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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반성, 시작

  • 작성일 2026-01-01

   [편집위원 기획 – 반성, 소망, 시작]


   소망, 반성, 시작


김상규


   1. 소망


   여러분은 언제부터 새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분은 1월 1일을 새해로 생각하실 것이며, 또 어떤 분은 설 명절을 생각하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또 어떤 분은 해가 다시 길어지는 동지를 새해의 시점으로 잡으실 수도 있겠군요. 

   저는 새해의 시작을 정월대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과학적으로 분명하거나 이론적으로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릴 적 할머니와의 기억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할머니는 늘 정월대보름이 되면 가족 수에 맞게 하얀 종이를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지(燒紙)라고 불렀습니다. 준비된 소지를 앞이 두껍고 기다란 직사각형으로 접고 나면 우리 집 정월대보름 준비는 끝마친 것입니다.

   저녁이 되면 할머니는 나를 부르시곤 그 소지에 가족의 나이와 이름을 적게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소학교도 나오지 않으셨기에 글을 더듬더듬 읽을 줄 아나 쓸 줄은 모르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불러 이 일을 시키신 것이지요. 잘 정리된 소지와 초 하나를 들고 할머니는 마당 구석으로 향했습니다. 불을 태우는 방향을 해마다 바뀌었는데 아마 동네 용한 무당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그리했다고 짐작할 뿐입니다. 남쪽이 흉하면 남쪽으로 소지를 태우고 북쪽이 흉하면 북쪽으로 소지를 태우는 것입니다.

   준비가 다 되면 할머니는 이름이 적힌 소지를 순서대로 가슴에 품고 무언가를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그 소원이 무엇인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서히 몰락해 가는 집안에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기도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기도가 다 끝나면 가슴에 품었던 소지를 촛불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더 멀리 소지의 불꽃이 퍼지기를 바라며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했습니다. 제주 중간산 마을의 거친 겨울바람을 타고 훨훨 오르는 종잇장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제 소지는 제가 가슴에 품고 불을 붙일게요.”

   할머니는 흔쾌히 제 말을 따르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우리 집안 종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잔병치레가 많아 유난히 병약했던 나에게 할머니는 무엇이든 다 주고 싶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날 버리고 떠난 엄마가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을까요? 교도소에 들어간 아버지와 삼촌이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을까요? 그게 아니면 빨리 어른이 되어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가슴에 품었던 하얀 종이를 촛불에 붙여 하늘로 올려보냈던 기억과, 제 소원이 담긴 소지의 불꽃이 더 멀리 퍼지기를 바라며 손바닥을 휘저었던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2. 반성


   소지를 태우며 빌었던 소망은 이루어졌을까요? 불행하게도 그 기도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집안은 철저하게 몰락했으며 저 역시 혈족의 굴레 속에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정답 없는 수수께끼가 얼마나 답답한 것인지 할머니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할머니는 어느 순간 말씀을 잃고 생각도 잃어버렸습니다. 답이 없다면 긴 침묵으로 그 답을 대신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불행의 씨앗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저에게 남은 건 유리에 베인 상처뿐이었습니다.


   어른 되면 모든 것이 빛나리라 믿었습니다

   한 줄의 퇴고 없는 연혁을 쓰고 싶었죠

   진실로 죄송했습니다, 내가 깼던 유리 너머

-졸시, 「서른 살」 일부


   20대엔 제가 우리 집을 살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누구의 손가락질도 받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믿었지요. 그러나 생각보다 상처는 깊고 후유증은 길었습니다. 「서른 살」은 20대의 모습 뒤에 쓰인 저의 반성문입니다. 진짜 빛나고 싶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한 저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쓴 작품이지요. 저는 정말 퇴고 한 줄 없는 멋진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서른 살은 빨간 밑줄로 가득 찬 원고지 한 장에 불과했습니다.


   늙은 배관공이 매달아 둔 장갑 속에

   연약한 먼지 한 톨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탄생이라면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먼지는 굴뚝에서 검댕으로 자라나고

   세상의 모든 재를 삼키고 있었습니다

   청록빛 잎사귀에게 불길이란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서른에게 한없는 자비만을

   한 번도 씻지 않은 얼굴로 돌아앉아

   가여운 도둑들처럼 죄를 묻고 있습니다


   건실한 이야기만 끄적이고 싶었으나

   내가 스친 자리마다 탄가루만 쌓였습니다

   백지만 까맣게 물든 목탄화 속 병정들


-졸시, 「마흔 살」 전문


   이제 저도 만으로 마흔 살이 되었습니다. 정월대보름 소지를 태우던 어린아이가 어느새 중년의 나이로 들어선 것이지요. 마흔 살이 넘었으니, 제가 가슴에 품었던 하얀 종이에는 지금 무엇이 쓰여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그 소지를 펼쳐 보았지요. 불행하게도 그 종이는 까맣게 물들어 어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탄가루만 가득 차 있던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종이는 찢어지지 않고 여전히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종이를 보며 저는 불현듯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했던 스크래치가 생각났습니다. 까만 크레파스로 덧칠한 종이에 송곳으로 선을 그으면 바탕색이 환하게 드러났던 그림 말입니다. 제게는 제가 깨야만 했던 유리 조각 여럿이 날카롭게 박혀 있습니다. 참 다행이었습니다.



   3. 시작


   시작이란 말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무언가 가득 차 있다면 다시 시작하기 어렵겠지요. 비워야 채울 수 있듯 시작하려면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다시 시작하기 위해 꽤 두툼한 주머니를 뒤집어 보았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주머니는 어느덧 날개가 되어있었습니다. 그 주머니엔 제가 버린 천국도 담겨 있었습니다. 주머니에서 벗어난 천국이 이제야 제게 손을 벌리며 다가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작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주머니를 뒤집으면 

   날개가 되겠습니다

   숨길 것이 없어서 

   자유로워도 되겠습니까?

   고래는 돌을 물지 않아

   물 위로 치솟습니다


   제가 버린 천국이

   얌전히 손 벌립니다

   벗어난 화살촉을

   그 누가 막겠습니까?

   어젯밤 겨누었던 꿈은

   이제 여기 없습니다


-졸시, 「리셋(reset)」 전문


   새해만큼 다시 시작하기 좋은 날은 없을 겁니다. 새해야말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말입니다. 올 정월대보름엔 할머니를 대신해 하얀 종이를 가슴에 품어 보려 합니다. 물론 예전보다 종이의 개수는 많이 줄겠습니다. 아버지와 삼촌은 이미 제 곁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오면 누구도 듣지 못하게 숨죽여 소원을 빌 겁니다. 물론 거창한 소원은 아닐 겁니다. 소원을 다 빌면 누구보다 소중한 기도를 소지에 실어 하늘로 올려 보내겠지요. 그것이 분노와 실패로 가득 찬 얼굴일지라도.



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1월호에서는 2026년 새해를 맞아 시인과 소설가 등 총 4인의 작가가 참여한 신년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4인 4색의 소회가 ‘반성, 소망, 시작’이라는 주제로 펼쳐집니다. 네 명의 작가가 연말연시에 펼쳐놓는 소회와 바람을 지켜보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해 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마련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기획은 <문장웹진>이 독자분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자 새해 응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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