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일상, 문학의 문턱을 낮추다
- 작성일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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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가온도서관)
책과 일상, 문학의 문턱을 낮추다
가온도서관 송은정
2024년 문학기반시설 상주작가 지원사업을 운영하며 주기적으로 상주작가님에게 했던 말이 있다. “저희 일등하는 거 아니에요? 저희가 이번에 해외연수 갈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김병운 상주작가님은 “선생님, 김칫국 금지예요.”라는 답을 돌려주시곤 했다. 그리고 2025년 4월, 가온도서관이 최우수 시설로 선정되었다는 결과발표를 보고 연락을 드렸다. “제 말이 맞죠! 짐 쌀 준비하세요.”
그렇게 도착한 영국에서 마주한 것은 책이 대중 안으로 스며들고, 일상 속에 자리 잡은 광경이었다. 막연히 한국의 작가 생가와 같은 관광지의 형태, 대출·반납 위주의 도서관 형태가 주가 될 거라 예상했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풍경은 전혀 달랐다. 어느 곳 하나 사유화된 곳이 없었다. 누구나 제한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소박하고 편안한 장소들, 그리고 그 안에 자리 잡은 ‘참여’의 요소들이 먼저 시선을 끌었다. 영국의 문학 현장은 기념이나 보존, 보관의 장소가 아니라, 접근과 참여의 장소라고 부르는 것이 걸맞았다.
2연수 일정 중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았던 것은 영국문화원 문학 담당 관계자와의 미팅 중의 말이었다. “번역이라는 언어적 장벽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문학은 종이와 펜 그리고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든지 퍼져나갈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오케스트라나 공연처럼 큰 장비나 무대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문학은 더 보편적이고 확산 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영국 국외연수 일정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도서관 사서로서, 또 문학을 사랑하고 향유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책이 일상에 스며드는지’ 영국의 문학 향유 방식을 나름대로 따라가는데 있어서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였다.
영국 국립도서관 The British Library
영국 국립도서관에서 받은 주요한 인상은 보존과 개방의 공존이었다. 사실 어느 도서관이 이 두 가지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냐마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영국 국립도서관의 노력이 더 와닿았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 희귀·고자료 중심의 폐쇄적 운영에서 벗어나 누구나 패스를 발급받아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체계로의 전환, 그리고 수장고 자료의 신속한 제공(신청하는 모두에게)과 디지털 제공을 병행해 이용의 시공간적 제약을 낮춘 점이 인상 깊었다.
생활권 단위의 원 마일 커뮤니티 구축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 사업을 운영하면서 도서관을 ‘연구자를 위한 장소’에서 ‘지역 커뮤니티 거점’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도 돋보였다. 국립 단위의 도서관이 원 마일 커뮤니티를 중점 사업 중 하나로 보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 국립도서관이지만 여전히 지역에 존재하는 모두를 위한 개방 공간이 되고자 한다는 점에서, 영국의 도서관들이 지역 커뮤니티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결국 도서관이 제 기능을 다하고 널리 퍼져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 중심의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위해 18~24세 지역 청년층을 도서관 이용자를 넘어 도서관 콘텐츠 생산자(숏폼, 틱톡 등 디지털 미디어 홍보)로 위치시킨 것도 유효한 전략으로 보였다. 그들의 일상에 자리 잡기 위해서 청년세대가 단순 이용자가 아닌 도서관 콘텐츠의 제작자, 기획자가 되도록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도서관에 애정을 가진 미래 세대가 되도록 이끌었고 도서관과 지역 커뮤니티의 연결자가 되도록 하였다.

