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
- 작성일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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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
한영원
그날, 은선 씨가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은선 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빨간 잠바를 입고 갔는데 은선 씨 역시 빨간 카디건을 입고 있었기에 차에 타면서 멋쩍게 조금 웃었다. 은선 씨는 내게 음악 하는 A와 만난 적이 있냐고 물었고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은선 씨가 자신이 그와 친구라고 대답해서 나는 어쩐지 그 둘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조근조근한 어조와 노래를 부를 때 예쁠 것이 분명한 음색이 비슷하다고.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처음 들을 때 그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마음대로 상상해 버린다. 그리고 잘 부를 것 같은 목소리를 짐작하고 그러한 짐작은 대부분 잘 맞는다.
차는 영종도로 들어가고 있었고 공항 가는 목적이 아닌 영종도 놀러 가는 일은 꽤 오랜만이라 생각했다. 은선 씨가 내게 말했다.
바다를 좋아해서 자주 가요.
아, 저도요. 그렇게 대꾸했다.
나는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인천에서 태어나서인지 내가 여태껏 본 바다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차는 영종도 안에 작은 섬인 무의도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해루질을 하러 가나요?
내가 묻자 은선 씨는 첫 만남에 해루질을 좀 그렇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그것도 꽤 시인 같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시인을 관찰하러 간다니 나의 소설가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멋있을 것 같아. 비 오는 해변을 마구 걸을 것만 같고···, 라고 말한 적 있다. 나는 당신에게 시인이란 그런 이미지냐고 물으려다 그냥 관두었다. 물론 나는 시인이 되기에 조금 모자란 것만 같지만 은선 씨는 정말로 시인이다. 시집을 몇 권이나 냈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시인.
은선 씨는 내게 오늘의 계획을 말해 주었다. 일단 엄청나게 맛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갈 거예요. 그리고 갯벌을 좀 걸을 것이고요. 갯벌은 모래펄이라 부드럽고 더럽지도 않아요. 은선 씨의 계획은 멋져 보였다. 나는 어떤 것이든 좋다고 말했고 근사한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더 섬의 안쪽으로 몇십 분 들어간 뒤 우리는 곧이어 무의도에 있는 한 식당의 주차장에 내렸다. 나는 내리며 언뜻 식당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길래 영업을 하나 보다 했으나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였다. 들어간 사람들과 우리는 불이 꺼진 식당 안에서 화요일은 영업을 안 한다는 문구를 보곤 헛웃음을 지었다.
식당에서 나오며 은선 씨는 그럴 줄 알고 다른 식당 두어 군데를 더 찾아 놓았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차에 탔다. 은선 씨는 내게 식당에 가면 메뉴를 많이 주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다 먹지도 못하면서 음식 욕심은 많아요. 나도 조금 그런 편이라 답하고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러나 은선 씨가 두 번째로 찾은 식당 역시 닫혀 있었다. 은선 씨는 당황해하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했다. 나는 아까 지나가다가 보인 그 쌈밥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은선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선 씨가 내게 그 맛집을 맛보여 주고 싶다고 했는데 어쩐지 실망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기에 난 조금 더 수고했으니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는 말을 했다. 은선 씨가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쌈밥집의 이름은 ‘데침쌈밥’이었고 정말로 모든 쌈이 데쳐진 채로 나왔다. 여러 가지 젓갈과 나물, 쌈들이 정갈하게 차려져 나왔고 가게 주인이 처음 보는 특이한 반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 주었다.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우리는 처음 보는 사이에 볼이 터지도록 쌈을 싸서 먹었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궁금했던 것을 하나씩 질문하는 동안 잠시만요··· 라고 하며 입안에 있는 쌈을 씹는 시간을 길게 자주 가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식당에 파는 여러 가지 반찬통들에 적힌 이름을 보며 사실 내가 까마중 장아찌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카시아꽃 장아찌였고 은선 씨가 아카시아꽃 장아찌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무슨무슨 장아찌였다는 걸 알아챘다. 우리는 그러려니 한 채로 식당을 나왔다. 맛있으면 되었지. 그런 것들이 웃기고 즐거웠다.
