 줄 알고 연락하지 않겠습니다.
3개월 전, 여태껏 미납된 자원소비세를 신체 포기자가 되었으니 납부하지 않겠다는 반발 속에서 그녀의 메일만은 정반대의 제목으로 등장했다. 신체가 생겨 자원소비세를 납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희는 잘못 읽은 줄 알고 몇 번이나 눈으로 제목을 훑었고, 나중에는 소리 내 읽어 보기도 했다. 문장은 처음 이식했던 내용 그대로였다. 모두가 신체를 포기하던 시대에 누군가는 신체를 얻었다. 모두가 자신의 정신을 업로딩하는 시대에 누군가는 신체에 하나의 정신을 남겨 두기 위해 분투했다. 그녀의 몸에는 두 개의 인격이 있었고, 업로딩 기술을 활용하여 드디어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함께 한 다른 자아를 분리했으며 그녀는 새로이 신체를 얻은 분리된 자아였다.
당시 희는 그녀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위해 노력했으나 세계 어디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은 없었다.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부모가 자원소비세를 줄이기 위해 한 명을 출생 신고하지 않아 뒤늦게야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신고한 사례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말대로 희의 판단이, 그녀에게서 자원소비세를 납부하게 한다면 그녀의 자아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사례가 될 거였다. 하여 희는 며칠 동안 그 문제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팀원들에게도 쉬이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적은 문장에 이 모든 일들이 결정이 나기 전까지 비밀리에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간절함이 내포되어 있음이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토록 조심스러운 일일까. 어느 방면으로 생각하든 신체를 포기하는 것보다 신체를 얻는 것이 더 좋게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각자가 겪은 세상의 태도가 다르기에 희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며칠의 고민 끝에 희는 솔직하게 부담된다고 답했다. 혼자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니, 팀원들에게 이야기해도 되겠느냐고. 그러자 그녀에게서는 몇 시간 되지 않아 답이 도착했다. 이 문제가 그만큼 어려운 문제냐고 묻는 한 줄이 고작이었다. 희는 단출한 문장에서 그녀가 상처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어려운 일. 누군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원래 이토록 어려웠던가. 미안하게도 희는 메일을 받은 직후 더더욱 누군가의 의견이 필요해졌고 그때 처음 팀원들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꺼냈다. 팀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미적지근했다. 그런 사람도 있구나‧‧‧ 세상이 진짜 어지럽다‧‧‧ 어렵겠어, 희, 어쩌다 그런 민원이 걸린 거야‧‧‧.
희의 장기에 걸려 소화되지 않은 단어는 ‘어쩌다’였다. 그 단어는 마치 이것이 희에게 예기치 않게 찾아온 교통사고처럼 느껴지게 했다. 그 단어 뒤에는 묵음으로 처리된 ‘재수 없게’라든가 ‘귀찮겠다’ 따위의 단어가 붙어 있었다.
희는 그날 잠을 자지 못하고 자신에게 사고 같은 민원에 대해 고민했다. 우연히 닿은, 혹은 세상의 의도로 인해 닿았을지도 모르는. 어떤 방향으로든 희가 알게 된 타인의 삶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번거로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상해(傷害)를 입혔다고 판단해도 되는가. 타인의 삶을 그렇게 쉬이 준법과 도덕성이 결여된 삶으로 치부해 버려도 되는가.
희는 다음 날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괜찮다면 당신의 처지를 조금 더 자세히 들려줄 수 있겠느냐고. 그게 조금 중요하다고. 사실 그런 사연 따위는 서류상에 한 줄도 남지 않겠지만 희는 상대방에게 제 질문의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닷새가 지났을 때 희는 그녀가 답이 늦는 것이 아니라 답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임을 깨달았고, 자신의 옅은 수가 탄로 난 것이라는 짐작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부끄러움이 그 상황을 빨리 잊게 했으리라. 3개월 만에 온 그녀의 답장을 보고도 이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것을 보면. 희는 궁금해졌다.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그녀도 잊은 것일까. 아니면 고민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거대한 변화에 잠시 휩쓸렸다 돌아온 것일까.
그녀가 그때처럼 돌연 잠적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에게서 답신이 올 때마다 희는 안도했다.
말을 정정해야겠군요. 저희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였지만 결과적으로 분리된 건 저니까요. 제가 겪은 경험은 그 아이는 모릅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철저하게 나누어진 거죠. 각자가 된 거예요. 타인이 되었다는 거죠.
