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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 작성일 2020-02-01

[단편소설]



기도



황시운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 좁고 어두운 내 방에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면 오래 묵은 먼지가 햇살 속을 부유하며 반짝이기 시작한다. 빛 속에선 먼지마저도 제 존재를 발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한 번은 오지 않을까. 나에게도 딱 한 번은 오지 않을까. 아닌가.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닌가. 나에게 그런 순간은 결코 오지 않으려나.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 어찌 됐든 내 얼굴에도 빛이 드리워진다. 눈이 부신다.
"사기? 사기라고? 거기 너만 못한 사람이 하나나 있는 줄 알아? 너보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 천지야. 잘난 척 좀 그만 하고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좀 들어. 넌 어떻게 된 게 매사 뭘 해보기도 전에 초부터 치고 그러냐?"
김 여사가 몰아붙였다.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김 여사는 긴 한숨 끝에 다시 쏘아붙였다.
"소 잡아먹은 귀신처럼 입만 꾹 다물고 있으면 단 줄 아나……. 하여간에 속이 터져서 못살아, 내가."
한껏 독이 오른 김 여사를 더 자극할까 싶어 얼른 시선을 돌렸다. 누렇게 바랜 천장 벽지 속 무늬를 눈으로 따라 그리며 이 집에 머무는 것과 기도원으로 가는 것 중 어느 쪽이 덜 위험할지 가늠해 봤다. 놈이 있는 한 집은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김 여사가 말하는 기도원이란 곳은 어떨까. 암환자를 낫게 하고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이 일어난 곳이라고 했다. 물론, 김 여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일어날 리 만무할뿐더러, 그런 곳에서 뜯어먹을 것도 없는 나를 끌어들일 리가 없었다. 도대체 내게서 얻어낼 게 뭐라고 나를 받아 주겠나. 설마 김 여사가 그동안 애면글면 틀어쥐고 있던 돈을 내놓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가진 거라곤 박우식 씨의 사망보험금뿐이었다. 놈조차 한 푼도 알겨내지 못한 돈을 김 여사가 그리 쉽게 내놓았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보내려는 김 여사도 보내지 않으려는 놈도, 나를 위해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양쪽 다 위험하긴 매한가지였다. 드러난 위험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위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어찌 됐든 놈에게서 벗어나는 편이 나으려나. 아니면 이미 바닥까지 드러난 위험 속에 머무는 편이 나으려나. 아니, 어차피 내게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저울질을 왜 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이 널을 뛰었다.
이곳에서 벗어나 보려는 시도를 아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근처에 놓인 김 여사의 휴대전화를 간신히 끌어당겨 혓바닥으로 버튼을 눌러 신고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경찰이 찾아왔다. 비쩍 마른 중년 남자와 평범한 체격의 젊은 남자였다. 둘 중 나이 든 이가 문지방을 밟고 서서 방 안을 휘둘러보았다. 그러곤 턱을 치켜든 채 킁킁거리다가 한껏 인상을 쓰며 내게 물었다.
"아가씨가 신고했어요?"
나는 그의 뒤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김 여사의 시선을 피하며 간신히 대답했다.
"제발 절 여기서 데리고 나가 주세요."
나이 든 경찰은 내 말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젊은 경찰은 이런 상황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아가씨, 그 몸으로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요. 그냥 있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피붙이, 내 집이 제일 낫다니까."
경찰들은 김 여사와 몇 마디 더 주고받더니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도대체가 넌 미련한 거냐, 순진한 거냐. 네가 여기서 데리고 나가 달라고 하면 경찰이, 네, 알겠습니다, 어디로 모셔다 드릴까요, 할 줄 알았어? 아이고, 이 답답아……. 그리고 이게 그동안 똥오줌 다 받아내며 치다꺼리해 준 사람한테 할 짓이냐? 내가 널 두드려 패기를 했냐, 생으로 굶기기를 했냐. 아니면 제때 약을 안 먹였냐.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냐. 응? 아니, 나야 그렇다 쳐도, 기웅이는 어쩔래? 오늘 일이 그놈의 자식 귀에 안 들어갈 거 같아? 모르긴 해도 날도 새기 전에 다 알게 될 거다. 그놈이 알면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해봤어? 도대체 무슨 꼴을 더 당하려고……."
김 여사가 등긁이로 내 얼굴과 목덜미를 쿡쿡 찌르며 쏘아붙였다. 김 여사는 감각이 남아 있는 부위만 용케 골라서 찌르고 꼬집고 할퀴는 재주를 가졌다. 그게 아플 새도 없이, 김 여사가 말하는 '무슨 꼴'이 무슨 꼴인지 충분히 짐작이 돼서,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숨이 막힐 듯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 놈은 밑도 끝도 없이 내 몸에 생긴 뜸 자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담뱃불로 지지기 시작했다. 놈 모르게 도망쳐서 뜸 하나로 사지마비 환자를 걷게 만들었다는 거사의 암자에 머물 때 생긴 흉터였다. 그때 김 여사와 내가 머물던 남쪽 끝 마을의 작은 암자를 놈은 넉 달이 채 안 돼 찾아냈다.
"도망치고 싶냐?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았어? 꿈도 꾸지 마. 네가 어딜 가든 끝까지 쫓아갈 거야. 어디에 숨든 기필코 찾아내서, 이번엔 모조리 불태워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그 불구덩이 속에 너도 저 여자도 던져 넣고 말 테니까. 다 같이 잿더미가 되고 싶으면 어디 한번 해보든지.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우린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거, 이젠 알 때도 됐잖아.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 내 옆일 거야. 죽을 때도 내 옆에서 죽어야 된다고. 너랑 나는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거든.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어. 나한텐 네가 딱이고 너한텐 내가 딱이야, 딱."
놈이 '딱이야, 딱'이라고 말할 땐 배꼽 아래쪽의 흉터를 지지고 있었다. 나는 살이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숨 죽여 흐느꼈다. 감각이 사라졌다고 두려움이나 모멸감마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김 여사와 여러 번 눈이 마주쳤지만 김 여사는 놈을 말리는 대신 내 시선을 피했다. 그날 나는, 내가 결국 놈의 손에 죽고 말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에도 김 여사는 내 시선을 피하고 말겠지. 그런데도 나는 이 끔찍한 곳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놈의 말처럼 이곳이 내게 '딱'이어서가 아니라 혼자서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처지 때문이다. 칠 년 전, 내게 내려진 첫 번째 진단명은 '경수 손상으로 인한 사지 마비'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진단명도 있었지만 그건 기억할 필요조차 없었다. 첫 번째 진단명만으로도 나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다. 집에서, 아니, 놈에게서 도망친 지 만 오 년째 되던 해에 벌어진 일이었다.
김 여사가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걸레질을 하고 있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지, 벌써 한참 동안이나 한 자리만 반복해서 훔쳐내고 있었다. 인공관절 수술을 한 왼쪽 다리의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저 다리를 수술하기 위해 김 여사는 한 달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간병인 생활 십 년 만에 다른 사람의 간병을 받는 호강을 다 해봤다는 그 시간 동안, 놈과 나, 둘만 이 집에 남겨졌었다.