차에 타자 은선 씨가 무슨 고민이 있는 듯 보였다. 그런 뒤 내게 커피가 아주 비싸고 맛이 없는 정원 형태의 거대한 카페와 새로 생겼고 평범한 오션 뷰의 작은 카페가 하나 있는데 어디로 갈지 고민이라고 했다. 내가 물었다.
그럼 오션 뷰 커피가 더 맛있어요?
음···.
은선 씨는 대답을 망설여서 나는 둘 다 별로인가 했다. 은선 씨가 다시 내게 질문했다.
그러면 오션 뷰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실지, 아니면 바다를 보면서 커피를 마실지.
음···.
이번에는 내가 고민했다. 그러다 은선 씨에게 바다를 보면서 마시자고 했다.
몇 번의 고민을 거친 뒤 우리는 하나개 해변이란 곳에 도착했다. 나는 짐을 모두 두고 카메라 하나를 들고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에 들어가느라 낑낑거렸는데 은선 씨는 어떤 것도 들지 않은 가뿐한 모습으로 플립플랍 하나를 신은 채 숙련되게 해변을 걷고 있었다.
하나개는 큰 갯벌이라는 뜻이에요.
은선 씨가 내게 말했다.
그렇군요.
내가 대답했다. 조금 뒤 우리 옆을 지나가는 어떤 아저씨가 아줌마에게 하나개의 뜻을 설명했다. 하나개는 큰 갯벌이란 뜻이야. 은선 씨가 나를 보고 웃으며 들었죠? 라는 듯이 눈짓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선 씨는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 잘 집중하는 사람인 듯했다. 해변에 작은 돗자리를 펴고 앉자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간혹 들려왔는데 은선 씨는 그런 대화를 주의 깊게 들었다. 아줌마들이 하는 말을 듣다가 몰래 대답하듯이 그렇구나, 지난해에도 오셨구나. 음, 친구들이 늦으셨구나, 라고 했다. 나도 몰래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가방과 신발을 돗자리 위에 둔 뒤 그 옆에 모래를 조금 파서 커피 컵이 쏟아지지 않고 묻어 두고 일어나 갯벌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발에 닿은 펄 모래는 부드러웠다. 힘을 주어 발가락을 움츠리면 모래는 발가락 모양대로 파였다. 그렇지만 단단하여 걸을 때 빠짐이 없었다. 계속 걸을 때마다 기분 좋게 촉촉한 모래가 느껴졌다. 바닷물이 계단처럼 들어와요. 은선 씨 말대로 정말 저 멀리 수평선으로부터 조금씩 발목 높이의 바닷물이 천천히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저기까지 가 볼까요.
네.
우리는 바닷물이 닿는 곳까지 걸었다. 바닷물이 정강이까지 찼다. 낮은 파도를 따라 걸으니 첨벙첨벙 소리가 났다. 한참 동안 말없이 그 소리만 들으며 걷자 괜히 웃음이 나서 서로 웃었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해변은 꽤 멀어져 있었다. 잿빛 펄이 물결의 모양대로 무늬를 남기며 해변 저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가 볼까요.
좋아요.
섬 쪽으로 걸었다. 바닷물에서 나오자 걸음이 가뿐해졌다. 햇빛을 받은 펄이 반짝이며 드넓게 펼쳐져 마치 인간이 살지 않는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았다.
여기 화성 같아요.
우리만 남은 것 같죠?