우선 제 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지요. 와서 직접 보는 것도 좋겠지만, 저는 지금 외딴섬에 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서해의 섬 중 하나예요. 침수가 일어나기 전에는 육지와 다리로 이어져 있던, 국제 공항이 자리했던 거대한 섬이었어요. 찾아보기로는 하루에 몇백만 명이 모이기도 하는,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공항 중 하나였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섬이 참 기이하다고 생각했어요. 기다란 콘크리트 도로가 있고, 그 양 끝이 바다와 이어져 있어요. 마치 용궁으로 가는 길처럼요. 걸어가면 죽지 않고 다른 세계로 도착할 것만 같은 반듯한 길처럼요. 확신해요. 누군가는 길을 따라 걸었을 거예요. 죽었을지 아니면 정말 다른 세계에 도착했을지 알 수 없으니 저는 후자라 생각합니다. 세계의 길이 다 끊긴 이 시대에서 이 길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직접 보지 않는 한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나는 이곳에 혼자 삽니다. 사람이라고는 없어요. 거울 속의 나만이 내가 만나는 유일한 타인이에요.
바다로 이어지는 길과 갈대밭이었던 들판, 진흙이 뒤덮인 땅, 나룻배 하나를 전부로요. 건강한 성인의 몸으로 천천히 걸으면 40분 정도면 섬 외곽을 다 둘러볼 수 있는 크기입니다.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나요? 제 걸음으로는 세 시간 정도 걸려요. 조금씩 빨라지고 있지만,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에요. 걷는 건 단순 반복이지만 그 순서가 잘 지켜지지 않으면 너무 쉽게 균형을 잃거든요. 무릎의 각도, 각 근육에 힘을 주어야 하는 순서, 발목의 힘, 발바닥의 균형 같은 것들요. 하나하나 다 신경 써야 하죠. 그래봤자 고작 넘어지고 말 뿐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어쩌면 저는 영영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신발을 신지 않고 걸어요. 사실 걷는 것에는 발을 잡아 주는 신발을 신는 것이 더 좋겠지만, 양쪽 발 크기가 달라서 마땅한 신발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도 좋아요. 특히 진흙을 밟을 때요. 부드럽고, 미끄럽고, 간지러우면서도 질퍽하고 마치 내면을 어루만지는 듯한 묘한 감촉을 느껴요. 발가락 사이사이로 새어 나온 진흙을 볼 때마다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나에게도 나만의 발가락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요.
진흙에서는 삶의 증명을, 콘크리트 길에서는 삶의 위안을 얻어요. 일이 틀어지면, 삶이 틀어지면, 내 선택에 후회가 밀려오면 저 길을 걷겠노라. 다짐하며 버텼거든요.
이렇게 말하니, 마치 제가 한 번도 몸을 가져 본 적 없던 것처럼 들리겠네요. 그건 아닙니다. 온전히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몸이, 제게도 있었어요. 하지만 몸은 온전히 내 소유가 될 수 없을 때 불행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말인지 의아해하시겠지만 간단해요. 담당자님의 몸을 누군가 묶어 버린 것. 눈을 뜰 때마다 내 몸에 낯선 흔적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매번 몸과 적응해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내 몸인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번복하게 되는 것. 나는 살아 있었지만 그런 몸을 가지고 있었어요. 생각이랄까, 기억이랄까, 감각이랄까, 자아랄까 그런 게 생겨서 내가 나를 인식할 수 있었던 순간부터 나는 또 다른 나와 하나의 몸을 썼어요. 모두가 부정했지만, 우린 둘이었어요.
희는 그녀가 사는 곳을 찾아봤다. 위성사진으로 본 섬은 그녀의 말대로 아주 작은 섬이었다. 침수 이전의 위성사진과 비교해 보면 그 크기가 1/100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위성사진 상으로는 다섯 가구 정도가 모여 있는 듯 보였지만, 10년 전에 저장한 후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사진이었다. 이제 저곳은 그녀 빼고 아무도 살지 않는 걸까. 희는 외근을 신청할지 잠시 고민했다. 미납자를 직접 찾아가 독촉하는 것은 고루한 방식이지만, 이따금 기재된 정보와 주거지가 다른 경우, 혹은 고독사한 경우가 종종 있어 방문 독촉은 사라지지 않는 방식 중 하나였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확인 필요’ 이 네 글자면 바로 승인이 날 거였다.
