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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 작성일 2025-12-01

   달빛


현호정



   너울로 나란히 더 갈 수 없는 데까지 

   아마도 내가 머무를 물가에 닿아 

   숨 쉬듯 우릴 어르고 달래 줄 땅 

   (이제) 

   영원할 이 이름이 기를 하얀 바깥이지 

   놓을 수 있어 

   볼 수 있었네 


   ‘땅에서 죽어 하늘로 내리는 이’ 

   ‘이 땅에서 죽어 저 하늘로 내린 이’ 


   믿을 수 없는 신비로 가득한

   믿어야 하는 앞길로 아득한

   믿지 않아도 저절로 문득 환하던


   ···별 

   ···별 

   ···별

   달


   빛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구름 속에서 들었다. 우리는 그리고 냄새였는데 푸른 우유의 냄새 같았다. 푸른 우유가 있다면, (여기) 푸른 염소가 있어 푸른 새끼를 낳는다면, 아니 (여기서는) 염소가 아니라 양이라도 상관없었다. 카라칼이나 바위너구리, 알을 낳는 새들까지 푸른빛을 가정할 수 있었고 새끼에게 원하는 걸 먹일 수 있었다. 새뽀얀 물.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필요했던 것. 향료가 되는 풀들처럼 자연의 법칙을 배반하면서, 그것은 마지막까지 싱싱하고 그 후에 더 생생하고, 푸르고 계속 풍부할 거고, 우리는 계속 올라가면서 하늘을 떠다니는 이 냄새였고 그게 아니라면 이 냄새와 함께 떠다니는 하늘이 바로 우리였다. 이제는 그런 게 우리였다. 이제는 그렇게 우리인 거였다. 

   나는 혼자서도 꽤 아래로 내려가 보았는데 여전히 붐볐고 공중이었다. 속삭임으로 가득 찬 구름들은 제각기 몇 군데 뜯어진 채로 자신의 깃털을 바람에 그냥 날려 보냈고, 그건 살짝 뭉치면 붙는 작은 문제였다. 하지만 우리는 고치고 치유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는 아주 많아.”

   누군가 말했고 그는 어른이었다. 나는 어른이 아니어서 알 수 있었다.

   “아저씨, 제 발을 밟으셨어요.”

   또 어른이 아닌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발이 없는데···.”

   “전 있어요! 전 살아 있을 때 발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지금은 있어야지요.”

   “네 말이 맞다. 발을 밟아서 미안하구나.”

   그때 나는 우리가 춤을 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넓지만 둥글고 우리는 움직일 때 돌아야 했으므로. 그래서 우리는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러면 아직은 우리 중 하나를 하나의 몸으로 만나 말할 수 있었다. 말하고 만지고 끌어안기. 그리고 싸우기. 그건 사는 일의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물론 우리는 싸움에 대해 생각했다. 심지어 지금도! 그러니까 아직도 그랬다. 만약 여기서도 뭔가 나빠진다면, 결국 우리는 전부 나쁘게 변해 버릴지 몰랐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게 세상 전체에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쁘게 된 우리의 나쁜 짓이 우리 탓만은 아닐 거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탓이 아니라 맛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씁쓸해질 수 있었고 입안이 떫어질 수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속상할 수 있었다. 여전히, 그런 상상만으로도 우리는 미칠 수 있는 영혼이었다. 

   “비밀인데, 나에겐 여전히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나는 옆에 있던 누군가만 듣게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가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나는 화가 났다. 그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나는 집이 무너질 때 내 몸으로 그의 몸을 덮었다. 그게 스스로의 의지였는지 아니면 강력한 바람 같은 게 나를 그리로 집어던진 건지는 잊어버렸다! 나는 너무 많은 것들에 다쳤다. 그런데 그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지금에야 알았는데 미칠 수 있는 영혼은 자신을 반으로 찢을 수도 있었다. 언제든 입을 크게 벌릴 때 위아래 턱을 잡고 그렇게 하고, 다른 방향으로는 명치에 양손을 꽂아 넣어(양손이 둘 다 있다면) 두 팀의 갈비뼈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가슴을 열 수 있었다. 영혼의 몸은 스스로를 해치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어떻게 되든 다치지 않고 고통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해쳐도 해쳐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 자체를 흰머리처럼 뽑을 수도 있었다. 후 불어 바닥을 (집 같은 게 있다면) 나뒹굴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엉망이 되기로 했는지, 무엇이 나를 살아 있을 때처럼 울부짖게 만들었는지 이내 잊어버렸다. 요람 속에 있는 것처럼 모든 게 적당히 기분 좋았다. 그러다 갑자기 나빠졌고 모든 게 기억났고 다시 와락 그의 몸을 덮쳤다. 그러자 그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저씨! 또 제 발을 밟으셨어요.”

