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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자라

  • 작성일 2026-04-01

   달과 자라


김은


   가스미(かすみ)의 장례식에 세와닌(世話人)을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적힌 전보가 배달된 곳은 내가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고, 지금은 칠순이 넘은 엄마가 홀로 지키고 있는 오래된 맨션이었다. 우아맨션. ‘기품 있고 고상하다’라는 뜻이 무색하게, 지어진 지 60년 넘은 시멘트 건물은 잿빛으로 마모된 채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그 자리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너에게 전보가 왔네.

   전보라고? 그건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근대적 산물이 아닌가. 핸드폰 조작이 서툴러서인지 아니면 노안 때문인지 초점이 흐릿하게 빗나간 사진 속에는 간단한 서식의 종이 한 장이 찍혀 있었다. 그 위에는 짤막한 일본어 문장과 그것을 옮긴 한국어 문장이 위아래로 나란히 쓰여 있었다.

   한국어로 적혀 있었지만 도무지 의미를 가늠할 수 없어 번역기의 사전 기능을 이용했다. ‘가스미’는 일본어로 안개, 아지랑이[霞]를 뜻하는 말로, 부가 설명에는 여자 이름에 흔히 쓰이는 표현이라고 나와 있었다. 반면 ‘세와닌’이라는 단어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지 별다른 뜻풀이 없이 그대로 ‘세와닌’이라고만 표시될 뿐이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여자를 내가 알고 있었던가. 아니, 애초에 내가 아는 일본인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하다가 하나의 문장이라고도, 하나의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순간을 떠올렸다.

   쓰키토 슷폰(つきとすっぽん). 

   그 낯선 발음을 또박또박 내뱉던 열일곱 살 여자아이의 유난히 빨갛던 입술이.


   일본어 담당인 하 선생에게 묻자, 그 역시 ‘세와닌’의 뜻을 잘 모르는 눈치였다. 야후재팬 사이트를 한참 검색해 보더니 “수고를 떠안는 사람쯤이 아닐까요?” 하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그보다는 다른 쪽에 더 흥미가 간다는 듯 “그런데 누구 장례식인데요?” 하고 물었다. 

   “글쎄요···. 전에 우리 집에 잠깐 신세를 졌던 사람?”

   하지만 그 말은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었다. 가스미가 고1 여름방학 동안 한 달 남짓 우리 집에 머물렀던 것은 사실이지만, 신세를 진 쪽은 그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부모님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당분간 딸을 맡기게 되어 미안하다며 그 아이의 엄마가 건네고 간 50만 엔은 당시 우리 집에 구세주와도 같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자세한 사정은 또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작은 규모의 자동차 수리점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당장 막아야 했던 어음을 그 돈으로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때 우리 가족을 살린 것은 돈의 액수라기보다 더없이 절묘한 타이밍이었던 셈이었다.


   마침 수업이 비어 전보에 부고 메시지와 함께 적혀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자 한 여자가 서툰 한국어로 응대했다. 그는 자신을 가스미의 외사촌 언니(가스미 어머니의 여형제의 딸)라고 밝혔다. 가스미의 외할머니가 한국 사람이었고, 한국에 사는 또래 아이와 펜팔을 하고 싶어 했던 것도, 잠시 한국을 방문했던 이유도 모두 외할머니의 나라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외사촌 언니가 한국말을 하는 것 또한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한국말이 능숙하지 않은 듯 응, 맞아요, 아니, 그게 아니에요, 같은 반존대에 가까운 표현을 섞어 쓰는 탓에 오히려 일면식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 낯설지 않았다.

   “가스미가··· 죽었어요. 유서에 해원 씨에게 세와닌을 부탁한다고 적혀 있었어요.”

   비보를 직접 전해 듣고도 이상할 만큼 담담했던 나는, 평소라면 이런 상황에서 결코 하지 않았을 질문을 꺼냈다. 

   “혹시 자살한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에요. 가스미는··· 사고였어요.”

   “사고요?”

