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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K-컬처와 김기태의 소설이 말하는 것들

  • 작성일 2024-09-01

   글로벌, K-컬처와 김기태의 소설이 말하는 것들


류수연


   1. 대문자 K의 시대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핵심은 ‘한류, K-wave’라는 말로 귀결된다. 1990년대 후반 일본과 대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진 한류라는 용어는, 벌써 그 연원이 30년이 다 되어 간다. 그 결과 오늘의 우리는 한국에서 생성된 모든 콘텐츠가 그 자체로 세계화되는 시대, 말 그대로 대문자 K가 지향을 넘어 실재가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싸이와 방탄소년단(BTS), 영화 <기생충>, 그리고 OTT 플랫폼 드라마 <오징어게임>까지. 이것은 2010년대 이후 한류를 대표하는 콘텐츠들이다. 그 인기의 정도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것들이 한국 대중문화에 어떤 결정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K-컬처의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뉴미디어였다. 주지하다시피 K-콘텐츠는 코로나19 이후 시작된 디지털 플랫폼 산업의 확장이라는 거대한 지각변동으로부터 든든한 지지를 받았다. 싸이와 방탄소년단, 그리고 <오징어게임>의 성과는 SNS와 OTT라는 뉴미디어 산업의 영향 속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 때문일까? 때때로 K-컬처의 성공은 매우 드라마틱한 이벤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러한 K-컬처가 전 세계의 주류적 대중문화의 하나로 인정되기까지 거의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 문화가 다른 문화 속에 완전히 스며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세대라는 시간이 필요함을 시사하는 것이며, 이러한 성과를 얻어내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열정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2024년 오늘의 우리는, 바야흐로 대문자 K를 붙인 많은 것들이 하나의 유행처럼 전 세계를 관통하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토록 화려한 성공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은 대문자 K라는 문화가 만들어낸 뜻밖에 ‘낯섬’에 보다 주목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한류의 유행을 단순히 한국 문화의 승리로 치부하는 것에는 커다란 모순이 존재한다. 대문자 K의 출처는 분명 Korea이지만, 그것이 글로벌 대중에게 향유되는 순간 더 이상 한국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문자 K 문화의 글로벌 유행은 대중문화의 소비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오랫동안 대중문화의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미국, 그리고 그러한 미국 문화에 내포된 서구 근대성이라는 보편성의 시대가 이미 저물고 있음을 시사한다(조영한, 「한류와 팝 글로벌리즘」, 『황해문화』 115, 2022 여름, 27쪽).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대문자 K의 시대는 때때로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과 꼭 닮은, 그러나 자신과는 이질적인 도플갱어를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대문자 K로 지칭되는 모든 문화는 역설적으로 그 출발점인 Korea, 그리고 한국인에게 가장 낯선 풍경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대문자 K의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은 언제나 한국이 아닌 그 바깥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작용도 존재한다. 실제로 한국 콘텐츠 산업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지나치게 경사되면서 무국적의 K-콘텐츠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 바깥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유행이 오히려 우리 내부를 소용돌이의 중심처럼 고립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대문자 K를 통해 글로벌 대중문화를 리드할 수 있는 또 다른 “다중적 근대성이라는 새로운 글로벌리티에 대한 상상”(조영한, 같은 글, 32쪽)을 실감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 문화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고, 소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김기태의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문학동네, 2024)은 바로 그 상상과 실감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또 다른 대안들을 모색하는, 발견과 선택의 순간들에 놓여 있다. 



   2. 대문자 K가 획득한 문화적 주체성


   김기태의 「로나, 우리의 별」은 스타 탄생기를 둘러싼 익숙한 설화인 동시에 그 전복이다. 이 소설은 “우리는 가능하다.”라는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이며, 또 무엇이 가능하다는 것일까? 

