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고도 복잡한
- 작성일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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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고도 복잡한
이주란
헤밍웨이의 소설 「깨끗하고 밝은 곳」에는 카페 손님들이 모두 떠난 시간까지 전등빛 아래 앉아 집에 가지 않는 노인 한 명이 등장한다. 박인성 평론가가 그 노인과 겹쳐보였다는 뜻은 아니다. 노인과 그는 좋은 손님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많이 취하면 돈을 내지 않고 가는 버릇이 있는 노인과 달리 그는 우연히 카페에 들른 친구에게 종종 커피를 사는 버릇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몇몇 날 내가 보았던, 박인성 평론가와 그를 둘러싼 풍경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1. 서울역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는 일주일에 절반은 부산에서, 나머지 절반은 서울에서 움직인다고 한다. 나는 그가 부산을 떠나 서울에 도착하는 목요일 저녁, 7시 18분에 도착하는 열차에서 내리는 그의 표정을 관찰하기 위해 서울역으로 갔다. 서울역 광장 앞에서 한 사람이 END가 아니라 AND, 명심해라 이것들아, 하는 행동은 꼭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온다, 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을 지나쳐 역사 안으로 들어가면서는 어쩌면 END가 아니라 AND,가 아니라 AND가 아니라 END라고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후 열차를 타기 직전까지 세 개의 수업과 세 개의 회의를 마쳤고 먼 거리를 이동했기에 짐도 좀 있고 다소 지친 표정일 거라 짐작한 것과 달리 그는 크지만 무겁지 않은 가방을 왼쪽 어깨에 걸친 채 바쁘지 않은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열차에서 내렸다. 회색 쓰리피스 수트와 똑딱이 체크 셔츠를 입은 그는 플랫폼을 지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에스컬레이터 안 타세요?
저는 그냥 계단으로 갑니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사람들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 속에 뒤섞여 그는 빠르게 걸었다.
이제 어디로 가세요?
오늘은 성수로 갑니다.
그는 여러 개의 출구 중 맨 오른쪽 출구를 향해 걸었다. 걸음걸이는 눈에 띄는 것 없이 평범했으나 힐리스라도 신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내 기준 너무)빠른 걸음이었기에 그의 마음은 이미 성수에 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왜 이렇게 빠르세요?
진짜 눈을 감고 간다면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익숙한 길이죠. 서울에 오면 저는 보통 성수 아니면 상수에 있는데요, 상수에 갈 때는 삼각지역에서 갈아타거든요. 삼각지역에서 상수역으로 갈 때는 맨 끝에서 갈아타면 빨라요.
성수로 가면서 상수로 가는 길을 설명하던 그는 상수로 갈 때 절반쯤은 가야 할 맨 끝의 반대편 맨 끝으로 가는 결정을 하는 바람에 더 먼 길을 걷게 되곤 한다고 말했다.
걷기의 날들이죠. 차라리 중간에서 타는 게 나으려나. 늘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려요.
틀리면 무슨 생각을 하시냐고 물었더니 내가 그렇지 뭐, 하는 생각을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앞서 걷던 그에게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그래. 거기서는 삼십 분쯤 있을 것 같은데 너도 그때까지 있게 되면 봐. 간결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은 그는 내게 저리로 가서 2호선 타고 가시면 돼요, 간결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는 서울역을 출발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환승을 하여 성수역으로 향하는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나는 그가 삶이라든지 일상의 익숙함에 속거나 익숙한 듯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 속을 정말이라는 부사를 꼭 써야 할 만큼 정말 익숙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 연희동에서
절기상 가을의 한복판이었으나 기온은 높아 여름의 마지막이라고 불러도 좋을 날이었다. 다시 부산으로 가기 전날 그는 연희동에 위치한 라이카시네마에서 영화를 보았다. 나는 그가 본 영화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연희동으로 갔다. 연휴 동안 《그저 사고였을 뿐》, 《어쩔 수가 없다》외 몇 편의 영화를 더 보았다는 그가 방금 본 영화는 《마작》이었다.
영화에서 마작을 하던가요?
아, 했어요.
상영관에서 나온 그는 거리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아보였다. 공예갤러리를 지나 횡단보도 앞에 섰다. 점심을 사 먹고 상수로 갈 거라고 했다. 보통 냉면집이나 중국집엘 가는데 냉면집이 문을 닫아 만두를 먹으러 갔다. 내가 짐작하기에 그는 냉면을 먹고 싶었던 것 같았는데 닫힌 문을 보자마자 그렇다면…… 하면서 재빨리 다음 행선지를 정했던 것이다. 만둣집에는 마침 한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군만두와 찐만두를 먹으며 그는 오래전 이곳에 왔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동료와 함께 일을 마친 뒤 들렀다가 각자 만두를 다섯 접시씩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맥주도 곁들였으려나. 오래전 많은 만두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근래 공허했던 마음이 조금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만두의 맛이 좋아서였겠지만 할 이야기가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이야기가 많다는 건, 아무래도.