갯벌을 걷는 은선 씨는 아름다웠다. 맨발로 태양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갯벌에 들어간 사람의 모습이 아름다우리란 생각을 해 본 적 없어 놀랐다. 아, 그래. 사진.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묻자 은선 씨는 부탁한다고 했다. 햇빛이 강렬하여 카메라의 노출값을 조금 조정했고 다급하게 몇 장을 찍었다. 바람도 강하게 불어 사진에 정성을 들이지 못했지만 어떻게 찍어도 좋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아름다움이 강했기에 그랬다. 카메라가 인물의 실물을 왜곡하여 담는다고 해도 강한 수치의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기에. 가끔 사진과 시는 아우라와 파토스의 산물이란 생각을 하지만,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주는 사기꾼과 협잡질의 느낌을 혐오하지만, 아름다움은 역시 아름다움인 것일까. 그들은 아름다움을 비추는 거울인 것일까.
다시 해변으로 와서 잠시 쉬면서 은선 씨는 내게 여러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선이가 어릴 때 쓴 돌에 관한 시도 보여 주었다. 처음 만난 사이에 나는 은선 씨에게 너무 많은 얘기를 들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는 은선 씨의 시나 에세이에서 읽었고 어떤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나의 관한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은 채 남의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그의 관찰자였으니까. 그런 명목으로 인해 많은 것이 허용되었다. 흔치 않은 기분이었지. 은선 씨는 자신을 읽어 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 놓인 슬프고 아름다운 책을 읽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갯벌에는 이제 제법 많은 물이 들어와 있었다. 사람들이 밀려난 것처럼 조금 더 해변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
섬과 가까운 바다 위에는 산책로가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이 섬의 암벽을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산책로에는 여러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호랑이 바위나 만물상 등 풍화된 바위의 모습이 무엇과 닮아서 이름 붙인 바위의 설명이었다. 우리는 표지판을 보면서 오, 정말로 호랑이처럼 생겼다, 오 정말 악어처럼 생겼어, 그런 대화를 했다. 그러나 산책로가 꽤 길게 이어지자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바위의 쌓아 놓은 모양이 햄버거와 닮아서 햄버거 바위 혹은 주먹 바위··· 그런 식이었다. 햄버거 바위는 너무 억지다. 주먹 바위는 뭐야. 쓸 말이 그렇게 없었나. 우리는 표지판들을 욕하며 웃었다. 지나가다 본 어떤 동굴은 매우 깊어 보였는데 그게 예전에는 광명까지 이어진 굴이었다고 한다. 이쪽 입구에서 연기를 피우면 광명에 있는 굴까지 연기가 난다고 했다. 얼마나 깊은 거지? 나는 동굴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고 싶었다.
은선 씨가 내게 자신은 돌과 바위, 그리고 물에 사는 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집트에 세 달 정도 지내던 때에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때 블루홀을 보러 갔었어요. 매일 동네 아이들과 수영을 했죠. 나는 지난여름, 포항에 갔을 때 스노클링하며 동해의 작은 물살이들을 보던 얘기를 해 주었다. 은선 씨는 그 스노클링 포인트가 어디인지 좀 알려 달라고 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바다 위 산책로를 걸었다. 산책로는 꽤 길어 우리는 가끔 침묵하곤 걸었다. 하늘 위로는 갈매기 떼가 자주 날았다. 옆을 돌아보니 은선 씨 옆에 꽤 큰 갈매기가 앉아 있길래 놀란 내가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은선 씨가 놀랐다. 알고 보니 갈매기 모형이었다.
아. 정말 새인 줄 알았어요.
혼자만 놀라면 안되나요? 정말!