   소설 속에서 로나는 <모두의 스타>라는 한국 최초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가수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다. 이 소설이 주목하는 서사가 로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불특정 다수로 지목되는 ‘우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로나의 수많은 팬들이다. 이 소설은 그녀의 팬덤이 어떻게 시작되고, 또 그것이 어떻게 하나의 네트워킹으로 연결되어 가는지 그 과정에 주목한다. 

   로나의 목소리에 반해 팬이 된 외다리비둘기, 로나에게 매료되어 월급을 모아 기타를 산 아로미, 로나의 예능 <영월에서 영원으로>로 인해 소비를 줄인 목련러너, 로나의 기부금 덕분에 복구된 도서관에서 더 많은 책을 읽게 된 배부른소크라테스, 로나의 기부가 허울뿐인 사회사업자인 남편 데릭에게 이용될 때조차 그녀를 지지했던 잉맨, 언제나 로나를 광고의 페르소나로 생각하고 기획했던 사축A, 길에서 할머니와 함께 폐지를 줍다가 로나의 기타를 기부 받고 그것을 중고마켓에 내놓았던 소년 빵또아와 그것을 알아보고 릴레이 기부를 이끌었던 붕어싸이코. 그들은 로나의 팬이면서 또 다른 로나였고, 로나를 로나로 있게 해준 실질적인 동력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한 ‘우리’로 탄생되는 순간은 따로 있다. 로나가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인이 되고자 할 때이다. 로나의 새로운 도전은 그녀의 팬에게도 하나의 도전이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질문한다.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답은 이미 작품의 첫 문장에 제시되어 있다. “우리는 가능하다”라고. 그 가능성은 오직 그들이 ‘우리’로 네트워킹 되었다는 그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로써 이들은 단순히 스타를 발굴하고 선택해서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스타가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는 사람들로 거듭난다. 그들의 ‘우리’는 로나와 함께 시작되었고, 로나와 함께 성장했으며, 결국 로나를 포함한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로나가 그들이고 그들이 로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로나의 꿈은 그들의 꿈이 된다. 그것이 그들이 로나와 함께 ‘우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무엇이 이러한 동반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그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시스템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오디션 프로가 그것이다.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가치의 등장은 대중 스스로 자신의 스타를 선택하고 육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 팬덤은 변화한다. 그로 인해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스타를 발굴하고 선택한 사람들이자, 스타의 신념에 대한 최후의 지지자이며, 결국 스타와 함께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설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시각적 전환에는 우리 근대 문화의 변천사가 맞닿아 있다. 서구 문화를 동경하고 모방하면서 시작된 우리의 근대는 결국 디지털 미디어에 빠르게 적응함으로써 서구와는 다른 선택 지점을 만들었다. 로나에게 오디션이 있었다면 우리에겐 SNS와 OTT라는 대중적인 발견과 선택의 장이 주어졌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대문자 K로 대표되는 K-컬처의 가능성을 만들어낸 결정적인 힘이었다. 

   결국 「로나, 우리의 별」의 저변에는 우리 문화의 가능성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공감대가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적 자신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 근대화의 모든 과정은 일방적인 모방이 아니었음을, 그것은 서구적 근대성에서 우리가 발굴하고 선택하여 일구어낸 우리만의 독창성이었음을. 이는 결국 우리의 근대가 ‘우리’화에 성공한 또 다른 가치임을 긍정하는 태도, 문화 주체로서의 자각과도 연결된다. 



   3. 글로벌 확장의 그늘, 잠재된 불안


   하지만 김기태의 이러한 발견은 매우 조심스럽다. 오히려 그는 이 놀라운 글로벌리즘에 잠재된 불안을 놓치지 않는다. 「세상 모든 바다」가 그려내는 풍경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그대로 한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세상 모든 바다’, 세모바는 BTS와 블랙핑크 이후 가장 성공적인 케이팝 그룹으로 제시된다. 환경, 젠더, 평화와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노래하면서 데뷔와 함께 글로벌적 인기를 모은 이 걸그룹은 ‘『빌보드 매거진』으로부터 걸그룹의 한계를 넘어 케이팝을 다시 발명했으며, 역설적이지만 K라는 접두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평가’(「세상 모든 바다」, 10쪽)를 받는다. 