런던의 보트 서점 Word on the Water
물 위에 떠 있는 보트 안의 작은 서점은 런던 관광지의 명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서의 입장에서 100년이 막 된 보트 위의 작은 서점은, 거창한 공간 없이도 책이 일상과 맞닿을 수 있음을 설명했다. 전혀 크지 않은, 다섯 명이 들어가면 비좁아지는 이 공간에 끊임없이 방문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리고 줄을 따라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 공간과 그 안의 책들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책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이 서점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보트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빼곡히 들어간 책들은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신간과 중고, 고전과 현대, 아동서로 구분되어 있다. 서점을 나와 찾아본 바로는 이 작은 공간에서 낭독회(Poetry Slam)를 비롯한 오픈 마이크 공연이 수시로 열린다고 한다. 주변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계 없이 닿을 수 있는 형태의 행사들은 결국 문학이 어떻게든 일상에 스며들게 한다. 이러한 생각은 뒤이어 방문한 에든버러에서 더 강해졌다. 중요한 것은 문학이 얼마나 일상과 접점을 가지는가다. 폐쇄적인 형태에서 누군가 꼭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행사가 아니라, 일상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맞닿을 수 있는 형태의 기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에든버러 국제 북 페스티벌
에든버러는 2004년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어 20주년을 맞은 도시다. Edinburgh City of Literature Trust는 에든버러의 문학창의도시 이후 문학을 실제 도시에 뿌리내리게 하는 목적으로 설립한 독립 비영리단체로, 문학 프로그램 개발, 국제 교류 허브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 트러스트와 함께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과 공공도서관, 다양한 출판·교육 기관이 협력하여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이를 상징하는 축제가 바로 에든버러 국제 북 페스티벌이라고 볼 수 있다. 매년 수백개의 프로그램과 세션이 기획되며, 건물 하나, 장소 하나가 무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무대가 되어 축제가 이루어진다. 2025년에는 약 700개의 행사에 641명의 작가가 35개국에서 참여하였다.
에든버러 북 페스티벌에서도 미래 세대와 문학의 연결성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유·아동 참여자를 대상으로 3권의 도서를 무료 제공한다는 점이 그러했다. 이외에도 프로그램은 유·무료, 온·오프라인 병행으로 참여자들의 문턱을 조정하고 있었다. 황석영 작가의 세션이 큰 호응을 얻었다는 관계자의 후기를 전해 들으며 다시 한번 문학은 펜과 종이만 있으면 어디든지 퍼져 나갈 수 있으며 언어와 국경을 넘어서는 공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학도시로서 에든버러의 노력은 국제 북 페스티벌의 유치와 운영에 국한되지 않았다. 국제 북 페스티벌 관계자의 “문학도시의 의미는 타이틀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에 만들어지는 기회에 있다. 대중이 동참하지 않으면 타이틀은 공허하고 아무 의미없는 것으로 남을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이 말들이 오가는 사이 주변은 여러 학교에서 방문한 아이들로 가득해졌다. 누구나 오갈 수 있게, 대중이 동참할 수 있게 기획된 곳에서 끊임없이 뛰어놀며 전시관을 구경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한국의 여러 도서전, 페스티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북페스티벌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담당자들이 지속적으로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지역사회에서의 참여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유인 장치들을 고민하고 실행하고 있다는 말에서 이들에게 커뮤니티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이들이 결국 이러한 문학적 수혜를 제공하고자 하는 대상은 일상에 맞닿아 있는 대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 기획 특별 전시 Dear. Library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 디어 라이브러리는 도서관 이용자들의 개별적인 독서경험을 공공의 서가와 물리적으로 이어주고, 참여를 확장하는 전시이다. 디어 라이브러리 전시는 2025년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의 건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로, 이름 그대로 ‘도서관에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주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전시는 참여형 전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용자가 스코클랜드 국립도서관의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가면서도 중간중간 자신의 도서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눈여겨본 것은 [삶을 바꾼 책], [나를 비추는 책], [중요한 말을 알려준 책], [나를 과거로 데려가는 책], [다시 찾아 읽는 책], [시야를 열어준 책],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는 책] 등의 코너에 자신이 추천하는 책을 적고 실제로 해당 도서를 옆 서가에 모아둔 곳이었다. 서로서로 독서 경험을 공유하고, 개인의 독서경험이 다른 사람의 독서경험을 릴레이로 이끄는 자발적 참여의 공간이 이렇게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니 놀랍기도 했다. 또 시대별 도서관 회원카드 아카이브, 대중문화 속 도서관과 사서의 이미지(분장가능 코스튬 배치)를 전시해둔 곳도 도서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 같아 사서로서 큰 감동을 느꼈다.

