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돌연히 찾아오는 것들

  • 작성일 2014-11-01

 

 

돌연히 찾아오는 것들

 

 

 

황시운

 

 

삽화_02_돌연히

 


 

 

 

 

    골목 초입부터 악취가 진동했다. 좁고 긴 골목을 따라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오늘 작업할 현장은 낡은 빌라 건물의 4층 1호였다. 김 과장과 상만이 트럭에서 이삿짐 상자와 장비를 내리는 동안 1층부터 작업 장소인 4층 계단까지 분무 소독을 했다. 내려와 보니 두 사람은 이미 짐을 다 내린 상태였다. 우리는 이삿짐 상자와 밀봉용 비닐 마대, 소독과 청소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날랐다. 3층과 4층 사이의 계단참에 작업에 필요한 물건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했다. 현장에 진입하기 전부터 눈이 따끔거렸다. 연신 눈을 끔벅이던 김 과장이 가방에서 고글을 꺼내 착용했다.
    “일단 연막부터 치자.”
    김 과장의 말이 떨어지자 막내 상만이 연막 소독기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상만이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악취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아우, 장난 아닌데요. 문 다 닫고 작업해야 하는 거 아닐까 모르겠어요.”
    잠시 후 현장에서 빠져나온 상만이 연막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같은 날 문까지 걸어 닫고 작업을 하면 몸에 밴 악취가 아무리 씻어내도 사나흘은 갈 게 뻔했다. 아이들은 내 몸에서 나는 악취를 끔찍해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견적이 꽤 크게 나온 현장이니까 각오들 하고, 최대한 서두르자고.”
    김 과장이 걸음을 떼어 놓으며 말했다. 나는 분무 소독기를 들고 김 과장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상만이 폐기물을 담을 봉투와 밀봉용 테이프, 그리고 청소용품을 담은 통을 챙겨들고 뒤따랐다. 망자는 사후 약 2주 만에 발견되었으며 시체를 수습하고 우리에게 청소 의뢰가 들어오기까지 또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요즘 같은 무더위 속에 방치될 경우 시체는 엄청난 속도로 부패한다. 망자가 살아생전 남긴 여러 흔적들 역시 마찬가지다. 현장은 보나마나 온갖 해충과 곰팡이가 들끓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일 게 뻔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부패 액이 장판 아래 바닥과 벽 속까지 스며들었다면 작업이 길어질 수도 있었다. 현관문을 열기 전 크게 심호흡을 했다. 김 과장이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현장은 처참했다. 현관 앞에서 김 과장의 주도로 망자를 위해 잠시 묵념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차리는 최소한의 예였다. 그때마다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망자를 위해 진심으로 기원했다. 다음 세상에서는 최소한 혼자서 쓸쓸히 죽어가는 인생은 살지 않기를, 그래서 부디 낯모르는 이들에게 삶의 마지막 행적을 들키지 말기를.
    “창문 열까요?”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 그냥 두고 얼른 정리하자. 여기, 여기서 돌아가셨더라고.”
    김 과장이 좁은 마루를 성큼성큼 지나쳐 방문을 열며 말했다. 방바닥엔 방 안을 점령하다시피 한 부패 액이 시커멓게 눌어붙어 있었다. 이미 시체가 수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 안엔 여전히 꼬물대는 구더기와 번데기 탈피각이 수북했다. 침대 옆으로 빈 술병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그 옆엔 갈색 머리카락 뭉치가 엉겨 있었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마치 허물을 벗듯 두피와 함께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온다. 시체를 수습해 가는 과정에서 깨끗하게 정리되면 좋겠지만 이번처럼 방치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는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와 유기산유 같은 부패 액과 부산물에 들끓는 구더기보다도 저렇게 뭉텅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보는 일이 힘들었다. 김 과장과 함께 현장을 찬찬히 들러봤다. 방의 삼분의 이 이상을 오염시킨 부패 액이 벽지는 물론 문틀까지 타고 올라와 있었다. 집 안 곳곳에 널브러진 술병들로 미루어, 망자는 이미 심한 알코올중독자였거나 최근에 갑작스럽게 많은 양의 술을 마셔야 할 만큼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쪽이든, 망자는 돌연히 찾아온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독한 고독에 잠긴 채 허우적댔을 것이다. 현장엔 그 흔한 사진 액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구더기와 곰팡이가 끓는 현장 구석구석에 롱다운을 희석한 소독 액을 분무했다. 그런 다음 일차 악취 제거 작업을 실시했다. 사장은 일본에서 직수입한 피톤치드 원액이 얼마나 고가인지 강조하며 불필요한 과정은 최대한 생략하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오늘 같은 경우엔 어쩔 수 없었다. 상만이 빗자루로 머리카락 뭉치와 수북한 번데기 탈피각을 쓸어 폐기물 봉투에 담았다. 현장에 투입된 지 겨우 두 달 남짓이지만, 상만은 누구보다 빠르고 담담하게 현장을 익혀 나가고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석 달이 넘도록 악몽과 구역질에 시달렸던 나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장비를 마루로 내다 놓은 뒤 다시 방으로 가 상만을 도왔다. 우선 부패 액이 스며들어 구더기가 들끓는 옷가지부터 쓸어 담기 시작했다. 상만이 침대 시트를 벗겨내며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시트 위에 있던 탈피각이 내 얼굴과 머리에 튀었다. 허리를 숙이고 머리카락을 탈탈 털어냈다. 탈피각과 함께 구더기 몇 마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이란 문은 모조리 걸어 잠근 탓인지 일차 악취 제거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악취는 쉬 가시지 않았다. 이런 날엔 방진마스크도 무용지물이었다. 무더위에 악취까지,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혔다. 문득, 요새 에어컨 하나 없는 집구석이 어디 있냐며 주먹으로 방문을 쳐대던 아들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녀석은 그런 식으로 집 안의 문이란 문은 죄다 망가뜨려 놓았다. 올해 스무 살이 된 아들 녀석은 언제부턴가 제 누이나 내게 별다른 이유도 없이 화를 냈고, 간혹 제 성에 못이길 때면 자해까지 서슴지 않았다. 눈이 뒤집힌 녀석이 제 팔뚝을 칼로 긋거나 단단한 시멘트벽에 머리를 짓찧어댈 때마다 나는 온몸을 던져 녀석을 막아내야만 했다.
    “씨발, 무능한 게 무슨 자랑이라고!”
    오늘 아침에도 십만 원만 내놓고 가라는 녀석에게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며 타박하자, 녀석은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성깔을 부렸다. 녀석이 진정되길 기다려 어디에 쓸 돈인지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다짜고짜 화장실 문을 발로 차며 소리쳤다.
    “그딴 건 알아서 뭐 하게? 짜증나니까 닥치고 돈이나 내놓으라고!”
    나는 변변한 대꾸 한 마디 못한 채 지갑 속에 있는 현금 사만 삼천 원을 탈탈 털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들 녀석의 성깔을 받아 주느라 평소보다 늦어버린 출근길을 재촉해 버스에 올랐다. 바늘 꽂을 자리 하나 없던 만원버스 안의 사람들은 내가 버스에 오르자 작은 기적을 만들어 제법 널찍한 공간을 내줬다. 아무리 샤워를 반복해도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내 몸에서 나는 악취를 맡지 못하는 사람은 악취에 전 채 살아가는 나뿐이었다.
