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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룸에서 생긴 일

  • 작성일 2023-06-01

드레스룸에서 생긴 일

김세연


   ‘드레스룸’은 회원수가 100만 명을 넘는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다. 주로 젊은 여성들이 패션‧뷰티 정보를 주고받으려는 목적으로 이용하는데, 여초 커뮤니티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열 손가락 내로 꼽힌다. 그것과 별개로 이곳에서 활동하는 회원을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기는 어렵다. 여자라고 전부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요, 인터넷에 존재하는 커뮤니티 자체도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실에서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이름을 밝히는 일은 드물다. 미혼 여성이 생활 정보를 얻기 위해 맘카페를 염탐하거나, 괜히 남자들의 관심을 얻으려 이종격투기 카페를 기웃거리는 경우도 있다. 누가 어떤 커뮤니티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짐작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예전에 만나던 남자친구 중 하나는 내가 여초 커뮤니티에 들락거린다는 사실을 알고 질겁하듯 반응한 적이 있다. “자기 여시해?” 여기서 ‘여시’란 ‘여성시대’의 준말로 국내 최대 규모 여초 카페를 뜻한다. 흔히 남자들 사이에서 이곳은 극렬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온갖 불온한 사상을 주고받는 사이트로 취급되곤 한다.(‘제 여자친구가 여시 회원인 것 같은데 어떡하죠?’ 같은 고민 글이 네이버 지식인에 자주 올라오는 것을 보면 남초에서 이곳은 악의 소굴로 여겨지는 듯하다.) “여시가 아니라 ‘드레스룸’이라고!” 이름을 알려주자 남자친구는 다소 안도하는 기색이었으나 여전히 찜찜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결백을 증명하듯 드레스룸에 접속했다. 게시판에는 ‘수분감 좋은 파운데이션 추천’, ‘5900원 기모 레깅스 공동구매하실 분’ 등 뷰티 정보들이 앞다투어 올라오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여초 커뮤니티에 대한 남자들의 선입견이야말로 유난스러운 데가 있었다. 요즘 같은 네트워크 시대에 인터넷이 아니면 어디서 정보를 얻는다는 말인가. 언젠가 이러한 편견을 지적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이것도 커뮤니티에서 읽은 것이기는 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사실 본인이 불건전한 사이트에서 활동하거나/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 세계를 잘 모른다면 선입견조차 없을 게 아닌가. 욕설과 성희롱이 난무하는 일부 저급한 커뮤니티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비난한다는 얘기다. “거봐, 이상한 곳 아니지?” 나는 드레스룸 메인 화면이 띄워진 핸드폰을 남자친구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러자 남자친구가 말했다. “내가 쓴 글 눌러봐······.”
   사실 나는 패션 뷰티에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내 또래 여자들에 비해 옷이나 화장품에 덜 투자하는 편이다. 대학원생이 되고 나서는 꾸미는 일을 포기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왜 드레스룸이냐고? 드레스룸은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정치 이야기가 적고 30대 여자들의 일상/고민 게시판이 활성화되어 있다. 나는 이곳을 여자들의 수다방 내지 고민상담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30대 초반을 지나면서 나는 이제 친구들과 너무 시시콜콜한 일상은 공유하지 않게 되었다. 어처구니없을 만큼 사소한 일을 계기로 20년 지기 친구와 절교한 후, 나는 우리가 오랫동안 서로의 결핍을 자극하는 말들을 주고받아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 의미 없는 줄 알았던 먼지처럼 작은 말들이 켜켜이 쌓여 우정을 녹슬게 만들었다는 것을. 2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친구와 나는 알아도 다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운 사람들처럼 띄엄띄엄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내가 쓴 글 봐봐······.” 남자친구가 채근했다. 아니, 잠깐만. 내가 무슨 글을 썼더라······. 멈칫하는 내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갔다. 작성글 목록을 클릭했다. ‘대학 동기 돌잔치 갈까요? 말까요?’가 가장 최근의 글이었다. 그 외에는 운동과 영양제 이야기, 생활소음으로 인한 이웃과의 갈등 같은 소소한 고민 글이 전부였다. 다행히도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은 없었다. 작성 목록을 훑어보던 남자친구는 흠, 하고 목을 풀더니 “이러다 나중에 내 얘기도 쓰겠다?” 하고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에이, 자기 얘길 왜 써······.” 나는 며칠 전 사랑/연애 게시판에 글을 썼다가 얼른 삭제했던 사실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자친구가 핸드폰을 잃어버려 연락이 없던 한나절 동안, 혼자 이별까지 생각했다는 것을 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남자친구 분 마음이 식었네요.’ 같은 댓글을 읽으며 마음이 지옥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그 이후로 만난 애인에게는 애초에 커뮤니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없었다.