   “응. 만숀 베란다에서 떨어졌어요.”

   그렇다면 자신에게 닥칠 사고를 예감하고 유서를 미리 써 두었다는 뜻일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 유서는 자기 미래에 대한 예언이었을까, 아니면 꼭 그렇게 되고 말리라는 자기 선언 같은 것이었을까. 그런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가스미의 언니는 내일 날짜로 가능한 센다이행 항공권과 장례 기간 동안 묵을 호텔을 예약한 뒤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가스미와 나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펜팔 메이트였다. ‘자매의 연을 맺다.’ 내가 다니는 학교와 가스미가 다니는 센다이의 한 공립고등학교가 ‘자매결연’이라는, 어딘가 다소 이상한 이름의 교류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었다. 해외는 물론 국내 다른 지역 학교 몇 곳과도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는데, 여러 학교에서 보내온 수십 통의 편지를 반 아이들이 무작위로 고르는 동안 나는 단 두 통만을 집어 들었다. 일본에서 온 편지 한 통과 거제에서 온 편지 한 통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오로지 그들만이 (아파트가 아닌) ‘맨션’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나는 나를 둘러싼 세상이 온통 동음(同音)과 동형(同形)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기에, 편지봉투에 적힌 ‘맨션’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펜팔 메이트가 될 운명이라 여기기에 충분했다. 친구라면 당연히 같은 브랜드로 가방과 운동화를 맞춰야 하고, MP3에 저장된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공유하며, 웃음소리의 톤마저 닮아야 하고,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욕설조차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당연하다는 듯 펜팔 메이트였던 가스미와 수영을 서로에게 소개해 줬다.

   하지만 반년 가까이 펜팔 편지를 주고받은 뒤에야, 세 곳의 ‘맨션’이 저마다 다르게 발음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발음만 다른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는 고급 아파트를 ‘맨션’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맨션, 맨숀, 만숀.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곧 닥쳐올 불협화음의 전조를 눈치챌 수 있었을까. 그 발음의 차이보다 훨씬 큰 격차가 이미 우리 사이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맨션을 맨숀이라 발음하던, 거제에 살았고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스미가 죽었대.”

   “누구?”

   “가스미 말이야. 고등학교 때 펜팔하던 그 일본인 아이.”


*


   과거 속 가스미는 반복해서 재생될 뿐, 생장점이 잘려 나간 기억처럼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적절한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무 살의 얼굴, 스물다섯 살의 얼굴, 서른 살의 얼굴 그리고 서른일곱 살의 지금 얼굴.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가스미는 열일곱 살의 모습 그대로였다. 곧 나에게 그녀의 죽음은 열일곱 살 아이의 죽음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떠올릴수록 (친구를 잃은 슬픔보다) 애달픔이 먼저 다가왔다.

   공항 대기실에서 수영을 기다리며 나는 통창 너머로 비행기가 반복해서 뜨고 내려앉는 장면을 무심히 바라봤다. 20년 전 가스미가 한국에 왔을 때도 비슷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색색의 사인펜으로 ‘Welcome to Korea’라고 적은 8절 스케치북을 가슴에 안은 채였다. 비행기가 연착된 것인지 수영은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수영은 거제에서 가까운 김해공항을 이용해도 됐을 텐데, 굳이 나와 함께 출발하겠다며 인천공항으로 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왠지 인천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해외여행을 하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수영은 비행시간이 고작 두 시간 남짓인 이웃한 나라를 가기 위해 (한 나라 안 도시에서 또 다른 도시로) 경유를 하는 셈이었다. 처음 만났던 열일곱 살 때와 비교하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엉뚱한 면만큼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엉뚱한 일을 벌이고 있는 건 수영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마지막 교시를 마친 뒤 교감실을 찾아가 급한 일이 생겨 2박 3일간 휴가를 내겠다고 했을 때, 교감은 마치 삼켜서는 안 될 엉뚱한 것을 목으로 넘긴 듯한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류 선생, 지금 제정신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학교가 뒤숭숭한 판에.”