"그 여자도 늙어 가고 있다는 증거겠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까? 십 년? 이십 년? 아, 생각해 보니 까마득하네. 너무 오래 살면 어떡하지?"
놈이 내 겨드랑이에 얼굴을 묻은 채 중얼거렸다. 술과 담뱃진 냄새가 역하게 풍겨 왔다.
"어쨌든 결국엔 죽겠지, 뭐. 그럼 드디어 너랑 나 둘만 남는 거야. 우리가 결국 우리를 가두고 있던 그 여자의 배를 찢고 세상으로 나왔던 것처럼 말이야. 비로소 모든 게 완벽해지는 거지."
옆구리를 파고드는 놈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놈이 내 몸을 제 쪽으로 바싹 끌어당기며 내 볼에 입을 맞췄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인상 펴."
놈이 속삭였다.
"인상 펴라고 했다."
놈이 내 볼을 툭툭 치며 말했다.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벌겋게 달아오른 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불이라도 꺼줬으면. 아래턱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김 여사를 바라봤다.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세 시간? 네 시간?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할까. 도대체 목적지가 어디일까. 우리가 사라진 걸 알면 놈은 어떻게 나올까. 당장에 찾아 나설까. 이번에도 우리를 찾아내고야 말까. 찾아내서, 정말로 불이라도 지르는 건 아닐까. 김 여사는 왜 이러는 걸까. 놈이 가만있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정말로 나를 일으켜 세우고 싶은 걸까. 도대체 왜.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제 와서 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동안 곡선구간을 달리던 구급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 바람에 놀란 김 여사가 눈을 떴지만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또다시 눈을 감았다. 십여 분쯤 흘렀을까. 구급차가 다시 멈췄고 이번엔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렸다.
"다 왔나 보네. 이제 내릴 거니까 정신 차려."
구급차 뒷문이 열리자 김 여사가 먼저 내리며 말했다. 운전기사가 들것을 쭉 잡아당기자 덜컹, 접혀 있던 들것의 다리가 펴졌다. 잠시 후, ㄱ자 형태인 미색의 2층 건물에서 남자 하나가 스트레쳐카를 끌고 나타났다. 미색 건물의 중앙엔 첨탑 형태의 십자가가 우뚝 솟아 있어 평범한 건물의 분위기를 어딘지 괴상하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
"얼른얼른 좀 움직이자. 오늘 아직 두 건이나 남았다고."
운전기사가 재촉했다.
"하나, 둘, 셋!"
운전기사와 남자가 각각 내 어깨와 다리를 잡고 날 스트레쳐카로 옮겨 실었다. 건물 주변은 온통 숲이었다. 맞은편 숲 사이로 진입로가 나 있었는데, 구급차가 저 길로 어떻게 들어왔나 싶게 좁아 보였다. 살아서 저 진입로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만에 하나라도, 김 여사의 장담처럼 걸어서 이곳을 나가게 되는 건 아닐까. 덜컹이는 스트레쳐카에 실려 건물로 들어서며 생각했다.
"갈 땐 걸어서 나가게 될 거야. 아무 걱정할 거 없어."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김 여사가 힘주어 말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스트레쳐카가 멈춰 섰다.
"좀 있어 봐. 행정실에 갔다 올 테니까."
김 여사가 말했다. 대꾸하는 대신 고개를 움직여 주위를 살펴봤다. 로비의 휴게실로 보이는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텔레비전만 바라보는 사람,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 보행보조기를 짚고 위태롭게 걸음을 옮겨 놓는 사람, 두어 걸음 걷다가 무너지듯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람, 구석자리에 서서 맨손체조를 하는 사람 등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누구도 다른 이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내게 시선을 주는 이도 없었다. 마치 혼이 나간 것처럼 하나같이 입을 꼭 다문 사람들이 너른 공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채우고 있었다. 김 여사가 돌아왔고 스트레쳐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락 겁이 났다. 스트레쳐카가 로비와 휴게실을 지나쳐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순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어 철컹철컹 스트레처카를 고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몸이 붕 떠올랐다 내려졌다.
"눈 떠. 조금 있음 원장님 오실 텐데 준비하고 있다 인사 드려야지. 왜 걸핏하면 눈을 감나 모르겠네. 보기 싫다고 안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김 여사의 말에 천천히 눈을 떴다. 싸구려 천장 패널의 불규칙적인 무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다음은 거미줄이 걸린 형광등과 맞은편 벽에 걸린 달력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전등과 달력이 있다는 건 이곳도 낮과 밤이 존재하고 시간이 흐르는 곳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찌 됐든 끝이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어 방을 둘러보았다. 방은 두 평쯤 되어 보였고 가구라고는 내가 누운 환자용 침대와 그 옆에 나란히 놓인 세 칸짜리 플라스틱 서랍 하나가 전부였다. 김 여사가 가지고 온 가방을 서랍 옆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따닥따닥 슬리퍼 끄는 소리가 복도를 울리더니 곧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짙은 화장을 한 늙은 여자와 배가 불룩 나온 중년의 남자, 그리고 조금 전 스트레쳐카를 끌던 젊은 남자였다.
"원장님 오셨어요? 얘, 인사 드려. 원장님이셔."
김 여사가 호들갑스럽게 얘기하며 침대의 크랭크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됐어. 인사는 무슨. 애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둬. 최 목사님 소개였던가? 보호자도 함께 묵으며 기도할 거랬지?"
원장은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파였지만 체격도 목소리도 꼬장꼬장 단단해 보였다.
"다른 생각 일절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기도하며 안수 받아.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역사하실 테니까. 보호자는 일단 원장실로 따라와 봐. 이 선생은 여기 보호자용 보조침대 하나 넣어 주고."
"네."
젊은 남자가 대답했다. 그의 역할이나 직급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이 선생이라 불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원장이 제 할 말을 하는 동안 중년 남자는 다리 쪽의 이불을 들추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지금 내가 어디 만지는지 모르겠어? 정말 아무 느낌 없는 거야?"
남자가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렇게 세게 꼬집는데도 안 아프다고?"
이번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원장은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그대로 돌아서서 방에서 나갔다. 중년 남자가 원장을 따라 나갔다. 이 선생이 들고 온 담요와 베개를 김 여사에게 내밀며 말했다.
"얼른 원장실로 가보시고요,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나중에 행정실로 오세요."
김 여사가 건네받은 이불을 한쪽에 내려놓고 서둘러 방을 나갔다.
"첫 예배는 새벽 기도를 겸해서 5시에 시작돼요. 식사는 8시, 12시, 5시 30분, 소등은 밤 9시. 시간 꼭 지키라고 전해요."
이 선생 역시 제 할 말만 하고 돌아갔다.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 달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11월이었지만 달력은 아직 4월이었다. 꽃비가 내리고, 숲이 푸르러지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다 지도록 달력을 넘겨주는 이가 없었다는 건 아무도 시간의 흐름에 의미를 두지 않았단 뜻이었다.
"시간이 고인 곳인가."