   “미안하구나.”

   “그런데 아저씨는 무엇으로 제 발을 밟으셨나요?”

   그때 저쪽에서 다른 아저씨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하나의 아저씨는 언제나 다른 아저씨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그는 정말 자연스럽게 나에게 왔고 또 자연스럽게 말을 붙였는데 그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다른 아저씨를 ‘발생시킨다’는 표현이 더 나을까?’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좀 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차츰 귀 기울이는 나에 대한 강한 인식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그가 어떤 질문을 하든 그가 아니라, 또 다른 아저씨도 아니라, 오로지 단 한 명의 아저씨, 즉 나 자신을 위해서만 대답해 보자고 결심했다. 

   잠시 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왜 그렇게 울상이지? 보아하니, 우는 채로 죽어 표정을 바꾸지 못하는 게로군.”

   잠시 뒤 나는 대답했다.

   “이보게, 친구. 우리는 연기일세. 그것도 이미 흩어진···. 내가 울고 있다니, 자네 눈은 저물녘 ‘마음의 창’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잘못 본 것 아닌가?”

   그는 ‘아’ 하고는 울면서 멀어졌다. 나는 황급히 가까이 갔다. 하지만 그가 왜 우는지 그도 나도 잊어버렸다.

   “이봐, 우리 고장에서 달빛이 밝은 밤 꼭 먹는 음식이 있었잖아. 그게 뭐였는지 죽어도 생각이 안 나네.”

   그는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 음식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어쨌건 나는 순전히 그의 기분을 좋게 해 주기 위해 이런 질문을 꺼낸 거였고 역시나 그는 씩 웃더니 자신만만한 태도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그대로 멈추었고 습하고 답답한 데서 피운 시샤 연기처럼 굳어버렸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였다. 돌연히 모르게 된 거였다. 그런데 나도 그랬다. 나는 좀 더 폐활량 좋은 사람이 내뿜은 연기처럼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 뿐이었다. 

   “아마도 우리의 망각에는 체계가 있는 듯해.”

   내가 웅얼거렸다. 

   “우리는 살면서 경험한 일들을 어떠한 순서대로 잊지만, 그 순서에 관해서는 모르지. 그러나 몇 가지는 다시 기억날 때도 있거든. 파도에 휩쓸리던 분유 깡통들이 그랬듯, 이 기억들도 최후에 스스로를 영웅적으로 띄워 올리는 거야.”

   입까지 굳어 버린 건 아닐 텐데도 그는 울상인 채 듣기만 했다. 

   조금 뒤에 다시 보니 거기 없었다. 


   달빛이 밝지 않으니 아직은 밤도 아니었다. 

   해가 지고 있었지만 하늘은 아량을 베풀어 푸른빛이라 부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친구의 눈동자였다. 그 애가 죽었을 때 그의 푸른 눈동자는 검게 변해 있었다. 

   “미사일은 너의 눈 속으로 검은 잉크를 쏴서 뿌렸니?”1)

   나는 평범하게 죽은 사람의 눈동자도 색이 변하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짐승들이 내 몸을 먹는 것을 원하지 않아. 나는 개의 먹이가 되고 싶지 않아. 차라리 땅으로 융해되어 사라지고 싶어. 그러나 비료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기도 하네.”2)

   이제 그 애는 내 옆에 있었다. 아니, 내가 그 애 옆에 있었다. 처음에 그 애는 내가 여기 있다는 것에 분노하며 자기 입을 찢고 말썽을 부렸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내 받아들였다. 그 뒤로 그 애는 저렇게 말했거나 아니면 우리가 둘 다 살아 있을 때 이미 저렇게 말했고 어쨌건 나는 확실히 들었다. 그 애가 여러 가지 조건을 너무 많이 말해서 내가 웃으며(울었던가) 현명한 대답도 해 줬으니까.