하지만 희는 선뜻 그 네 글자를 쓰지 못해 망설였다. 마치 감추고 싶어 하는 그녀의 정체를 세상에 까발리는 기분이었다. 누구도 외근의 사유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희는 자신이 그녀를 이토록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 퍽 우스웠다. 동정인가? 그런 것이라면 정말 꼴불견인데. 자신을 투영하는 건가? 동정하기 위해 억지로 만든 이유와 다를 바 없었다. 희는 키보드 위에서 머뭇거리는 손을 보았다. 그녀가 쓴 문장들을 떠올리며, 그녀가 자기 몸이라는 것을 매일 확인해야 했던 날들을 가늠해 보았다. 그녀가 예측한 것처럼 그녀의 말들은 희에게 모호하고 의아하게 다가왔다. 그와 동시에 어느 한 편으로는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건 기만일까.
희는 외근 신청을 하지 않았다. 내일은 주말이었고, 그녀가 사는 섬은 희가 머무는 지역과 멀지 않았다. 차로 세 시간을 달리면 섬과 맞닿은 서해에 도착했다. 바다를 어떻게 건널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도착하면 분명 그곳에 닿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다.
길은 어디에나 있으므로.
닿는 곳이 전부 길이므로.
우리가 분리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우리의 목표는 그것뿐이었어요. 각자의 꿈은, 각자의 몸을 가지게 됐을 때 꾸기로 약속했어요. 아니, 약속보다 규칙에 가까웠습니다. 생존 수단이란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은 부풀고, 부풀면 겁이 없어집니다. 겁이 없어지면 나아가고 싶고, 나아가면 달리고 싶고, 달리면 꿈꿔 왔던 대상과 혹은 어떤 상황과 빠르게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그렇게 욕심이 자라나죠. 욕심은 고통을 잊게 합니다. 모든 걸 망각하게 만들고요.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불가능함을 탐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매우 위험한 감각입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사례를 찾아봤거든요. 분리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욕심을 낸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억지로 떼어 내려다가 혼수상태에 빠져 10년이 다 되어 가도록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든가 혹은 잘못해서 분열 증세가 더 심각해져 손 쓸 수 없게 되었다든가 한 번 심장이 멎었다 돌아오면 자아가 하나만 남게 된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믿고 행했다가 정말 죽어 버렸다든가. 이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아서 꿈을 가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꿈은 하나였지요. 안전하고 완전한 분리.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먼저 병원에 분리 수술을 등록해야 합니다. 이 과정도 꽤 복잡합니다. 병원을 선택해야 하는데 분리 수술이 가능한 병원 전 세계에 세 곳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몽골에 지어진 한국이 운영하는 병원입니다. 저희는 몽골 병원을 선택했습니다. 가장 가깝다는 이유였습니다.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공통의 꿈에 도달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두 명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각종 뇌파 검사와 관찰 검사를 열흘 동안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우리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과정에서 증명되지 못해 돌아가는 경우가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렇게 증명하고 난 다음에는 100페이지가 넘는 파일이 옵니다. 경고와 동의란에 지겹게 서명하고 영상 자료 따위를 6시간가량 수료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들어갑니다. 영상은 절차와 이후의 부작용 따위를 설명하는 영상이었는데 담당자님도 큰일을 앞둔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어 보셨을 테니 잘 아시겠지요. 일을 앞둔 상태에서는 그런 것 따위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것을요. 그저 설렜어요. 드디어 내가 되는구나.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육체로부터 분리되기 전에 각자의 기억을 만들고 분리하는 기간을 가집니다. 들판에 울타리를 짓는 행위지요. 분리되기 전부터 기억의 독립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분리됐을 때 기억과 자아가 스펀지처럼 듬성듬성 구멍이 난 기분이랍디다. 그러다 자칫 서로 중첩되는 기억 앞에서 그 기억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려야 하는 상황도 오고요. 그 과정에서 싸움은 물론이거니와 살인까지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내 삶인데, 내가 겪고 뚜렷하게 기억하는 순간인데, 나와 감정을 나눈 사람인데 내 것이 될 수 없다니요. 그건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니까요. 해서, 우리는 병원에서 짜 준 일정에 맞춰 움직입니다. 자아를 전환 시키기 위한 약도 함께 주지요. 자고, 먹고, 마시고는 시간까지 초 단위로 짜여 있는 일정입니다. 어떤 이를 누구의 지인으로 둘지도 세세하게 분류하는 작업도 합니다. 교집합은 있을 수 없어요. 