오늘 처음으로 입을 열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고인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른다. 가끔은 아예 멈춰버리기도 한다. 전등이 있고 달력이 있지만, 아무도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곳. 어쩌면 이곳에서의 생활이 각오했던 것보다 길고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휠체어를 타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 선생과 김 여사의 도움으로 휠체어로 옮겨 앉자 고개가 외로 꺾이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지러운 것도 어지러운 거였지만, 감각 없는 몸뚱이가 푹 까부라지는 느낌이 너무 생생해 당황스러웠다.
"얼굴 창백해진 것 좀 봐요. 어지간하면 그냥 참아 보라고 할 텐데, 이 상태로는 예배 끝날 때까지 못 버틸 거예요. 이번만 그냥 침대로 옮겨서 예배 보면 안 될까요?"
김 여사가 사정했다. 잠시 후, 이 선생이 스트레쳐카를 끌고 다시 나타났다. 나는 스트레쳐카에 실려 예배실로 옮겨졌다. 널찍한 예배실 바닥엔 오와 열을 맞춰 꿇어앉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설교대 앞엔 어제 내 다리를 꼬집던 중년 남자가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고 그 옆으로 걸린 플래카드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치유의 현장–일요 치유예배 최복자 원장님/평일예배 전강희 목사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가 온 걸 발견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예배 시간 지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기본도 못 지키면서 무슨 병이 낫길 바라!"
남자의 호통에 김 여사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 휠체어에 앉히니까 애가 정신을 못 차려서요. 기립성 저혈압인 모양이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 시간부턴 미리미리 준비시켜서 이런 일 절대 없게 할게요."
박우식 씨 외에 김 여사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고분고분한 걸 본 적이 없었다. 뜸쟁이 거사의 암자에서 함께 지낼 때도 이 정도로 저자세는 아니었다. 플래카드 속 문구처럼 성령의 힘으로 날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래서 저렇게 쩔쩔매는 건가. 저 어처구니없는 믿음은 정말 나를 위한 걸까.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나를 낳고 길러 준 저 여자를,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놈이 내게 저지른 나쁜 짓에 대해 처음으로 털어놓았을 때 박우식 씨와 김 여사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내 고백을 다 들은 박우식 씨가 처음으로 뱉은 말은 '이놈의 계집애가 집안을 생으로 말아먹고도 남겠구나.'였다. 김 여사는 그 옆에서 '어머, 얘가 미쳤나 봐.' 소리만 반복했다. 박우식 씨는 최소한의 확인 절차도 없이 어디서 그런 더러운 짓거리를 배워 왔냐며 내 뺨을, 머리를, 등을, 다리를, 팔을, 닥치는 대로 때리고 짓밟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집에 돌아와 쭈뼛대는 놈에게는 멀뚱히 서 있지 말고 방에 들어가 숙제나 하라고 호통 치는 게 고작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외쳤지만 아무도 내 얘기 같은 건 들어주지 않았다. 박우식 씨, 나의 아버지이자 김 여사의 남편이었던 그 남자는, 내가 내 입으로 놈을 시기해 거짓말을 한 거라고 말할 때까지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그토록 지독한 폭력의 상황에 내몰린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채 무자비한 폭력을 견뎌야 했다. 그러는 내내 김 여사는 그를 말리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원망이나 분노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매질을 하는 박우식 씨뿐만이 아니라 그걸 지켜만 보는 김 여사도 못지않게 두려웠다. 그때 내 나이가 겨우 열한 살이었다. 부모야말로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유일한 존재라 믿어 의심치 않을 나이. 그런 나이에 경험한 부모의 배신은 세상의 종말보다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날, 열한 살의 나는 온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셈이었다.
칠 년 전 그날의 사고가 놈으로부터 도망치려다 일어났다는 사실을 김 여사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어도 결국 알게 됐지만, 아무튼 내 입으로 그 얘길 한 적은 없었다. 그녀가 나를 돕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열한 살 이후로 김 여사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기대 같은 걸 품어 본 적 없었다. 나는 줄기차게 계속되는 놈의 나쁜 짓으로부터 도망칠 기회만 엿보며 숨 막히는 세월을 혼자서 견뎠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망설임 없이 집을 떠났다. 낯선 도시로 숨어들어 이름도 없이 살아가는 동안 바라는 건 오직 놈에게 들키지 않는 것뿐이었다. 이름조차 없는 어린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사는 게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놈에게 들키는 것보다는 나았다. 얼어붙은 거리를 구르다 아무도 모르게 죽게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새벽, 같은 방을 쓰던 동료가 술에 취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양 옆방에서 벽을 치며 욕을 해댔다. 나 역시 못지않게 취해 있었지만 어떻게든 그녀를 달래야 했다.
"울지 마. 울지 말라니까. 너만 괴로운 거 아니야. 너만 외로운 것도 아니야. 너만 엄마가 보고 싶은 게 아니라고."
오랫동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본 적 없던 '엄마'라는 말을 입에 담는 순간, 위태롭게 쌓아올린 벽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떼쓰는 아이처럼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동료를 간신히 재운 뒤, 결국 나는 전화를 걸고 말았다. 지옥과도 같았던 집에서 도망친 지 만 오 년째 되던 해였다.
처음에 김 여사는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나라는 걸 믿기지 않아했다. 그녀는 반쯤 잠긴 목소리로 몇 번이나 정말로 내가 맞는지 확인한 끝에 긴 한숨을 내쉬듯 천천히 말했다.
"아버지 돌아가셨다."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으며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내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 여사가 다시 말했다.
"사고였어."
그러고도 한동안 막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만 전화를 끊어야 할지, 더 말을 이어 가야 할지 망설이다 겨우 입을 뗐다.
"어떻게 지냈어요?"
김 여사는 기다렸다는 듯 내가 없는 동안 벌어진 일들을 줄줄 쏟아 놓기 시작했다. 주로 박우식 씨에게 일어난 사고와 그의 죽음 이후 휘말린 보험사와의 분쟁에 대한 얘기였다. 그런 식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끝도 없이 늘어놓더니, 나중엔 어쩌다 하루 외박한 딸에게 말하듯 언제쯤 집에 올 거냐고 다그쳤다. 오 년이나 소식이 없었던 딸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냔 질문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김 여사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을 간신히 끊고 물었다.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냈냐고 왜 안 물어봐요? 내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어요?"
그제야 김 여사는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를 끊고 말았다. 그렇게 딱 한 번, 정말 딱 한 번, 집으로 전화를 건 게 다였다. 그런데도 놈은 그걸 빌미로 기어이 나를 찾아냈다.
예배실에서 기도를 하던 사람들 중 하나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비명과도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전 목사가 그들 중 한 사람의 앞으로 다가갔다.
"잘 봐. 목사님이 저 사람 몸에 든 병마를 쫓아내 주실 거야. 성령의 힘으로 나쁜 기운을 모두 몰아내고 주님의 은총으로 가득 채워 주실 거야."
김 여사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사실대로 말해. 네가 오빠를 질투해서 이 사달을 낸 거라고 솔직히 말씀 드리면 아빠도 용서해 주실 거야. 그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래야 우리 모두가 다시 편안해질 수 있어."