3. 합정에서
합순에 있을 것 같습니다.
합순이 무엇인지 묻지 않고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것이 합정순대국을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해야 할 일들이야 늘 있지만 연휴를 맞이하여 전날 다소 과한 음주를 한 모양이었다.
어젯밤에 미리 어머니에게 말해두었어요.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고.
그런 것을 미리 말해주시는군요.
그렇죠. 그러지 않으면 혼이 납니다.
인성아! 인성이 너! 하면서 혼쭐이 난다고 하였다. 그가 신춘문예 당선 소감에서 어머니의 믿음에 대해 언급했던 일을 떠올리다 보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여기 순댓국엔 콩나물이 들어있어요.
숙주 아닌가요?
아, 숙주네요.
보통은 여럿이 있을 때나 그를 보았기에 식사를 한 기억은 없었다. 그리하여 철저하게 관찰만 하고 싶었으나 합순에서는 나도 밥을 먹었고, 때문에 순간순간에만 그를 관찰할 수 있었다. 뭐랄까, 그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가 누군가와 나누던 대화에서 들은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릴 적부터 어머니로부터 넌 왜 이렇게 애가 부잡스럽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런 어머니의 지도 덕분인지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릇을 말끔히 비웠고, 내가 수저를 내려놓고 가방을 들자 의자를 밀고 일어나더니 의자를 다시 밀어 넣었다.
다음 달에 건강검진이 있는데… 그는 씁쓸하게 말하며 거리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하루에 만 보에서 만오천 보쯤은 늘상 걷는다고 했다. 합정에서 상수를 향해 걷는 동안 그는 이 거리에서 일어났던 몇몇 일들을 지금의 시점으로 서술해주었다. 사실에 치우치지도, 감정에 치우치지도 않은 어법이었기에 나는 그저 잠자코 들었다.
아마 이 길은 제 집 앞보다도 더 많이 걸은 길일 거예요.
집 앞보다도 더 많은 길이라는 건 도대체 얼마만큼인 걸까. 오래전부터 그는 수많은 사람들과 이 길을 걸었을 것이고, 간결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의도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아마도 말할 수 없이 복잡다단한 많은 날을 지나왔을 것이다. 나보다 조금 앞서 횟집과 베이글집과 부동산과 카페와 공연장과 편의점과 옷가게와 라멘집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방에는 오 년 전에 구입한 노트북이 들어있다고 한다.
4. 상수동에서
지지난밤과 지난밤엔 많은 비가 쏟아졌다. 바람이 몹시 부는 한낮. 그는 좋아하는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학술대회 준비와 시험 문제 출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오는 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구입한 소설책 두 권을 조금 넘겨보았고, 다시 읽으려고 챙겨온 소설책을 본격적으로 읽었다.
어제 몇 시에 들어가셨어요? 늦게까지 계셨어요?
카페 주인이 그에게 물었다.
뭐야, 내가 너보다 일찍 들어갔잖아.
두 사람은 웃었다. 그때 카페 주인은 지나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했고 지나는 사람이 정말로 그대로 지나가자 손님이 아니었네,라고 말했다. 그때 콘센트가 있는 쪽에 자리가 났고 그는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은 바깥쪽보다 시원하여, 벗어두었던 겉옷을 다시 입었다. 테이블이 따로 없는 좌석이어서 그는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가장 먼저 학교 메일을 확인하고요, 그다음에 개인 메일을 확인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빠르게 이메일을 확인한 뒤 쇼핑몰에 접속해 배송일자를 확인한 뒤 조용히 분노했다.
연휴라는 건 납득이 되는데…
그렇게 말한 뒤엔 상황을 인정하였는지, 정말 납득이 되었는지 열어두었던 모든 창을 닫고 시험 문제 출제에 열중했다. 카페에서는 브라질 재즈가 흐르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시간이 꽤 흘러 처음 주문한 커피를 다 마셨다. 그러자마자 카페의 매니저가 그를 향해 물었다.
시원한 밀크티 드실 거죠?
그러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따뜻한 거 먹고 싶네.
두 사람은 웃었고 박인성 평론가는 정말 따뜻한 밀크티를 주문했다. 밀크티가 나오기 전 누군가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어제 재밌으셨어요?