   “그럼 너는 죽음을 원하지 않는 거네.”

   “그래, 뭐.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순 없잖아.”

   ‘왜 그럴 수 없지?’ 

   나는 이제야 궁금해졌지만 별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 애는 지금 춤을 출 시간이었다.

   “아저씨, 계속 머리로 제 발을 밟으신다고요.”

   “미안하다···.”

   사람들은 (나는 이들을 그냥 이렇게 부르고 싶어졌는데 죽은 사람도 여전히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차차 제멋대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말이 뒤섞였다. 저쪽의 물음과 이쪽의 답이 엉겨 붙고 혼잣말이 혼잣말과 만나 대화가 되었다.

   “아, 저분이 네모난 돌에 물을 한 그릇 떠다 놓는 걸 보니 곧 밤이 오고 달이 뜨려나 보다.”

   땅을 자꾸 내려다보는 이들도 이제는 자기가 땅 위의 무얼 찾는지 잊어버렸다. 자기가 찾아낸 땅 위의 그것이 무엇인지를 잊은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변함없이 내려다봤다.

   “저 아줌씨가 어둠을 불러와?”

   “저 아주머니는 목이 마르지 않은 자예요. 물을 떠다 놓고 통 마시질 않거든요. 저녁마다 가장 맑은 샘에서 낮 동안 따뜻해진 물을 길어 와 저 네모 돌 앞에 놓지요.”

   “기도하는 거야.” 

   “목이 마르니?”

   “전 목이 마르지 않아요.”

   “목이 마르면 이따 달빛을 마시렴.”

   “전 목이 마르지 않아요. 목이 마른 건 살아 있는 어린이예요.”

   “우울한 달빛은 물이 돼. 안 우울한 달빛은 조금 차갑지. 우리는 그 중간에 놓인 달빛인 거야. 그게 내 결론인 거야.”

   “어머 세상에 너도 죽었니? 밥은?”

   “아아, 그게 뭐였지. 정말 죽어도 생각이 안 나네.”

   “아빠, 난 왜 계속 생각이 날까? 그리고 그 생각들은 왜 계속 생각이 날까?”

   “아카위 치즈 아니야? 희고 달을 닮은 음식이잖아.”

   “그건 아무 때나 먹던 음식이지 꼭 달이 뜬 밤에 먹기로 정해져 있진 않았어.”

   “미안한데, 네가 아카위 치즈를 먹는 밤이면 달도 늘 떠 있었을걸. 해나 달은 매일 뜨거든.”

   “오, 너는 그날들을 벌써 다 잊어버렸구나.”


   그때 한 사람이 걸어서 혹은 날아서 어쨌든 왔다. 그의 뒤에는 생김새가 우리와 다른 열 명의 사람이 서로의 옷자락을 잡고 길게 늘어서 함께 오고 있었다. 열 명의 사람들은 말씨가 다 달랐지만 서로 말이 통했고 우리와도 통했다. ‘저들은 그를 따라왔구나.’3) 나와 마주친 그가 말했다.

   “난 지금도 기억해. 내가 피를 가지고 있을 때였어. 그 피는 몸 안을 흐르고 있었지.”

   (대단하다, 하다, 하다, 하다, 하다, 하다, 하다, 하다, 하다, 하다!)

   “그리고 그 피는 몸 밖을 흐르기도 했어.”

   (우리도? 우리 몸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도?)

   “뭐가?”

   (뭐가? 뭐, 뭐, 뭐가, 가, 가, 가, 뭐가, 뭐, 가?)

   “뭔가 흐르는 얘길 하고 있었지.”

   (흘렀어. 었어, 렀어, 었어, 흘렀어, 흘, 흑, 어, 어, 어···.)

   “뭐가?”

   (달빛? 달빛? 달빛? 달빛? 달빛? 달빛? 달빛? 달빛? 달빛? 달빛?)

   “그래, 달빛이 여기에 있고, 그건 좀 흘렀던 것 같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부터 우린 여기서 흐르는 달빛을 바라보고 있었지. 흐르는 달빛에 몸을 맡긴 채 울고 있었던 거야. 근데 운다는 게 뭔지 아는 사람 있냐?”