우리 둘은 웃으면서 산책로를 끝까지 다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은선 씨에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은선 씨도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섬으로 들어오는 차들을 보며 은선 씨는 우리도 우리인데 말이야. 평일에 이런 섬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일까. 일은 안 하는지 말이야. 그런 말을 했다. 나도 웃으며 우리도 누군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차에 처음 탈 때부터 은선 씨는 내게 음악을 좀 틀겠다고 말하고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주었다. 내게 무슨 음악을 좋아하느냐 물어서 나는 대부분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좋은 음악을 대부분 좋아한다고. 그랬더니 은선 씨는 신나거나 리드미컬하고 분위기 잡힌 팝을 계속 틀어 주었다. 모두가 아는 적당히 기분 좋은 노래들이었다. 돌아올 때 은선 씨가 내게 아이돌 음악을 틀어도 되겠느냐 물었다. 나는 좋다고 했다. 아이돌 음악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레드벨벳의 노래가 나왔다. 레드벨벳의 〈코스믹〉. “조금 더 머무르면 어때. 나의 별이 조금 외롭대.”라는 귀엽고 슬픈 가사가 들려왔다. 은선 씨가 그걸 조금 흥얼거렸다. 역시 나의 짐작이 맞았어. 뒤이어 “아껴 둔 노래를 들려줄게.”라는 가사가 나왔는데 그 뒤 은선 씨는 내게 자신이 작사한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은선 씨는 녹음 어플을 틀어 자신이 작사한 노래를 직접 부른 음성 파일을 들려주었다. 노래엔 자신이 없으니 가사만 들어 달라고 했다. 가사는 희미하지만 문득 달이나 바다, 나와 너라는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들이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가사보다 은선 씨의 노래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툭툭 부르는 부분이나 흥얼거리는 부분, 또 열심히 부른 부분이나 고음을 가성으로 처리하는 부분도 있었다. 은선 씨는 내 짐작대로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말이죠. 은선 씨. 걱정되는걸요.
뭐가?
제가 잘 못 쓰면 어쩌죠.
난 그 질문을 하다가 첫 만남에 은선 씨가 집 앞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는 생각이 나서 은선 씨 집과 우리 집 중간에 나를 내려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은선 씨는 괜찮겠냐고 물은 뒤 그곳이면 자신도 좋다며 나를 그곳에 내려 주겠다고 했다. 그리곤 이어서 말했다.
아까 그 말이요.
네.
그럴 리는 없어요. 절대로.
은선 씨가 그렇게 말했다. 난 조용히 그렇군요. 라고 답했다. 은선 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 내가 자신을 오독해도 상관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내 미래의 문장을 용감히 믿었던 것일까. 내가 느낀 은선 씨는 실제로 굉장히 용감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가 내게 들려준 모든 이야기에서 그가 두려움 없이 걸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그 태양빛이 내리던 갯벌의 해변에서처럼.
헤어지면서 어쩐지 은선 씨를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과 어쩌면 다신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은선 씨와 나를 아는 음악가 A는 은선 씨에게 그 영원이라는 친구, 너와 말하는 느낌이 비슷해. 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은선 씨와 A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은선 씨가 나를 내려 준 뒤로 지하철에 타면서 원래 은선 씨가 내게 먹여 주고 싶었던 음식이 뭐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은선 씨를 만나고 오는 길에 나는 아직도 바다를 좋아하지 않지만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들이 사랑하는 자유를 지켜보는 것이 좋으며 가끔 그 자유를 오독하는 일을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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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입니다. 이번 11월 호의 주제는 이주란 편집위원이 참여한 ‘ㅇㅇ씨의 일일’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어느 하루는 한 사람의 일부가 됩니다. 때로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는 삶을 지탱하는 것은 그런 평범하고 시시콜콜한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날들은 흘러가기도 하고 오래 머물기도 하고 흘러갔다가 되돌아와, 움직임이 되고 표정이 되고 장면이 되고 문장이 됩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세 명의 작가가 각자 세 명의 작가를 만나 미래의 문장이 될지도 모를 일상 속 순간들을 기록해보았습니다. 익숙한 듯 하지만 문득 낯설기도 할 이야기를 즐겁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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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특집좌담(비평)] 유동하는 세계, 대화하는 비평(가)들[문장웹진 특집좌담(비평)] 유동하는 세계, 대화하는 비평(가)들 진행 : 윤재민 평론가 패널 : 이미진 평론가, 최선교 평론가, 현재 평론가 윤재민 안녕하세요. 