재밌었는데, 누군가 자꾸 자중하라고 해서 집에 갔어요.
굳이 그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집에 가야 했을 시간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시며 카페에서의 그를 관찰했다. 그는 각기 다른 사람들과 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영화와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사랑과 우정과 부모의 죽음과 청바지의 세탁법, 이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그 중간 어디쯤의 밀도로. 잠시 그가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물었다.
근데 납득이라는 단어를 왜 이렇게 많이 쓰세요?
아 그게… 다음을 위해서 그런 것 같은데요. 정답이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이번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언젠가 그는 생활인인 자신과 평론가인 자신의 거리감이 매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눈으로 확인한 기분이었다. 그는 카페에 들르는 다양한 사람들과 간간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으나 대부분은 듣고 있었고, 그러다 넌지시- 상대의 주먹을 펴고 작은 공을 쥐여주듯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일 때 종종 다정해보였다. 다소 심드렁하긴 해도 생각했던 것만큼 시니컬하거나 비관적이지 않고 오히려 다정해보였던 것이다. 나는 어느 여름 한 작가와 그가 함께 ‘다정함은 상상력이다’라는 두 사람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그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러다 보니까 즉답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좀 생기긴 하는데, 아무래도 말하는 이의 상황이나 맥락 같은 걸 생각해보는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5. 다시 상수동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하여 일상 속 그의 모습을 찍기 위해 다시 상수동에 간 날이었다. 점심 시간이 지난 즈음이라 카페는 많은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는 그날도 콘센트가 있는 자리에서 무릎에 올려놓은 노트북을 끌어안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상대와 대화가 종료되면 혼자서 무언가를 했다. 그날 카페에서는 미국의 색소포니스트 스탠 게츠와 브라질의 기타리스트 주앙 지우베르투의 앨범이 흐르고 있었다.
사진을 좀 찍을게요.
그러시죠.
그는 간결하게 말했으나 내가 찍은 사진들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흠, 큰일이다,라고 내뱉었던 것 같은데, 그러자 누군가 내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 거면 카페에 있는 카메라로 찍어보시겠느냐고 물어왔다.
아니 그냥 제가 찍어볼까요?
그의 친구가 휴대폰 카메라로, 그리고 다른 친구가 카페에 있는 카메라로 그를 찍기 시작했다. 다른 손님들이 찍히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하면서, 그러나 문밖으로 나가면 옥외영업이라는 사장의 주의에 또 조심하면서 말이다. 그 순간 내가 담고 싶었던 것은 그 모든 것이었다. 나 같은 성격으로는 한 시간 앉아 있기도 쉽지 않은 그 카페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는 얼굴들과 대화를 나누며 웃는 그를 찍는 두 사람. 다른 손님들이 너무 많았기에 찍을 순 없었지만 아마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중간에 안 사실이지만 사진을 찍어준 그의 친구 김진홍씨는 그래픽 디자이너였고, 그리하여 아무래도 결과물은 내 결과물과 멀어져 전문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이 원고와 함께 올라갈 사진을 그날 그 시간에 약속하지 않고 만나게 된 그의 친구가 찍어주었다는 사실이, 내가 그를 몇몇 날 관찰하면서 느꼈던 가장 커다란 기분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머리 길이와 수염이 없던 시절 그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있기에 이 원고에는 김진홍씨가 찍은 사진을 덧붙인다. 사진 속에서 그는 자신을 찍던 두 사람이 웃기는 말을 하여 웃고 있다. 연속적이면서도 유동적일 그의 복잡한 내면까지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웃고 있으니 좋은 것 같고, 그리하여 나는 그가 오래오래 즐겁게 쓰고 즐겁게 살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 그에게는 이미 깨끗하고 어떤 종류의 질서가 있는, 밝은 불빛이 있는 카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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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입니다. 이번 11월 호의 주제는 이주란 편집위원이 참여한 ‘ㅇㅇ씨의 일일’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어느 하루는 한 사람의 일부가 됩니다. 때로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는 삶을 지탱하는 것은 그런 평범하고 시시콜콜한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날들은 흘러가기도 하고 오래 머물기도 하고 흘러갔다가 되돌아와, 움직임이 되고 표정이 되고 장면이 되고 문장이 됩니다. 이번 기획에서는 세 명의 작가가 각자 세 명의 작가를 만나 미래의 문장이 될지도 모를 일상 속 순간들을 기록해보았습니다. 익숙한 듯 하지만 문득 낯설기도 할 이야기를 즐겁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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