*

   오늘 오전에 쓴 글의 제목은 ‘피규어 모으는 남자 어떠세요?’였다. 최근 동아시아 인문학 세미나를 통해 알게 된 번역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30대 후반에 왜소한 체형의 남자였는데, 일을 핑계로 밥을 몇 번 먹은 사이였다. 그는 나이에 비해 쑥맥처럼 보이는 면이 있었다. 이성으로서 특별한 끌림은 없지만 나도 요즘 딱히 연락하는 사람이 없는 데다가, 우연히 내 연구실 근처를 지난다는 둥 매번 그럴듯한 명분을 제시했기 때문에 무리하게 거절할 필요를 못 느꼈다. 어제저녁에도 그런 식으로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연구실 근처에서 가볍게 맥주를 한 잔 하는 동안 그는 본인의 새로운 취미에 관해 늘어놓았다. “요즘 인생에 낙이 없어요. 그래서 저한테 작은 보상을 주기로 했다죠?” 자신을 3인칭화 시키는 말투가 들을 때마다 특이했다. 그는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좋아하는 캐릭터 피규어를 사 모은다고 했다. “이번 주말에는 피규어 박람회가 열린다네요. 지은 쌤도 같이 가시면 어떨까요?” 취미 생활에 푹 빠진 그는 아주 행복해 보였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번역가는 오늘 아침 또다시 연락을 해왔다. “지은 쌤, 제가 말한 게 이거랍니다.” 눈치 없이 잠을 깨운 메시지 아래에는 사진이 하나 첨부되어 있었다. 사진 속 책상 위에는 피규어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스타워즈나 건담 정도를 상상했는데, 온통 긴 머리에 치마를 입은 여자 캐릭터들뿐이었다. 책상 한쪽에는 표지에 일본어가 가득한 만화책이 몇 권 꽂혀 있었고 뒷벽에는 걸그룹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얼굴이 낯선 것으로 보아 한국 그룹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가 서로 방을 보여줄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의도치 않게 남의 은밀한 부분을 목격한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내가 가기로 약속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주말에 열리는 피규어 박람회의 시간과 장소를 일러주었다. “어쩌죠? 그날 세미나가 있네요.” 하고 대충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나서 학교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글을 작성했던 거다.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 심심한 김에 ‘룸메’들이랑(드레스룸에서는 회원들끼리 ‘룸메님’이라고 부른다) 수다나 떨고 싶었을 뿐. 좀 전에 느꼈던 ‘묘한 기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요즘에는 생각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나와 상대방 중 누가 더 정상 범주에 가까운지 헷갈린다. 그럴 때 룸메들에게 물어 본다. ‘이거 제가 예민한가요?’ 뒷담화 상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사고방식이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는지 궁금했을 따름이다.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여자 캐릭터ㅋㅋ 오타쿠 아니에요?’, ‘저라도 부담스러웠을 듯요. 갑자기 박람회라니······’, ‘룸메님, 돈 쓰는 취미 가진 남자 만나지 마세요. 결혼하면 골치 아파요.’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오자 왠지 마음이 놓였다.
   대댓글을 달다 보니 어느새 도착역에 다다라 있었다. 나는 학생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한국근대소설의 문체론적 연구’라는 이름의 수업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이었다. 습관처럼 침대에 누워 드레스룸에 접속했다.
   [저기요. 계세요?]
   1:1 채팅 알람이 떠 있었다. 몰랐는데 5시간 전에 온 것이었다. 글을 올리고 나서 30분 뒤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네?]
   무시하려다가 짧은 답장을 했다. 드레스룸에 글을 올리면 간혹 1:1 채팅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상담 요청이다. 한번은 헤어진 남자친구와 재회한 이야기를 썼더니 자기도 전남친과 잘 될 가능성이 있는지 봐달라며 채팅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게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상대방에게 대화할 의사가 있는지 먼저 물어 봐야 할 게 아닌가. 대뜸 남의 방문을 열고 들어와 자기 할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의 없이 단체 카톡방에 초대하는 것보다 나는 이게 더 별로라고 생각한다.
   [이런 거 모으는 남자는 어때요?]
   다시 1분도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뭐야, 이 사람 하루 종일 커뮤니티만 보고 있나······. 반응 속도에 놀랄 겨를도 없이 곧바로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이미지 파일이었다. 화면이 살색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혐오를 느꼈다.
   [어때요? 극혐인가요?ㅋㅋ]
   사진 속에 있는 것은 여자 사람 피규어 다섯 개였다. 나체 아니면 매우 짧은 교복을 입은 채 중요 부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상한 포즈로 자위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선물이랍니다.”
   번역가는 테이블 위에 피규어 하나를 올려놓았다. 노란 단발머리에 푸른색 눈이 커다란 소녀였다. 파스텔 톤 원피스와 메리제인 슈즈가 앙증맞았다.
   “지은 쌤이랑 닮았어요.”
   번역가는 피규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입술을 끌어올려 웃은 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번역가는 핸드폰을 꺼내 피규어 박람회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진짜 사람처럼 보이는 대형 피규어 옆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다. 누가 찍어 주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사진을 보는 동안 지난주에 받은 채팅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였을까. 격투기, 게임,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여자들이 있듯이 여초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는 남자들도 있다. 남초 커뮤니티의 여자들은 그곳에서 추앙받는 반면, 여초 커뮤니티 남자들은 분탕 종자로 취급되어 배척당한다. 여왕벌은 있어도 왕벌은 없다. 그래서 여초 커뮤니티 남자들은 조용히 게시글을 염탐하는 게 보통이다. 간혹 여자인 척하고 글을 쓰거나, 외로워 보이는 여성 회원에게 채팅을 걸어 수작질을 해대는 사람도 있다. 내게 사진을 보낸 사람도 그런 음침한 남자 회원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일이 있은 뒤 일주일 동안 나는 드레스룸에 접속하지 않았다. 새삼 번역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 이번 텍스트 어렵지 않았나요?”
   나는 화제를 돌렸다. 번역가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가방에서 복사물 뭉치를 꺼냈다. 나는 얼마 전부터 번역가와 함께 고서 강독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었다. 말이 스터디지 사실은 내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처지였다. 이번 학기는 수업 시간에 다루는 자료 중 한문 텍스트가 유난히 많았다. 한문에 약한 나는 매시간이 고역이었다. 다른 수강생들은 서로 분량을 나눠서 해석해 오는 것 같았다. 나는 거기에 끼지 못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미래대학교는 우리나라에서 3위권 안에 드는 명문 사립대학이었다. 나는 석사 과정까지 지방 분교에서 다니다가 박사 과정으로 진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인사하고 지내는 사람은 몇 명 생겼으나 이미 자기들끼리 스터디 그룹이 있어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번역가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세미나 뒤풀이 자리에서 그는 한 달에 한두 번 함께 고서를 읽는 모임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 제안에 응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자연스레 내가 원하는 대로 커리큘럼을 짜게 되었다.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할 자료를 미리 예습하는 용도로 그 시간을 활용했다. 번역가가 해석하는 것을 듣고 책에 주를 달아 놓았다. 그러자 수업을 따라가기가 훨씬 수월했다. 적어도 교수가 말을 걸까 봐 전전긍긍하는 일은 없었다.
   “아······ 이게 뭐였더라. 잠시만요.”
   한참 진도를 나가던 도중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 글자가 있었다. 번역가는 해석을 멈추고 자신의 가방을 열었다. 크기가 크고 모서리가 해져 있는 보스턴백이었다.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많아서 묵직해 보였다. 무엇을 찾는지 한참 뒤지다가 손이 미끄러져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이패드와 우산, 오래전에 넣어 두었을 게 분명한 냅킨 뭉치가 쏟아져 나왔다. 꾸깃꾸깃하게 접힌 냅킨에는 우리 집 근처에 위치한 ‘엔젤커피’라는 카페의 로고가 프린트되어 있었다.
   “아이고, 그냥 두세요. 괜찮아요.”
   물건 줍는 것을 도우려 허리를 숙이자 번역가가 손사래를 쳤다. 번역가는 아이패드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나는 내 발밑으로 굴러온 볼펜과 종이 쪼가리를 집어 올렸다. 줍고 보니 전기요금 고지서였다. 고객 성명란에 ‘송지은 귀하’라고 적혀 있었다.
   “아, 쌤 그거······ 제가 대신 챙겼네요.”
   가만히 멈춰 있는 나를 보고 번역가가 말했다.
   “왜 전에······ 요금 체납돼서 전기 끊길 뻔하셨다면서요. 생각나서 제가 찾아왔어요.”
   내가 사는 빌라는 우편함이 건물 밖 주차장 쪽에 있다. 그래서 확인하는 걸 자주 잊는다. 고지서가 쌓여 가는 걸 모르고 내버려뒀다가 전기가 끊길 뻔했다. 그 얘기를 한 것을 기억하고 번역가가 내 우편함에서 고지서를 꺼내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온 김에 우리 집 주변을 산책했다고 했다. 뿌듯한 표정이었다.
   “우리 집 몇 호인지 어떻게 아셨어요?”
   “알려주셨잖아요.”
   자신이 번역한 책을 보내 주고 싶다고 해서 집 주소를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었다.
   “아······ 이게 이 글자였군요.”
   번역가는 아이패드에 저장되어 있던 원문 텍스트를 확대하며 말했다.
   “잘못 해석할 뻔했네요. 그러니까 뭐든 의심이 가면 확인해 봐야 해요. 넘겨짚었다가 큰코다친다니까요.”
   번역가가 고르지 않은 치열을 드러내며 웃었다.