아쉽지만 몇몇 지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그때 해야 했어요.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살아 있지만, 존재하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건 참 이상하지요. 비단 이런 관계나 감정을 우리 시대만 느낀 건 아닐 겁니다. 더 예전에는,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전쟁 같은 이유로 영영 이별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방식만 바뀔 뿐 이별은 어디에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벗어날 수 없고요. 그래서 그런가.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지는 시대가 되어도 인간의 인식과 사상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것은 생각이나 경험 같은 관념적인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 생각보다 우리는 더 몸이라는 형체에 지배받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한때 가장 고민했던 것도 이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몸이 있었지만 동시에 없기도 했습니다. 온전한 몸을 소유하지 못했기에 오랫동안 존재를 부정당했습니다. 동시에 저 역시 온전한 몸을 가진 적이 없기에 몸을 소유한 인간들의 보편적인 생각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원소비세를 내지 않기 위해 신체를 포기한 자들이 나오는 시대지요. 그 비율이 전제 인구의 11%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의 삶이라든가, 온라인 범죄의 형태라든가 사회의 문제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몸이 없음에도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잡히기도 했죠. 몸을 가져 본 적 있던 기억이 거짓 욕망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감각을 흉내 내고 싶어서. 그리고 불안전한 우리의 뇌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고 쾌락을 느낀다고, 감각이 살아 있다고, 몸이 있다고 망상합니다. 그러니 잊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육체가 필요합니다. 뇌가 이전의 몸을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요.
저는 새로운 몸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녀가 살고 있다는 섬으로 가기 위해 막 집을 나서던 참이었다. 팀원 막내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그녀에게서 온 메일이 정말 범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희의 업무용 메일에 접속했다고 고백했다. 막내는 미안하다고 덧붙였지만 업무용 메일은 팀원이라면 언제든 서로의 메일을 열람할 수 있도록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정해져 있었으므로 원칙적으로는 미안해할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막내는 희가 자신처럼 당할까 싶어 걱정되어서 그랬다고 변명을 길게 덧붙였는데 지금 희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보다 보니 메일이 익숙한 거예요. 그래서 제 메일도 찾아봤거든요. 그분 제 담당이었어요. 그러니까 아마도 몸이 하나였을 때‧‧‧. 근데 그분요, 한 달 전에 사망 처리되었거든요. 물론 메일에 쓰인 것처럼 인격을 분리해서 두 사람이 된 거면, 메일을 보낸 사람은 살아 있을 수도 있는 건데‧‧‧. 찜찜해서요. 선배 막 그 사람 만나러 가거나 그러려는 거 아니죠?
나루터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리는 아주 작은 정박지가 보였다. 배는 요트 한 대였다. 꾸벅꾸벅 졸고 있던 요트 주인이 희의 기운을 느꼈는지 몸을 일으켰다. 희는 그런 요트 주인에게 인사했다.
만나기는 무슨.
그렇게 대답하고 막내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희는 요트 주인에게 다가갔다.
섬으로 가고 싶은데요. 되나요?
어느 섬요? 여기 섬이라고 부르는 것만 육백 개가 넘어요.
공항이 있던 섬이랬어요.
아아. 그거 있는 곳‧‧‧.
주인은 바로 알아들은 모양으로 혼잣말하더니 희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표정에는 정말로 그곳에, 혹은 그것을 만나러 갈 생각이냐는 질문이 깃들어 있었으나 희는 꿋꿋하게 모르는 척했다.
선불요. 여기.
주인이 큐알 코드가 새겨진 판을 내밀었다. 편도는 6만 원이었고, 왕복은 10만 원이었다. 갔다가 언제 다시 나올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자, 주인은 그 밑에 적인 전화번호로 전화 주면 데리러 가고, 그때는 왕복비용으로 결제되니 총 16만 원을 보내면 된다고 했다. 바가지를 쓰는 건지 아닌 건지 전혀 짐작되지 않았으므로, 희는 군말 없이 16만 원을 송금했다. 주인은 10분만 기다려 달라 말했고 희는 그 사이에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
지금 배를 기다리고 있어요.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찾아가서 당황스럽다면 미안해요. 하지만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어요. 불편하면 지금이라도 말해 줘요. 바람 쐬러 왔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또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어요. 다른 자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당신, 괜찮은가요?