   「세상 모든 바다」의 주인공 하쿠는 재일교포 3세이자 유학생이며, 세모바의 팬이다. 그는 세모바의 첫 콘서트 예매에 실패했지만, 잠실로 향한다. 이러한 배회가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소위 ‘겉돌’이라고 불리는 티켓 없이도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케이팝 팬덤의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연장 앞에서 직접 만든 아이돌 굿즈를 나누거나 판매하는 일종의 장이 서기 때문에 콘서트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겉돌’은 하쿠에게 지독한 죄책감의 기원이 된다.

   모든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세모바를 사칭한 반전 퍼포먼스가 야기한 소동에 한 고등학생이 휘말려 사망한 사건에 대해 그 누구도 하쿠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하쿠는 알고 있다. 그날 그에게 공연장 밖에서 게릴라 라이브를 할지도 모른다는 트위터 소식을 전한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은 하쿠를 해진으로 이끈다. 그곳은 죽은 고등학생 백영록의 고향이었다. 동시에 세모바의 노래로부터 영감을 받은 팬들이 소셜미디어에서 탈원전 캠페인을 벌이면서 언급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래서 해진으로의 여행은 죄책감을 덜기 위한 속죄의 여정인 동시에 일종의 성지순례이기도 했다. 하쿠에게 세모바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은 아름다웠고, 유능했고, 심지어 옳았다.”(「세상 모든 바다」, 23쪽)라고 평가했다. 재일교포 3세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던 그 자신이 갖지 못한 비전과 가치를 가진 존재로서 세모바는 말 그대로 ‘아이돌(우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쿠는 해진에서 낯선 현실을 목도한다. 세모바를 축으로 연결된 ‘우리’들의 뜨거운 캠페인을 이끌었던 그곳, 하지만 실제의 해진은 SNS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작고 쇄락한 군청, 그 앞에서 원전을 세워 달라는 1인 시위자. 그 어떤 풍경도 SNS 속 ‘우리’의 해진과는 달랐다. 그곳에서는 세모바도, 그들의 노래도 그저 무력할 뿐이었다. 그곳은 세모바 팬덤의 바깥, ‘우리’로 네트워킹 되지 않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바다」에서 하쿠의 결말은 「로나, 우리의 별」과는 정확히 반대 지점에 놓인다. 해진을 다녀온 뒤, 하쿠는 더 이상 세모바의 팬이라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스스로 그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었던 ‘우리’에서 빠져나온다. 그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우리’로서의 무력감과 불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대문자 K가 한국 사회에 야기한 또 다른 불안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대문자 K가 되어 전 세계적인 열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이 우리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낯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문자 K의 출발은 한국일지 몰라도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는 이미 한국 바깥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이 되어버린 대문자 K. 때때로 그것은 불안의 징후이자 일종의 애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K-컬처를 향한 우려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특히 케이팝에 대한 애증이 가장 깊고 크다. 그래서일까? “K-컬처의 특징 중 하나가 그 원천 공간인 한국 내에서 인정 수준이 낮다는 점이 포함”(김예란, 「K라는 끔찍한 동형성」, 『황해문화』 115, 2022 여름, 77쪽)되어 있다는 주장은 우리에게 낯설지만은 않다. 케이팝에 대한 열광과 소비를 10대를 중심으로 한 특이하고 일시적인 취향으로 여기는 풍조는, 서구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K-컬처의 미래는 잿빛으로 인식되는 것일까? 김기태의 소설에서 우리는 뜻밖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과 또 다른 작품 「전조등」이 바로 그것이다. 