   (그게 뭐냐? 냐? 냐? 냐? 냐? 냐? 냐? 냐? 냐? 냐?)

   “몰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그렇게 그들은 노래를 얻었고 그걸 부르며 그대로 갔다. 걸어서 혹은 날아서, 어쨌든 옷자락을 잡고서였다. 


   멀어지는 것이 있으면 가까워지는 게 있기 마련이었다. 

   “내가 내가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나는 눈도 없고 나도 없는데. 내가 내가 그리워지면 어떡하지. 나는 눈도 없고 나도 없는데.”

   웅얼대는 소리가 바람처럼 다가왔는데 너무 심했다. 그가 ‘또’ 내 발을 밟았던 것이다. 

   “저.기.요. 아.저.씨?”

   “하느님, 차라리 지옥으로 가겠습니다.”

   우습게도 그는 실제로 총 몇 개인지 모를 자기 머리통 위에 흰 모자를 일일이 고쳐 쓰고는 신사다운 걸음으로 나가는 시늉을 했다. 단순한 마임, 훌륭한 코미디. 여기저기서 녹던 이들이 뒤돌아 보내는 휘파람, 박수갈채. 그러자 그가 모자 하나에서 비둘기 한 마리를 꺼내 화답했고 그건 연기나 구름, 영혼 따위를 뭉쳐 만든 게 아니라 진짜 비둘기였다. 그 모자를 쓰는 머리통이 바로 그의 진짜 머리통일 거였다. 

   생전에 자신이 잃었던 것을 자꾸 만들어 붙이는 일은 확실히 유행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더 잊어버렸다. 우리가 잃은 것을 잊었고, 우리가 만든 것을 잊었고, 우리가 얼마나 더 만들기를 원하는지도 잊었다. 108개의 다리를 치마처럼 두른 소녀는 이것들이 다리임을 잊었다. 하여 거추장스러운 장식들을 하나씩 흩어 버리던 중, 그렇게 하고 있음을 잊었다. 거추장스러움을 잊었고, 장식을 잊었고, 아저씨를 찾으러 갔다. 어쨌든 이 아저씨만은 잊지 않은 거였다. 108개의 머리통 하나하나에 박수를 쳐 흩어 버리던 아저씨도 이 소녀를 잊지 않았다. 그는 소녀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 이상 어디에도 바깥은 없어.4) 확실히, 살아 있을 때 우리는 그렇게 말해야 했죠.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버지 몸에서 막 벗어난 희고 순결한 입자들처럼 자유롭거든요. 달을 향해 꼬물꼬물 기어가도 좋다는 뜻이에요.”

   “그러다 또 태어나게 되면 어떻게 하고?”

   “다시 죽거나, 저녁 파티를 망치겠지.”5)

   “파티 자리에서 그들의 목을 때리고 각 손가락을 때려 줄 거야?”6)

   “손가락을 하나씩 때려 주려면 총 몇 번을 때려야 해요?”

   “파티를 망친 건 그들이네.”

   “초대한 적도 없었는데.”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


   “저기 지나가는 거 보여? 줄이 조금씩 길어진다.”

   “휴전이라더니.”

   “아저씨!”

   “그래 내가 발을 밟았지, 미안하다.”

   “네? 전혀 아닌데요···.”

   “그럼 왜···.”

   “방금 제 목이랑 손가락들을 밟으셨어요···.”

   “···.”

   “와, 하늘에 타분빵7)이 한 덩이 걸려 있네.”

   “저 할머니는 배가 고프지 않은 자예요. 저 큰 빵을 매일 밤 창밖으로 쳐다만 보거든요.”

   “기도하는 자라니까.”

   “빵을 쳐다만 보는 게 기도라니. 끔찍해.”

   “물도 돌 앞에 놔야 돼. 마시면 안 되고.”

   “기도는 그런 게 아니라니까···.”

   “삶을 기도로 만들면 안 돼.”

   “늘 기도만 하는 사람이랑 기도도 못 해 본 사람 중 누가 더 불쌍한지 아는 사람.”

   “내 생각엔 1번···, 기도는 그런 게 아니라니까?” 