    바닥 정리가 대충 끝나자 상만은 밖으로 나가 계단참에 쌓아 둔 이삿짐 상자를 옮겨왔다. 상만이 접어 준 상자를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무채색 계열의 옷가지가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코트와 재킷은 하나같이 검은색이었고 노르께한 셔츠 중 몇 벌은 깃과 소매가 몹시 낡아 있었다. 잠시 옷가지를 뒤척거리다 하나씩 내려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다. 서랍 속의 속옷과 낡은 가방도 담아 상자를 밀봉했다. 마루 한쪽 구석엔 온갖 오염물질로 가득 찬 폐기물 봉투와 이삿짐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 갔다. 생각보다 짐이 많았다. 하긴,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살림살이도 막상 죄다 끄집어 내놓고 보면 그 양이 만만치 않기 마련이었다. 죽고 나면 폐기되고 말 짐 덩어리를 하나 둘 늘려가며 살아가는 삶이라니.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쓰던 물건도 이런 식으로 폐기되겠지. 이마를 타고 흐르던 땀이 눈으로 들어갔다. 쓰린 눈을 팔뚝으로 문지르며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김 과장이 쓰는 것 같은 고글을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결국엔 폐기되고 말 짐이 하나 더 느는 셈이겠지만 살아가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방 안에 있는 유품 정리를 끝낸 뒤 부엌으로 나갔다. 싱크대 서랍 속엔 미처 포장도 뜯지 못한 색색의 수세미와 행주가 잔뜩 들어 있었다. 김 과장이 냉장고를 비운 뒤 비닐을 씌우고 테이프로 겹겹이 밀봉했다. 그는 냉장고를 시작으로 텔레비전, 전자레인지, 전기밥솥 따위를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대체로 상태가 좋아서 그냥 폐기하기엔 좀 아까워 보였다. 유족이 있다면 크게 오염되지 않은 가구나 가전제품은 재사용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품을 인수할 유족이 없는 경우엔 전부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냥 버리긴 좀 아깝네.”
    내가 중얼거리는 걸 들었는지, 망자에겐 유족이 없는 것 같더라고, 김 과장이 탄식하듯 뇌까렸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문 주임, 거기 개수대 아래쪽 싱크대 열어 보면 문짝에 냉면집 스티커 붙어 있던데, 문 주임이 주문 좀 해줘. 더운데 냉면이나 먹지 뭐.”
    김 과장이 마루 한쪽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시간은 어느새 두 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나자 비로소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싱크대 문짝의 스티커와 핸드폰을 번갈아 보며 냉면집 전화번호를 차례로 꾹꾹 눌렀다.
    “자, 나가자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은 먹어야지.”
    김 과장이 끄응 소리를 내며 일어나 현장 밖으로 나갔다. 나와 상만도 현장을 빠져나왔다. 냉면은 십여 분쯤 후 도착했고 우리는 1층 현관 앞에 조르르 앉아 그다지 시원하지 않은 냉면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김 과장의 아내가 보온병에 준비해 준 냉커피까지 나눠 마신 뒤 오후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나머지 유품과 폐기물을 빠르게 정리했고 비교적 오염 정도가 덜한 유품을 정리한 상자부터 트럭으로 옮겨 실었다. 네 시가 조금 넘자 대형 폐기물 처리업자인 최 씨가 도착했다. 이제 덩치 큰 가구와 가전제품을 빼내야 했다. 트럭도 겨우 들어올 정도로 좁은 골목 끝에 위치한 현장 특성상 사다리차는 들어올 수 없었다. 회사는 유품 정리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이사와 청소 서비스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형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옮기는 일에도 이골이 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더운 날 사다리차도 없이 무거운 가구나 가전제품을 4층이나 되는 계단을 통해 옮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다른 일엔 빠르게 적응해 온 상만도 대형 폐기물을 옮기는 덴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상만과 함께 냉장고를 옮길 땐 힘의 균형이 맞지 않아 두 번이나 계단에서 구를 뻔했다. 최 씨를 보내고 나자 진이 다 빠져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들어가서 얼른 장판부터 걷어내 보자고. 너무 늦기 전에 일이 끝났으면 좋겠는데.”
    김 과장이 잠시 벗었던 마스크와 고글을 다시 썼다. 상만이 김 과장을 따라 현장으로 올라가는 걸 바라보며 담배를 한 대 빼 물었다.
    “얼른 피우고 올라오시래요.”
    계단참의 창문으로 고개를 삐죽이 내민 상만이 소리쳤다. 나는 선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빨아들였던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아들 녀석이 멀쩡한 방문을 부수는 동안 딸아이는 가출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나는 만사를 제쳐 두고 아이를 찾아 나섰다. 아이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만났고 아이가 목격됐다는 낯선 도시의 유흥가를 무작정 뒤지고 다녔다. 계집아이가 집을 나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뻔했다. 사내자식들이 득실대는 여관방이나 담배 연기 자욱한 노래방, 심지어 변두리의 다방에서 아이 앞으로 붙은 고액의 선불금을 갚고 아이를 데려왔다. 그러나 아이는 애써 찾아내 집으로 데려다놓은 지 사나흘, 혹은 일주일 후면 도로 집을 나가버렸다. 간혹 제 발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역시 머지않아 다시 자취를 감췄다. 머리 굵어진 자식을, 그것도 계집아이를 쇠사슬로 묶어 가둬 둘 수도 없고, 아이가 사라질 때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혼자서 동동거려야 했다. 그러던 아이가 두 달쯤 전 돌연 집으로 돌아와서는 무슨 까닭에선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제 오빠가 성깔을 부리면 얻어맞을 걸 뻔히 알면서도 바락바락 덤벼들던 전과는 달리, 욕을 하면 욕하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그저 당하고만 있기 일쑤였다. 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아빠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냐고 악을 쓰지도 않았다. 그저 온종일 제 방에 콕 틀어박혀 정물처럼 앉아 있다가 돌연 아무도 절 알아볼 수 없도록 성형수술을 시켜 달라거나 어디든 좋으니 멀고 먼 외국으로 보내달라는 등,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만 반복할 뿐이었다.
    “제발, 제발 날 꼭꼭 숨겨 줘. 아무도 찾지 못하게 날 좀 숨겨 줘. 응? 제발…… 제발…….”
    처음 몇 번은 발작하듯 몸을 떠는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이는 눈물만 흘릴 뿐, 도무지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한껏 날이 선 아이의 신경을 더는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나 같은 놈도 아비라 할 수 있는지, 딸아이를 생각하자 눈과 귀가 뜨겁고 목구멍마저 뻑뻑해졌다.
    “주임님! 과장님이 얼른 올라오시래요!”