*

   생각에 빠져 있다가 지하철역을 지나친 탓에 강의실까지 뛰어야 했다. 간신히 지각을 면했으나 땀으로 온몸이 폭삭 젖어 있었다. 헐떡이며 들어가자 옆자리 여자 수강생이 약간 놀란 듯 쳐다보았다. 나는 간단히 목례하고 자리에 앉았다. 호흡을 고르고 나서 문득 주위를 보니 다른 학생들의 책상 위에 표지가 낯선 책이 올라와 있었다.
   “어? 오늘 이 책 아니에요?”
   내 가방에 있던 제본 책을 꺼내들며 물었다.
   “바뀌었다고 공지 올라왔잖아요.”
   옆자리 수강생은 입술에 립밤을 바르며 대답했다. 이 수업은 정년을 앞둔 노교수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교수들처럼 그룹웨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음 카페에 수업 자료를 올려 두었다. 국문과 대학원생 전용 카페였다. 다음 카페가 활성화되어 있던 시절에 개설된 그곳은 이제는 자료실로 활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종합시험이나 초록발표 일정 같은 학과의 중요한 공지는 카페를 통해서 했기 때문에 국문과 대학원생이라면 필수적으로 가입을 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근 한 달 동안 접속한 적이 없었다. 한동안 보충자료 없이 책으로만 수업하기에 방심하고 있었는데, 기습적으로 카페에 공지를 할 줄 몰랐다.
   “저도 몰랐는데 은수 언니가 말해 주더라고요.”
   옆자리 수강생은 윤이 나는 긴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녀의 이름은 제니였다.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쓰던 이름으로 아예 개명했다고 했다. 한국 이름은 이제니다. 그녀는 이곳 미래대학교 본교 출신이었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며, 같은 학회 조교 일을 해서 말을 트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렇다고 따로 밥을 먹거나 사적인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둘만 있을 때는 즐겁게 대화를 했지만, 선배들이 오면 쪼르르 달려가 내 쪽은 아예 모른 척했다. 스터디에 끼워 주겠다는 이야기는 빈말로도 하지 않았다.
   “이번 텍스트는 쉬웠지?”
   어느새 강의실로 들어온 교수가 말했다. ‘아니요오.’ 하고 남자 조교가 울먹이자 강의실에 나지막한 웃음이 퍼졌다. 교수는 강독은 다음 시간으로 미루고 오늘은 영상 자료를 보겠다고 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이 교수의 특징이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교수는 강의실 컴퓨터를 통해 국문과 카페에 접속했다. 대형 스크린에 화면이 떴다. 최신글 목록이 스팸 게시물로 도배되어 있었다. [★애인대행★만남★키스알바★조건출장★★ 만남 2시간 5만. 긴밤 15만. 포인트 1만점. 선입금 없어요~^^] 놀랍게도 글쓴이는 나였다.
   “이건 뭐냐. 좀 지워라.”
   교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또다시 수강생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교수는 원하는 자료를 찾기 어려운지 게시판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지켜보던 남자 조교가 일어나 교수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제니가 내 쪽을 보고 말했다.
   “저거 한 달 전부터 저렇게 돼 있던데요?”
   나는 한 달 동안이나 게시물이 올라가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국문과 대학원생 대다수가 그것을 확인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말 좀 해주지 그랬어요.’라는 소리가 목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주변에서 다른 수강생들이 잡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디 해킹 문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제니는 립밤을 가방에 집어넣고 딸깍 소리 나게 버클을 잠갔다. 크림색 가죽 가방에 스티치가 가지런히 박혀 있었다. 드레스룸에서 똑같은 가방을 보고 나는 그게 명품인 줄 알게 되었다.
   “쌤, 삼재 맞네. 요새 이상한 일 많지 않아요?”
   제니는 가볍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한 일이란 피규어 사진 사건을 뜻한다. 며칠 전 학회 일로 만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인터넷으로 음란 메시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는 누군가와 친해질 때 나의 어두운 부분을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었다. 문득 그 사실이 후회되었다. 제니는 개인정보가 노출된 게 아닌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자기 주변 사람 중 하나도 이메일을 해킹당했는데, 얼마 뒤 폰뱅킹도 털려서 난리가 났다고 했다.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핸드폰으로 국문과 카페에 접속했다. 내 이름으로 올라가 있는 스팸 게시물들을 빠르게 삭제했다.

