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축축한 이야기
- 작성일 2025-12-01
- 댓글수 0
한없이 축축한 이야기
- 김경욱 『스프레이』 (문장웹진 2011년 5월호 수록) 읽기
김미월(소설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2011년 5월 <문장 웹진>에 게재되었던 김경욱의 단편소설 「스프레이」는 709호에 사는 어느 남성 화자의 이야기이다. 그의 실수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의 강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화자가 실수로 다른 사람의 택배를 집에 가져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렇다. 처음에 그것은 단순한 실수였다. 그러나 문자 메시지 하나도 퇴고를 거듭해서 보낼 만큼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평소의 자신답지 않은 실수에 당혹감과 불쾌감을 느낀다. 그의 손이 곧 땀으로 축축해진다.
화자에게 ‘축축한 손’은 일종의 재앙과도 같다. 축축한 손으로 첫사랑의 손을 잡았다가 차인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화자는 실연보다 실수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첫사랑에게 차였다는 사실보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불상사를 겪지 않기 위해 타인과 실수로라도 손이 닿는 일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 한 번의 실수는 넘어갈 수 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는 명제가 더 중요하다.
물론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실수할 때가 있고 그때마다 긴장으로 손이 축축해진다. 그럴 때면 그는 늘 자신에게 고함치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넌 대체 뭐하는 놈이냐! 축축한 놈…….
왜 손이 축축해졌을까. 그는 원인을 하나씩 분석해본다.
손이 축축해진 것은 실수로 남의 집 택배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남의 집 택배를 들고 온 것은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떨어진 것은 피로감 때문이다.
피로감은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밤잠을 설친 것은 옆집 고양이의 울음소리 때문이다.
정리하면 옆집 고양이가 울었기 때문에 그의 손이 축축해진 것이다. 실수의 원인을 알았으니 실수를 반복할 확률도 줄어들 것이라며 그는 안도한다.
공교로운 상황들이 겹치면서 택배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화자는 별수 없이 집으로 다시 가져온 택배를 충동적으로 개봉한다. 묘한 쾌감과 해방감을 느끼는 가운데 잡다한 물건들 속 스프레이가 눈에 띈다. 그의 손을 땀으로 축축하게 만들었던 원흉인 택배의 정체가 알고 보니 땀 냄새 제거용 스프레이였다니. 그는 스프레이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버린다.
그날 이후 화자가 다른 사람의 택배를 집으로 가지고 오는 일이 반복된다. 실수라면 용납할 수 없지만 고의니까 괜찮다. 그에게는 행위 자체의 윤리성보다 그것이 실수인지 고의인지 의도 유무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 날 마침내 옆집 여자의 택배를 집으로 가져오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옆집 고양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자신의 항의를 번번이 묵살했던 무례한 옆집 여자에게 타격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상자를 연다.
이 대목이 이 소설의 미드 포인트이다. 상자 안에 든 것은 옆집 고양이의 사체였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급격히 방향을 튼다. 누가 고양이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범인이 죽은 고양이를 여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소설에서 범인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주어진 정보들로 추측해보면 일단 여자의 집에 사는 고양이를 죽였다는 점에서 그 집에 드나들 수 있거나 혹은 그 집과 가까운 곳에 사는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택배 상자에 송장이 없다는 점 또한 범인이 우체국에 갈 필요도 없을 만큼 여자와 가까운 곳에 있을 확률이 높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는 화자의 진술을 통해 주말 저녁마다 옆집을 찾는 트레이닝복 사내와 여자가 최근 들어 자주 다투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트레이닝복 사내일 것이다.
그러나 독자와 달리 화자는 애써 추측하려 하지 않는다. 누가 죽였든, 죽인 이유가 무엇이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죽은 고양이가 든 상자에 옆집 주소를 적고 우체국에 가서 택배로 부친다. 이제 고양이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다른 소음이 그를 괴롭힌다. 여자가 사내와 격렬히 다투는 소리, 사내가 문을 쾅 닫고 나가는 소리, 무언가가 서로 부딪치고 깨지는 소리. 그는 여자에게 다시 인터폰을 걸어 항의한다. 여자가 울음을 터뜨린다.
이튿날 화자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여자에게 저지른 짓에 대해 후회와 죄책감을 느낀다. 하여 여자가 죽은 고양이 택배를 받지 못하도록 중간에 그것을 탈취하기 위해 아파트 계단에서 우체부와 몸싸움을 벌이기까지 한다. 우체부가 그의 멱살을 잡는다. 너 대체 뭐하는 놈이야? 그가 실수할 때마다 아버지가 했던 바로 그 대사를 똑같이 내뱉은 직후 우체부는 몸의 균형을 잃고 계단에서 추락하여 목이 꺾인다. 화자는 망연자실한다. 헛것을 보는 것일까. 과민해진 신경이 빚어낸 악몽일까.
