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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려 시

  • 작성일 2025-10-01

   나의 반려 시


정다연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자주 빈집에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맞벌이하셨던 부모님이 퇴근하실 때까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무료하게 창밖을 구경하거나 거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보다가 엄마가 간편히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둔 음식을 데워 먹었다. 익숙하게 빈 그릇은 싱크대에 넣어 두고 티브이 켜 두고는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일기를 쓰고 숙제를 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부모님 냄새가 밴 이불을 파고들며 낮잠을 잤다. 눈을 뜨면 여전히 아무 무늬 없는 흰 벽지가 사방으로 펼쳐졌다.

   일상의 곳곳이 자주 비어 있었기 때문에 늘 무언가로 채우고 싶었던 걸까. 한동안은 무언가를 모으거나 기르는 데 열중하기도 했다. 첫 시작은 개미였다. 놀이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미를 채집통에 담아 와 길러 보겠다고 떼를 썼다. 오후 내 그 안을 관찰하다가 어딘가에서 개미가 좋아한다고 들었던 과자 부스러기나 과일 껍질을 넣어 주기도 했다. 또 한동안은 머리끈에 달린 유리구슬만 모았던 적도 있었다. 간직하고 싶은 구슬을 모으기 위해 부모님 몰래 멀쩡한 끈을 가위로 자르기도 했다.

   그 후로도 무언가를 애착하는 일은 계속됐다. 애니메이션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에 푹 빠져 달마시안 인형을 수집하기도 했고, 조금 더 커서는 백문조를 기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내 마음의 구멍을 온전히 채워 주지는 않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인형으로 방을 꾸미고 반려동물에게 말을 걸어도 그 구멍은 여전했다.

   다른 방식으로도 삶을 채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한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였다. 그 친구는 나와 이름이 한 글자만 달랐다. 우리는 그게 친해질 이유라도 된다는 듯이 매일 같이 붙어 다녔다. 서로의 집 주변을 오고 가면서 누구와 친했고 멀어졌는지, 아무리 애써도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같은 보습 학원을 등록하고 친구가 학원에 가지 않으면 나 역시 가지 않았다. 하루는 공원 벤치에 앉아 어른이 되면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해 떠드는데, 친구가 맑은 얼굴로 고백하듯이 말했다. 나는 시를 쓰고 싶어. 시가 좋아. 

   친구가 좋아한다는 시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며칠 뒤 글쓰기 학원에 따라갔다. 그때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시는 그전에 배운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감정이나 대상에 대해 느낀 걸 있는 그대로 쓰면 되었다. 나와 친구가 쓰는 문장은 하나의 답으로 고정되지 않았다. 한 편의 작품을 읽고서도 감상과 해석이 달랐다. 그건 얼마든지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구부리고 펴서 말해도 된다는 걸, 고스란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건 시가 그것을 읽는 이들까지 염두에 둔다는 거였다.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는 대신 시 속에 타인이 오고 갈 수 있는 문을 내어 함께 생각을 나눌 수가 있었다. 읽고 쓴다는 감각이 가볍고 자유로웠다. 시라는 문을 통해 나의 안과 밖을 드나들 수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그 후로 나도 시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에는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상적인 소재가 시의 주제가 됐다. 이를테면 옷걸이나 전단지, 장마와 골목, 옷장 같은 것들. 틈틈이 엽편 소설을 쓰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권씩 시집을 내리읽었고, 버지니아 울프나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처럼 당시에는 이름도 낯선 해외 작가의 책을 사서 읽기도 했다. 친구와 나는 서로가 쓴 시나 산문에 대한 감상도 제법 진지하게 나누었다. 함박눈을 따뜻한 밥풀로 표현한 것이 좋았다거나 스웨터의 보풀로 마음에 이는 슬픔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이다. 친구와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그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다가 헤어지면 아주 조금씩 내가 쓰고 싶은 시의 윤곽이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시 쓰기에 빠져들었다. 문장을 쓰면 내 안에 있는 줄 몰랐던 장면이 나타나고 그것을 끝없이 적어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문장이라는 공을 주고받으며 함께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써 나가다가 고치고 싶은 게 있으면 새 종이를 꺼내면 되었다. 눈앞의 백지는 어렸을 때 침대에 누워 바라보던 벽지처럼 비어 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었다. 자두가 영그는 여름날로, 먹음직스러운 빵이 구워지는 부엌의 온기로, 잠든 이의 눈두덩을 환히 밝혀 주는 빛 같은 세계로. 