쏟아지는 매질을 견디다 못해 경기하듯 쓰러진 내 귀에 대고 속삭일 때와 똑같은 어투였다. 뜨거운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목이 타고 가슴에 열이 올랐다.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간신히 말했지만 김 여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이 성도와 관련된 모든 고통과 질병은 지금 당장 이 성도에게서 손을 떼고 물러갈지어다! 치유의 기적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는 강건한 몸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의 쓰임 받는 귀한 종이 될지어다!"
목사가 외치자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 쓰러지듯 눕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토해 냈다. 목사는 쓰러진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비슷한 내용의 기도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더욱더 힘껏 버둥거리며 고함을 쳤다. 이해할 수 없는 열기가 예배실 안을 가득 채웠다. 나사렛 예수든 사람들 몸에 들었다는 사탄이든, 지금 당장 뭐가 나타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열기였다. 점점 더 숨이 막혀 왔다.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이러다 정말 죽을 것만 같다고요."
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저만치서 안수기도를 하던 목사가 내 쪽을 돌아봤다. 그러곤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네 안의 귀신이 반응을 하는 거다. 물러서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해."
목사가 내 가슴과 다리에 손을 얹더니 크게 외쳤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이 성도의 몸 안에 똬리 튼 병마는 지금 당장 이 성도에게 손을 뗄지어다!"
그러자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오오, 할렐루야! 이걸 좀 보세요! 우리 딸이 움직여요. 주님께서 역사하고 계세요!"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강직현상일 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김 여사가 주변을 휘둘러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온갖 방언과 통성이 난무하는 예배실 바닥을 뒹굴며 버둥대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내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녁 예배와 예배 후 안수기도, 그리고 개별 기도까지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 소등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아무 감각도 없는 몸이 무너져 내릴 듯 피곤했다. 새벽 예배 땐 스트레쳐카에 실려 갔지만 나머지 시간엔 휠체어를 타고 참석해야 했다. 여전히 어지럽고 식은땀이 흐르는데도 김 여사는 곧 괜찮아질 거라며 밀어붙였다. 새벽 예배 때의 난리 때문인지 예배실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내 주위로 모여들어 말을 걸거나 허락도 없이 내 몸을 만져댔다. 내 팔다리를 붙잡고 통성기도를 하는 이도 여럿이었다. 두려움과 모욕감이 느껴졌지만 말릴 도리가 없었다. 김 여사는 사람들을 말리기는커녕 쏟아지는 질문에 일일이 답변까지 해줄 만큼 들떠 있었다. 도대체 이곳이 무얼 하려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는커녕 멀쩡한 사람도 주저앉히고 말 것만 같았다.
김 여사는 원장에겐 안수와 안찰에 특별한 은사가 있다고 했다. 그의 안수와 안찰을 받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병자들로 기도원은 늘 만원이었지만, 기도원에 들어왔다고 해서 누구나 그의 안찰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선택된 소수의 사람들만이 원장의 안찰을 받고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런 특별한 기회가 내게 주어졌으니 감사, 또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전 목사의 안수에도 몸이 반응하는 걸 보면 원장의 안수와 안찰을 받고 나면 틀림없이 더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도 했다. 언제부터 당신에게 내가 그토록 간절한 의미가 되었냐고 쏘아붙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뚱한 얼굴로 있지 말고 무조건 믿어. 믿음이 부족하면 될 일도 안 되는 거니까. 넌 그냥 내 말만 철석같이 믿고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거야. 여기까지 오려고 돈이며 뭐며…… 아무튼 얼마나 힘들었다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생각하고 죽을힘을 다 해보란 말이야. 알아들어?"
"적당히 좀 해요. 어차피 얼마 못 가 들키고 말 텐데."
"철썩."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 여사가 내 뺨을 때렸다.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그다지 아프지도 않았다. 오히려, 김 여사가 어떤 조건으로 여길 들어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자식에게 집착하는 어미 흉내를 내고 있는지, 더는 궁금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문은 기대를 부르고 기대는 상처로 남는다. 버림받지 않으려면 먼저 버려야 한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초경을 한 열네 살의 봄 이후론 하루하루 넘기는 일만으로도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것만 같았다. 놈은 호시탐탐 날 건드릴 기회만 엿봤고, 부모란 인간들은 여전히 눈 감고 귀 막은 채 걸핏하면 총명한 제 오빠 앞길 막고 집구석을 말아먹을 계집애 타령뿐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공포 속에서 기적처럼 열한 살의 나를, 열두 살의 나를, 열세 살의 나를 지켜 왔지만, 임신의 가능성까지 떠안은 열네 살의 나는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자해하는 버릇이 생긴 것도 그즈음이었다.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우연히 손목에 남은 주저흔을 발견한 가정 선생이 집요하게 캐물었지만 꾹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속바지만 갖춰 입지 않아도 천박하니 어쩌니 길길이 날뛰던 가정 선생에게 털어놓을 만한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정 선생은 그 길로 내 손목의 주저흔에 대해 담임에게 말했고 담임은 다음날 김 여사를 학교로 불러들였다. 담임과 가정 선생, 김 여사, 그리고 담임의 부탁으로 뒤늦게 끼어든 양호 선생까지 돌아가며 추궁했지만 나는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차마 털어놓을 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들에겐 내 마음의 상처보다 손목의 상처가 더 중요한 것 같았고, 그런 그들은 마음과 손목의 거리만큼이나 멀찍이 떨어진 방관자에 불과했다. 그날 밤, 김 여사에게 저간의 사정을 전해 들은 박우식 씨는 어금니가 흔들리고 입안 속살이 터져 피가 흐를 때까지 내 뺨을 때렸다. 밤이 깊어서야 돌아온 놈은 제 방에 가방을 던져 놓고 나와 그 아수라장에서 유유히 라면을 끓여 먹었다.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저완 아무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왜 내 말은 믿질 않는 거죠? 쟤도 나도 똑같은 아빠 엄마 자식이잖아요. 근데 왜 내 말은 안 믿어 줘요? 왜요? 왜요? 도대체 왜요?"
온 힘을 다해 소리쳤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여름 밤의 열기 속에서 숨을 쉴 때마다 풍겨 오는 피비린내와 라면 냄새를 맡으며, 나는 끝내 정신을 놓고 말았다.
일요 치유예배가 끝나고 두어 시간쯤 뒤, 방으로 최 원장이 방문했다. 김 여사가 서둘러 내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냈다.
"네 속엔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구나."
최 원장이 명치를 짚으며 말했다.
"이러니 남들 안 겪을 일까지 겪으며 살았지. 내가 늘 말하지만, 안수보다 회개가 먼저다. 진심으로 회개하며 네 안의 더러운 것들을 다 걷어내고 난 뒤에야 성령이 임하실 수 있을 게야."