   4.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찬란한 역설


   결석하지 않고 학교도 잘 다녔다. 법을 어긴 적도 없었다. 하루에 삼분의 일에서 이분의 일을 인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공과금도 기한 내에 냈다. 그럼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133-134쪽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의 주인공, 고아인 진주와 이주노동자이자 불법체류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니콜라이. 그들은 한국 사회의 소수자이며 약자이다. K-컬처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우리 사회의 그림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어떤 비애나 절망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그들이 처한 현실 그 자체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담하게 응시한다.

   작가는 무엇보다 여러 장학제도나 지원과 같은 사회적 안전망이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대체할 수 없음에 주목한다. 진주의 처지를 파악하고 장학재단에 연결해 준 은인 같은 고1 담임은 졸업 때 찾아온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고, 취업률 최고라는 특성화고에서 니콜라이는 전공과 상관없는 현장 실습을 나갔다. 시스템이 불합리해지는 이유는 애정과 관심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합리는 그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된다. 국가장학금 홈페이지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에 대한 법률이 가진 불친절함, 비정규직으로 전전해야 하는 노동현실. 이 모든 것들이 가감 없이 현실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친구였다가 연인이 되고, 자연스러운 이별을 겪고 마지막엔 집을 셰어하는 동반자가 되는 두 사람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연대를 꿈꾼다. 그것은 평행을 이루어 서로의 존재에 침입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삶에 동반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 오직 우연과 필연이 만들어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다.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의 처음을 되짚어 보자. “두 사람의 역사는 길다.”(「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111쪽)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이 세상의 모든 우연은 반드시 필연에 겹쳐진다는 것을 환기한다. 수많은 우연을 통해 대칭되는 두 사람의 삶을 짚어내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는 짐작 가능한 유명인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어떤 ‘누구’로 특정되지 않는 평범한 개인이기도 하다. 그들 서로는 서로를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대칭된 삶을 살아간다. 두 사람의 네트워킹에는 ‘친분’조차 필수적이지 않다. 그들이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이 지구의 어디에선가는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킹을 통한 국제화가 실현되고 있고, 그것이 이 지구의 거대한 질서를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힘임이 강조된다. 

   이제 다시 돌아와 진주와 니콜라이의 우연과 필연이 마주친 곳을 되짚어 보자. 한국의 작은 학교, 그리고 이어서 어느 소도시의 주민센터까지. 그곳에서 진주와 니콜라이의 진짜 네트워킹이 시작된다. 대칭이 아닌 공존으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실천되는 순간, 바로 이 자리가 김기태가 찾은 우리 안의 진짜 ‘세계화’는 아닐까?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들이 마주한, 그렇게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진짜’로 느껴지는 순간들. 그 가치는 또 다른 작품 「전조등」에서도 드러난다. 주인공은 착실한 모범생으로 부모가 제시하는 안정의 가치 바깥으로 단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다. 성실하게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했고, 대기업에 들어가 빠른 승진을 했다. 불행하지 않았지만 행복하지도 않은 삶 속에서, 그는 분명 자기 삶에 결여된 ‘무엇’이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그것을 예민하게 감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결여는 오직 채워짐으로써만 비로소 그 부재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상기하는, 모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것들로 순식간에 메워진다. 연인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아이의 탄생과 육아라는 새로운 기쁨의 순간.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오직 그만이 알아챌 수 있는 ‘열세 번째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들이 있음을 자각한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그에게 주어졌던 성공의 법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벗어나게 된다. “아내의 경력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는 남직원은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내 불문율을 깼다.”(「전조등」, 106쪽) 