몸을 포기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꼭 삶을 포기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 말이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던 초기에는 어쭙잖은 위로 따위를 건넸다. 언뜻 들으면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화를 냈고, 누군가는 고맙다고 했고,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심드렁한 말투로 딴소리를 했다. 반응이 너무 각양각색이어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반년을 겪고 나니, 희는 문득 몸을 잃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유난스러울 일인가, 싶었다. 존재함을 몸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지났다. 어떤 이는 몸을 소유한 채 죽어 있고, 어떤 이는 몸에서 벗어남으로써 살아 있음을 느꼈으며, 어떤 이는 살기 위해 몸을 버렸다. 죽음은 이제 살아가는 것들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는 또 다른 그녀의 죽음에서 더한 해방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정비를 마친 주인이 희에게 구명조끼를 건넸다. 얼핏 봐도 잠잠한 바다를 보며 희가 구명조끼를 입었다. 모터는 고요하게 돌아갔고, 배는 미끄러지듯 바다를 가로질렀다. 시냇물에 천천히 떠내려가는 나뭇잎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섬들이 수위 낮은 냇가에 비죽비죽 머리를 내민 것처럼 줄지어 있었다. 그중에는 학교 운동장만 한 크기의 아주 작은 섬들도 많았는데, 천막이나 텐트가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 빨래건조대나 그릇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고 있는 듯했다. 그런 섬들을 가만 바라보던 희는 문득 누군가 주시하는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로 텐트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후다닥, 몸을 숨긴 형상을 발견했고 곧 그런 시선이 한 사람이 아닌 수십 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카프카 「변신」, 알아요? 소설.
네, 알죠.
여기는 다 그런 벌레가 살아요. 본인들이 스스로 그렇게 불러요. 어렸을 때 개미나 잠자리 같은 벌레들 다리나 몸통 뜯어 본 적 있죠? 그거 하나 뗀다고 안 죽잖아요. 여기 사는 사람들도 그래요.
숨어 사는 몸짓들. 도시의 가장 어둡고 좁은 곳을 파고들어 기생하는 쥐나 벌레와 같은 삶들. 그런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육체를 포기하지도, 삶을 포기하지도 못해 몸을 둥글게 말아 벌레가 되어 버린 사람들. 희의 일터에서는 장기 체납자들을 바퀴라고 불렀다. 살아는 있는데 도저히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도시에 기생하며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사는 사람들을···. 희는 자신이 그 용어를 써 본 적 없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정말로 저들을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희는 이곳에 있을 수 없었으리라. 연민이나 동정, 정의가 그런 마음을 차단한 것은 아니었고 희는 그저 무심했을 뿐이다. 자원소비세라는 것을 애초에 누가 내고 싶어 하겠냐는 마음뿐이었다.
희는 저들이 보내는 적의 가득한 시선에 자신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애써 생각했다. 허리와 어깨에 더 힘을 주었다. 당신들을 궁지로 내몬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그녀에게서 메일 답장이 온 것은 희가 그것과 눈이 마주쳤을 때였다. 메일이 도착한 진동을 느꼈음에도 희는 그것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이곳에 있던 다른 벌레들(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애석하지만)과는 달랐다. 그것은 금속과 가죽 따위를 전선으로 꿰어 조합된 기괴한 것이었다. 로봇이나 짐승으로 분류할 수 없는, 괴물이랄까 미지의 존재랄까 그런 표현만이 설명할 수 있는.
몸을 포기했다가 되찾은 사람입니다.
주인이 말했다.
되찾은···? 신체 포기자들 말인가요?
그렇게 부릅니까? 뭐, 단어 뜻은 맞네요···. 정신을 저 어디로 보내 놨다가 후회하고, 다시 몸을 가지고 싶은데 이미 태워 버렸을 거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저기 버려진 것들 주워다가 전기로 엮은 거요. 낮에 봐도 기절해요. 생긴 게 너무 기괴해서. 그래서 다 여기 숨어 사는 거요.
그녀가 사는 섬은 멀지 않았다. 주인은 돌아올 때 연락 달라 말하고 그 소리 없는 요트를 끌고, 또다시 시냇물에 떠다니는 낙엽처럼 멀어졌다. 희가 섬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바다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길이 펼쳐진 섬이었다. 옅은 해무가 끼어 있었다. 집은 바로 보이지 않았다. 희가 해안을 따라 걸으며, 그녀의 메일을 읽었다.