   아마도 계약직 교사가 노골적으로 자신의 수업을 거부해 온 학생들을 상대로 (명예훼손과 교육활동 침해를 사유로 들어) 소송을 제기한 일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그 불똥은 결국 고스란히 학교 몫이 되었다. 애당초 정식 교사도 아닌 계약직에게 아이들 교육을 맡긴 것부터가 잘못이고, 능력(학벌)이 한참 부족한 교사를 채용한 것 역시 문제라며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아직 철없고 상황 판단 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선생에게 실수를 저질렀다 해도, 그런 일로 자신의 제자들을 고소한 것 자체가 교사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그들의 바람대로 세상 잇속에 밝게 키운 덕분에,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한 교실에 앉아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처지의 학생이 아니며, 교단에 서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위치의 선생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이 세상에 ‘같을 동[同]’이라는 글자 아래 묶일 수 있는 것은 애초에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멀리서 수영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리며 알은체를 했다. 거제에서 열린 수영의 결혼식 이후 8년 만에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반갑게 웃는 수영의 얼굴을 보자 문득 아직도 ‘맨션’을 ‘맨숀’이라고 발음하는지 궁금해졌다. 정확히는 억양을 높여 ‘맨↗숀’. 나는 수영이 자신의 강한 사투리 억양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가끔 ‘맨숀’이라고 한 번만 발음해 보라고 부탁하곤 했었다. 물론 이제는 더 이상 맨션에 살고 있지도 않고, 어쩌면 그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었을지도 모른다. 재수 끝에 지방 약대에 진학해 약사 자격을 취득한 수영은 대형 병원과 연계된 약국을 세 곳이나 운영하고 있었다. 거느린 약사만도 쉰 명이 훌쩍 넘어 약국이라기보다 작은 중소기업에 가깝다고 말해 준 것도 다름 아닌 수영 자신이었다. 이제 그는 노후한 맨션이 아니라 거제 앞바다를 매립해 새로 조성한 신도시에 들어선 초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안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수영은 항공권 두 장을 흔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깜짝 선물이라며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했다고 말했다.

   처음 타 본 비즈니스석은 발을 쭉 뻗어도 앞좌석에 닿지 않을 만큼 널찍했다. 넓은 화면의 모니터 전원을 괜스레 켜 보고, 그 옆에 달린 무슨 기능인지 모를 버튼들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있는데 수영이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가스미와 연락이 끊겼는지, 넌 기억해?”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셋 중 가장 먼저 변심한 사람은 나였고, 그 이유가 가스미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 기억은 여전히 내 입속에 단단히 밀봉돼 있는 셈이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거겠지. 곧 고3이 돼서 바빠지기도 했잖아.”

   역시 거짓말이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듯 그 순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한동안 머릿속에서 재생되곤 했는데, 다른 나라의 언어여서인지 음성이 지원되지 않는 영상처럼 뻥긋거리며 움직이는 입술만 반복해서 보였다. 물론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후시 녹음한 음성을 따로 틀어 놓은 것처럼 매번 발음이 조금씩 달라졌다. 츠키토 스폰, 츠키토 슷퐁, 츠키토 스뽄, 쓰키또 수폰, 쓰키또 수퐁, 쓰키또 습폰···. 어떨 때는 치커리 스프나 토마토케첩처럼 전혀 엉뚱하지만 내게 더 익숙한 소리로 바뀌어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발음으로 재생되든 머릿속에는 결국 단 하나의 의미만 또렷이 남았다. 

   ‘달과 자라.’


   가스미의 엄마는 가스미를 우리 부모에게 인계하듯 맨션 앞에 데려다 놓고는(아마 돈봉투를 건넨 것은 그때였을 것이다) 공항에서 타고 온 택시에 다시 올라타 그대로 떠나 버렸다. 잠깐 시간을 내 마중 나온 부모님도 곧 자동차 수리점으로 돌아갔고, 결국 맨션에는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

   집 안에 들어선 가스미는 아직 모든 것이 낯선 듯 한동안 짐 가방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내 안내에 따라 스물다섯 평 남짓한 거실과 안방 그리고 언니와 내가 함께 쓰던 작은방(당시 대학생이던 언니는 기숙사에 들어가 있었지만)을 둘러보더니, 혼잣말하듯 이렇게 말했다.