*

   제니 말처럼 최근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채팅 사건만 해도 그랬다. 드레스룸에 가입한 지 몇 년 됐지만 처음 겪는 일이었다. 갑자기 아이디를 해킹당하고 내 이름으로 음란 게시물이 올라가는 것도 이상했다. 이 일과 상관있는지 모르겠지만 번역가도 어딘가 수상쩍었다. 그 사람은 어쩌다 내 앞에 나타났을까. 왜 하필 그때 고서 강독 스터디를 제안했을까. 왜 내 우편함에 손을 댔을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갑작스레 내 삶에 끼어든 이상한 사건들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수업이 끝난 뒤 서대문 경찰서를 찾았다. ‘여성청소년과’라는 팻말이 붙은 문 옆에는 전신 거울이 세워져 있었다. 공간이 주는 위압감 때문인지 입안이 바짝 말라붙었다. 거울에 몸을 비춰보며 심호흡을 했다. 들고 있는 핸드백 가죽이 늘어나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물이나 책 같은 무거운 짐을 자주 넣어 반듯했던 원래 형태가 변형되어 있었다. 언젠가 아울렛에서 40만 원 주고 산 브랜드 제품이었다. 내가 가진 가방 중 가장 비싼 것이지만 낡은 태가 났다. 품이 넓은 재킷으로 핸드백을 가렸다.
   몇 달 전 대학 선배 결혼식에 갈 때도 이 가방을 들었다. 그날 하객으로 온 친구 중 하나는 나를 보고 “너 왜 이렇게 대충 해왔냐?”라고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젊은 여자 하객들은 하나같이 손바닥만 한 명품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날 밤 드레스룸에 물어 보니 30대라면 결혼식용 명품 백 하나쯤은 있는 게 좋다고들 했다. 저렴한 것은 200만 원대로 살 수 있으니 월급을 모아서 장만하라는 조언도 들었다. 그 뒤로 나는 그 친구가 속한 모임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복도를 지나가던 경찰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남자 경찰이었다. 나는 채팅으로 음란 사진을 받아 상대방을 고소하려 한다고 말했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요.”
   또박또박 말했다. 일명 통매음법. 이 법을 알게 된 것은 내가 구독하던 유튜버에 의한 것이었다. ‘사노라면’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40대 여자 유튜버였는데, 자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이혼한 후 혼자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얼굴은 나오지 않았고 가늘고 힘없는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했다. 나처럼 그녀를 응원하는 구독자들이 대다수지만 간혹 술집에서 일해 보라느니, 나랑 재혼하자느니 하는 성희롱성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악플러 통매음으로 고소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그녀는 영상에서 악성 댓글에 대한 고소 절차가 진행 중이며, 각 100만 원 이하로는 합의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못 박았다. 전에 없이 당당한 태도였다. 그 사건 이후 채널에 있던 소수의 악플러들이 사라졌으나 구독자 수도 감소했다.
   “음란 사진을 어디서 받으셨는데요? 어플······?”
   경찰의 얼굴에 미묘한 웃음이 스쳐갔다. 나는 단번에 질문의 의미를 이해했다. ‘데이팅 어플’을 사용했는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데이팅 어플은 사회적 교류의 감소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젊은이들을 위한 소통 수단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볍게 하룻밤 상대를 찾으려는 목적으로 이용하는 유저들이 많다. 그래서 데이팅 앱을 사용하는 사람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아니요. 네이버 카페요.”
   질문이 불쾌했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답했다. 채팅 기록을 보여주려고 핸드폰을 꺼냈다. 그때 여성청소년과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자 경찰이었다. 그는 해사한 얼굴에 곱슬기 있는 연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다소 어눌한 투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간략히 상황 설명을 하고 문제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허······ 변태 아니에요?”
   그는 나보다 더 놀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먼저 만난 경찰은 궁금한지 자리를 뜨지 않고 옆에서 힐끗거렸다. 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넓지 않았다. 입구 쪽에 여자 경찰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맨 구석 남자 경찰의 책상 위에는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초코 프라푸치노가 있었다. 나는 그 앞 의자에 앉았다.
   “녹차 드릴까요? 아님 둥굴레차?”
   말투에 충청도 억양이 미세하게 섞여 있었다. 괜찮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아니다, 녹차가 없구나.”라고 중얼거리며 둥굴레차 티백을 뜯고 있었다. 깔끔하고 세련된 외모와 순박한 말투가 이질적으로 어우러진 사람이었다. 뜨거운 둥굴레차가 담긴 종이컵이 내 앞에 놓였다. 불편하고 긴장되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

   사건을 접수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려는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경찰서였다.
   “아까 보내 주신 캡처 사진에요. 보니까 상대방 닉네임이 구불구불하게 돼 있던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피규어 사진을 보낸 사람의 닉네임은 ‘illiiilllllil’이었다. 일명 ‘바코드닉’. 영어 소문자 i와 l을 조합해서 만든 것으로 언뜻 바코드 모양처럼 보인다. 내 닉네임은 ‘llllllilillllli’. 역시 바코드닉이다. 드레스룸 회원 중 70프로 이상은 바코드닉을 사용한다. 게시판에 가득한 바코드닉을 보고 처음에는 다 같은 사람이 쓴 글인 줄 알았다.
   나의 초창기 닉네임은 ‘쏭지0712’였다. 쏭지는 송지은이라는 이름의 앞 글자를 딴 것이고 숫자는 물론 생일이다. 처음에는 ‘쏭지’로만 할 생각이었는데, 이미 다른 회원이 그 닉네임을 쓰고 있어서 사용이 불가능했다. ‘쏭지0712’로 활동한 지 1년쯤 됐을 무렵, 내 닉네임을 보고 누군가 아는 척을 했다. 내 게시물에 ‘쏭지0712님, 저번에도 비슷한 글 올리지 않으셨나요?’라는 댓글이 달린 것이었다. 화들짝 놀라 곧장 글을 지워버렸다. 그때부터 나도 바코드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 카페 회원들 전부 이런 닉네임을 쓴다는 건가요?”
   “뭐, 상당수요······.”
   경찰은 이 구불구불한 모양의 닉네임이 어떤 변태적인 성향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건 아니에요, 저도 비슷한 닉네임을 써요······.”라고 말하면서 왠지 모를 겸연쩍음을 느꼈다. 경찰은 캡처 사진상으로는 i와 l을 정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우니 정확히 확인해서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사람은 아마 드레스룸을 하루 이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코드닉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면 꽤 오래된 ‘룸메님’일 터였다. 만약 면식범이라면 내가 쓴 글을 보려고 오래전에 드레스룸에 가입했다는 얘기다. 소름이 돋았다. 나는 최근 회원 정보를 수정하던 중 우연히 내 글을 구독하는 회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이버 카페에는 멤버글 구독 기능이 있다. 타 회원의 글을 구독하면 게시물이 등록될 때마다 알람이 온다. 나도 화장품 정보를 얻기 위해 구독하고 있는 회원이 몇 명 있었다. 그러나 매번 시답잖은 글만 쓰는 내 게시물을 구독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핸드폰으로 채팅창을 열었다. 상대방 닉네임을 복사하기 위해 화면을 터치했다. 블록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실수로 아이콘을 클릭했다. 그러자 작성글 목록으로 이동했다. 맞다, 이 사람이 쓴 글을 볼 수 있었지. 나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혐오스러운 나머지 대화창에 다시 들어가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게시한 글이 스무 개쯤 있었다.

   ‘27살까지 여자친구 없으면 문제 있는 건가요?’
   ‘저 얼굴 때문에 연애 못 하는 걸까요?’
   ‘채팅으로 얼평 해주실 분 있나요???’
   ‘20대 후반인데 돈도 못 벌고 죽고 싶네요’
   ‘*추 크기 11센티면 평균인가요?’

   최근에 작성된 글부터 읽어 내려갔다. 내용을 종합해 보면 그는 27살 남자 취준생이었다. 오랜 백수 생활 탓에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로 보였다. 그 와중에 연애는 하고 싶은지 여자친구를 사귈 방법을 묻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여자 번호라고는 할머니와 여동생 것뿐이라고도 했다. 댓글 반응은 싸늘했다. ‘여자랑 말 섞고 싶어서 드레스룸 염탐하는 것만 봐도 뻔하네요’ 하는 식이었다. 비웃고 조롱하는 댓글 일색인데도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게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얼평(얼굴 평가)’을 요구하는 글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자 회원들이 몇 명 있었다. 아마 드레스룸에 상주하는 남자 회원의 면상이 궁금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 호기심이 이해는 갔지만, 굳이 모르는 남자와 채팅을 하겠다고 댓글을 다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그때는 고시원 백수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가끔 잠이 깬 새벽에 사람들 생각을 한다.
   고향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할머니와
   지금은 멀어진 학창 시절 친구들…
   언젠가 내가 당당해졌을 때 이야기하고 싶다.
   그때 많이 그리워했었다고…