   “기억났다. 우리가 언제든 빵을 먹을 수 있던 시절에 말이야. 하얗고 둥근 빵을 오래오래 보고 있었는데 문득 세상에 무슨 좋은 일이 하나쯤은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빵을 먹지 않고 보기만 했는데 그런 느낌이 든 적 있었지. 그때 난 뭔가를 기도한 거야.”

   “세상에, 너도 죽었니? 밥은?”

   “전 배고프지 않아요. 배가 고픈 건 살아 있는 어린이예요.”

   “아빠, 난 왜 계속 소리가 들릴까? 그리고 그 소리들은 왜 계속 들릴까?”

   “나중에는 먹었지만···.”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이렇게 커다란 보름달이 뜨고, 빛으로 어둠이 하얀 밤이면 세상은 온통 호수가 된다. 그 호수에선 아무도 빠져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할머니에게 그 얘기를 들은 적 있었다. 

   달빛 속에서 우리는 공평한 찰나를 겪고 있었다. 살아온 날들이 살아있을 때처럼 명징해지는 찰나. 이제는 말하는 이가 없었다. 이 고요는 어쩌면 끝을 만드는 재료의 하나인지 몰랐다. ‘그러나 무엇의 끝이지?’ 내가 모른다는 건 모두 모른다는 것.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돌다가 돌다가 녹아 이 특별한 물이 되는 거였다. 나무에 올라간 어린이를 떨어뜨리려고 주위를 뱅뱅 돌다가 버터로 녹은 동화 속 호랑이들처럼. 죽은 영혼이 달빛 속을 헤엄치다 마침내 달빛으로 녹아드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지금 막 내가 상상해 냈는지 아니면 이것까지 할머니 이야기에 포함이었는지 나는 분별할 수 없었다. 여쭤볼 수도 없었는데 할머니는 아직 여기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 번 더 희미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랬다. 희미한 것은 가엾어 보이고, 가여운 것들은 쉽게 잊힌다.

   그러나 어떤 슬픔은 기억이 붕괴한 자리, 움푹 파인 터에 숨어 살아남는다. 잔해 속에 오래도록 웅크린 채로. 그렇게 살아남는 것들은 강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약하기 때문에 죽는 건 아니었다.


   “달도 거울을 닮았고 호수도 거울을 닮았네. 나는 눈도 없고 나도 없는데.”

   달빛 속에서 누군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가족들은 모두 감옥에 갇혔어요. 그들은 달을 볼 수 없다고요.”

   “어둠 속에서 그들이 무엇을 보든 그건 달빛을 보는 거나 마찬가지야. 밤에는 달빛이 그것들을 보이게 하니까.”

   “땅에 머물 때 우리의 눈빛은 밤하늘에 구멍을 뚫었어요. 사람들은 별을 볼 때마다 기억해야 했죠. 그것들이 우리의 불타는 눈빛이란 걸.”8)

   “아, 그리하여··· 빛이 있었구나!”

   “가로되, 빛이 있었으라.”

   “아아, 그랬어라.”

   “그랬지라.”

   와그르르 웃음소리가 지나갔다.

   “목말라.”

   “저 아줌씨한테 다녀오든지.”

   그러자 말씨가 다른 이들도 그의 옷자락을 잡고 함께 걸었다.


   (라~~~~~~~~~~)


   “방금 아카펠라처럼 하지 않았어?”

   “각자 역할이 있는 것 같았어.”

   여기저기서 녹던 이들이 보내는 휘파람, 박수갈채, 기나긴 커튼콜. 

   진짜인지 가짜인지 아무도 모를 비둘기들이 하얀 깃털을 떨어뜨리며 위인지 아래인지 모를 방향으로 날아서 혹은 걸어서 어쨌든 신사답게 갔다. 푸른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시간이 다 됐어.” 

   “신이시여, 모두가 버린 짐이 되지 않게 해 주소서”9)

   별빛과 안개로 만든 시샤 주변에 모여 있던 이들이 움직였다. 붙잡는 마음이 사라진 시샤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곧 우리가 그 모두가 될 텐데.”

   “신이 되거나.”

   “시간이 되어서,”

   “난 당신보다도 당신과 가깝고 이것이, 내 대적자 벗이여, 거리의 의미랍니다.”10)

   와그르르 웃음소리가 지나갔다. 누가 마지막에 내뿜은 연기인지 저 멀리까지 흩어지는 게 꼭 내 몸처럼 가뿐하고 어렴풋했다. 