   진주와 니콜라이의 네트워킹도(「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한 평범한 남자가 한 가정을 이루는 모든 과정도(「전조등」) 모두 대문자 K에 속하지 않은 세계이다. 거기엔 거대한 팬덤이나 거창한 캠페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비난과 무시가 뒤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곳은 지극히 소박하고 일상적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공감과 배려와 이해로써만 구현될 수 있는 세계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작가 김기태는 바로 그러한 평범한 삶이야말로 가장 큰 파격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힘든 삶에서 겨우 주워 담을 수 있는 온전한 내 것으로서의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143쪽)을 위해 사람들은 더 큰 파격에 손을 내밀기도 한다. 연인도 아니고 결혼하지도 않은 남녀가 오래도록 동경했던 안정이라는 가치를 위해 집을 세어하거나(「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단 한 번도 성공의 루틴을 벗어나지 않았던 한 남자가 육아휴직을 결정하기도 한다(「전조등」). 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파격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진짜 동력인 것이다. 거기엔 대문자 K가 담아내지 않았던 한국 사회의 진짜 얼굴, 그 찬란한 순간이 담담하게 담겨져 있다.



   5. 소문자 k를 꿈꾸며


   근대 이후 우리 사회는 강대국을 꿈꾸었다.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극복하는 유일한 힘은 부국강병의 실현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로 우리 사회를 이끈 동력이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전후의 상흔을 이겨낸 산업화, 그리고 어쩌면 민주화 운동까지도. 각각의 결은 다르지만 더 나은 세상으로, 더 선진화된 문명으로 우리 자신을 일깨운 동력 가운데 강한 나라에 대한 동경이 있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오늘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된 K-컬처는 우리에게 문화적 대국주의라는 새로운 꿈을 환기하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서구 근대를 동경하고 모방하던 작은 나라가 만들어낸 반격. K-컬처의 부흥은 그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성공신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대문자 K가 주는 환상에 빠져 있을 수 없다. 오랫동안 한류의 성공은 한국 문화의 성공으로 인식되었지만, 한류의 확산은 그만큼 빠르게 ‘한국적’인 것들을 희석시키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K-컬처는 생산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프로슈머의 가치 위에 구현되는 뉴미디어 시대에 소비자는 곧 생산자이며, 미디어는 또 다른 메시지이다. SNS와 OTT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로 퍼지는 K-컬처는 한국적인 동시에 비한국적인 것들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류가 글로벌 대중문화로서 도약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유튜브와 넷플릭스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매체(이기웅, 「포스트 지구화와 한류 어셈블리지」, 『황해문화』 115, 2022 여름, 112쪽)가 아닌가?

   근대 이후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의 탈각이 거의 완벽하게 불가능한 시대”(최원식, 「세계체제의 바깥은 없다」, 『창작과비평 100, 1998 여름, 21쪽)를 살아가고 있다. 미디어의 발달은 일종의 착시효과를 야기할 뿐이다. 여전히 이 세계체제의 중심에는 미국 중심의 서구적 대국주의가 놓여 있다. 대문자 K로 지칭되는 오늘날 K-컬처 역시 그 흐름 바깥에 놓여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대문자 K의 시대를 부정하는 것으로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대문자 K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진짜 동력이었던 소문자 k의 가치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문자 k는 무엇으로 규정될 수 있는가? 그것은 바깥에 대한 상상과 실천을 잊지 않는 것이다. 미국을 대표로 하는 주류적인 문화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그것을 비껴 나가는 상상을 멈추지 않고, 그것을 문화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던 힘. 바로 우리의 일상을 꾸려왔던 가치.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대문자 K를 만든 소문자 k의 힘이었다. 

   “글로벌과 로컬은 스케일상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비대칭적 위계를 함축하지만 그 둘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글로벌은 모든 로컬 위에서 개념으로서만 존재한다.”(이기웅, 같은 글, 108쪽) 대문자 K가 우리 문화가 만들어낸 가능성이자 또 다른 글로벌이었다면, 그것을 존재하게 만든 소문자 k가 그려낸 로컬로서의 가치도 여전히 지켜져야 한다. 우리 스스로 이러한 소문자 k가 주는 가치를 잃어버린다면, 오늘의 대문자 K가 만들어낸 가치들 역시 찰나의 유행과 환상으로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지금, 김기태 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발견이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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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비평