    상만이 계단참까지 내려와 소리쳤다.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어 필터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땅바닥에 던진 후 발로 짓이겼다. 세상에 만만한 것이라곤 담배꽁초가 전부인 인생이라니. 기가 차다 못해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가구가 모두 빠진 방은 휑뎅그렁했다. 장판과 벽지의 연결 부위를 칼로 죽죽 그어 뜯어내고 모서리 쪽 장판을 들치자 번데기 탈피각과 구더기가 그득했다. 상만이 따라 들어와 반대편 모서리의 장판을 들쳤다. 우리는 합을 맞춰 들친 장판을 돌돌 말며 방 안의 장판을 모두 걷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 과장이 분무 소독기를 들고 들어와 탈피각과 구더기가 득시글대는 시멘트 바닥에 약을 쳤다. 몸이 잰 상만이 청소도구를 가져다 바닥을 쓸어냈다. 상만은 아들 녀석보다 다섯 살 위였다. 나이에 비해 생각도 행동도 성숙한 녀석이었다. 아들 녀석도 저만한 나이가 되면 철이 들까.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나도 모르게 세차게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아들 녀석은 고등학교에 들어간 직후부터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성적은 변변치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비뚤어진 녀석은 아니었다. 하교 후엔 늘 제 방이나 피씨방에 처박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빠져 있긴 했어도 도둑질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혹시 학교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 녀석이 완강히 부인했고, 무엇보다 간간이 고만고만한 녀석들을 집으로 끌어들여 함께 어울리는 것으로 봐서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더 이상의 결석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담임선생의 전화를 받던 날엔 작정하고 녀석에게 이유를 추궁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같은 질문을 반복했지만 녀석은 입을 꾹 다문 채 매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기만 했다. 녀석과의 기 싸움에 지친 나머지, 아무리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사람 구실하며 살 수 있는 거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내내 아무런 반응이 없던 녀석이 갑자기 소리쳤다.
    “학교는 다녀서 뭐 해? 씨발, 잘 풀려 봐야 아빠처럼 살 게 뻔한데. 아니야? 내 인생이, 자살한 새끼들이 싸질러 놓은 피똥이나 치우고 사는 아빠의 그 좆같은 인생보다 나을 거란 보장 있어? 그렇게 해줄 수 있냐고. 그럴 자신 없으면 그냥 닥치고 찌그러져 있어. 뭐? 사람 구실? 애자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날 난 녀석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대꾸는커녕 녀석을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정식으로 자퇴서를 낸 후 아들 녀석은 나날이 거칠어졌다. 방문이나 농짝을 부수거나 의자를 집어던져 창문을 박살냈다. 툭하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고 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내 팔목을 비틀며 위협하기도 했다. 심지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제 누이를 쥐어 패서 병원 신세를 지게 만든 적도 있었다. 하루가 멀게 깨고 부수고 악 쓰는 소리로 집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짐작한 이웃 중 몇몇이 자식은 그렇게 키우는 게 아니라고 훈계했다.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고 실제로 이웃들의 신고로 지구대 신세를 지는 일도 빈번했다. 여기서 더 나가게 두면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녀석을 제어할 힘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오염이 덜한 마루의 장판도 모두 걷어냈다. 집주인은 김 과장에게 견적이 더 나와도 좋으니 사람이 죽어 나간 흔적은 모조리 지워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염병할 년. 뒈질 거면 다른 데서 뒈질 일이지 엄한 사람 똥바가지 씌우는 것도 아니고, 대체 이게 뭐야. 사람 죽어 나간 거 소문나면 세 들어올 사람도 없을 텐데 이 일을 어쩌느냐고!”
    김 과장은 집주인을 만나고 온 날 그가 한 말과 행동을 구체적으로 재연했다. 그리고 더할 수 없이 천박한 인간이라며 그를 욕했다. 김 과장은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몇 년 전 회식자리에선 이 일에 대해 자부심을 넘어 어떤 사명감 같은 걸 느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엔 도대체 이렇게 험한 일이 뭐가 저리 좋을까 싶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한시적으로 하는 일일 뿐이라고 다짐했던 나 역시 벌써 오 년째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그가 느끼는 사명감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언제부턴가 고독사 현장에 가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신산한 삶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살 현장에선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향해 치열하게 손을 뻗쳤을, 애처로운 죽음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죽음의 흔적을 모두 지워내고 난 현장에선 오래전 애들 엄마가 머물렀던 그 방이 떠올라 가슴 한편이 아릿해지기도 했다. 일의 강도에 비해 보수도 넉넉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끔찍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사람이 언제 죽을지 알고 살면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벽지를 뜯어내면서 상만이 말했다.
    “별 쓸데없는 소리를 다 한다. 언제 죽을지 뻔히 알면 맨정신으로 살아지겠냐? 언젠간 죽는다는 거 다 알지만 그게 언젠지 모르니까 살아지는 거지.”
    김 과장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혼자 죽는 것도 무섭지만 내가 죽었다는 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해요.”
    상만이 얘기 끝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놈이 한숨은. 그러니까 외롭지 않게 살아. 주변에 잘하면서. 그러면 되는 거야.”
    김 과장이 토닥이듯 말했다.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세상에 외롭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다고. 다 그렇게 살다 죽는 거지.”
    내 말에 김 과장과 상만이 동시에 일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와, 주임님도 그런 말씀을 다 할 줄 아시네요.”
    상만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머쓱해져 나도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장판과 벽지를 모두 제거한 현장을 꼼꼼히 둘러본 김 과장이 문틀과 맞닿은 곳을 제외한 나머지 벽과 바닥은 보존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문틀 주변 벽이랑 바닥은 부분적으로라도 해체할 수밖에 없겠어. 문 주임은 일단 창틀부터 해체하고 그다음엔 상만이랑 같이 싱크대랑 현관문 소독 좀 하지. 나머진 내가 할 테니까.”
    상만에겐 콘센트 덮개와 스위치, 형광등 커버를 떼어내 소독할 건 소독하고 폐기할 건 폐기한 뒤 화장실 청소를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상만은 김 과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드라이버를 챙겨들고 방 안에 있는 콘센트 덮개부터 떼어내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여덟 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딸아이가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고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서둘러 해머드릴을 찾아 들었다.