노리치 국립문예창작센터 National Centre for Writing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던 곳은 노리치 국립문예창작센터였다. 관계자들의 따스한 환대도 좋았지만, 상주작가 지원사업 담당자로서 지원사업을 운영하며 작가와의 상호협력에 대한 더 많은 예시와 롤모델의 필요성을 느꼈는데, 노리치에서 많은 예시를 얻어갈 수 있었다. 국립문예창작센터의 레지던시 사업은 단순 체류 지원을 넘어 작가 맞춤 지원을 진행 중이었다. 오픈콜을 통해 참여가 확정된 작가와의 니즈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필요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해당 작가에게 적합한 현장의 자원을 활용, 매칭하기 위해 담당 직원들이 세심하게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예로 2023년에 방문한 희극작가의 경우, 다른 지역의 극장과의 연결까지 지원해 활동반경을 넓힐 수 있게 돕고, 작가마다 서로 다른 커미션을 부여해 작가 고유의 역량과 지역 서사를 결합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미팅 중간에 문학기반시설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참여한 도서관과 문학관의 사업 성과물도 공유할 기회가 있었는데, 국립문예창작센터 측에서 한국의 성과물을 보고 놀라워했던 것 역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커뮤니티 챔피언이라는 가칭을 붙인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구상 중인데, 지역 내의 23개 작은 도서관을 거점으로 다양한 작가들을 초청하여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의 사례를 공유하다보니 한국의 상주작가 지원사업 프로그램이 국외의 시선으로 보기에도 아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상주작가 지원사업을 운영하며, 도서관 담당 사서로서 주로 생각했던 것은 ‘상주작가가 함께 함으로써 도서관이 무엇을 더 얻어갈 수 있을까?’ 혹은 ‘상주작가가 어떻게 해야 도서관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협력과 만족을 위해서는 위와 같은 생각뿐만 아니라, ‘상주작가가 도서관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를 각 기관에서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주작가가 기관에 상주하면서 어떠한 문학적 지원을 바라고 있는지, 상주작가가 원하는 방식의 이용자와의 소통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작가의 성향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기획, 운영할 때 서로가 더 큰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번 연수는 잘 기획된 작은 일상의 접점이 공공의 참여와 만족을 높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여정이었다. 2025년에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담당자로서, 현재 운영 중인 프로그램이 이용자 친화적으로 설계되어 홍보되고 있는지, 참여에 제약이 없는지, 그리고 참여한 이후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이어갈 수 있는지, 상주작가에게는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상주작가의 성향과 만족을 고려하였는지를 다방면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언제나 문학이 지역사회의 일상에 조금 더 다가가길 바라지만, 그걸 어떻게 평가하고 측정할 수 있는지는 모호하다. 어떠한 기준을 세우기도 어렵고, 실천되고 있는지 따져보기도 힘들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프로그램과 행사를 운영하며 문학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고 돌아가는 참여자들의 표정과 후기를 보며 오늘도 누군가의 일상은 문학 덕에 풍요로워졌구나, 라고 막연하게 믿는다. 상주작가 지원사업 덕분에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 제공하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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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문학기반시설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시설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문학의 나라 영국의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를 탐방하고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5년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 6박 8일간의 참여자들의 이야기들은 문장웹진–모색 10월호에서 총 6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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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산책[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명동 산책 도재경 몇 해 전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하던 한 학생에게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학생에게 허풍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솔직하게 답변한다는 게 고작 맥주를 마시며 놀 궁리를 한다는 거였다. 대답하고 나니 어쩐지 궁색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며 노는 게 아니라 궁리를 하는 거라고……. 궁리를 한다고? 꼴에 선생이라고 자못 젠체한 듯해서 뒤통수가 가렵다.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끄적거릴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종국엔 멍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대체 온종일 뭘 했나 자책감이 들면서도 그러한 상태야말로 창작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라고 합리화하곤 한다. 지난여름 명동에 자리한 서울프린스호텔의 ‘소설가의방’에 입주한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침구류는 새것처럼 빳빳해져 있었고, 물기 하나 없는 욕실에는 보송보송한 수건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허기질 일도 없었다. 늦잠을 자느라 곧잘 조식을 거르곤 했지만 호텔의 ‘이층서가’나 인근 식당에서 언제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라운지에는 쿠키나 주스 등 간식도 가득했다. 그랬다. 