   “저편에서 너를 기다릴게, 우리 아이들이 과일에 이름을 지어 줄 그곳에서.”11)

   “너는 살아서 내 이야기를 전해.”12)


   ···달빛 속에서 

   더 갈 수 없을 때까지 

   다음의 내가 

   머무를 물가를 봐 


   숨 쉬던 우릴 

   어르고 달래는 땅

   (이제) 

   우리들은 오르고 

   우리들은 놓이리라 


   다락의 안 

   베개와 품 

   낮잠 

   우유


   그리고 달빛 속에서 부글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최초에 두 눈꺼풀이 가른 어둠의 바깥이 무너지는 소리. 다음에 우린 다 다르게 된다. ‘그러나 내겐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설핏 이는 영원한 잠에 관한 흐릿한 염려. 숨 쉬지 않고 쉴 수 있을까. 우리 이런 밤마다, 이런 소리가, 없는 몸 위로 쏟아지는 밤마다 깨어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부스스 달빛 속을 내다보다가 어두운 다락의 창유리에 비친 우리를 발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로 우리가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세상을 떠난 우리는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이제 우리가 마실 달고 흰 우유처럼 위로 흐르며 나를 부르는···


   ···달빛 

   달빛 속에서.



1) 마리얌 모하메드 알 카티브, 골목길 옮김, 〈호화로운 죽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24. 07. 19.

2) 마리얌 모하메드 알 카티브, 위의 글.

3) “그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스가랴」 8:23

4) 수헤이르 함마드, 문호영 옮김, 「무제」, 『팔레스타인시선집』, 2025.

5) 할라 알얀, 최리외 옮김, 「귀화되다」, 같은 책. 원문은 다음과 같다. “석류 씨앗을 다시 팔기 시작하네. 멍청한 비유지. / 내가 저녁 파티를 망쳤구나. 내겐 삶이 주어졌는데. 하찮은 걸까?”

6) “내가 불신자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리니 그들의 목을 때리고 또한 그들 각 손가락을 때리라” 꾸란 8장 12절, 이동주, 「성경과 꾸란의 언어 비교연구: 꾸란의 영과 성령을 중심으로」, 『ACTS 신학과선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2022, p. 180, 재인용.

7)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212318.html

8) 리사 수헤이르 마자즈, 양미래 옮김, 「대화」, 위의 책.

9) 파드와 투칸, 류송 옮김, 「중력의 법칙이 부르는 그리움」, 위의 책.

10) 파디 주다, 이예원 옮김, 「···」, 위의 책.

11) 리나 아부탈레브, 윤경희 옮김, 「기억을 말로 남길게」, 위의 책

12) 리파트 알아리르, 류송 옮김, 「내가 죽어야 한다면」,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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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소설