   중간중간 연애와 상관없는 신세 한탄 글도 있었다. 그는 홀로 타지에서 구직 활동 중인 듯했다. 그것은 익숙한 이야기였다. 내 주변에도 취업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지인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 직장 근처에 원룸을 얻거나, 그럴 형편도 안 되면 고시원에 들어갔다. 글쓴이와 비슷한 나이의 친척 동생도 있었다. 그 아이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군대에 갔다가 그 뒤로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재작년쯤 취업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는데 버티지 못하고 다시 내려갔다.
   글쓴이는 종일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는 날이 많다고 했다. 스트레스와 영양부족으로 몸에 반점이 생긴 이야기, 취업한 여동생에게 용돈을 받은 이야기, 할머니 건강이 좋지 않은 이야기도 있었다. 이런 글에는 ‘집에만 있지 말고 상하차 알바라도 해보세요’ 같은 응원 댓글이 한두 개씩 달렸다. 나는 글을 읽으며 그가 면식범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작성글 목록을 확인했을 때 흥분으로 요동치던 심장이 점점 차분해져 갔다.

*

   “회원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주일 중 헬스장이 가장 한산한 금요일 낮. 한 달에 한 번 무료 PT를 받는 날이었다. 말이 무료 수업이지 실제로는 PT 영업이다. 이 헬스장에 처음 왔을 때 트레이너는 내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보통 회사에 있어야 할 낮 시간에 운동을 하러 다니는 게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변죽을 울리는 질문을 하며 정보를 캐내려 애쓰던 그는 내가 부유하지 않고 PT를 받을 의향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더는 살갑게 굴지 않았다.
   “오늘도 학교 갔다가 오셨어요?”
   영업 의지를 잃어버린 후 트레이너는 수업 시간 대부분을 잡담으로 때웠다. 80퍼센트 이상이 본인의 약혼녀 이야기였다. 그의 약혼녀는 서울에 있는 모 사립대학 경영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말할 때마다 학교 이름을 강조하는 게 어딘가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러다 얼마 전 그는 우연한 기회로 내가 대학원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래대학교라는 말에 조금 놀라는 듯했다. “그럼 학부도 미래대를 나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분교 출신이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 뒤로 트레이너는 약혼녀 이야기를 전처럼 많이 하지 않았다.
   “그래도 회원님은 꾸준히 나오시네요.”
   ‘그래도’라는 접속부사가 귀에 거슬렸다.
   “네, 집에만 있으면 우울해서요. 저 운동하고 나서 약 끊었잖아요.”
   일부러 웃으며 말하자 트레이너 쪽에서 움찔했다. 주변 대학원생 중에는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꽤 많았는데, 바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존재했다. 그걸 알지만 신경 쓰지 않고 말을 뱉었다. 언제든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사이라는 점에서 트레이너는 가장 안전한 사람이었다.
   “아······ 사실은 저도 우울증이 있었어요.”
   뜻밖에도 트레이너는 내 말에 동조하며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는 예전에 직업도 친구도 없이 히키코모리처럼 지낸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옆집에 살던 헬스장 관장님에게 끌려가 운동을 하게 됐는데 그 뒤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 일로 돈도 벌고 결혼 준비도 하고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때 그 관장님이 저한테는 은인이에요.”
   트레이너는 먼 옛날을 회상하듯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조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피규어 변태가 떠올랐다. 그 친구에게는 헬스장 관장님 같은 은인이 없는 걸까. 똑같은 어려움을 겪어도 운 좋게 빠져나오는 사람이 있고 굴레에 갇히는 사람이 있다.
   “근데 회원님은 뭐 때문에 우울하세요?”
   트레이너는 내 차례라는 듯 대화의 주도권을 넘겼다. 내가 박사 과정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말렸다. 고향에 머무르며 취업 자리를 알아볼 것을 권했다. 그러나 괜찮은 직장에 신입으로 들어가기에는 이미 나이가 많았고, 마침 미래대학교 본교에서 합격 발표가 나서 서울로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월세가 저렴한 신림역 부근에 방을 얻었다. 학교에서 가깝지 않지만 같은 2호선 라인이라 등하교하기에 썩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새로운 동료들과의 만남과 서울 생활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졌다.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너무 늦게 편입한 탓에 지도제자 모임에서조차 겉돌았다. 드러난 차별은 없었지만 사소한 정보를 주고받는 데 매번 소외되었다. 학교생활에 재미를 못 붙이다 보니 그제야 현실적인 문제들이 자꾸 떠올랐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아니에요. 사실 농담이었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30분의 무료 PT 시간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