 

    애들 엄마가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집을 나간 것은 아들 녀석이 열 살, 딸아이가 여덟 살이 되던 해였다. 나는 두 아이를 해남 큰형님 댁에 맡겨 두고 꼬박 일 년을 애들 엄마 찾는 일에만 매달렸다. 결혼 이후 몇 차례 실직과 재취업을 반복하긴 했어도 생활비를 거른 적은 없었다. 넉넉하진 않았겠지만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바람을 피우거나 도박을 한 것도 아니었다. 술에 찌들어 제 식구에게 손질을 한 적도 없었다. 만난 지 두 달 만에 청혼했고 그로부터 석 달쯤 뒤에 결혼식을 올렸으니 보통의 경우보다는 빠른 편이었다. 고등학교 동창 놈이 거래처 여직원이라며 소개해 준 애들 엄마와 불꽃이 튀는 연애를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만나는 내내 서로에게 데면데면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그토록 빨리 결혼을 결심했던 것은 해진 치맛단을 말아 넣고 손수 감친 그녀의 검정 치마 때문이었다. 애들 엄마에게 그 시절 느닷없는 내 청혼을 선선이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었다. 그저 그녀 역시 나와 비슷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뿐이었다.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덜컥 큰아이가 들어섰다. 덕분에 아기자기한 신혼생활을 누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부부처럼 다소 밋밋하고 덤덤한 관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애들 엄마 역시 사근사근하거나 수다스러운 성격이 아니어선지 적극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었다. 간혹 남편인 난 뒷전인 채 아이들에게만 매달리는 그녀에게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여자나 아내보다는 엄마로서의 삶에 충실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로서는 도무지, 어떠한 전조도 없이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 그녀의 속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처음 며칠은 갑작스러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멍하기만 했다. 텅 빈 집에 틀어박혀서 애들 엄마에게 내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변화의 조짐이 있진 않았는지 십여 년간의 결혼생활을 반복해서 복기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문득, 참을 수 없이 궁금해졌다. 그것은 분노나 억울함 같은 탁한 감정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정말이지 오롯한 궁금증이었다. 그토록 끔찍이 아끼던 아이들마저 버려두고 집을 나가야 할 만큼 절박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렇게 집을 떠나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그길로 가방을 꾸려 애들 엄마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전국을 떠돌기 시작한 지 십여 개월 만에 믿기지 않는 현실과 조우했다.
    상거지 꼴로 나타난 내게 형님은 세상에 다시없을 못난 놈이라며 호통을 치셨다. 형수님은 말없이 눈물만 훔치셨다. 부모 없이 자란 내게 큰형님은 아버지 대신이었고 젖먹이 때부터 나를 거둬 키우신 큰형수님은 어머니나 마찬가지였다. 왈칵, 눈물이 솟았다. 형수님이 소리 없이 흐느끼는 내 손을 잡아 끄셨다. 툇마루에 앉아 형수님이 급하게 내주신 밥상을 받고 있을 때 일 년 새 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내가 제 엄마와 함께 돌아올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지, 딸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아이는 방이며 부엌, 뒷마당을 수선스레 뒤지고 다니며 엄마를 불러댔다. 끝내 제 엄마를 찾지 못한 딸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아들 녀석은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채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형수님이 아빠와 함께 밥을 먹으라며 녀석을 부르셨지만, 녀석은 가방만 내팽개치곤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내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 못하던 형수님은 마당을 데굴데굴 구르며 통곡하는 딸아이를 달래 기어이 밥상머리에 앉히셨다. 울음기를 채 떨쳐내지 못한 아이는 숟가락을 든 채로 계속해서 딸꾹질을 했다. 형수님이 물을 먹여 보고 등도 쓸어 주었지만 아이의 딸꾹질은 멈추지 않았다. 아들 녀석이 사라져 버린 대문과 딸꾹질을 멈추지 못하는 딸아이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자니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아이들마저 영영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늦은 시간까지 바닥과 벽을 해체하는 소음이 상당했지만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창문을 활짝 열고 작업했다 해도 주민 항의 같은 건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장에 쌓아 뒀던 폐기물 봉투와 바닥과 벽의 해체 과정에서 나온 폐자재를 트럭으로 옮겨 실은 뒤 김 과장과 나란히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밤이었는데도 창문을 열어 둔 집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주변을 술렁이게 만들던 악취와 해충의 근원지를 알게 되었을 때 망자의 이웃들은 대개 상당한 충격과 공포에 빠진다. 그리고 몹시 불편해한다. 그들이 오며가며 수없이 마주쳤을 이웃의 쓸쓸한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날것 그대로 까발려진 죽음의 참담한 실체 앞에서 눈 감아버리는 쪽을 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과 똑같은 입장에 처하면 나 역시도 지척에서 일어난 불편한 죽음의 흔적들을 누군가 최대한 빨리, 그리고 가능하면 감쪽같이 치워 주기만 바랄 테니까.
    담배를 다 피우고 우리는 다시 현장으로 올라갔다. 마지막 정리와 악취 제거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김 과장과 상만이 현장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홈페이지에 업데이트할 사진을 찍는 동안 피톤치드 액을 분무했다. 현장뿐만 아니라 건물 계단과 지하실 구석구석까지 빠짐없이 분무했다. 이제 망자의 흔적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된 셈이다. 애들 엄마가 머물던 방 역시 그랬다. 그곳엔 빈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금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장인과 장모는 애들 엄마가 열아홉 살 되던 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내가 애들 엄마를 만났을 때 그녀의 나이가 스물여덟이었으니 부모를 잃은 지 십 년이 다 되어 가던 때였다. 세월이 그만큼 흘러서였는지 무덤덤한 성격 탓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제 부모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결혼식에 참석한 처가 식구라고는 앞니가 뭉텅 빠진 처이모뿐이었다. 친구 역시 많지 않았는데,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퇴직한 직장 동료 몇이 전부였다. 막상 애들 엄마를 찾아 나서기는 했지만 누구를 만나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내가 아는 그녀의 지인이라고는 결혼식에 참석한 이들이 전부였다. 하는 수 없이 무턱대고 애들 엄마의 옛 직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 시절 애들 엄마와 함께 근무하던 이들 중 회사에 남아 있는 사람은 겨우 세 사람뿐이었다. 그들은 애들 엄마를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은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근황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회사 정문을 막 나서려는데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는 아무렇게나 찢어낸 수첩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는 결혼식 이후 애들 엄마를 만났다는 이가 생각났다고 했다. 종이에 적힌 이름이 낯익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이라고 애들 엄마도 말한 적이 있는 여자였다. 그 자리에서 종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썩 내켜하지 않는 여자를 겨우 설득해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결혼할 때, 드디어 자기에게도 가족이 생겼다며 굉장히 기뻐했던 기억이 나요. 그 모습을 보며 좀 안쓰럽단 생각을 했거든요. 부모님이 안 계신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후 쭉 연락이 없다가 우리 둘째가 백일쯤 되었을 땐가? 하여간 그때쯤 갑자기 연락이 와서 만났어요. 그날 무슨 얘길 했는지 다는 기억나지 않아요. 근데 좀 이상한 말을 하긴 했어요. 다른 얘길 하다 말고 불쑥 묻는 거예요. 집이 있는데도 돌아갈 곳이 없는 심정이 어떤 건지 아느냐고 말이죠.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남편도 아이들도 생기긴 했는데 도무지 가족이 생긴 것 같지가 않다고 했어요. 다 가짜 같다나요?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사라져 버려도 아무 상관없을 것만 같다고 그러는 거예요. 애가 둘이나 딸린 애 엄마가 어떻게 저런 소릴 하나 싶었어요. 그래서 애 엄마가 못하는 소리가 없다고 좀 나무랐죠. 그랬더니 그냥 웃더라고요. 그 뒤론 다시 연락이 끊겼어요. 사실,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어요. 늘 혼자 다니던 사람이라 아주 가끔씩 점심 식사를 함께하는 정도였죠. 그것도 단둘이 먹은 적은 몇 번 안 돼요.”