최 원장이 목사인지 무당인지 구분이 안 가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데도 김 여사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아멘과 할렐루야만 반복했다. 최 원장이 가지고 온 주머니를 풀어헤쳤다. 주머니 속엔 길고 가는 회초리 여러 개가 들어 있었다. 최 원장이 그중 하나를 집어 들더니 그걸로 내 팔과 다리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사탄의 무리들아, 당장 이 딸에게서 떠나갈지어다! 더럽고 추악한 것, 차고 음침한 것, 너희 어둠의 자식들은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당장 이 딸에게서 떨어져 나갈지어다!"
공기를 가르는 회초리 소리가 휘잉휘잉 울렸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말려 볼 생각에 왼팔을 들어 막아 보려 했지만 내 힘으론 어림없었다.
"하지 말라고 해줘요. 말려 달라고요. 네?"
고개를 내저으며 소리쳤다. 김 여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기도만 계속했다. 최 원장의 회초리질이 점점 더 빨라졌다. 휘잉휘잉 울리다 철썩철썩 감기는 회초리질 소리에 놀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제발 말려 주세요. 이 미친 노인네 좀 내게서 떼어내 줘요. 눈 좀 떠보라고요, 엄마!"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순간 최 원장의 회초리가 얼굴을 내려쳤다. 너무 놀라 일순간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 여사, 나의 엄마는 여전히 두 눈을 꼭 감은 채 좌우로 몸까지 흔들며 통성기도에 심취해 있었다. 뜸 뜬 자리가 덧나 다 짓물렀는데도 반복해서 뜸을 올리고 염불을 하는 거사의 뒤에 앉아서 끝도 없이 관세음보살을 되뇌던 게 겨우 2년 전이었다. 박우식 씨가 살아 있을 땐 절이고 교회고 일절 다니지 않던 김 여사였다. 박우식 씨가 종교 자체는 물론이고 종교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나약함을 공공연히 비난하며 경멸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김 여사는 박우식 씨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짓은 애초부터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게 본인이 선택한 삶이었는지,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똑같은 날들이 반복됐다. 사람들은 여전히 강직으로 경련이 이는 내 사지를 역사의 증거인 양 붙들고 기도했고, 최 원장의 매질도 강도를 더하며 매주 세 차례씩 계속됐다. 숲 한가운데 자리 잡은 기도원의 매일매일은 얼핏 고요해 보였지만 충분히 소란스러웠다. 불도 켜지 않아 어두운 방에 혼자 누워 있어도 머릿속은 공기를 가르는 회초리 소리부터 온갖 방언과 통성으로 어지럽기만 했다. 저녁 예배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면 김 여사는 내게도 기도를 하라 이르고 기도실로 갔다. 그러곤 매번 소등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김 여사가 없는 틈을 타 간신히 들어 올려 살펴본 팔뚝은 노랗고 검푸른 멍 자국과 빨갛게 부풀어 오른 매 자국이 뒤섞여 있었다. 안찰 도중 살갗이 터져 옷에 피가 배어든 적도 많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의 상태는 훨씬 심할 터였다. 실제로 내가 느끼는 몸의 상태도 급속히 나빠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김 여사는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그게 다 역사의 증거라며 믿음을 가지고 더 열심히 기도하자고 나를 독려했다. 가끔은 감사할 줄 모르는 내 태도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보호받지 못하는 삶이고 보면 놈에게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지 모르겠다. 적어도 최 원장의 매질은 이유라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놈이 이곳을 찾아내는 일은 시간문제일 거라는 생각에서 놓여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런 곳에 숨어 있고 싶지도 않았다.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하면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내 욕심이 너무 큰 걸까. 이런 것도 욕심일까. 형광등이 꺼졌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기도실에서 돌아온 김 여사가 어둠 속에서 날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다가 조심스레 내 얼굴을 쓸어 주었다. 아마도 내가 잠든 줄 아는 모양이었다. 잠들지 않았다는 표를 낼까 하다 그만뒀다. 김 여사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도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더더욱 그녀가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바라보기도 하면서 왜 놈을 그냥 내버려뒀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칠 년 전에도 그랬다. 까무룩 놓친 정신이 되돌아올 때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고의 원인이었던 놈이 중환자실까지 드나들며 내 손을 꼭 붙들고 울먹이는 상황이 너무 끔찍하고, 놈이 내 몸에 손을 대도록 놔두는 김 여사가 원망스러워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순순히 따라왔으면 좋았잖아. 이 꼴이 다 뭐야. 네가 이렇게 누워 있으면 난 어떡하라고. 그러게 처음부터 왜 도망을 친 거야. 그러고 나가서 몸을 더럽게 굴려먹으니까 이런 벌까지 받는 거잖아! 네가 없는 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아? 제대로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공부를 할 수도 없었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처럼 막막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하니. 응? 너도 나 없이 힘들었을 거 아니야. 우린 태어나기도 전부터 함께였어. 저 여자의 배 속에 자리를 잡는 순간부터, 우린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분열하고 성장했다고. 그러니까 너는 나를 위해, 나는 너를 위해,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까지 서로를 위해 존재해야만 해. 도망치지 마.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으니까. 그게 우리의 운명이라고 수도 없이 말했는데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거야?"
놈이 울먹이다 화내길 반복하며 미친 소리를 늘어놓을 때도 김 여사는 함께 있었다. 분명히 다 들었을 텐데도 그녀는 놈을 내게서 떼어 놓지 않았다. 놈이 없을 땐 내게 말을 걸며 얼굴을 쓸어 주기도 하고 마비된 팔다리를 주물러 주기도 했지만, 정작 내가 필요로 할 때 내 시선을 피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사실, 그전까진 박우식 씨가 두려워서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 여사는 박우식 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눈 감고 귀 막은 채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나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기망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것은 김 여사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니 결정에 따른 책임도 본인이 져야 마땅했다.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던 김 여사가 낮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눈을 떴다. 눈을 떠도 감아도 보이는 것은 아득한 어둠뿐이었다.