[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3] 오늘의 한국문학과 문학 시장에 대하여

류수연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5년 1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으로 3회 연재됩니다. 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3 -오늘의 한국문학과 문학 시장에 대하여 류수연 1. 노벨문학상의 낙수효과? 2020년대 미디어믹스의 원천IP로 주목받는 것은 웹소설이나 웹툰 같은 웹 콘텐츠이다.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일상화되면서 그러한 매체 안에서 즐길 수 있는 더 많은 콘텐츠가 요구되었고, 웹상의 스토리텔링은 매우 유용한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그 결과 현재 웹 스토리텔링은 그 자체로 콘텐츠인 동시에 또 다른 콘텐츠의 원천IP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활자로 된 스토리텔링이 영상미디어로 2차 가공되는 일은 비단 최근에 나타난 현상만은 아니다. OSMU나 미디어믹스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사실 이러한 방식의 콘텐츠 확장은 일상적으로 있었다. 무엇보다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은 가장 오랫동안 원천IP로 각광받았던 이야기 그 자체였다. 하나의 소설이 극이 되고, 또 다른 소설의 영감이 되고 패러디 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과정이다. 트랜스미디어 환경이 이러한 상호텍스트성을 더욱 가속화하고 확대하였을 뿐이다. 돌이켜 보면 이야기의 구전이라는 것도 결국 인간의 신체라는 미디어를 활용한 확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 과정에서 발생된 2차 가공은 오늘날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로 인해 편집과 각색이 더 시시각각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스토리텔링의 확장은 애초에 이야기의 고유 속성이라 할 만큼 아주 익숙한 방식에 가깝다. 문자에서 이미지와 극으로, 다시 영상과 미디어를 넘나드는 스토리텔링의 확장은, 그 무엇보다 문학이 가장 잘 해 왔던 일이니 말이다. 문학의 영상화는 영화산업의 초창기부터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의 미디어믹스에 더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은 1960년대 문예영화일 것이다. 영화산업이 부흥하면서, 당시 많은 문학작품이 영화의 원천 텍스트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부터는 TV 단막극을 통해 많은 문학 텍스트가 영상화되었고, 이러한 시도는 2020년대 현재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김금희 원작의 (2018), 장류진 원작의 (2020)과 (2025) 등의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트랜스미디어 환경 속에서 예측되는 문학의 미래는 암울한 전망으로 가득하다.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문학의 위기론은 40년 가까이 논의되는 동안 이제는 잊을 만하면 꺼내는 해묵은 불편함이 되었지만, 웹 콘텐츠의 등장 이후에는 위기론 자체도 언급되지 않을 만큼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미디어 환경이 ‘읽기’의 위기를 기정사실화했다면,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에는 ‘쓰기’의 위기까지 대두되는 실정이다. 생성형 AI가 문해력까지 대체하는 마당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돌이켜 보면 근현대문학사의 여러 굴절마다 제기되었던 문학의 위기론은, 어쩌면 그래도 배

  • 류수연
  •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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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2] 웹소설이라는 가능성