문장웹진 9월호 비평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사회를 맡은 문장웹진 편집위원이자 평론가 윤재민입니다. 그리고 오늘 패널로 이미진 평론가, 최선교 평론가, 현재 평론가를 모셨습니다. 사실 이렇게 세 분을 모신 이유는 전적으로 저의 사심 때문인데요. 그간 제가 글이나 활동하는 것들을 인상 깊게 보았고, 궁금했던 분들 모신 겁니다. 참석자 분들 모두 간단하게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어요. 언제 데뷔했고,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현재 평론가부터 먼저 하실까요? 현재 안녕하세요. 저는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 평론 부문에 당선되면서 활동을 시작한 조현재라고 합니다. ‘현재’라고 성을 떼고서 필명 아닌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교 안녕하세요. 저는 2022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안희연론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도 원고에 넣을 약력을 요청받으면 이 정도로만 저를 소개하곤해서 어떤 말을 더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미진 안녕하세요. 저는 2025년에 김기태론으로 창비 신인 평론상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한 이미진이라고 합니다. 이제 1년이 된 것 같고, 조금씩 평론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생활인으로서 돈을 벌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윤재민 오늘 이렇게 모신 세 분. 연차가 현재 평론가가 3년, 그리고 최선교 평론가가 4년 차 정도 됐죠? 2022년도니까 4년. 그다음에 이미진 평론가 같은 경우는 1년 되셨지요? 이미진 아마 발표 기준으로는 1년이 조금 안 된 것 같습니다. 윤재민 이제 1주년 돼 가시는군요. 세 분들 모두 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인데, 그중에서 재미있는 글 많이 쓰시고 계시거나, 그럴 거라는 믿음이 드는 분들과 대화 나눠보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거든요. ‘신인 비평가’로서 가지고 계시는 여러 가지 고민이나 문제나 목표나 욕심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궁금하고요. 우리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각자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지평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일단, 비평가로 데뷔하게 된 각자의 계기가 있을 텐데요. 최선교 평론가 먼저 말씀해 주실까요? 최선교 평론가가 된 계기를 기계적으로 기술해 보자면 국문과 대학원 수업 과제로 처음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왜 평론을 계속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제 성향 때문인 듯합니다. 어릴 때부터 어떤 것에 심취하고 매료된 상태를 무척 즐겼어요. 그리고 내가 그것에 매료되었는지 꼭 설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정확하게 내가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일이 무척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시나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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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은 어디에 있지?[문장웹진 다시 읽기] 소중한 것은 어디에 있지? ― 이민하, 「옛날 귀신」(2019년 2월호 수록) 김진선 귀신과 신의 차이를 아는가? 언젠가 시로 쓴 적 있지만, 돌아가신 나의 이모는 무속인이셨다. 어릴 적부터 자주 아팠던 이모는 신내림을 받으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듣고 다른 세계와 통로가 되는 운명을 받아들이셨다. 멀리서 보이는 서낭기와 현관에서부터 나는 향냄새, 방 안을 채운 촛불의 온기,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기 무서운 탱화가 이모의 직업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이모는 분명 신을 모신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이모가 귀신을 본다고 했다. 이모에게 진짜 귀신을 보는지, 지금 여기에도 귀신이 있냐고 직접 물어보진 못했는데, 가끔 이모는 달라진 눈빛과 목소리로 다른 존재의 말을 전하셨다. 사실 나는 이모에게 깃든 것이 신이든 귀신이든 상관없었다. 이모가 예전보다 덜 아플 수 있다면,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가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다면,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갈 때 이모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법당 바닥을 몇 번이고 걸레질하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신과 귀신은 우리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영적인 존재이지만, 둘을 가르는 차이는 어떤 종교와 문화적 전통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대개 신이 인간보다 높은 차원에서 우주와 삶의 질서를 다스리는 초월적 존재라면, 귀신은 생전의 삶과 죽음, 풀지 못한 미련, 한(恨)과 같은 정동에 매여 특정한 장소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한국의 무속에는 산신, 칠성신, 용왕신, 성주신 등 자연이나 공간을 관장하는 다양한 신이 있고, 원귀나 객귀, 잡귀와 같이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들도 있다. 