   “쓰키토 슷폰.”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응. 아무것도 아냐.”

   가스미가 우리 집에 머문 것은 정확히 스무 날하고도 나흘이었다. 그동안 함께 경복궁에도 가고 잠실의 놀이공원에도 놀러 갔지만, 나는 줄곧 그 말의 뜻이 궁금했다. 실망스럽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이곳에서 지내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을까. 가스미가 자기 집이라며 보여 준 디지털카메라 속 사진들은 당시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으리으리한 모습(마치 식물원처럼 보이는 근사한 정원과 전용 수영장까지 딸린 고급 아파트)이어서, 어쩌면 더 걱정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스미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해도 뉘앙스만으로 충분히 짐작되는 (비언어적)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이 무슨 뜻이든 결국 나에게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그때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가스미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야, 언니가 기숙사에 가져가지 않고 책상 위에 올려 둔 일한사전을 찾아 펼쳐 보았다. 얇은 습자지 같은 종이 위에 까만 좀벌레 똥처럼 바글바글 박힌 글자들을 보자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제2외국어 시간에 일본어를 배우긴 했지만 히라가나를 겨우 따라 읽고 쓰는 정도에 불과했다. 방법을 모를 때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무작정 찾아보는 것.

   오십음순(五十音順)으로 배열된 글자들 가운데 발음이 비슷해 보이는 ち(chi)와 つ(tsu) 항목을 펼쳤다.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비슷한 발음의 단어들 사이에서 가장 근접한 답을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행히 해가 뜨기 전에 つき[月]라는 단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옆에는 한국어로 ‘달’이라고 설명되어 있었고, 아래 줄에는 관용구와 속담까지 자세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서 마침내 그토록 찾던 표현을 발견했다.


   (예) 月とすっぽん(つきとすっぽん)。달과 자라. 서로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차이가 크다는 뜻의 일본 속담. 유사한 한국 속담으로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그 문장을 발견했을 때, ‘자라’라는 글자를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다행한 마음 따위는 들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이 심하게 흔들릴 만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수치심(만약 그때 이 단어의 뜻을 알고 있었다면) 때문인지 온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손바닥과 발바닥까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가스미는 대체 무엇을 보고 그런 말을 했을까. 자기 집 크기와 우리 집 크기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뜻이었을까. 자기 집 형편과 우리 집 형편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애초부터 자신과 나의 처지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이었을까. 그 문장이 실린 사전의 페이지를 찢어 마구 구겨 버리고 나서야 내가 왜 이토록 화가 나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그렇게 노골적으로 가난을 들킨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가스미와 내가 더 이상 공통의 세계 안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도쿄에서 북쪽으로 약 300킬로미터 떨어진 도호쿠 지방의 센다이 공항은 마치 질서정연한 관공서를 연상시켰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시가 아니어서인지 여행자를 환대하는 분위기라기보다는 입국과 출국을 사무적으로 처리하는 곳처럼 느껴졌다. 입국장 출구를 빠져나오자 가스미의 사촌 언니로 짐작되는 여성이 두 손을 단정히 모은 채 인사를 했다. 가스미의 사촌 언니 리에(りえ)는 검은색 원피스에 굵은 진주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세 사람 모두 검은 옷을 맞춰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서로 고개를 깍듯이 숙여 인사를 나누고 있자니 장례식장이 아닌 공항에서부터 이미 가스미를 조문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을 찾은 유일한 목적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였으므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미리 예약해 둔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에 오른 나는 리에에게 (한국어로) 물었다.

   “일본어로 ‘잘 부탁드립니다’는 어떻게 말하나요?”

   리에는 몸을 살짝 숙이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일본인 특유의 정중한 태도로 답했다.