   시는 세상에 대한 내 마음을 정확히 바라보고 사유하게 해 주었다. 손끝으로 빗방울을 건드린다고 쓰면 바깥으로 나가 잎사귀와 난간에 맺힌 빗방울을 쓸어 보았다. 마음이 무너진다고 썼으면 왜 나의 마음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무너지는지 생각해 봤다. 문장이 지워지고 정정되었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누군가의 얼굴이, 사물과 생명체의 면면이 내 눈에 빗금을 냈다. 그 빗금을 모아 이으면 새로운 단면이 나타났다. 그 놀라운 단면들이 시선을 깨뜨리고 붙이면서 세상을 단순히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

   어떤 것도 텅 비워지지 않다는 것, 하나의 대상에 대해 전부 썼더라도 다 썼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 그런 게 내게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나의 내면에도 아직 말하지 않은 것들이 많으니까. 여러 번 썼어도 다 쓰지 못한 마음들이 무수하니까. 시는 나를 더 많은 이야기와 장소로 이끌어 주기도 했다. 서점 바닥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한 인물의 삶에 눈을 떼지 못하던 시간으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아프리카로. 그렇게 지내다 보니 꼬박 열여섯 해가 흘렀다. 

   오래 글을 쓰다 보니 처음 시를 접했을 때의 마음은 잊고 지냈는데, 얼마 전에는 그 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있었다. 지난여름 한 문화시설에서 시집 읽기 모임을 열었다. 마지막 모임 날 참여자와 다 같이 내 시집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해서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되었는지, 첫 시집을 집필할 땐 어떤 마음이었는지 얘기를 주고받다가 시가 나한테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시가 대단하지 않을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입을 뗐다. 그런데 살다 보면 깊은 물에 빠진 것 같은 때가, 도저히 혼자만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순간이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때 물에 빠진 나를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이 구해 줄 수도 있고 물살에 떠밀려 온 나무가 뭍에 닿도록 해 줄 수도 있지만, 나에겐 그게 시였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은 아무것도 바랄 수 없게 된다고 말이다. 시는 이미 날 지켜 주었으니까. 세상과 연결되도록 해 주었으니까.

   시가 날 지켜 주었다니, 나도 모르게 왜 모임에서 그토록 진지한 말을 했을까. 무심결에 털어놓은 그 말을 되짚어 보다가 어쩐지 아주 오랫동안 시가 날 호위하고 돌봐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집에서 홀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긴 하루를 무엇으로 바꿀 수 있을지 난감해하는 아이에게 원하는 이야기를 마음껏 써넣을 수 있다고 일러 주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낮의 고요를 또 다른 풍경의 소리로 채워 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요즘 나와 시의 관계는 편안한 친구 같다. 더는 시로 나의 구멍을 메우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특별한 기대나 바람 없이 소소한 일상을 함께 살아간다고 할까. 아침에 일어나면 토스트를 굽고 한입 베어 먹으면서 시 앞으로 간다. 어떤 방해 없이 한두 시간쯤 끄적이다가 지루해지면 미련 없이 책상을 떠난다. 그러면 시도 나를 떠나 훌쩍 날아간다. 일하는 동안에는 내가 쓴 문장을 잊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낮에 쓴 것들을 한데 묶어 보고 겹쳐 본다.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시는 휘파람 같은 가벼움으로 내 곁에 있다가 어떤 문장에도 붙잡히고 싶지 않다는 듯 멀리 가 버리기도 한다. 나는 시를 닦달하지 않고 문장이 떠오를 때까지 책과 책 사이를 옮겨 다닌다. 앞으로도 나는 시와 내가 자유롭게 서로를 드나들면 좋겠다. 서로를 가두거나 매어 두지 않고. 쓰고 보니 왠지 시는 이미 그래 왔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시에게 언제든 열고 닫을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

   

   

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입니다. 이번 호의 주제는 정다연 편집위원이 참여한 ‘나의 반려들’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존재에게 삶을 빚지며 살아갑니다. 그 존재는 가까운 친구일 수도 있고,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 사물일 수도 있습니다. 저마다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와 오랜 시간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만은 변함없습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세 명의 작가가 각자의 반려가 되어주었던 대상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들의 반려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을 포개보면서 즐겁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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