    꼬치꼬치 캐묻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그녀는 애들 엄마와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한 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애들 엄마의 행방에 대해선 물을 기회조차 없었다.
    대책 없이 전국을 떠돌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처이모는 귀가 어두운 나머지 엉뚱한 대답만 반복한 끝에, 애들 엄마가 수원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을 얘기해 줬을 뿐이다. 더는 찾아갈 이도 찾아갈 곳도 남아 있지 않은 때였다. 그길로 수원으로 올라가 무턱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좁고 지저분한 골목을 헤맬 때마다 애들 엄마가 어딘가에 숨어 있다면 꼭 이런 곳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모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가 왜 집을 나갔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다 가짜 같다니, 자기가 사라져 버려도 아무 상관없을 것 같다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가 어디에 숨었는지 보다 왜 숨었는지가 더 궁금했던 것도 같다. 낯선 동네를 뒤지고 다니다 밤이 되면 술을 사들고 아무 여관에나 들어가 술을 마시다 잠들었다. 술이 과한 날엔 집을 나간 이후 한 번도 켜진 적 없었던 애들 엄마의 전화기로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어느 날엔가는 이 여자가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든 무사히 살아 있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또 다른 어느 날엔 이 망할 놈의 여편네를 찾아내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그녀의 소식을 전해 준 이는 뜻밖에도 경찰이었다.
    신원확인과 시신인계 절차를 밟은 뒤 애들 엄마가 지난 일 년간 머물렀다는 수원의 쪽방촌을 찾아갔다. 금이 가다 못해 틈이 쩍쩍 벌어진 담장 너머로 보이는 집은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았다. 지붕이 새는지 얇은 슬레이트 지붕 위엔 파란색 비닐 천막이 덮여 있었다. 녹이 심하게 슬어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대문을 조심스레 밀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애들 엄마는 벽을 빙 둘러싸듯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 중 한 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경찰은 돌연사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아이들을 신앙처럼 믿고 의지하던 여자가 아이들을 내팽개쳐 두고 집을 뛰쳐나와, 이런 쪽방에 머물다 돌연 혼자서 죽어갔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죽은 지 일주일이 넘어서야 발견됐다는 그녀의 사체를 경찰은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시신의 훼손 정도가 너무 심해서 봐도 알아볼 수 없을 거라는 말만 반복했다. 집주인의 안내로 애들 엄마가 머물렀던 방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장판과 벽지를 모두 걷어낸 방은 좁고 어두웠다.
    “이 방 청소하느라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아슈? 죽은 이가 마누라라고 했지? 그럼 이제라도 남편이 청소비용 정도는 해결해 주는 게 도리지.”
    망연해하고 있는 내게 집주인이 말했다. 대꾸하지 않고 지갑 속의 돈을 모두 꺼내 그에게 건넸다. 문간에 서서 건네받은 돈을 세어 본 집주인이 나를 한번 흘끔 쳐다보더니 혀를 차며 돌아갔다. 잠시 망설이다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어쩌면 남아 있을지도 모를 애들 엄마의 흔적을 찾아 방 안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벽지를 뜯어낸 자국이 군데군데 남은 벽에 여러 개의 실금이 가 있었다. 벽에 난 금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기며 애들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했다. 문득,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되살아났다. 가물거리던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숨이 막혀 왔다. 그녀와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세상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나를, 믿어요?”
    어느 날 저녁밥을 먹다 말고 오래 망설인 듯 머뭇거리며 애들 엄마가 물었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나는 잠깐 동안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다 다시금 밥상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루 종일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끝내는 허탕을 치고 들어와 늦은 저녁을 먹던 참이었다. 더구나 그건 그날의 첫 끼니이기도 했다. 한동안 잘 다니던 직장에서 갑작스레 떨려난 뒤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이런저런 일용직을 떠돌던 때였다. 빠듯하게나마 생활비는 마련하고 있었지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괴감은 커져만 갔고 신경 또한 예민해졌다. 도무지 그런 이상한 질문에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나는 결국 밥상을 엎어버렸다. 놀란 아이들이 연이어 울음을 터뜨렸다. 아직 어리긴 해도 속이 멀쩡한 애들이었다. 아이들이 신경 쓰여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엎어진 밥상을 한 번 더 걷어찬 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연거푸 담배를 피우며 빈속에 소주를 들이부었다. 쉬 풀리지 않는 화를 겨우 삭인 뒤 집으로 돌아갔다. 애들 엄마는 그때까지도 밥상을 치우지 않고 있었다. 앉은 채로 오줌을 싸버린 아들 녀석을 닦이지도, 울다 지쳐 숨을 깔딱대는 딸아이를 어르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멍한 얼굴로 벽만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뭐 하고 앉아 있는 거야? 애들 우는 소리 안 들려?”
    참다못해 소리쳤다. 축 늘어져 있던 아이들이 다시금 목청을 돋워 울기 시작했다.
    “보여요? 벽에, 금이 갔어요. 어제보다 더 길어진 것 같아요. 금이, 자꾸자꾸 자라고 있어요. 저길 좀 봐요. 금이 자라고 있다고요. 매일매일 쑥쑥 자라고 있어요. 이러다 무너지고 말 것 같아.”
    애들 엄마가 넋이 나간 얼굴로 웅얼거렸다. 저게 사람인가 귀신인가 싶었다. 나는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가 맨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리고 이내 잠들어버렸다. 다음날 잠에서 깨 밖으로 나왔을 때 애들 엄마는 멀쩡한 얼굴로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밥상을 다 차린 그녀가 어서 먹고 유치원에 가야 한다며 큰아이를 재촉했다. 그리곤 밤사이 산발이 된 딸아이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밥상 앞에 앉아 고춧가루를 풀어 끓인 콩나물국을 들이켰다. 그날 이후 애들 엄마는 두 번 다시 이상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니, 질문 자체를 한 적이 없는 것도 같다.
    금이 자라고 있다니, 애들 엄마는 그날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알려고 해본 적도 없었다. 그녀의 가슴 속에 난 금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나는 그녀를 묵살했고 방치했다. 모든 게 다 가짜 같다고 했다던가. 갑자기 그녀에 대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가짜처럼 여겨졌다. 나는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손바닥만 한 쪽방에 어둠이 짙게 드리우기까지, 오래오래 울었다. 경찰은 그녀가 혼자서 ‘돌연’ 죽어갔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은 명백한 타살이었다.