최 원장의 안수와 안찰로 유방의 암 덩어리를 뽑아내고 치유의 기적을 경험했다는 여자의 간증은 끝날 줄을 몰랐다. 여자는 간혹 웃고 자주 울부짖으며 간증을 이어 갔다. 사람들은 여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그녀에게 임했다는 기적의 성령이 자신들에게도 임해 주길 온몸과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힌 사람들이었다. 조금만 이성을 되찾으면 보일 진실과 눈 맞추려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지금 이 시간, 여러분들의 병도 모두 치유 받으십시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믿지 않는 자에게 성령은 임하지 않으십니다. 굳건한 믿음이야말로 치유의 최우선하는 조건입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찬양하십시오. 순종하십시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여기저기서 함께 소리치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김 여사 역시 바닥에 엎드린 채 누구보다도 간절한 모습으로 할렐루야와 아멘을 번갈아 외치고 있었다. 도대체 김 여사는 어떤 굴레에 갇혀 있기에 저토록 간절한 것일까. 설교대 옆 의자에 나란히 앉아 흐뭇한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는 최 원장과 전 목사는 또 어떤 굴레에 갇힌 것일까. 어떤 기적이라야 저들 모두를 구할 수 있을까. 길고 길었던 간증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지만, 김 여사는 두 손을 모으고 바닥에 엎드린 채 일어날 줄을 몰랐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모두의 얘기처럼 최 원장은 안찰에 특별한 은사가 있는 것일까. 살이 찢기고 터져 짓무르도록 내려치고 또 내려쳐서 회초리가 부러지고 또 부러졌는데도 주머니 속 회초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것 봐. 아직도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잖아. 몸 안에 시커멓게 죽은피가 가득하다고. 몸에 죽은피가 흐르니 사지가 마비되고, 영혼을 사탄이 삼켜버렸으니 제 오라비를 꼬여내 더러운 짓거리를 일삼았지. 멀쩡하던 제 아비가 괜히 하루아침에 죽은 줄 알아? 여전히 믿음이 부족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해. 쉬지 말고 기도하라니까 대체 그동안 뭘 한 거야. 의심 없이 믿으라고 했지. 믿음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최 원장이 회초리를 휘두르며 엄포를 놓자 김 여사가 죄인처럼 움츠러들었다. 박우식 씨가 딸년을 도대체 어떻게 가르친 거냐고 언성을 높일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최 원장이 안찰을 끝내고 돌아가자 김 여사가 내 옷을 모두 벗기고 기도원에서 준 연고를 발라 주었다. 온몸이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고통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끙끙 앓는 소리가 나왔다. 아멘과 할렐루야를 번갈아 되뇌며 연고를 바르던 김 여사가 멈칫했다.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내 몸을 바라보던 김 여사의 눈에서 후두둑 눈물이 쏟아졌다.
"연고를 바르는데도 왜 낫질 않는다니. 원장님 말씀대로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가? 설마,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니겠지? 내가 어떻게 해야 널 살릴 수 있을까. 내가 무얼 더 해야 널 예전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지 그분께서 응답해 주시면 좋으련만. 믿음은 허약하고 기도는 부족하기만 하니……. 미안하다. 네 말을 믿지 않아서. 진작 널 구하지 않아서.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 모르긴 해도, 네 아빠도 두려웠을 거다. 믿고 싶지 않았지. 다 거짓말이어야만 했어. 어쩔 수가 없잖니. 너희 둘 다 내 배에서 난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누가 뭐래도 우린, 가족인데. 가족이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오열하던 김 여사가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 왔다. 그날 이후 우리는 단 한 번도 가족인 적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고개를 돌리며 입을 앙다물었다.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어디에도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기억한다. 아직 보드랍고 따뜻했던 내 쌍둥이 남매의 손. 그 작고 여린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은 놈이 귓가에 속삭였다.
"소리 지르면 죽여 버릴 거야. 제일 먼저 너를 죽이고 그다음엔 엄마를 죽일 거야. 칼로 푹푹 쑤셔서 죽여 버릴 거야. 지금 못 죽인다면 커서라도 꼭 죽일 거야."
나는 왜 그렇게까지 겁을 먹었던 걸까. 내가 소리만 질렀어도 많은 걸 바로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는 내내 괴로웠다. 그때 내가 소리만 질렀어도. 그랬다면 박우식 씨나 김 여사도 내 말을 믿어 줬을지 모르는데. 놈이 맨 처음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게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해줬더라면 우리 모두의 삶은 아주 많이 달라졌을 텐데. 겨우 열한 살 아이였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데. 아무 잘못도 없이 부모에게 매질을 당하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했다고 억울해했지만 한편으론 끊임없이 의심하고 후회했다. 그때 내가, 소리만 질렀어도.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기도와 안수로 모든 병과 장애를 치유하고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저들의 말은 사실일까. 누군가는 그런 기적을 경험했으니까 이런 집단도 생겨난 건 아닐까. 허무맹랑한 생각에 빠진 채 주위를 둘러봤다. 이른 시간이어선지,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탄다는 남자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옆에서 그의 아내가 예배실의 누구보다 큰 소리로 통성을 쏟아냈다. 간암 말기라는 남자는 불룩 나온 배를 어쩌지 못해 예배실 벽에 기대앉은 채 기도를 했다. 맞은편에선 폐암 3기라는 여자가 쓰러지듯 모로 누운 채 흐느끼고 있었다. 누군가는 앞뒤로 몸을 흔들며 신을 찾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두 팔을 허우적대며 기적을 구했다. 심지어 바닥에 머리를 짓찧으며 울부짖는 이도 있었다. 한없이 애달프다가도 문득문득 소름이 끼치도록 기괴한 광경이었다. 설교대에 몸을 반쯤 기대서서 무언가를 읽고 있는 목사만이 딴 세상 사람처럼 말쑥해 보였다.
"불이야!"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놀란 마음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불이야!"
또다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설교대 앞에 서 있던 목사가 그제야 고개를 들더니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겨 놓았다. 그와 동시에 예배실 문이 벌컥 열렸다.
"불이에요, 목사님! 행정실 옆 창고에서 불이 났어요!"
이 선생이었다.
"신고는! 신고했어?"
"아직요. 지금 끄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신고를 해야겠죠?"
"안 돼! 신고는 안 돼!"
목사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며 뛰쳐나갔다. 그제야 기도를 멈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 여사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이 났대요."
나는 김 여사를 향해 말했다. 사람들이 더 크게 웅성거리며 예배실에서 몰려 나갔다.
"기도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기도가 부족하다고 하시는 말씀 못 들었어?"
김 여사가 슬쩍 돌아보더니 아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불이 났다잖아요."
다시 한 번 말했다.
"불이라고? 아직 기도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 와중에 기도는 무슨."
어이가 없었다. 김 여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혼이 나간 얼굴이었다.
"거봐요. 얼마 못 가 들킬 거라고 했잖아요."
소리를 지르면 먼저 나를 죽이고 그다음으론 엄마를 죽이겠다고 했다. 칼로 푹푹 쑤셔서 죽여 버리겠다고, 지금 죽이지 못하면 커서라도 꼭 죽이겠다고 말하던 놈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불구덩이 속에 모조리 던져 넣고 말겠다고, 죽을 때도 자기 옆에서 죽어야 한다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놈이 옳고 내가 틀린 게 아닐까. 그 모든 일들이 진짜로 일어나긴 한 것일까. 이곳에서의 생활도 하룻밤 악몽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들이 뒤죽박죽 헝클어졌다.
"우리도 나가 봐요.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죠."
김 여사가 순순히 일어나 휠체어를 밀었다.
"그런데 도대체 여기가 어디예요?"
내가 물었지만 김 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농밀한 어둠에 갇힌 기도원의 시간이 닿을 곳 없는 기도와 방향을 잃은 회한으로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


