불행히도 그것은 현실이었다. 다만 불행 중 다행으로 우체부는 죽지 않았다. 혼수상태에 빠졌을 뿐이다. 우체부가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CCTV도 없고 목격자도 전혀 없다. 그래도 화자는 안심하지 못한다. 죽은 고양이는 결국 여자에게 배달되었고 그것의 발신자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화자는 택배를 보내기만 했을 뿐 고양이를 죽여서 그 상자에 넣은 것은 자신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려면 여자의 택배를 몰래 가져왔다는 것, 나아가 실은 그전부터 상습적으로 다른 사람의 택배를 훔치곤 했다는 것까지 실토해야 한다. 화자의 손이 다시금 축축해진다.
그리고 그날 밤 옆집 여자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린다. 여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화자에게 오히려 호재일 수 있다. 그가 저지른 죄의 목록, 그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추가로 덮어쓰게 될 수도 있을 죄목들, 과실치사와 절도죄와 반려동물 살해죄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고양이도 없고 여자도 없는 옆집은 앞으로 내내 조용할 것이다. 이제 그의 밤잠을 방해할 요인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피로할 일도 없고 집중력이 떨어질 일도 없고 남의 집 택배를 잘못 가져오는 실수 같은 것도 할 리가 없으며 손이 축축해질 일도 당연히 없다.
이처럼 다행스러운 상황에서도 어쩐 일인지 그의 손은 축축해져 있다. 아니, 그를 둘러싼 공간 전체가 축축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땀 냄새 제거용 스프레이를 하염없이 뿌리는 것뿐이다.
소설은 끝났어도 독자는 마치 스프레이의 미세한 입자가 눈앞을 뿌옇게 흐리는 것처럼 어딘가 개운치 않다. 고양이가 죽고 우체부는 혼수상태가 되었고 끝으로 여자까지 죽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가 무엇을 잘못했나. 택배 하나 잘못 가져왔던 것뿐인데. 그것은 그저 실수였지 않은가. 옆집 여자 일도 마찬가지다.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괴롭다고 인터폰으로 항의한 것이 전부다. 그가 고양이를 죽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가. 그는 정말로 고양이를 죽이지 않았나. 정황상 트레이닝복 사내가 죽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소설 속에서 그 사내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화자밖에 없다. 화자조차 사내의 뒷모습을 본 기억밖에 없다. 사내가 실제로 존재하기는 했나. 실제 존재했다 하더라도 사내에게 고양이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는지 독자는 알 수 없지만 화자에게 고양이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은 안다. 애초에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자신의 손이 축축해졌다는 인과 관계를 밝혀내고 안도했던 화자가 아닌가. 게다가 누구든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면 그것을 마땅히 제거하고자 하지 않겠는가.
가만있자. 그런데 문제의 원인, 그러니까 옆집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것은 사실인가. 옆집 여자는 이웃들 중에서 고양이 울음소리에 대해 항의한 사람은 화자 한 명밖에 없다고 했다. 고양이가 정말 울기는 울었나. 아니, 고양이가 실제로 있기는 했나. 아니, 옆집 여자는 실제로 있었던 인물인가. 그럼 우체부는? 택배는? 너 대체 뭐하는 놈이야?
독자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쩐지 머릿속이 축축해지는 기분이다.
|
[문장웹진 REWIND] 문장웹진 20주년을 맞아, 역대 편집위원들이 직접 고른 인상적인 문장웹진 작품들을 다시 꺼내 소개합니다. 당시의 문학적 의미와 오늘의 감상을 함께 나누며 문장웹진이 쌓아온 기록을 다시 읽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기획
너클십년감수(十年感秀)_소설 너클 김미월 인사할까요? YES. 신시아는 행인들과 웃으면서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녀의 사교성 게이지가 5퍼센트 상승했다. 의류점이 나타났다. 어깨선을 따라 금실 자수가 놓인 벨벳 드레스가 눈에 띄었다. 조만간 왕궁에서 열릴 무도회에서 신시아를 돋보이게 해줄 만한 의상이었다. 구입할까요? YES. 옷값으로 500솔을 지불했다. 매력 게이지가 10퍼센트 올랐다. 옷가게 옆에는 구두가게가 있었다. 나는 발등에 크리스털 장식이 부착된 유리 구두를 골랐다. 매장 내 최고가의 상품이었다. “오우, 누나! 레벨이 벌써 일레븐이야?” 담배꽁초가 빽빽한 재떨이를 카운터에 올려놓으면서 커서가 눈을 찡긋했다. 눈을 커서처럼 쉴 새 없이 깜박이는 버릇이 있는 그는 내가 근무 시간에 마음껏 게임을 하도록 늘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매상 ‘삥땅’을 모르는 척해주는 데 대한 답례였다. “어서 오세요!” 녀석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백사장이 들어서고 있었다. 커서는 백사장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그가 요금을 낼 때마다 이용 시간과 무관하게 지갑에서 꺼내주는 세종대왕을 좋아했다. 그는 오늘도 여자애와 함께였다. 커서가 그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재떨이를 가져다주는 것을 보며 나는 무기 판매점으로 들어갔다. 매대 위에 철퇴와 곤봉, 각종 칼이며 창, 갑옷과 투구들이 진열돼 있었다. 신시아는 무도회에 가는 길에 요괴들과 맞닥뜨릴 것이다. 어떤 무기를 고를까요? 철제 갑옷과 투구, 쌍수검, 당파창을 사는 데 800솔이 들었다. 