   “오세와니 나리마스(お世話になります).”

   뜻도 모르고 사람의 말소리를 흉내 내는 앵무새처럼 우리는 어설픈 발음으로 그 말을 따라 했다.

   “오세와니 나리마스.”

   그러자 앞좌석에 앉아 있던 리에가 몸을 살짝 뒤로 틀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고치라코소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こちらこそ、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우리가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을 배려하는 듯,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전에 한국말로 바꿔 다시 말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른 아침부터 이어진 여정이 고단했는지 수영은 얕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무료함을 달랠 겸 공항 입구에 꽂혀 있던 관광 브로슈어를 펼쳐 보았다. 브로슈어 앞장에는 ‘杜の都(숲의 도시)’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숲의 도시’라는 말과 달리 도로를 한참 달려도 숲은 보이지 않고 거대한 도심만 이어졌다. (나중에 리에에게 들은 바로는 센다이는 17세기 초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도시로, 이곳을 만들 당시 곳곳에 많은 나무를 심어 조경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숲을 가리키는 한자인 ‘森’이 아니라 나무 울타리를 뜻하는 ‘杜’를 사용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가스미가 살았던 도시에 도착했지만 정작 가스미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도시를 상징하는 것들이 막상 여기에는 없는 셈이었다.

   가스미는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공항에 내려 리에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줄곧 가스미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제야 가스미에게도 (나이에 걸맞은) 적당한 얼굴이 생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모습으로 나이를 먹어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촌이라면 조금쯤은 닮지 않았을까. 나는 외꺼풀에 긴 눈매와 조금은 단호해 보이는 입매를 가진 리에의 얼굴 위에 가스미의 얼굴을 겹쳐 보았다.

   “이제 곧 호텔에 도착할 거예요.”

   택시가 큰길을 벗어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리에가 다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비로소 이곳까지 온 목적을 떠올렸다.

   “참, 가스미가 유서에서 부탁했다는 세와닌은 어떤 역할인가요?”

   “아까 저에게 말씀하셨잖아요?”

   “네?”

   “오세와니 나리마스. 오세와(お世話)는 돌봄, 보살핌, 신세, 도움 같은 뜻이에요.”

   “아, 그렇군요.”

   “쉽게 말해 장례를 잘 치를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리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세와닌은 일종의 장례 도우미 같은 역할인 듯했다. 예전에는 친구나 직장 동료, 친척 등이 그 일을 맡아 장례 전반을 살폈지만, 요즘은 일본에서도 전문 업체가 대신하거나 그런 역할 자체가 사라졌다고 했다. 

   도움(당시 어음을 갚는 데 유용하게 쓰였던 돈)을 받고도 냉정하게 외면했던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괘심했던 것일까. 이유야 어쨌든 결국 나는 가스미에게 신세를 갚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호텔에서 푹 쉬시고, 내일 고별식에서 만나도록 해요.”

   그 말은 리에의 목소리라기보다 마치 가스미가 우리에게 전하는 당부처럼 들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호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고별식은 장례 마지막 날인 사흘째에 치러진다고 했다. 가족과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영원한 작별을 맞이하는 자리였다. 나로서는 가스미와 20년 만에 다시 만나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셈이었다.

   “그래도 시내 구경은 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새 외출 준비를 마친 수영이 재촉하듯 문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 관광이라니.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수영은 적당한 핑계를 찾는 듯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그럴듯한 이유를 떠올린 듯했다.

   “호텔 근처에 신사가 있대. 거기서 가스미의 명복을 빌어 주면 좋잖아.” 

   수영의 말대로 호텔에서 5분 거리에 제법 규모가 큰 신사가 있었다. 상가 건물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자칫 일본풍으로 꾸며진 숙박시설처럼 보이기도 했다. 신사 입구에 세워진 붉은 도리이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지붕이 달린 나무 틀에 매달린 수백 개의 나무판이 서로 부딪쳐 달각달각 소리를 냈다. 마치 연주가 서툰 사람들이 동시에 아무렇게나 나무 악기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수영은 저 나무판을 ‘에마’라고 부르는데, 소원이나 감사의 말을 적어 걸어두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나무판들이 자기 소원을 들어달라고 요란하게 아우성치는 것 같아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우리도 소원 하나씩 걸까?”