   ‘저 고소를 취소하고 싶습니······’ 문자를 쓰다가 지웠다. 수신자란에는 경찰의 업무용 핸드폰 번호가 찍혀 있었다. 갈등이 일었다. 처음 경찰서를 찾을 때는 내게 장난친 사람이 누구인지 꼭 알아내겠다는 마음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면식범일 경우 더 큰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그냥 무시해 버리라고 했지만, 작은 불씨가 화재로 이어지는 법이니 그냥 둘 수 없었다. 그에게 잘못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사소한 장난으로 누군가는 몇 날 며칠 신경과민과 불안증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려줄 작정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내 상상 속 그의 얼굴은 음흉하게 웃고 있는 치한에서 촌스러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남학생으로 바뀌어 갔다. 고무줄놀이 하는 여자애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줄을 끊고 도망가는 사내아이처럼, 심심하고 외로워서 그런 일을 벌인 것 같았다. 이런 식의 변호가 부적절하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 같아서 오히려 내가 가해자가 된 느낌마저 들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평소 같으면 드레스룸에 조언을 구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던 중 ‘통매음’ 관련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사이트의 규모가 크고 활성화되어 있었다. 커뮤니티에는 통매음 관련 고소인과 피고소인들이 섞여 있었다. ‘롤’이라고 불리는 게임을 하다가 성적인 의미가 담긴 욕설을 해서 고소당한 사람이 태반이었다. 일부러 욕설을 유도하고 합의금을 받아내는 헌터도 있었다. 통매음 사건 대다수가 ‘롤’을 하다가 일어난다고 하여 속칭 ‘롤매음’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이 법은 성범죄로 분류되기 때문에 처벌받을 경우 사회적으로 큰 불이익이 있다. 공무원이라면 파면당할 수 있고 취업에도 제한이 걸린다.
   이 커뮤니티는 가입하지 않아도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나는 익명으로 글을 작성했다.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 상황을 설명했다. 채팅으로 음란 사진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상대가 어려운 청년이라 고소를 취하할지 고민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누군가 1:1 채팅 신청을 해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호기심에 대화를 수락했다. 상대방은 우연히 내 글을 읽고 조언해 주고 싶어서 말을 걸었다고 했다.
   [고소인님이 천사시네요. 그런 새끼들 봐주면 더 악질 됩니다.]
   [네, 따끔하게 혼내 주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동생 같아서 좀 안쓰럽네요······ㅎㅎ]
   [금융치료가 최선입니다. 무조건 합의금 받으세요.]
   그는 자신이 강남에 있는 법무법인에서 일한다고 밝혔다. 필요하면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요즘엔 이런 식으로도 영업을 하나? 신종 영업 방식에 얼떨떨하면서도 그가 대화를 건 이유를 납득할 수 있어 안심이 되었다. 무슨 함정이 있지는 않을까 잔뜩 경계하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는 내게 상대방에게서 받은 음란 사진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합의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봐주겠다고 했다. 나는 돈을 목적으로 고소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것은 물론 진심이었다. 가해자가 합의금을 마련할 능력이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수위인지 궁금하네요. 간혹 신고거리가 안 되는 것들도 있어서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피규어 사진을 보냈다. 혹시 참고가 될까 하여 다른 캡처 사진들도 보냈다. 그중에는 그 사람의 작성글 목록도 있었다.
   [아이고······ 이 친구 망했네요.]
   상대방은 탄식을 뱉었다. 성기 노출 사진이 있으면 거의 백 프로 사건 성립이 되는데, 피규어들이 알몸으로 있었으므로 이것은 유죄였다. 그리고 잠시 대화가 없었다.
   [이 사람 블로그 하는 거 알고 계셨어요?]
   몰랐다. 상대방은 다른 캡처 화면에 나와 있는 아이디 정보를 이용해 구글링을 한 듯했다. 역시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나는 상대방이 보내 준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 ‘pjh0614님의 블로그’. 블로그 제목은 심플했다. 카테고리는 ‘공부’와 ‘일상’으로 나뉘어 있었다. ‘일상’ 탭으로 들어갔다. ‘행정고시 준비생의 하루’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맨 위로 올라가 있었다. 아이패드와 책, 먹음직스러운 아포카토가 놓여 있는 책상 사진이 있었다.
   [행시생이네요. 고소인님 샤넬 백 하나 사시겠어요.]
   상대방은 신이 난 투로 말했다. 그럴 리가. 나는 다른 글들을 살폈다. 6개월 전에 쓴 마지막 게시물에는 욕실이 딸린 깔끔한 고시텔 사진이 있었다. 책을 제외한 옷가지나 다른 짐은 거의 없었다. ‘집에서는 집중이 안 돼서 학원 근처에 고시원을 얻었다. 신촌 자취방은 일주일에 한 번만 가는 것으로······’라는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해운대 맛집 사진이 많은 것으로 보아 본가가 부산인 듯했다. 가족들과 함께 유럽 일주를 다녀온 사진도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괴리가 컸다.
   학사모를 입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키가 크고 말랐으며 평범한 인상이었다. 턱이 살짝 튀어나오고 어딘가 억울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지만 특별히 못생겼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뒤로 보이는 대학 건물 외관이 익숙했다. ‘미래대학교 졸업을 축하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

   해당 사건은 두 달이나 지난 뒤 검찰에 송치되었다. 경찰은 다른 사건이 밀려 있는 데다가 네이버 측과 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했다. 피고소인의 거주지에 따라 관할서가 이관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결국 그런 일은 없었다. 피고소인의 거주지도 서대문구였기 때문이다. 경찰은 신고자 가명을 무엇으로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니’로 해달라고 했다. 학회 일을 하던 중 전화를 받아 생각나는 이름이 그것이었다. 변호사는 국선으로 선임했다. 경찰은 조만간 피고소인을 불러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상황을 전해 들은 아빠는 혀를 끌끌 차며 ‘너는 신고를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이전에도 무슨 일로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었다. 자취방을 비운 사이 신발장에 있던 CCTV에 사람이 감지된 적이 있고, 지하철에서 몰카범을 만난 적이 있고, 몇 달간 이어진 장난전화 때문에 신경쇠약에 시달린 적이 있다. 번호를 두 번이나 바꿨는데도 끈질기게 계속했다. 아빠는 ‘실제로 별 피해도 입지 않았는데 자꾸 신고하면 악성 민원인으로 찍힐 수 있다’고 했다. ‘왜 저 사람은 유독 이상한 일을 자주 겪을까’라고 생각해 오히려 나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크게 다치거나 금전적 손실을 입은 게 아니라면 무시해 버리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내 의견은 달랐다. 이상한 일이 있으면 바로 확인해 보고 싹을 잘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별일 아닌 줄 알고 내버려두었다가 심각한 사건으로 발전할지 누가 알겠는가. 아빠는 나의 이런 사고방식이 ‘사건반장’을 자주 시청한 탓이라고 여기는 듯했다.(‘사건반장’이라는 JTBC 시사토크쇼가 있는데 황당한 사건들이 자주 등장한다. 내 상상력에 얼마간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살아오면서 둔감한 탓에 위험신호를 감지하지 못하다가 파국을 맞은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다. 나의 예민한 성격은 경험의 소산이었다. 더불어 내가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말에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매번 그 사건들은 내게 분명한 정신적 데미지를 남겼다.
   사건이 송치된 이후 나는 통매음 커뮤니티에 몇 번 더 들어갔다. 그러다 내 사건의 가해자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을 발견하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규어’라고 검색했더니 같은 사람이 쓴 글이 두세 개 나왔다. 내용으로 보아 그가 확실했다. 그는 처벌을 받게 될 경우 행정고시 준비에 문제가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황당한 것은 그간 드레스룸에서 여러 회원들과 채팅을 나눈 탓에 나를 다른 사람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먼저 얼굴 평가를 해주겠다고 해서 채팅을 주고받는 중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조금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사람들끼리 서로 상담을 주고받으며 사건의 성립 여부나 합의금 액수를 예측해 본다. 그것은 피고소인이 보낸 메시지의 수위에 따라 달라졌다. 텍스트만 있으면 200~300만 원, 성기가 노출된 사진이나 영상은 500만 원이 시가였다. 간혹 판결에 따라 성희롱이 아닌 단순모욕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너무 높은 금액을 요구하면 가해자 측에서 합의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을 건 도박을 할 수 없는 공무원이나 공시생들에게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구체적인 합의금 액수를 논의하기도 전인데 내 삶은 이미 조금씩 윤택해져 갔다. 제니가 쓰는 조말론 핸드크림을 샀고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었고 학교에 늦으면 택시를 탔다. 헬스 PT 10회권을 결제했다. 트레이너는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해 달라고 했다. 통장에 있던 잔고가 눈에 띄게 줄어 갔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인터넷에서 명품 가방들을 구경했다. 드레스룸에서는 세컨 아이디로 활동했는데 이제 일상/고민 게시판보다 가방/신발 게시판을 주로 이용했다. ‘디올 레이디백 너무 흔한가요?’라고 물어 보면 ‘출근용이면 루이비통 알마 추천이요. 이미 있으시면 레이디백 나쁘지 않아요’라고 댓글이 달렸다. 이제야 진정한 드레스룸 멤버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너 요즘에는 사건반장 안 보냐?”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래······ 라고 읊조리는데 아빠는 빨리 TV를 틀어 보라고 했다. TV에서는 살인사건이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한 공무원 남성이 여자친구를 도촬하고 협박했는데, 여자친구의 고소로 파면당한 후 보복 살해한 사건이었다. 가해자는 여자친구를 죽이기 전에 “남의 신세를 망치려고 하느냐”며 원망하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모 대학의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강력 처벌해야 한다고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왔다. 다른 뉴스 채널로 돌려 봐도 같은 내용이 보도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그만하는 게 어떠냐?”
   피규어 변태 이야기였다. 아빠는 그 사람이 나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가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는 내 진짜 이름을 모른다. 그러나 상대방의 허술함으로 인해 내가 그의 자세한 신상 정보를 알게 된 것처럼, 그 역시 어떤 방식으로 나의 정보를 캐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문득 가명을 이제니로 한 것을 후회했다. 이제니에게 사건에 대해 말했던 것도 후회했다. 영자나 옥순처럼 아무도 모르는 이름으로 하고, 누구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말 것을 그랬다.