이렇게 빨리 찾아와 주실지 몰랐습니다.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고맙습니다. 담당자님이 온다는 말을 보자마자, 제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온기가 무엇인지 너무 오래도록 잊고 있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맞아요. 그 이야기를 가장 먼저 했어야 당황하지 않으셨을 텐데. 조금 더 이야기를 주고받고서 솔직하게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저를 만나기 전에 모든 걸 아셔야겠지요. 그래야 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실 테니 말입니다.
죽었습니다. 우리가 분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요. 저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알았더라면, 제가 그 몸을 가졌겠지요. 그럼 그 아이의··· 어쩌면 나의··· 죽음을 막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사건이 있었어요. 인격을 분리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망설이지 않고 곧장 수술을 신청한 것은 사건 때문이었어요. 그 아이가 몸을 사용하고 있을 때 일어났던 일이라, 저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몸을 통해 알고 있어요. 온전히 그 아이의 기억에만 머물러 있는 사건이고, 그 아이는 저에게 그 사건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몸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그것은 서서히 저에게 전이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겪은, 원치 않았던 관계와 폭력. 상처보다 깊은 감각이 몸에 새겨집니다.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함에도 불쑥불쑥 몸의 감각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아려 왔습니다. 그 아이는 결단을 내렸어요. 이 고통을 공유하지 말자고요. 저는 처음에 반대했습니다. 우리는 둘이지만 하나라고, 고통을 너 혼자 감당하지 말라고요 하지만 그 아이는 강경했습니다.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저와 분리되면 죽을 다짐을 했던 모양일 테지요. 죽음은 강력하고 선명해서 그것을 결심하면 오로지 그것만 보입니다. 이것 역시 그 아이에게서 간접적으로 얻은 감각의 깨달음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며, 처음의 저는 몸을 포기했습니다. 이 몸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이지요. 내 기억과 경험이 아니니 두고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몸은 괴롭고, 고통을 수반하고, 증명해야 하고, 계속 평가되는 불필요한 것입니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분리되었고 저는 몸 없는 삶을, 삶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를 상태로 존재했습니다. 그러다 제 몸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알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몸이 비어 있는데, 그 몸을 쓰겠느냐고요. 저는 병원에 부탁해 죽은 몸이 조금씩 부패해 가는 걸 지켜보았습니다. 굳어 가고, 썩어 가고, 말라 가는 것을요. 그리고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몸이 썩었을 때 애석하게도 나는 몸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그 고통의 감각도, 잊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명감이었을까요. 아니면 분노였을까요. 어쨌거나 나는 존재하고 싶었습니다. 몸을 가진 채로. 그래서 현재에 와 있습니다.
놀라실 겁니다. 악몽이 될 수도 있어요. 제 몸은 금속과 짐승의 가죽을 전기로 꿰어 만들어졌습니다. 몸을 되찾는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몸에는 전류가 흐르고, 체온은 없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런 몸으로도, 그 아이가 느꼈던 고통의 감각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나는 밤마다 아린 몸을 끌어안습니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그 고통의 감각이, 그 아이의 존재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감각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감각이 되었습니다.
저를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두려워 말고 문을 두드리십시오. 그리고 제가 정말 이곳에 있는지, 존재하는지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희가 집 앞에 섰다. 망설이지 않고 문을 두드렸고, 그곳에서 전기로 꿰맨 그녀를 만났다.