   그렇게 말하고는 수영은 관리사무소 같은 곳으로 가서 나무판을 세 개나 구입했다. 자기 것과 내 것 그리고 가스미 것. 내가 내 몫의 돈을 내려고 하자 수영은 선심 쓰듯 지갑을 꺼내려는 내 손을 가볍게 제지하며 말했다.

   “에이, 됐어. 선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별말 아닌데도 그 순간 나는 수영과의 사이에 결코 좁혀질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감을 느꼈다.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달과 자라만큼 멀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둥근 모양이 서로 닮았을 뿐 달은 하늘에 떠 있고 자라는 물속에 있어 애초부터 같은 세계에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그 거리감을 상상해 보기 위해 두 낱말을 공글리듯 입속으로 발음해 보았다. 달과 자라. 달과 자라. 달과 자라. 그렇게 한참을 되뇌다 보니 서로 끝내 닿지 못할 만큼 아득한 거리가 실감이 됐다.  

   수영은 한국어로 ‘가스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썼다. 어차피 수많은 소원의 주인을 일일이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한국어든 일본어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다. 그 아래에 가스미의 기일까지 적어 넣은 뒤 수영은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참, 너도 알고 있었지?”

   “뭘?”

   “가스미가 한국에 왔을 때 말이야, 사실 엄마랑 같이 한국으로 도망 온 거라는 거.”

   “그게 무슨 말이야?”

   “정말 모르고 있었던 거야? 가스미 아빠가 가정폭력이 심했다나 봐. 그때도 견디다 못해 엄마가 가스미만 데리고 한국에 있는 외할머니 댁으로 급히 몸을 피했다더라.”

   가스미에게 그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그가 말한 ‘쓰키토 슷폰’은 내가 사전에서 찾아낸 뜻과는 꽤 거리가 먼 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더니 소원이 적힌 나무판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달각달각. 그것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뒤 남은 뼈와 뼈가 부딪치는 것처럼 간절하고도 서글프게 들렸다.


*


   가스미의 고별식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호텔의 연회장에서 치러졌다. 기모노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로 가득해, 장례식이라기보다 지방 유지가 주최한 큰 행사에 초대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냐고 내가 리에에게 묻자, 유명인이나 정치인 혹은 큰 회사의 대표 같은 사람들의 장례는 종종 대규모 연회장을 빌려 치러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가스미는 왜? 여전히 궁금증 가득한 눈빛으로 리에를 바라보자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려는 겸손한 태도 때문인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을 전하듯 이렇게 말했다.

   “가스미의 아버지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외과의사 집안이에요. 가스미의 남편도 마찬가지로 의사고요.”

   나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스미에 관한 기억의 기록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뒤에 더 많이 쓰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것도 일종의 전기(傳記) 같은 것일까.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을 깜빡하고 말하지 않았다는 듯 리에가 덧붙였다.

   “참, 일본에서는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아요.”

   “왜요?”

   “그게 고인과 조문객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분명 가장 슬프게 울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가스미의 엄마를 찾는 일은 요원해졌다. 나는 잠깐 인사를 나눴을 뿐이라 기억 속에서 거의 지워져 버린 가스미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쓰며 연회장 안을 두리번거렸다. 기모노를 입은 상주와 가족도 여럿이라 그들 사이에서 내가 찾는 얼굴을 가려내기는 쉽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그때 한국으로 돌아간 뒤로 다시는 일본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작하려나 봐.”