*

   나는 오랜만에 세컨 아이디가 아닌 본 계정으로 로그인했다. 드레스룸에는 내가 쓴 글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증거가 될 수 있으니 지우지 말라고 경찰이 당부했던 것이다. 그 사람의 글들은 전부 삭제되어 있었다. 나는 내 아이디와 블로그가 연동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다. 나에게도 몇 년 전에 쓰다가 방치해 둔 블로그가 있었다. 석사 논문을 쓰던 시절 혼자 연구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공부량 기록 및 일기장 용도로 사용하려 개설한 블로그였다. 처음에는 꾸준히 포스팅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블로그 통계를 봤더니 지난 1년간 방문 기록이 텅 비어 있는 와중에 요 몇 달 사이에만 그래프가 올라가 있었다. 게시물 조회 수는 낮았다. 유일하게 사진이 첨부된 게시물만 조회 수 5를 기록했고 나머지는 그 이하였다. 사진 속 연구실 책상에는 커피가 가득 담긴 텀블러, 찌그러진 카누 커피 포장지, 노트북이 올라와 있었다. ‘읽다가 지치면 쓰고, 쓰다가 지치면 읽고······ 잘하고 있는 거겠지?’라는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금씩 주변 관계들을 끊어 가던 시기의 글이었다. 이 시기를 견뎌내기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나는 매일 조용히 시들어 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도 내 블로그에 들어와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서대문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오랜 시간이 걸린 뒤 담당 경찰과 연결이 되었다. 한결같은 충청도 억양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피곤한 느낌이 있었다.
   “저 고소 취하하려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경찰은 이유를 물었다. 나는 경찰이 이 사건 때문에 네이버 측과 여러 번 소통하느라 고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분이 공시생이더라고요. 저 때문에 괜히 진로에 문제가 생길까 봐······.”
   경찰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건 그 사람이 알아서 할일이죠.”
   “아니, 저는 정말 괜찮아요. 그쪽에서도 충분히 반성했을 것 같고 하니, 이쯤해서 그만하는 게 어떨까요.”
   수화기 사이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성범죄는 고소 취하가 안 되는데요······.”

*

   언론에서는 연일 살인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역 이름을 따서 ‘왕십리역 살인사건’이라고 불렸다. 기사 댓글에는 관련 범죄에 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가해자에 대한 비난이 줄을 이었다. 여자가 너무 빠져나갈 구멍 없이 상대방을 몰아세웠다며 피해자 탓을 하는 댓글도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네이버 아이디를 완전히 삭제했다. 같은 아이디를 사용하던 SNS 계정도 없앴다. 아이디와 이름을 구글링해 내 흔적이 인터넷 어디에 남아 있는지 여러 번 확인했다. 다시 통매음 커뮤니티로 들어갔다. ‘피규어’라고 검색했다. 그 사람 글이 아직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작성한 글을 클릭했다.

   어제 피규어 사진 보냈다가 신고당했다고 글 쓴 사람인데요 (내용 이전글 참고 :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query=%EC%84%BP77KssssssKo-193156)
   처벌 가능성 있는지 확실히 알려면 누구한테 물어 봐야 할까요?
   아직 가족들한테는 이야기 못 했는데 미치겠어요······
   저 시험 못 보게 되면 그냥 자살하려고요
   지가 얼평해 준다고 채팅 걸어 놓고 이렇게 뒤통수칠 줄 몰랐네요
   씨발년

   나는 댓글 창으로 커서를 가져갔다. 어쩌면 지금 쓰는 문장이 본인 등판 댓글로 박제되어 오랫동안 인터넷을 떠돌아다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명한 밈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신중하게 키보드를 눌렀다. ‘저기,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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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소설

늦은 새해

늦은 새해 주나영 우기 막바지인 3월 아침, 조식당에 안까지 빗소리가 크게 들렸다. 직원은 사다리에 올라 창에 붙은 검은 시트지를 문질렀다. 들뜬 가장자리를 손바닥으로 몇 번이고 눌렀지만 쉽게 붙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해서 창을 가려야 하나 싶었다. 어젯밤 체크인할 때 받은 안내문 상단에는 영어로 ‘침묵의 날(녜삐 데이)’이라는 낯선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루 동안 발리의 불빛과 소음을 줄이며, 투숙객의 호텔 외부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안내문을 건네던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새해 첫날을 아주 조용하게 보내는 풍습이 있거든요.” 나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호텔 직원들은 목소리를 낮췄고, 손님들도 주변을 살피며 말을 줄이는 듯했다. 사다리 위의 직원은 테이프를 한 조각 더 잘라 시트지 가장자리에 붙였다. 그래도 한쪽이 다시 들뜨자 시트지 한 장을 떼어 사다리 아래로 내려보냈다. 창의 절반쯤이 드러났고, 유리 바깥 면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렸다. 남편은 케이지-프리 에그 화이트 오믈렛을 주문했다. 쉰을 넘긴 뒤부터 식단과 운동에 부쩍 엄격해졌다. 디종 머스터드 병을 열어 숟가락으로 접시 귀퉁이에 덜어 놓은 뒤, 오믈렛을 잘라 찍어 먹었다. 면도를 공들여 한 듯 턱끝이 말끔했다. 맞은편에 앉은 혜리는 빵 바구니에서 올리브 치아바타를 집어 들더니 박혀 있는 올리브만 손끝으로 빼 먹었다. 덜 마른 머리카락이 어깨에 들러붙어 있었다. 머리를 귀 뒤로 넘길 때마다 손가락에 물기가 묻었다. 나는 냅킨 상자를 혜리 쪽으로 밀었다가 멈추었다. 혜리는 이미 옆에 놓인 냅킨으로 손끝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커피는 식어 있었다. 혜리는 남편과 전처 사이의 딸이다. 남편은 나보다 열다섯 살 많고, 혜리는 나보다 열다섯 살 어리다. 혜리가 초등학생 때 엄마와 함께 호주로 건너간 뒤, 남편은 일 년에 한두 번 혜리를 만났다.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는 빠짐없이 선물을 보냈다. 남편이 서재에서 혜리와 영상 통화를 하는 날이면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를 조금 줄였다. 주방에 갔다가 웃음소리가 들리면 물병만 꺼내 돌아왔다. 통화가 길어지는 날에는 먼저 씻고 침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통화를 마친 뒤 혜리의 학교생활과 새로 키우기 시작한 동물에 대해 말해 주었다. 나는 그가 보여 준 사진을 몇 장 넘겨본 뒤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혜리는 빵에서 올리브를 하나 더 빼 입에 넣었다. 남편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지만 결혼식은 혜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미뤄 왔다. 결혼식은 석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사흘 정도 쉬고 오자고 한 것도, 한국과 호주의 중간쯤인 발리에서 혜리를 만나자고 한 것도 남편이었다. 출발 전날 밤, 남편은 서재에서 청첩장이 든 봉투를 가져왔다. 구겨지지 않도록 얇은 파일 사이에 끼워 여행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혜리는 아보카도 스프레드를 빵 위에 고르게 펴 발랐다. 한입 베어 물자 빵 껍질이 바스러져