    폐기물을 실은 트럭을 타고 현장을 벗어나면서는 언제나 그랬듯 다소 헛헛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폐기물 처리공장으로 향하는 내내 김 과장과 상만도 입을 열지 않았다. 공장에 도착해 업자에게 트럭의 키를 넘겨준 뒤, 닭내장탕에 소주나 한잔 하자는 김 과장의 청을 뿌리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예상했던 것보다도 늦은 시간이었다. 한산한 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아 차창 밖을 내다봤다. 휘황한 빛으로 휘청이는 거리 풍경이 오늘따라 낯설어 보였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신발도 벗지 못하고 현관 바로 옆 딸아이 방으로 가서 불부터 켰다.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신발을 신은 채 마루로 가 불을 켰다. 안방과 아들 녀석 방의 불도 차례로 켰다. 딸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들 녀석이야 이 시간에 집에 있을 리 없었지만 딸아이가 다시 사라져 버릴 거라곤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마루 가운데 털썩 주저앉아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의 전원은 꺼져 있었다.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 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아들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일부러 받지 않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딸아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역시 전화기의 전원은 꺼진 채였다. 갑자기 눈물이 치솟았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툭. 툭. 툭. 시커멓게 탄 장판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한 달쯤 전, 아들 녀석은 요구하는 돈을 주지 않자 들고 있던 수건에 불을 붙여 마루 한가운데로 던졌다. 놀란 나머지 되는 대로 몸을 던져 불을 끄다가 발등에 가벼운 화상을 입고 말았다.
    “자꾸 이딴 식으로 나오면 싹 다 태워 죽여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알아들어?”
    아들 녀석은 혼이 빠진 나를 밀치더니 주머니에서 지갑을 빼가며 빈정거렸다. 그날 밤, 반쯤 탄 수건을 쓰레기봉투에 담으며 나는 아들 녀석이 아닌 나 자신의 무능을 탓했다. 내가 괴물을 키워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한번은 아들 녀석에게 엄마도 없이 저희들을 키우는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아,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혹시 엄마 없이 크는 놈은 좋아 죽겠는 줄 알고 있는 거야? 엄마도 없이 키우면 미안한 줄 알고 더 잘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죽는 소리나 하고 있으면 어쩌겠다는 거냐고. 엉? 엄마가 누구 때문에 집을 나갔는데!”
    아들 녀석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를 한껏 비웃은 뒤 다 필요 없으니까 돈이나 내놓으라며 평소보다 더 성깔을 부려댔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아직 화장실 문을 열어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땀에 전 셔츠자락으로 눈물을 훔쳐낸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화장실 앞에서 섰다. 화장실 전등 스위치를 누르고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았다. 덜그럭대는 문고리를 비틀자 힘없이 문이 열렸다. 그곳에도 딸아이는 없었다. 절망스러운 마음에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텅 빈 화장실 바닥에 노란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그러고 보니 세면대 위도 머리카락으로 어지러웠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한 딸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무릎이 꺾여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들 녀석의 칼 장난으로 군데군데 짓이겨진 문틀을 잡고 있던 손이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손바닥에 가시가 박혔다. 한동안 화장실 바닥의 수북한 머리카락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돌려 가시 박힌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부패 액이 시커멓게 눌어붙은 방바닥에 엉겨 있던 머리카락 뭉치가 떠올랐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날이 훤하게 밝아 오도록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름을 덮어쓴 듯 끈끈한 몸을 천천히 모로 뉘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딸아이를 찾기 위해 또다시 그 앨 아는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도시를 뒤지고 다닐 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번엔 그렇게 해서 아이를 찾을 수 있으리란 확신도 들지 않았다. 아들 녀석은 이 시간까지 또 어느 거리를 헤매고 있는 걸까. 그리고 제 스스로 머리카락을 뭉텅뭉텅 잘라낸 딸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뜨끈한 햇살의 열기를 느끼며 눈을 꼭 감았다. 이대로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 역시 지금껏 내가 만나 온 수많은 망자들이나 애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혼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겠지. 나의 죽음을 수거하는 이들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멀쩡한 문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마룻바닥은 시커멓게 타버렸으며 떨어져 나간 싱크대 문짝을 그대로 방치해 둔 내 집을 둘러보며 그들이 어떤 인생을 상상할지 궁금했다. 어쩌면 그들 중 누군가는 뭉텅 빠져버린 내 머리카락을 보고 구역질을 할지도 몰랐다. 꼭 감은 눈에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정오가 가까워져서야 눈을 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딸아이의 노란 머리카락을 쓸어 치우고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살아 있는 동안에 해야 할 일이 수없이 많았다. 나는 아직 아이들에게 저희들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이야기해 주지 못했다. 부서진 문짝을 고치고 마루 장판도 새로 깔아야 했다. 아이들이 끔찍해하는 악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했고, 아직 제 구실을 못 하는 아이들을 계속 돌보자면 새로운 직장도 찾아야 했다. 무엇보다 딸아이를 찾아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물어봐야 했다. 애들 엄마에게 그랬듯 딸아이마저 이대로 놓쳐버릴 수는 없었다. 젖은 몸의 물기를 닦고 옷을 찾아 입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의 전원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이번엔 아들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오랜 신호 끝에 전화를 받은 녀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내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를 훑어봤다. 대부분이 아이들의 친구나 그 아이들 부모의 전화번호였다. 언제나 그랬듯 이들부터 시작해 꼬리를 밟아 가다 보면 이번에도 딸아이의 행방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전화기와 지갑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샤워를 한 지 겨우 십여 분이 흘렀을 뿐인데 벌써부터 목덜미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목덜미를 훔쳐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가시 박힌 손바닥이 욱신거렸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터무니없이 새파란 하늘에 시선을 고정했다. 눈앞이 핑그르르 돌더니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돌연히 찾아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고독하기 짝이 없다. 아내와의 만남이 그랬고 이별 역시 그러했다. 그 돌연한 것들 앞에서 나는 매번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만은 달라야 했다. 돌연히 찾아올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라도 아직은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고개를 수그리고 가슴을 누르며 크게 심호흡했다. 세차게 뛰던 가슴이 진정되면서 차츰 시야도 맑아졌다. 저만치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버스가 보였다. 어쩐지 이번만은 버스를 놓쳐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무턱대고 뛰기 시작했다.