   곁에 서 있던 수영이 연회장 앞쪽에 국화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제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뚜껑이 열린 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무채색 기모노 차림의 중년 남성 하나가 그 앞으로 다가가 국화꽃 한 송이를 그곳에 내려놓고는 잠시 묵념했다. 그가 가스미의 남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의 얼굴은 근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가 비통해하지 않는 것을, 슬퍼하며 울부짖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지 않는 것이야말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가장 지극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이기만 할까. 오늘 아침, 나는 늦잠을 자느라 준비가 늦어진 수영을 객실에 혼자 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리에를 만나기 위해 로비로 내려갔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로비 기둥 앞에 두 손으로 작은 손가방을 모아 쥔 채 단정한 자세로 서 있는 리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스미가 정말 혼자 집에 있다가 낙상 사고를 당한 것이 맞느냐고. 리에는 혹시 말실수라도 할까 봐 긴장한 듯 한동안 입술을 꼭 다물고 있다가, 마침내 단단한 빗장을 풀 듯 “아니요”라고 말했다. 

   “그때 집에 남편이 함께 있었던 것은 맞지만, 경찰 조사에서 그는 서재에서 업무를 보느라 사고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했어요.”

   “정말이에요?”

   “경찰에서도 가스미가 혼자 베란다에서 화분을 옮기다가 일어난 단순 사고라고 결론을 내렸고요.”

   “그럼, 유서는요? 가스미가 남긴 유서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유서는···. 유서가 있다는 사실은 경찰에 알리지 않았어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가족 몇 사람만 알고 있기로 약속했어요.”

   “당연히 경찰에 알려야죠.”

   “해원 씨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니라서 모를 거예요. 이곳에는 이곳의 방식이 있어요. 우리 가족은 비밀에 부치는 방식으로 가스미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을 막으려는 거예요.”

   더 이상 의문을 증폭시키지 않으려는 듯, 리에는 어느 때보다 (아니, 만난 이후로 처음 들어보는 듯한)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손에 국화꽃 한 송이가 쥐어졌다. 어쩌면 가스미가 부탁했던 세와닌은 자신의 장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모두가 침묵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도움을 청할 사람이 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나는 가까이 다가가 관 안에 누워 있는 가스미를 내려다봤다. 아니, 어쩌면 위를 올려다봤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자라가 고개를 한껏 젖혀 하늘의 달을 바라보듯. 하지만 거기에는 이미 달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의 가스미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예전의 가스미가 아니었고, 빨간 입술로 ‘쓰키토 슷폰’ 하고 그 낯선 말을 발음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제야 우리가 함께할 수 없었던 이유가 달과 자라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 등을 돌린 채 한 번도 마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끝내 신세를 갚지 못한 자라는 어떻게 될까? 아니다, 그건 두꺼비였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나는 바람도 쐴 겸 사람이 덜 붐비는 곳을 찾아 연회장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을 보니 호텔 옥상에 공중정원이 있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어느새 눈치챘는지 수영이 밖으로 따라 나와 자연스럽게 내 옆에 섰다.

   공중정원이라고 했지만 정원이라기보다 텅 빈 옥상에 가까웠다. 별다른 조경물 없이 군데군데 벤치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인가 싶었지만 바닥에는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야경은 어둠 속에서도 어딘가 생경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에 와 있는지 새삼 실감 났다. 그 먼 거리를 뚫고 가스미의 목소리가 닿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두세 번쯤 편지가 도착했지만 끝내 외면한 것은 나였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일본으로 떠나오기 전, 혼자 곤란한 상황에 놓인 계약직 교사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답이 이제야 온 것이었다.

   ―함부로 동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나보다 더 나은 처지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큰 착각이에요.

   분명 이제는 가스미가 사라지고 없는데 귀에서 ‘쓰키토 슷폰’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달과 자라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는 모르겠지만, 한순간이라도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눈 맞춤의 거리만큼은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감상적인 기분에 빠져들었다. 당연하다는 듯 하늘에는 달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 달이 뜨지 않는 날을 뭐라고 부르더라.”

   내가 묻자,

   “삭월(朔月).”

   하고 수영이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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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판다곰젤리
    감동했어요

    한 폭의 수채화같은 소설

    • 2026-04-06 14:08:15
    판다곰젤리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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