주말이 지난 후, 희는 그녀에게 자원소비세를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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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같은 이름을 지어 주면 오래 산다사람 같은 이름을 지어 주면 오래 산다 임아라 그가 돌을 키우자고 했을 때 나는 딸기를 먹고 있었다. 케이크에 얹은 것치고 과즙이 실해서 턱이 저릿했다. 나는 테이블 매트에 포크를 내려놓고 오른뺨을 어루만졌다. 입안에 머금은 걸 삼켰는데도 신맛이 가시질 않았다. 어금니에 들붙은 씨가 거슬려서 자꾸 혀끝으로 더듬댔다.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돌을 키우자는 거지. 문득 씨가 아니라는 게 떠올랐다. 딸기의 겉에 박힌 점들 말이다. 그게 열매고, 그 속에 더 작은 씨가 있다는데, 그렇다고 그걸 달리 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골라낸 씨를 검지에 뱉었다. 침과 뒤엉켜서인지 꽤 부푼 것 같았다. 자기한테 도움이 될지도 몰라. 나한테? 그래, 우리한테. 그의 윗입술에 묻은 생크림이 바르르했다. 나는 그것을 닦아 주려다가 관두고 나이프를 집었다.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사면 으레 주는 플라스틱이었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직원이 물었을 텐데. 그가 뭐라고 답했을지 궁금했다. 어쨌든 초는 없고, 나이프에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손잡이에 달린 마개를 열었더니 성냥 두 개비가 쏟아졌다. 돌을 키우기도 해? 응, 돌도 키울 수 있대. 그는 컵을 움켜쥐고 이리저리 살폈다. 또 커피를 흘린 모양이었다. 그 컵은 가장자리가 겉쪽으로 휘어져 있어서 물이 넘치기 일쑤였다. 게다가 서랍에 들어박힌 처지길래 버리려고 했는데, 그가 발끈하는 바람에 그러지를 못했다. 너무 말짱하다는 게 그의 항변이었다. 이후 그의 커피는 그 컵에만 내줬다. 똑같은 컵이 있었는데 이미 버렸다는 건 굳이 밝히지 않았다. 왜 돌이야? 손이 가는 건 싫다며. 그렇다면 돌 만한 게 없지. 그가 살며시 컵을 기울이며 커피를 홀짝였다. 나는 슬쩍슬쩍 드러나는 둥근 밑면을 바라보면서 유난히 까맣다고 생각했다. 테이블에 닿을 때마다 닳았을 테니까 그리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하얀 컵과 대비되어서 생경하게 다가왔다. 그 너머에 있는 그의 눈동자도 마찬가지였다. 흰자위를 바삐 오가는 걸 보아하니 뭔가 숨기고 있었다. 실은 주문했어. 나는 잼이 덕지덕지한 접시를 토닥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몫의 케이크는 모로 누운 채로 사이사이가 벌어져 있었다. 겹겹인 시트에서 반쪽짜리 딸기들을 빼낸 흔적이었다. 언제부턴가 버터에서 여물의 향을 맡았다. 내가 투덜댔더니, 그는 여물의 근처라도 가본 적이 있느냐며 놀렸다. 그때도 나는 고개를 끄덕인 것 같았다. 고개를 가로저어야 했는데, 어째서 끄덕였는지 의문이었다. 미리 이름을 지어 주자. 그가 반절 남은 케이크를 상자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그새 눅눅해진 받침대가 흔들려서 잠시 애를 먹었다. 나는 식탁에 흐트러진 빵 부스러기를 그러모으다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검지에 뱉은 씨앗이 온데간데없었다. 어딘가로 옮았을 텐데, 전연 기억나지 않았다. * 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따끈한 물줄기를 쏘였더니 순식간에 케이크가 일그러졌다. 폭우를 맞은 모래성처럼 쉬이 뭉그러졌다. 자잘한 건더기는 배수구를 향해 미끄러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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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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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건
한정된 자원을 두고 높은 기대수명을 갖고 살아가는 시대.. 이젠 인격체를 분리해서 살아간다는 것도 심심치않게 보이네요...!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었습니다.
과자 먹으면서 보려고 했는데 채 먹지 못하고 다 보게 되었다.
교정을 안 본 원고를 읽는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 이름이 '희'인데 중간에 '휘'로 오기된 점도 있고, '자원소비세'는 끝에 '자산소비세'로 표기되어 있네요.중간 중간 조사가 어색한 부분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교정을 완성한 이후 게시 부탁드려요.
@비창 안녕하세요. 문장웹진 담당자입니다. 먼저 원고를 읽는 과정에서 불편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문장웹진은 발행 전 교정·교열 절차를 거쳐 게시되고 있으나, 이번 건은 일부 오류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말씀해 주신 사항을 천선란 작가를 통해 확인한 결과, 해당 부분은 단순 오타로 확인되어 현재는 수정 조치하였습니다. (휘 →희, 자산소비세→자원소비세) 그 외 문장 조사 사용 등과 관련된 부분도 다시 한 번 면밀히 검토하여, 추가 수정이 필요한 경우 원작자와 협의 후 반영할 예정입니다. 다시 한 번 불편을 드린 점 양해 부탁드리며, 문장웹진에 보내주신 관심과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