늦은 새해

늦은 새해 주나영 우기 막바지인 3월 아침, 조식당에 안까지 빗소리가 크게 들렸다. 직원은 사다리에 올라 창에 붙은 검은 시트지를 문질렀다. 들뜬 가장자리를 손바닥으로 몇 번이고 눌렀지만 쉽게 붙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해서 창을 가려야 하나 싶었다. 어젯밤 체크인할 때 받은 안내문 상단에는 영어로 ‘침묵의 날(녜삐 데이)’이라는 낯선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루 동안 발리의 불빛과 소음을 줄이며, 투숙객의 호텔 외부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안내문을 건네던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새해 첫날을 아주 조용하게 보내는 풍습이 있거든요.” 나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호텔 직원들은 목소리를 낮췄고, 손님들도 주변을 살피며 말을 줄이는 듯했다. 사다리 위의 직원은 테이프를 한 조각 더 잘라 시트지 가장자리에 붙였다. 그래도 한쪽이 다시 들뜨자 시트지 한 장을 떼어 사다리 아래로 내려보냈다. 창의 절반쯤이 드러났고, 유리 바깥 면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렸다. 남편은 케이지-프리 에그 화이트 오믈렛을 주문했다. 쉰을 넘긴 뒤부터 식단과 운동에 부쩍 엄격해졌다. 디종 머스터드 병을 열어 숟가락으로 접시 귀퉁이에 덜어 놓은 뒤, 오믈렛을 잘라 찍어 먹었다. 면도를 공들여 한 듯 턱끝이 말끔했다. 맞은편에 앉은 혜리는 빵 바구니에서 올리브 치아바타를 집어 들더니 박혀 있는 올리브만 손끝으로 빼 먹었다. 덜 마른 머리카락이 어깨에 들러붙어 있었다. 머리를 귀 뒤로 넘길 때마다 손가락에 물기가 묻었다. 나는 냅킨 상자를 혜리 쪽으로 밀었다가 멈추었다. 혜리는 이미 옆에 놓인 냅킨으로 손끝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커피는 식어 있었다. 혜리는 남편과 전처 사이의 딸이다. 남편은 나보다 열다섯 살 많고, 혜리는 나보다 열다섯 살 어리다. 혜리가 초등학생 때 엄마와 함께 호주로 건너간 뒤, 남편은 일 년에 한두 번 혜리를 만났다.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는 빠짐없이 선물을 보냈다. 남편이 서재에서 혜리와 영상 통화를 하는 날이면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를 조금 줄였다. 주방에 갔다가 웃음소리가 들리면 물병만 꺼내 돌아왔다. 통화가 길어지는 날에는 먼저 씻고 침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통화를 마친 뒤 혜리의 학교생활과 새로 키우기 시작한 동물에 대해 말해 주었다. 나는 그가 보여 준 사진을 몇 장 넘겨본 뒤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혜리는 빵에서 올리브를 하나 더 빼 입에 넣었다. 남편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지만 결혼식은 혜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미뤄 왔다. 결혼식은 석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사흘 정도 쉬고 오자고 한 것도, 한국과 호주의 중간쯤인 발리에서 혜리를 만나자고 한 것도 남편이었다. 출발 전날 밤, 남편은 서재에서 청첩장이 든 봉투를 가져왔다. 구겨지지 않도록 얇은 파일 사이에 끼워 여행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혜리는 아보카도 스프레드를 빵 위에 고르게 펴 발랐다. 한입 베어 물자 빵 껍질이 바스러져

  • 주나영
  • 2026-08-01

문장웹진 소설

장정호

장정호 장희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공기가 차고 맑은 곳. 다른 곳보다 해가 빨리 뜨고 지는. 다른 누군가의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희재에게서 그가 지내고 있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우듬지 너머로 뜨는 어슴푸레한 새벽 동이나 찹찹한 분위기,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같은 임야를 떠올렸다. “죽어버렸으면.” 희재는 허공 속의 한 점을 보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그곳에서 죽어버렸으면. 희재는 어머니가 복수가 찬 채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분명히 그때와는 다른 뉘앙스가 있다고 느꼈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른 아침부터 희재와 나는 서둘렀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입을 헹구고, 어제 벗어두었던 청바지를 주섬주섬 입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희재는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양손으로 손잡이를 쥔 채 창문으로 머리를 기댔다. 저기 뭐가 죽은 것 같아. 아니다, 다시 보니까 없어. 진짜 아무것도 없어. 희재는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혼자 말하고 답했다. 한참 후 주위가 고요해진 것 같아 옆을 보니 희재가 입을 벌린 채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휴게소에서 백반과 우동을 나누어 먹었다. 밥을 다 먹고도 시간이 남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통유리창 너머로 구름 한 점 없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과 휴게소 뒤편으로 펼쳐진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대체로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없었다. 그럴 필요까지 없었는데 왜 그렇게 서둘렀냐고 묻자 희재는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희재의 아버지 얼굴을 보고 안부를 확인한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는 삼 년 전 아내가 간경화로 죽고 난 후 홀로 지내다 언제부턴가 야산에서 지내고 있었다. 양산에 있던 그가 어떻게 산천에 있는 그곳으로 들어가 살게 됐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는 미처 주변을 정리하지도 않았다. 아직도 그가 살던 집 냉장고에는 그가 먹다 남긴 반찬들이 썩어가고 있을 터였다. 희재의 어머니가 살아있을 적부터 기르던 식물들, 호야 나무, 산세비에리아, 스투키가 말라비틀어진 채 죽어 있을 것이다. 나는 먼지가 가득한 집을 떠올렸다. 어렸을 적부터 희재와 희재의 가족이 살았던 집. 희재와 나는 명절이면 그곳에 가서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 돌아오곤 했다. 간간이 희재와 희재의 어머니, 내가 웃을 때면 그는 크고 검은 눈으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사람이니까.” 그가 왜 그런 곳까지 가게 되었을까 하고 묻자 희재가 대답했다. 자신도 우연히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뿐 더는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뭐든 다 자기 멋대로인 사람.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에 다른 사람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그냥 그런 사람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죽어버렸으면. 나는 희재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본 그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말이 없고 등이 조금 굽은 왜소한 노인. 그는 묵묵히

