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감성(臺灣感性) 속 믿을 구석을 찾아서
- 작성일 202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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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서포터즈]
대만 감성(臺灣感性) 속 믿을 구석을 찾아서
―2025 서울국제도서전 방문기-
문장서포터즈 2기 소희
누구에게나 믿을 구석이 있다. 힘들 때 생각나는 것, 기대고 의지하게 되는 것 말이다. 나에게는 김연수 작가의 책 속 문장이나 영화, 가족 등이 그렇다.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속에서 느끼는 유대감은 나의 가장 큰 믿을 구석이다.
‘믿을 구석’은 2025 서울국제도서전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주빈관이 대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최근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믿을 구석 중 하나였던 영화는 지난 몇 년간 내가 줄곧 빠져 있는 것이었다. 작년 여름 에드워드 양 감독의 〈독립시대〉를 통해 처음 대만 영화를 본 후 나는 대만이라는 나라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설렘과 호기심으로 첫 대만 여행을 앞둔 전날 밤 비상계엄이 선포됐었다. 그때의 나는 대만에 있으면서도 실시간으로 뉴스를 보며 우리나라의 상황을 지켜봤다. 민주주의와 독립의 개념 속에서 대만과 조금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대만은 더 궁금한 곳이 되었다. 영화를 통해 짐작했던 대만의 역사, 대만의 문학이 독자와 유대하고 연결되는 방식들이 말이다. 그러한 마음들을 가지고 2025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았다. 대만 감성(臺灣感性) 속 믿을 구석을 찾아서.

방문한 주빈관은 크고, 전시를 보는 사람도 많았다. ‘대만 감성(臺灣感性)’이라는 주제 속에서 문화, 생활 풍격, 음식과 오락 등 6가지의 문화적 측면을 조명해 전시가 꾸려져 있었다. 책의 수가 무려 500여 권이라는 소개 글을 보고서는 규모에 놀라기도 했다. 또 천쉐 등 14명의 작가, 6명의 그림책 작가 그리고 3명의 만화가가 참여하는 강연과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었다. 나는 이날 등구운 작가와 우샤오러 작가의 강연을 듣기로 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강연, 전시의 규모 때문인지 몰라도 대만 현지에서 도서전을 방문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마치 작은 대만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뻔한 대답일지라도··· 창작과 읽기가 믿을 구석”
등구운 작가의 강연은 첫 장편 소설인 책 『조연 여배우』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등구운 작가는 배우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는 작가였다. 한국어를 전공으로 공부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간 유학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배우로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대학로에서 본 연극에 매력을 느껴서였다고 말했다.
책 『조연 여배우』에는 일본 여배우와 닮았다는 이유로 주목받으며 연기를 시작하는 주인공 ‘황청’이 등장한다. 배우로서 연기하는 삶 그리고 자신의 인생 등 여러 관계나 상황 속에서 언제나 조연으로 비치는 황청의 삶 전반이 책 속에서 그려진다. 등구운 작가는 “가상의 빛, 거짓의 희망을 굳이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현실은 잔혹하잖아요. 그런데 그 잔혹함을 마주해야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잔혹함과 부딪히든지 아니면 도망치든지. ‧‧‧ 도망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며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등구운 작가는 한국과 대만 문학의 차이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국 문학은 대체로 짧고 간결하지만 대만 문학은 굉장히 길고, 양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는데 공감이 되었다. 도서전에 가기 전 지역 도서관에서 ‘대만 문학’ 코너를 갔을 때 비교적 두께가 두껍고 그만큼 서사가 방대한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작가님은 웃으며 “대만 작가들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덧붙이셨다.
이어 “대만의 작가들은 사람의 정서, 감정을 다루는 데에 탁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등구운 작가의 책 또한 섬세한 묘사로 인상적인 작품이어서 공감이 갔다.

강연이 끝난 후 본 ‘문학의 감성’ 전시에서는 여러 대만 문학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추먀오진 작가의 문학 세계에 대한 전시였다. 추먀오진 작가는 대만 퀴어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1994년 출간된 책 『악어 노트』를 썼다. 이 책은 당시 대만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책 속 주인공의 이름인 ‘라즈’가 레즈비언을 뜻하는 말의 기원이 되기도 했으며,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하게 된 것 또한 작품의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 라즈는 작가인 추먀오진을 투영시킨 인물이며, 소설 속에서는 90년대 당시 차별적인 대만의 혼인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의 작품은 천쉐, 천쓰홍에 이르는 대만 퀴어 문학의 시작인 셈이다.
그러나 작은 전시 속에서 들여다본 추먀오진 작가의 삶은 어쩐지 외로워 보였다.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속에서 작가가 겪은 외로운 투쟁이 어떠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천쉐 작가의 책 『마천대루』와 『악녀서』, 천쓰홍 작가의 『67번째 천산갑』과 『귀신들의 땅』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또한 읽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걸음걸음 읽고 싶은 대만 작품들이 쌓여 가고 있었다. 등구운 작가의 믿을 구석을 물었을 때, 작가님은 “뻔한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바로 창작과 읽기”라고 답했다. 어느 땅을 밟고 있든지 문학이라는 큰 틀 속에서는 어떠한 경계도 없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과 존엄의 개념 속 연결되는 한국과 대만
우샤오러 작가의 강연은 책 『죽음의 로그인』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주제는 ‘인터넷이라는 믿을 구석’으로 소설 『마유미』를 쓰신 이희주 작가 또한 강연에 함께 참여했다.