  • 주나영
  • 2026-08-01

문장웹진 소설

장정호

장정호 장희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공기가 차고 맑은 곳. 다른 곳보다 해가 빨리 뜨고 지는. 다른 누군가의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희재에게서 그가 지내고 있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우듬지 너머로 뜨는 어슴푸레한 새벽 동이나 찹찹한 분위기,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같은 임야를 떠올렸다. “죽어버렸으면.” 희재는 허공 속의 한 점을 보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그곳에서 죽어버렸으면. 희재는 어머니가 복수가 찬 채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분명히 그때와는 다른 뉘앙스가 있다고 느꼈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른 아침부터 희재와 나는 서둘렀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입을 헹구고, 어제 벗어두었던 청바지를 주섬주섬 입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희재는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양손으로 손잡이를 쥔 채 창문으로 머리를 기댔다. 저기 뭐가 죽은 것 같아. 아니다, 다시 보니까 없어. 진짜 아무것도 없어. 희재는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혼자 말하고 답했다. 한참 후 주위가 고요해진 것 같아 옆을 보니 희재가 입을 벌린 채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휴게소에서 백반과 우동을 나누어 먹었다. 밥을 다 먹고도 시간이 남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통유리창 너머로 구름 한 점 없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과 휴게소 뒤편으로 펼쳐진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대체로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없었다. 그럴 필요까지 없었는데 왜 그렇게 서둘렀냐고 묻자 희재는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희재의 아버지 얼굴을 보고 안부를 확인한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는 삼 년 전 아내가 간경화로 죽고 난 후 홀로 지내다 언제부턴가 야산에서 지내고 있었다. 양산에 있던 그가 어떻게 산천에 있는 그곳으로 들어가 살게 됐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는 미처 주변을 정리하지도 않았다. 아직도 그가 살던 집 냉장고에는 그가 먹다 남긴 반찬들이 썩어가고 있을 터였다. 희재의 어머니가 살아있을 적부터 기르던 식물들, 호야 나무, 산세비에리아, 스투키가 말라비틀어진 채 죽어 있을 것이다. 나는 먼지가 가득한 집을 떠올렸다. 어렸을 적부터 희재와 희재의 가족이 살았던 집. 희재와 나는 명절이면 그곳에 가서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 돌아오곤 했다. 간간이 희재와 희재의 어머니, 내가 웃을 때면 그는 크고 검은 눈으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사람이니까.” 그가 왜 그런 곳까지 가게 되었을까 하고 묻자 희재가 대답했다. 자신도 우연히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뿐 더는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뭐든 다 자기 멋대로인 사람.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에 다른 사람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그냥 그런 사람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죽어버렸으면. 나는 희재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본 그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말이 없고 등이 조금 굽은 왜소한 노인. 그는 묵묵히

  • 장희원
  • 2026-08-01

문장웹진 소설

내 마음이야

내 마음이야 이갑수 퇴근하고 싶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 눈을 감고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린다. 졸업, 제대, 여행, 생일파티, 800만 원 복권 당첨, 첫 키스…… 아니 첫 키스는 빼자. 그리고 명상을 한다. 생각을 비우고 차분하게. 절대 조금이라도 우울해선 안 된다. 어제도 제시간에 퇴근하는 데 실패했다. 우리 회사가 정부의 근로자 지원프로그램 시범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지난달부터 퇴근하기 전에 우울증 지수를 체크 한다. 보건복지부가 대학 연구소와 산학협력으로 개발했다는 ‘뉴진’이라는 우울증 측정기는 헬스장의 인바디 측정기처럼 생겼다. 악력기처럼 생긴 손잡이를 잡고 발판 위에 올라서면 우울증 지수가 100분위로 표시되는데, 우울증 지수가 50이 넘는 사람은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한다. 어떤 원리로 우울증을 측정하는 건지는 모른다. 아무리 사람의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몸을 측정해서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몸을 통하지 않고는 마음을 알 방법이 없으니 둘 사이의 어떤 메커니즘을 알면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시범 사업이 끝나고 일반에 공개가 되면 측정 원리도 밝혀질 테니 기다리면 곧 알게 될 일이다. - 80.00 오늘도 실패다. 점점 더 올라가고 있었다. 첫날에는 51이었고, 그날 상담은 5분 만에 끝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신기한 체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 요즘 기분은 어때요? 강 박사의 첫 질문은 항상 똑같다. -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그냥 괜찮습니다.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 무감각한 것도 우울증세일 수 있어요. 일단 지켜봅시다. 강 박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가 지난 한 달간 나를 지켜본 결과는 부정적일 게 분명하다. 내가 상담을 받으며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수치가 올라가고 있으니까.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들을 부러워하며 상담실로 올라갔다. 내 앞에 대기자는 일곱 명, 네 명은 자주 보는 얼굴이고, 세 명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우울증 지수가 높아서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다들 정말 우울해 보였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표정이 어떨지 알 것 같았다. 상담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로 강 박사의 얼굴이 보였다. 이 지원프로그램은 경력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은퇴한 의사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으니까. 정부 입장에서는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좋은 정책이었다. 강 박사도 대학병원에서 정년 퇴임한 정신과 전문의다. 강 박사는 슬램덩크에 나오는 안 감독님을 닮았다. KFC의 샌더스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흰 양복 대신 흰 가운을 입고 있다는 것 빼면 정말 똑같았다. 강 박사를 보면 치킨이 먹고 싶었다. - 요즘 기분은 어때요? 자리에 앉자마자 강 박사가 모니터의 차트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전에 없이

  • 이갑수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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