  • 장희원
  • 2026-08-01

문장웹진 소설

내 마음이야

내 마음이야 이갑수 퇴근하고 싶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 눈을 감고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린다. 졸업, 제대, 여행, 생일파티, 800만 원 복권 당첨, 첫 키스…… 아니 첫 키스는 빼자. 그리고 명상을 한다. 생각을 비우고 차분하게. 절대 조금이라도 우울해선 안 된다. 어제도 제시간에 퇴근하는 데 실패했다. 우리 회사가 정부의 근로자 지원프로그램 시범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지난달부터 퇴근하기 전에 우울증 지수를 체크 한다. 보건복지부가 대학 연구소와 산학협력으로 개발했다는 ‘뉴진’이라는 우울증 측정기는 헬스장의 인바디 측정기처럼 생겼다. 악력기처럼 생긴 손잡이를 잡고 발판 위에 올라서면 우울증 지수가 100분위로 표시되는데, 우울증 지수가 50이 넘는 사람은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한다. 어떤 원리로 우울증을 측정하는 건지는 모른다. 아무리 사람의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몸을 측정해서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몸을 통하지 않고는 마음을 알 방법이 없으니 둘 사이의 어떤 메커니즘을 알면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시범 사업이 끝나고 일반에 공개가 되면 측정 원리도 밝혀질 테니 기다리면 곧 알게 될 일이다. - 80.00 오늘도 실패다. 점점 더 올라가고 있었다. 첫날에는 51이었고, 그날 상담은 5분 만에 끝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신기한 체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 요즘 기분은 어때요? 강 박사의 첫 질문은 항상 똑같다. -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그냥 괜찮습니다.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 무감각한 것도 우울증세일 수 있어요. 일단 지켜봅시다. 강 박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가 지난 한 달간 나를 지켜본 결과는 부정적일 게 분명하다. 내가 상담을 받으며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수치가 올라가고 있으니까.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들을 부러워하며 상담실로 올라갔다. 내 앞에 대기자는 일곱 명, 네 명은 자주 보는 얼굴이고, 세 명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우울증 지수가 높아서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다들 정말 우울해 보였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표정이 어떨지 알 것 같았다. 상담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로 강 박사의 얼굴이 보였다. 이 지원프로그램은 경력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은퇴한 의사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으니까. 정부 입장에서는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좋은 정책이었다. 강 박사도 대학병원에서 정년 퇴임한 정신과 전문의다. 강 박사는 슬램덩크에 나오는 안 감독님을 닮았다. KFC의 샌더스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흰 양복 대신 흰 가운을 입고 있다는 것 빼면 정말 똑같았다. 강 박사를 보면 치킨이 먹고 싶었다. - 요즘 기분은 어때요? 자리에 앉자마자 강 박사가 모니터의 차트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전에 없이

  • 이갑수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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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ddd

    해외작가의 아방가르드 소설들과는 다르게 주제 전달력도 낮고 압축된 언어(단어, 문장)들에도 미학적 가치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부분은 그냥 떠오르는 대로 단어를 무의미하게 나열한 것으로 보인다.

    • 2025-12-12 09:26:43
    d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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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다곰젤리
    최고에요

    무의식의 심연에서 문장의 리듬을 시적으로 조율하면서 현상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남의현 작가와 대조적으로 현호정 작가는 현상 너머의 사물 그 자체를 과장되게 과잉되게 다루면서 어떠한 상징적 틈입도 허용하지 않는 해체적인 문장을 구사한다. 해체적이니까 무의미해보이는 건 당연지사!

    • 2025-12-18 20:24:25
    판다곰젤리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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