 

 

 

   《문장웹진 11월호》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소설

우리들 사이에 흐르는 강

[단편소설] 우리들 사이에 흐르는 강 황시운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늘어놓는 사람도 없는데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청소를 한다. 잠시 후, 청소기 소리가 멈췄다. 이제 엄마는 걸레를 빨아 좁은 거실과 부엌, 그리고 제희와 내가 함께 쓰던 작은방을 걸레질할 것이다. 이십여 분쯤 흘렀을까.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낡은 소파에 무너지듯 앉아서 종일 가쁘게 차올랐을 숨을 돌리는 엄마의 모습이 연상됐다. 방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엄마의 움직임과 표정을 상상하곤 한다. 내가 보지 못할 때 엄마는 어떤 얼굴일까. 나와 함께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러하듯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을까. 아니면 이를 앙다물어 버릇해서 단단해진 턱이 도드라져 보일까. 그것도 아니면 오래 울고 난 사람처럼 허탈한 표정일까. 어쨌든 웃는 얼굴은 아닐 테지.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나도 엄마도 제희도 이제 더 이상 웃지 않는다. 웃을 일이 없기도 하거니와 우리는 모두 아예 웃는 법 자체를 잊어버린 것 같다. 사라져 버린 아빠는 어떨까. 모르긴 해도 우리와 비슷하겠지. 집을 떠났다고 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 테니까. 아빠는 그렇게까지 적응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로 인해 달라진 일상과 관계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가장 먼저 튕겨져 나간 사람도 아빠였다. 모로 누워 엉덩이를 허옇게 내놓고 항문에 좌약을 넣은 채 죽음의 순간에 대해 생각한다.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던 숨을 놓치는 찰나의 순간, 실재하는 감각은 물론 왜곡된 감각까지 사라져 버리는, 그리하여 티끌만 한 존재의 맨 마지막 증거마저 완벽하게 소멸되는 축복의 순간에 대하여. 7년 전 그날 이후, 삶은 천형이 되었다. 매 순간 죽고 싶었지만 그건 내 선택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아무 미련도 남지 않은 삶을 그저 견뎌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던 어느 날, 벼락처럼 떠오른 생각이 나를 구원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존재한다는, 그러니 처참히 이어지고 있는 내 삶에도 당연히 끝이 존재할 거라는, 죽지 못해 안달을 내지 않아도 결국엔 죽게 될 거라는, 게다가 이렇게 된 이상 오래 살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합리적 추론. 삶이 멈추면 고통도 멈춘다. 이 당연하고도 단순한 사실이 바싹 말라비틀어져 있던 내 영혼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희망은 삶을 충만하게 한다. 죽음에의 희망이 있어 고통에 매몰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상한 말 같지만, 세상엔 죽음만이 유일한 희망인 삶도 존재하는 법이다. 항문에서 푸르릉, 가스가 새어 나왔다. 잠시 후, 딱딱해진 대변이 항문을 빠져나와 툭, 떨어졌다. “엄마!” 아무리 힘껏 외쳐도 목소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퍼져나가질 못했다. 그러나 엄마는 용케 그걸 알아듣고 반응하고는 했다.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소리가 뚝 끊겼고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제 엄마는 내 항문을 마사지하고 후벼 파 딱딱하게 굳은 채