그러나 한번 귀신으로 떠돌기 시작했다고 해서 영원히 귀신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영혼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의 온전한 안위와 정성 들인 제사를 받고 숭배의 대상이 되면, 마침내 그 서러움을 털어내고 신격화되어 누군가를 수호하는 신의 자리에 오르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을 통과하며 읽게 된 이민하의 「옛날 귀신」에서 귀신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옛날 귀신’이라고 하면 소복을 차려입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처녀 귀신이나 쪽머리를 진 할머니 귀신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호러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호러물의 예고편이 상영되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나로서는 어릴 때 가족들과 본 이 귀신의 전형이다. ‘현대’나 ‘최신’ 귀신이라면 다른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으려나. 시에서 귀신은 특정한 형상을 지닌 존재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가족이 모여 사는 집에서 화자가 “커트 머리 엄마와 쌍둥이 동생과 오빠들이 납량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을 본다거나 “어른들이 마당에서 잔치를 하”는 상황에서 은연중 스산한 기운이 감지될 뿐이다. 그렇다고 귀신이 따로
- 김진선
- 2026-09-01
문장웹진 기획
그러니까 지금부터[문장웹진 다시 읽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 임솔아, (2018년 6월호 수록) 김진선 아파트 분리수거장 입구에 접이식 교자상이 버려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주인이 교자상 위에 몇 가지 반찬과 국을 내어 밥을 차려 먹었을 테지만, 이제는 엄중한 글씨체로 ‘무단 폐기물 신고 비용 관리실로 납부’라고 적힌 종이를 붙인 채 수거를 기다리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느라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떤 이유로 버려진 것일지 궁금해하면서 지나쳤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 아파트 복도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 최근에는 청국장 냄새가 연이어 났는데, 가끔 생선이나 삼겹살을 굽는 냄새도 난다. 배달 음식도 그에 못지않다. 엘리베이터에서는 특정 브랜드의 치킨 냄새가 유난히 풍기는가 하면, 특정 요일에는 피자 배달이 잦을 때가 있다. 삼백여 세대가 다 잘 먹고 잘 살려고 애쓰는 중이구나 생각하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난다. 임솔아의 단편소설 에서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나온다. 지은과 수희는 어떻게 하면 비좁은 원룸 방을 알뜰하게 구획하여 지낼 수 있을지 궁리한다. 벽간 소음을 막기 위해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놓고, 침대 프레임마저 분해하려 든다. 수희는 지은과 함께 명동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신경을 쏟는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생활의 모습이겠으나 지은의 생활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은에게는 이름이 많다. 지은은 신영, 미희, 시한, 영은, 규리, 주영의 이름으로 산 적이 있다. 지하철 공공화장실 휴지걸이에서 주신영이라는 이름을 주운 뒤로 “다시 해보자. 주신영으로”라고 말하면서, 주신영으로 지냈다. 어느 날은 주영이 되어서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지은이 이름을 바꾸어 살 때마다 수희 역시 이름이 바뀌었고, 두 사람은 이름에 어울릴 만한, 그 시기에 그들이 꿈꾸는 세계의 서사를 지어냈다. 누군가는 진지하게 이거 명의도용 범죄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자. 정말 한 번쯤은 다시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지. 나는 지은과 수희처럼 이름을 바꿔가면서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은 없지만, 새 삶이 필요해서 전학을 결심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안 사정으로 인해 태어나 줄곧 살던 곳을 떠나 할머니가 계신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전학을 간 셈이라 사투리가 제일 큰 난관이었다. 내가 ‘살구’라고 불러왔던 놀이는 ‘공기’라고 부르는 것이었고(이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살구라는 어여쁜 단어가 있는데!), ‘정구지’는 ‘부추’이거나 ‘꼽표’는 ‘곱하기’였던 것처럼 대화를 나누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단어들이 많았다. 억양 역시 어색하고 낯설었다. 경상도 억양은 강하고 말끝이 높은 편이라면, 전라도 억양은 폭이 크고
- 김진선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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