그녀의 전투력 게이지가 15퍼센트 올라갔다. 아 참, 너클은 안 파나? 좁은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카운터에서는 20평 남짓한 피시방 전체가 한눈에 내다보였다. 주말 저녁이라 40여 대의 컴퓨터가 대부분 가동되고 있었다. 폭탄 터지는 소리, 총 쏘는 소리, 레이싱카 충돌하는 소리, 굿 샷! 하고 외치는 소리들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밥그릇에 숟가락이 부딪히거나 휴대폰 벨이 울리거나 변기의 물이 내려가는 소리처럼 언젠가부터 내 일상이 되어버린 소음들이었다.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로는 담배 냄새에도 면역이 되었다. 골수에 사무치도록 맡았더니 이제는 되레 금연 구역에 있으면 옷 입은 채 목욕탕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어색했다. 이런 증상이 정상적인 것이 아님은 알지만, 평생 이렇게 살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나는 알고 있었다. 아바타가 전사(戰死)하기라도 했는지 누군가 장탄식을 했다. 모니터에 빨려 들어갈 듯 눈을 고정시키고 있는 사람들의 구부정한 등을 넘고 넘어 내 시선은 맨 구석 자리로 향했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한 대의 컴퓨터를 앞에 놓고 칸막이가 무색하도록 붙어 앉아 있었다. 인근 상가에서 ‘백 사장’으로 통하는 사내는 이 피시방의 단골이었다. 그의 성이 백인지 아닌지, 진짜 사장이기는 한 건지, 진실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달빛을 받은 백사장(白沙場) 마냥
- 김미월
- 2013-02-01
문장웹진 기획
아아, 취미요?아아, 취미요? 김미월 만돌린을 연주하는 겁니다. 궁중음식 요리예요. 스킨 스쿠버 다이빙이지요. 이렇게 답한다면 제법 근사해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거짓말 길게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처지에 요런 짧은 글을 쓰는 데까지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라 했던가. 소 잡는 큰 칼을 닭 잡는 데 쓸 수는 없는 법. 하여 생각해 본다. 나의 취미는 뭐지? 내게도 취미라 할 만한 것이 있나? 새삼 안타까워진다. 취미에 대한 원고를 청탁받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취미를 고민해 보게 되었다니. 나여, 그렇다면 너는 취미도 없이, 아니 취미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 나이가 계란 한 판이 넘도록 살아왔다는 말인가. 특별히 좋아하고 즐기고 여가를 보내는 데 유용했던 무엇인가가 내게도 있기는 했다. 십대에는 에프엠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가요부터 팝, 클래식, 영화음악, 월드뮤직 프로그램까지 섭렵하느라 나는 방과 후에 더 바빴다. 여러 달 주파수의 팔도를 유람한 후, 내 귀와 뇌와 심장이 수많은 음악 장르 중에서 대중가요와 판소리에 유독 열렬히 반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십대에는 이에 하나가 추가되는데 그것이 민중가요, 그중에서도 투쟁가였다. 삼십대인 지금도 나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가요와 판소리와 투쟁가를 자주 듣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듣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나는 것. 그렇게 대답하련다. 카세트테이프나 레코드판보다 라디오를 선호했던 것은 설렘과 호기심 때문이었다. 길모퉁이를 돌면 누구와 마주치게 될지 모르듯 라디오도 틀면 어떤 음악이 나올지 모르잖은가. 막연히 내가 좋아하는 곡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처연하고 구슬프고 청승맞은 곡, 이를테면 신정숙의 ‘그 사랑이 울고 있어요’라든가 심청가에서 심 봉사가 뱃사람들에게 팔려간 청이를 그리워하며 통곡하는 대목 따위에 열광했다. 팝이나 영화음악 등 여타 장르도 슬픈 곡에만 경도되기는 마찬가지였으니 그 나이에도 나는 기쁨보다 슬픔에 더 쉽사리 마음을 빼앗겼던가 보다. 이십대에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를 즐겼다. 더 구체적으로는 페달을 밟으며 안장 위에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휴일 아침의 휘파람 소리처럼 가벼운 배낭을 메고 나는 천천히 달렸다. 달리면서 내가 아는 세상의 모든 노래들을 흥얼거렸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로 안산에서 제부도까지 간 적도 있고 청량리에서 춘천까지 간 적도 있다. 여정이 고되어 때로는 노래 대신 울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쯤 되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라 할 법도 한데,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바람에 셔츠 자락이 팔락이는 것이 좋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으로 내 노랫소리가 흩어지는 것이 좋고, 움직인 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정직한 세상을 목도하는 것도 좋았다. 안장 위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맑고 나무는 푸르고 길들은 다정했다. 그에 도취되어 달리다 보면 불현듯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면서 내 혼이 내 머리 위에서 자전거 타는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망상에 빠지게 되는데, 그
- 김미월
- 2008-07-3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