황시운

작가소개 / 황시운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1년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로 『컴백홈』이 있으며 경.기.문.학 시리즈 작품집 『홈HOME』, 공저 소설집 『파인다이닝』, 공저 산문집 『책이 선생이다』가 있다.


《문장웹진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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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소설

우리들 사이에 흐르는 강

[단편소설] 우리들 사이에 흐르는 강 황시운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늘어놓는 사람도 없는데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청소를 한다. 잠시 후, 청소기 소리가 멈췄다. 이제 엄마는 걸레를 빨아 좁은 거실과 부엌, 그리고 제희와 내가 함께 쓰던 작은방을 걸레질할 것이다. 이십여 분쯤 흘렀을까.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낡은 소파에 무너지듯 앉아서 종일 가쁘게 차올랐을 숨을 돌리는 엄마의 모습이 연상됐다. 방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엄마의 움직임과 표정을 상상하곤 한다. 내가 보지 못할 때 엄마는 어떤 얼굴일까. 나와 함께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러하듯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을까. 아니면 이를 앙다물어 버릇해서 단단해진 턱이 도드라져 보일까. 그것도 아니면 오래 울고 난 사람처럼 허탈한 표정일까. 어쨌든 웃는 얼굴은 아닐 테지.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나도 엄마도 제희도 이제 더 이상 웃지 않는다. 웃을 일이 없기도 하거니와 우리는 모두 아예 웃는 법 자체를 잊어버린 것 같다. 사라져 버린 아빠는 어떨까. 모르긴 해도 우리와 비슷하겠지. 집을 떠났다고 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 테니까. 아빠는 그렇게까지 적응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로 인해 달라진 일상과 관계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가장 먼저 튕겨져 나간 사람도 아빠였다. 모로 누워 엉덩이를 허옇게 내놓고 항문에 좌약을 넣은 채 죽음의 순간에 대해 생각한다.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던 숨을 놓치는 찰나의 순간, 실재하는 감각은 물론 왜곡된 감각까지 사라져 버리는, 그리하여 티끌만 한 존재의 맨 마지막 증거마저 완벽하게 소멸되는 축복의 순간에 대하여. 7년 전 그날 이후, 삶은 천형이 되었다. 매 순간 죽고 싶었지만 그건 내 선택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아무 미련도 남지 않은 삶을 그저 견뎌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던 어느 날, 벼락처럼 떠오른 생각이 나를 구원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존재한다는, 그러니 처참히 이어지고 있는 내 삶에도 당연히 끝이 존재할 거라는, 죽지 못해 안달을 내지 않아도 결국엔 죽게 될 거라는, 게다가 이렇게 된 이상 오래 살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합리적 추론. 삶이 멈추면 고통도 멈춘다. 이 당연하고도 단순한 사실이 바싹 말라비틀어져 있던 내 영혼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희망은 삶을 충만하게 한다. 죽음에의 희망이 있어 고통에 매몰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상한 말 같지만, 세상엔 죽음만이 유일한 희망인 삶도 존재하는 법이다. 항문에서 푸르릉, 가스가 새어 나왔다. 잠시 후, 딱딱해진 대변이 항문을 빠져나와 툭, 떨어졌다. “엄마!” 아무리 힘껏 외쳐도 목소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퍼져나가질 못했다. 그러나 엄마는 용케 그걸 알아듣고 반응하고는 했다.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소리가 뚝 끊겼고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제 엄마는 내 항문을 마사지하고 후벼 파 딱딱하게 굳은 채

  • 황시운
  • 202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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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