류수연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5년 1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으로 3회 연재됩니다. 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2 -웹소설이라는 가능성 류수연 1. 지금은 웹소설의 시대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어 능력일까, 모국어 능력일까? 물론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요소지만 부득이 한 쪽을 골라야 한다면? 수년 전이라면 당연하게도 ‘외국어’라는 답변이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성형 AI를 활용한 초벌 번역이 보편화된 오늘의 관점에서라면, 그 답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아주 결정적인 장면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바로 2022 한국문학 번역신인상에서 말이다. 웹툰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40대 일본인의 한국어 실력이 초급 수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당선자는 AI를 활용해서 초벌 번역을 진행했고, 그 뒤 자신이 일본어 표현을 가다듬었다는 것이었다. 당락을 결정한 것은 만화적 표현과 리듬에 익숙한 당선자의 표현력이었겠지만 번역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언어능력 없이 AI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거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뒤로 채 2년도 되지 않아 생성형 AI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었으니, 어쩌면 그 혼란은 이러한 기술 변화에 대한 예고였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웹 서사의 달라진 위상을 공공연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AI 번역만큼이나 문학번역의 부문에 웹툰이 있다는 점도 큰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웹 콘텐츠에 부여되었던 수많은 평가절하를 떠올린다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웹-이라는 접두어를 붙인 여러 콘텐츠가 등장한 지 불과 20여 년, 그 확장된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날 웹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선발 주자인 웹툰과 후발 주자인 웹소설 모두 대중문화의 절대적 강자로 부각되었다. 거기엔 이들 콘텐츠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들 콘텐츠가 다양한 미디어믹스 과정에서 원천IP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웹 기반 서사가 트랜스미디어의 확실한 강자로 부각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웹소설의 경우에는 선발 주자인 웹툰의 원천IP로도 활용되고 있으니, 웹 콘텐츠 전체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난 회차에 살펴보았던 케이팝 스토리텔링 역시 이러한 웹 콘텐츠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바,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를 이끄는 콘텐츠로서 웹 기반 서사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의 한 정점으로 다가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그 중심에는 또다시 이야기가 있다. 이 글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각축을 벌이는 웹 플랫폼이라는 가상공간, 그리고 그곳을 종횡무진하고 있는 웹소설의 의미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2. 취향의 타파스? 일반 문학과 함께 웹소설을 비평적 연구 대상으로 삼

  • 류수연
  •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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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1] K-pop, 변화하는 스토리텔링

류수연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5년 1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으로 3회 연재됩니다. 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1 -K-pop, 변화하는 스토리텔링 류수연 2020년대 한국 문학계를 뒤흔든 가장 큰 사건을 꼽는다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그 첫 번째에 놓일 것이다. 그것은 근대문학 이후 세계문학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오랜 콤플렉스에 종지부를 찍은 동시에 한국문학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부여한 전환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학이라는 외연을 스토리텔링으로 좀 더 넓힌다면 한 사건이 더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방영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등장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하게도 ‘왜’라는 의문이 따라붙을 것이다. 노벨문학상과 OTT 오리지널 영화 사이에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작가 한강에 대해 논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문학의 일이며, 그의 노벨상 수상은 지극히 문학 그 자체의 사건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다르다. 애초에 그것은 문학 텍스트가 아닌 영상이지 않은가? 원작이 있는 작품도 아니니 미디어믹스로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문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다루는 것에 고개를 갸웃할 사람이 많다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대단히 의도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는 필연적으로 이 두 개의 키워드를 선택했다. 그것은 현재의 한국문학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를 환기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OTT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현 단계 한국문학과 한국적 이야기가 전 세계인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소비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강력한 지표이다. 그 사이에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대문자 ‘K’로 지칭되는 K-컬처가 놓인다. 이 연재에서 나는 ‘K’를 화두로 한국문화, 그리고 한국문화를 그려낸 스토리텔링의 3가지 국면을 탐색하고자 한다. 1. 바깥, 또 다른 중심 스토리텔링으로서 한국문화를 말하는 첫 번째 장에서 가장 먼저 선택한 키워드는 한강이 아닌 K-pop이다. 이 연재의 최종적인 종착지가 결국 문학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선택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현 단계에서 한국을 둘러싼 모든 스토리텔링의 중심에 있는 것이 다름 아닌 K-pop이라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오히려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가깝다. 오늘의 세계인이 실감하고 상상하는 한국문화의 첫 장면은 매력적인 아이돌이 등장하는 K-pop 퍼포먼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K-pop의 성공은 여전히 놀라운 사건이다. 세계 문화의 가장 변방에 있는 한국이 이토록 많은 세계적 스타를 배출했다는 것은 놀라움을 넘어 때로는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거기엔 수많은 ‘왜&rs

  • 류수연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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