  • 황시운
  • 2022-05-01

문장웹진 소설

기도

[단편소설] 기도 황시운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 좁고 어두운 내 방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면 오래 묵은 먼지가 햇살 속을 부유하며 반짝이기 시작한다. 빛 속에선 먼지마저도 제 존재를 발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한 번은 오지 않을까. 나에게도 딱 한 번은 오지 않을까. 아닌가.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닌가. 나에게 그런 순간은 결코 오지 않으려나.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 어찌 됐든 내 얼굴에도 빛이 드리워진다. 눈이 부신다. "사기? 사기라고? 거기 너만 못한 사람이 하나나 있는 줄 알아? 너보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 천지야. 잘난 척 좀 그만 하고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좀 들어. 넌 어떻게 된 게 매사 뭘 해보기도 전에 초부터 치고 그러냐?" 김 여사가 몰아붙였다.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김 여사는 긴 한숨 끝에 다시 쏘아붙였다. "소 잡아먹은 귀신처럼 입만 꾹 다물고 있으면 단 줄 아나……. 하여간에 속이 터져서 못살아, 내가." 한껏 독이 오른 김 여사를 더 자극할까 싶어 얼른 시선을 돌렸다. 누렇게 바랜 천장 벽지 속 무늬를 눈으로 따라 그리며 이 집에 머무는 것과 기도원으로 가는 것 중 어느 쪽이 덜 위험할지 가늠해 봤다. 놈이 있는 한 집은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김 여사가 말하는 기도원이란 곳은 어떨까. 암환자를 낫게 하고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이 일어난 곳이라고 했다. 물론, 김 여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일어날 리 만무할뿐더러, 그런 곳에서 뜯어먹을 것도 없는 나를 끌어들일 리가 없었다. 도대체 내게서 얻어낼 게 뭐라고 나를 받아 주겠나. 설마 김 여사가 그동안 애면글면 틀어쥐고 있던 돈을 내놓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가진 거라곤 박우식 씨의 사망보험금뿐이었다. 놈조차 한 푼도 알겨내지 못한 돈을 김 여사가 그리 쉽게 내놓았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보내려는 김 여사도 보내지 않으려는 놈도, 나를 위해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양쪽 다 위험하긴 매한가지였다. 드러난 위험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위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어찌 됐든 놈에게서 벗어나는 편이 나으려나. 아니면 이미 바닥까지 드러난 위험 속에 머무는 편이 나으려나. 아니, 어차피 내게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저울질을 왜 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이 널을 뛰었다. 이곳에서 벗어나 보려는 시도를 아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근처에 놓인 김 여사의 휴대전화를 간신히 끌어당겨 혓바닥으로 버튼을 눌러 신고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경찰이 찾아왔다. 비쩍 마른 중년 남자와 평범한 체격의 젊은 남자였다. 둘 중 나이 든 이가 문지방을 밟고 서서 방 안을 휘둘러보았다. 그러곤 턱을 치켜든 채 킁킁거리다가 한껏 인상을 쓰며 내게 물었다. "아가씨가 신고했어요?" 나는 그의 뒤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김 여사의 시선을 피하며 간신히 대답했다. "제발 절

  • 황시운
  • 2020-02-01

문장웹진 소설

소녀들

[단편소설] 소녀들 황시운 신발을 벗어야 할까. 고개를 숙여 신발을 내려다봤다.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난간에서 내려왔다. 천천히 쪼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묶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운동화 끈이 풀리지 않도록 묶는 동영상을 봤는데, 방법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풀린 끈을 묶으면서, 집에 가면 유튜브 영상을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끈을 다 묶고 일어나려는데 운동화 앞코에 묻은 붉은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문질러 봤지만, 어쩌다 생긴 얼룩인지 아무리 세게 문질러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하얀색 운동화라서 그런지 한번 눈에 띈 얼룩은 점점 더 도드라져 보였다. 운동화는 한 스포츠 의류업체에서 한류 아이돌 그룹을 모티프로 제작한 슈퍼스타 라인 중, 블랙 몬스터를 위해 디자인된 것이었다. 내겐 이것과 똑같은 운동화가 한 켤레 더 있다. 아직 상표도 떼지 않은 그 운동화는 신발장 맨 아래 칸에 되는 대로 쑤셔 박혀 있다. 운동화를 쑤셔 박은 건 엄마였는데, 나는 그러는 엄마를 말리지도, 이후에 운동화를 꺼내 다시 정리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마음에 들어서 산 운동화도 아니었다. 미래는 블랙 몬스터의 래퍼 R을 좋아한다. 유난히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을 가진 R은 연습생 시절부터 이미 거대한 팬덤이 형성되어 있었다. 미래는 R의 붉은 입술을 보면 발밑이 푹 꺼지는 것만 같다고 했다. R의 주변에서 알짱대는 년들은 모조리 없애버리겠다거나 언젠간 반드시 R과 자고 말 거라는 다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지은인 블랙 몬스터의 K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언젠가 미래에겐 비밀이라면서 내게 말한 적이 있다. “R이 너무 좋지만, R은 미래 거니까.” 나는 블랙 몬스터를 좋아하지 않는다. 보컬도 퍼포먼스도 수준급임엔 틀림없지만 딱히 끌리는 구석이 없었다. R은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백치처럼 아무 때나 벌쭉벌쭉 웃는 것도 싫었고 인터뷰 때마다 터져 나오는 말실수는 수준 이하였다. 멤버들의 자작곡이라며 발표한 몇몇 곡들은 기획사에 소속된 섀도 작곡가가 따로 있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팬픽에 미친 초딩들처럼 연예인을 두고 네 것이니 내 것이니 하는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유치했다. 물론 내 생각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미래가 R에 대해 얘기할 때면 눈을 빛내며 들어줬고, 지은의 비밀 역시 발설한 적이 없다. 아무도 행복해하지 않을 사실은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나간 말은 결국 내게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불화는 언제나 말에서부터 싹튼다. 이 운동화를 사면 스포츠 브랜드에서 프로모션 하는 블랙 몬스터의 팬 미팅 초대 이벤트 응모권을 줬다. 미래와 나, 지은은 각각 두 켤레씩 운동화를 샀고 여섯 장의 응모권은 모두 미래가 가져갔다. 애초부터 그러기로 한 일이었다. 내가 받은 응모권을 미래에게 줄 땐 지은의 눈치가 보였지만 하는 수 없었다. 지은 역시 순순히 제 몫의 응모권을 미래에게 건넸다. 여섯 장의 응모권을 보내고도 미래는 끝내 팬 미팅에 가지 못했다. 그

  • 황시운
  • 2018-07-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1건

  • 고슴도치13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2014-11-10 02:07:46
    고슴도치13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