책 속 주인공 ‘천신한’은 타인의 죽음을 예지하는 시그널로 ‘검은 안개’를 본다. 이러한 환상적인 소재와 디지털 성 착취라는 사회적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는 것이 책 『죽음의 로그인』이다. 이희주 작가는 환상적인 소재를 대만 문학의 특징 중 하나로 꼽았다. 소재의 다양성이 가져다주는 창작에서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한편 우샤오러 작가는 한국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려는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역사가 그것이었다. 우샤오러 작가는 “대만은 2·28 학살 사건과 같은 역사를 그저 명사로 취급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은 미미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만의 2·28 학살 사건은 대만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역사로 기억된다. 이는 국공내전 당시 대만의 본성인(本省人)들이 외성인(外省人)과의 차별 등을 이유로 시위하자 국민당 정부가 대만 시민들을 무고하게 학살한 사건을 이른다. 이러한 비극 이후 국민당 정부의 장제스는 대만의 제1대 총통이 되었다.
‘역사의 공감’ 전시를 통해 일제강점기 이후 1945년부터의 대만 역사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2·28 학살 사건부터 계엄령 시행 등 대만의 역사가 우리나라의 굵직한 역사와 함께 나열되어 있었다.
대만과 우리나라의 역사는 비슷한 점들이 꽤 있었다. 우선 두 나라 모두 일제강점기를 보냈고, 항일운동을 했다는 점이다. 2·28 학살 사건을 보면서는 제주 4·3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49년부터 대만은 계엄령의 시기를 보낸다.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에서 6·28 민주화 선언이 있었던 1987년, 대만 또한 계엄령이 해제되며 민주국가로 나아가게 된다.
전시에는 2·28 학살 사건을 일부 다루는 장자샹 작가의 책 『밤의 신이 내려온다』나 전후 대만 정치를 다룬 양솽쯔 작가의 『쓰웨이가 1번지』, 일제강점기 대만을 다룬 『꽃피는 소녀의 화려도』 등 대만 현대사를 다룬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늘 영화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했던 대만의 역사를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우샤오러 작가는 처음에는 주빈관의 주제인 ‘대만 감성’이 잘 와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읽게 된 설명문의 마지막 줄에 다다라서야 그는 대만 감성을 이해했다. ‘대만 감성은 모든 사람들의 독립과 존엄을 믿는 마음이다.’ 나 또한 우샤오러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길고, 깊고, 촘촘하고도 다채로운
마지막으로 마주한 것은 ‘타이완에게, 사랑을 담아’라고 적힌 벽면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사람들이 대만을 향해 전하는 말들이 적혀 있었다.
대만, 미래여!
대만의 독립을 기원합니다.
一切都是好起来的(모두 다 잘될 거예요).
천 번 죽어야 한다면, 그곳에서만 죽기를 원한다. 천 번 태어나야 한다면 그곳에서만 태어나기를 원한다. 나의 작고 산이 많은 나라다.
대만의 완전한 독립을 바라는 마음, 기억하는 그때와 여전히 같은 모습이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함께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 대만감성 속에서 찾은 믿을 구석들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문장을 하나씩 읽으며 모두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속에서 나의 믿을 구석인 유대감을 느꼈다.

대만 문학은 대만이라는 나라의 여러 면면을 다채롭게 보여 준다. 식민지 역사, 퀴어 서사, 본성인, 내성인 그리고 신이민 등 여러 사람들이 모인 땅. 대만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나라’였다.
강연과 전시를 통해 알게 된 대만 문학을 생각해 보니 울창한 숲이 떠올랐다. 숲이 깊고 나무가 빽빽한 만큼 서사가 길고, 촘촘하다. 단숨에 마지막 줄에 다다르는 것은 아니지만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금세 숲 한가운데에 도착해 있듯 한 문장씩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충만해져 있다.
이날 대만 감성 속에서 믿을 구석을 찾으며 나의 저변이 한 움큼 넓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로 대만과 대만 문학을 모두 보여 줄 수 없는 만큼 《문장웹진》의 독자들도 직접 숲속으로 들어가 보길 바란다. 길고, 깊고, 촘촘하고도 다채로운 대만 문학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추먀오진 작가의 『악어 노트』를 펼쳐 들고 걸음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영상 콘텐츠 링크 : https://youtu.be/yVtfWqKFP3Y?si=r_7PL2iV86jgY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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