[단편소설] 소녀들 황시운 신발을 벗어야 할까. 고개를 숙여 신발을 내려다봤다.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난간에서 내려왔다. 천천히 쪼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묶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운동화 끈이 풀리지 않도록 묶는 동영상을 봤는데, 방법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풀린 끈을 묶으면서, 집에 가면 유튜브 영상을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끈을 다 묶고 일어나려는데 운동화 앞코에 묻은 붉은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문질러 봤지만, 어쩌다 생긴 얼룩인지 아무리 세게 문질러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하얀색 운동화라서 그런지 한번 눈에 띈 얼룩은 점점 더 도드라져 보였다. 운동화는 한 스포츠 의류업체에서 한류 아이돌 그룹을 모티프로 제작한 슈퍼스타 라인 중, 블랙 몬스터를 위해 디자인된 것이었다. 내겐 이것과 똑같은 운동화가 한 켤레 더 있다. 아직 상표도 떼지 않은 그 운동화는 신발장 맨 아래 칸에 되는 대로 쑤셔 박혀 있다. 운동화를 쑤셔 박은 건 엄마였는데, 나는 그러는 엄마를 말리지도, 이후에 운동화를 꺼내 다시 정리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마음에 들어서 산 운동화도 아니었다. 미래는 블랙 몬스터의 래퍼 R을 좋아한다. 유난히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을 가진 R은 연습생 시절부터 이미 거대한 팬덤이 형성되어 있었다. 미래는 R의 붉은 입술을 보면 발밑이 푹 꺼지는 것만 같다고 했다. R의 주변에서 알짱대는 년들은 모조리 없애버리겠다거나 언젠간 반드시 R과 자고 말 거라는 다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지은인 블랙 몬스터의 K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언젠가 미래에겐 비밀이라면서 내게 말한 적이 있다. “R이 너무 좋지만, R은 미래 거니까.” 나는 블랙 몬스터를 좋아하지 않는다. 보컬도 퍼포먼스도 수준급임엔 틀림없지만 딱히 끌리는 구석이 없었다. R은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백치처럼 아무 때나 벌쭉벌쭉 웃는 것도 싫었고 인터뷰 때마다 터져 나오는 말실수는 수준 이하였다. 멤버들의 자작곡이라며 발표한 몇몇 곡들은 기획사에 소속된 섀도 작곡가가 따로 있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팬픽에 미친 초딩들처럼 연예인을 두고 네 것이니 내 것이니 하는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유치했다. 물론 내 생각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미래가 R에 대해 얘기할 때면 눈을 빛내며 들어줬고, 지은의 비밀 역시 발설한 적이 없다. 아무도 행복해하지 않을 사실은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나간 말은 결국 내게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불화는 언제나 말에서부터 싹튼다. 이 운동화를 사면 스포츠 브랜드에서 프로모션 하는 블랙 몬스터의 팬 미팅 초대 이벤트 응모권을 줬다. 미래와 나, 지은은 각각 두 켤레씩 운동화를 샀고 여섯 장의 응모권은 모두 미래가 가져갔다. 애초부터 그러기로 한 일이었다. 내가 받은 응모권을 미래에게 줄 땐 지은의 눈치가 보였지만 하는 수 없었다. 지은 역시 순순히 제 몫의 응모권을 미래에게 건넸다. 여섯 장의 응모권을 보내고도 미래는 끝내 팬 미팅에 가지 못했다. 그

  • 황시운
  • 2018-07-01

문장웹진 소설

돌연히 찾아오는 것들

돌연히 찾아오는 것들 황시운 골목 초입부터 악취가 진동했다. 좁고 긴 골목을 따라 조심스레 차를 몰았다. 오늘 작업할 현장은 낡은 빌라 건물의 4층 1호였다. 김 과장과 상만이 트럭에서 이삿짐 상자와 장비를 내리는 동안 1층부터 작업 장소인 4층 계단까지 분무 소독을 했다. 내려와 보니 두 사람은 이미 짐을 다 내린 상태였다. 우리는 이삿짐 상자와 밀봉용 비닐 마대, 소독과 청소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날랐다. 3층과 4층 사이의 계단참에 작업에 필요한 물건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했다. 현장에 진입하기 전부터 눈이 따끔거렸다. 연신 눈을 끔벅이던 김 과장이 가방에서 고글을 꺼내 착용했다. “일단 연막부터 치자.” 김 과장의 말이 떨어지자 막내 상만이 연막 소독기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상만이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악취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아우, 장난 아닌데요. 문 다 닫고 작업해야 하는 거 아닐까 모르겠어요.” 잠시 후 현장에서 빠져나온 상만이 연막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같은 날 문까지 걸어 닫고 작업을 하면 몸에 밴 악취가 아무리 씻어내도 사나흘은 갈 게 뻔했다. 아이들은 내 몸에서 나는 악취를 끔찍해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견적이 꽤 크게 나온 현장이니까 각오들 하고, 최대한 서두르자고.” 김 과장이 걸음을 떼어 놓으며 말했다. 나는 분무 소독기를 들고 김 과장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상만이 폐기물을 담을 봉투와 밀봉용 테이프, 그리고 청소용품을 담은 통을 챙겨들고 뒤따랐다. 망자는 사후 약 2주 만에 발견되었으며 시체를 수습하고 우리에게 청소 의뢰가 들어오기까지 또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요즘 같은 무더위 속에 방치될 경우 시체는 엄청난 속도로 부패한다. 망자가 살아생전 남긴 여러 흔적들 역시 마찬가지다. 현장은 보나마나 온갖 해충과 곰팡이가 들끓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일 게 뻔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부패 액이 장판 아래 바닥과 벽 속까지 스며들었다면 작업이 길어질 수도 있었다. 현관문을 열기 전 크게 심호흡을 했다. 김 과장이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현장은 처참했다. 현관 앞에서 김 과장의 주도로 망자를 위해 잠시 묵념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차리는 최소한의 예였다. 그때마다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망자를 위해 진심으로 기원했다. 다음 세상에서는 최소한 혼자서 쓸쓸히 죽어가는 인생은 살지 않기를, 그래서 부디 낯모르는 이들에게 삶의 마지막 행적을 들키지 말기를. “창문 열까요?”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 그냥 두고 얼른 정리하자. 여기, 여기서 돌아가셨더라고.” 김 과장이 좁은 마루를 성큼성큼 지나쳐 방문을 열며 말했다. 방바닥엔 방 안을 점령하다시피 한 부패 액이 시커멓게 눌어붙어 있었다. 이미 시체가 수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 안엔 여전히 꼬물대는 구더기와 번데기 탈피각이

  • 황시운
  • 201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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