분에 겨울 정도로 호사스러운 일상에서 부끄럽게도 불철주야 온갖 공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중 하나는 전기밥솥에 관한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돌멩이에 관한 거였다. 전자는 탈고를 앞둔 장편소설의 소재였고, 후자는 곧 쓰게 될 단편소설의 글감이었다. 퍽 다행스럽게도 호텔에서의 일상은 밋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집필을 핑계로 죄다 퇴실 이후로 미루었고, 무더운 한여름에 호텔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대부분을 객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좀이 쑤실 때면 산책 삼아 호텔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호텔에서 남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 초입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는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특별할 게 없는 풍경이라 도리어 생경했다. 말없이 멍만 때리다 보면 입안이 퍼석퍼석해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몇몇 동료 작가들이 입주해 있었다. 함께 식사하고선 소화를 시킬 겸 당구를 치며 각자의 공간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서로 위로 삼곤 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어쩐지 반(半)백수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듯해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회적 활동(?)이란 걸 하긴 했다. 7월 초에는 장흥에 계시는 한 원로작가님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7월 말에는 세종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는 딱히 이벤트랄 게 없었다. 어찌 됐든 소설을 쓰기 위해 입주했으니 모쪼록 심심한 날들만 이어지길 바랐다. 비가 그친 어느 날 오전이었다. 객실 창밖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연두색 사마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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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호에서 기다린 것들[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506호에서 기다린 것들 권희진 호텔 앞에서 어떤 외국인을 보았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듯 옷을 차려입었다. 옆에는 커다란 트렁크도 있었다. 누구를 만나려는 걸까. 연인? 친구? 아니면 오래전에 한국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만났던 누군가? 나는 여러 상황을 상상했다. 산책하기 위해 나왔을 때 그 사람은 여전히 호텔 앞에 서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상대는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군, 하면서 그 사람 곁을 지나쳤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을 때도, 밤 산책을 위해 나왔을 때도 그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그때부터는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공항에 가려고 차를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숙소를 잡지 못한 걸까.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고 산책을 나왔는데 그 사람을 다시 마주쳤다. 호텔 앞에서 밤을 지낸 모양이었다. 새벽에 조금 쌀쌀했는지 트렁크에서 얇은 겉옷 하나를 꺼내 입고 눈을 감고 있었다. 선 채로 졸고 있는 그 사람을 보니 어쩐지 조금 쓸쓸해졌다. 점심쯤에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그림을 그렸다. 작은 메모지에 연필로 슥슥 소리를 내면서. 모종의 이유로 그 그림은 공개할 수 없다. 절대 못 그려서는 아니다. 지금도 이렇게 글로 그 사람을 남기고 있는 걸 보면 꽤 인상 깊은 이미지였던 것 같다. 호텔을 나온 후에도 종종 그 사람이 생각났다. 왜일까. 프린스호텔에서 내가 주로 한 일도 기다리기였다. 무언가 생각나기를 기다리고, 좋은 문장을 기다리고, 흔히 말하는 영감이라는 걸 기다렸다. 기다리는 일이 지루해지면 나는 썼다. 결국 다 지울 문장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조금 이상한 일이다. 문장이 오길 기다리면서도 계속 썼으니까. 내가 머문 506호는 트윈룸이었다. 침대 두 개를 하루씩 번갈아 썼다. 하나만 쓰면 괜히 아까운 느낌이 들어서 두 개를 다 사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침대 얘길 왜 하느냐고? 침대만큼 뭔가를 기다리기에 적합한 곳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물론 침대에서는 생각도, 사랑도, 꿈꾸는 일도 전부 가능하다. 다만 나는 침대에서 무언가를 먹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시트를 더럽히면 다음 일이 골치 아파진다. 아무튼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냥 잠만 잤다는 얘기는 아니다. 침대에 앉아서 소설도 쓰고 책도 읽었다. 정말이다. 잠깐 빨래 얘기를 해보자. 호텔에 머물면서 총 여섯 번의 세탁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니까 아마도 맞을 것이다. 로비 구석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데, 세탁과 건조가 진행되는 약 80분 동안 나는 로비의 테이블에 앉아 소설을 썼다. 정확히 말하면 뭐라도 떠오르길 기다렸다. 로비는 기다림에 어울리는 곳이니까. 프런트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직원들, 택시를 기다리는 관광객, 내 세탁이 끝나길 기다리는 투숙객, 그리고 주인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많은 트렁크들과 함께 기다렸다. 그래도 빨래는 80분이면 끝이 났다. 그러면 나도 손을 멈췄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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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책장지기의 기록[문학의 곁] 책장지기의 기록 ― 문학이 동사가 되는 시간 하림 올해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일 년 동안 문학 행사를 함께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라는 이름의 행사였다.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문학 행사라는 설명과 함께 진행을 부탁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문학 관계자도 아닌 내가, 북플루언서도 아닌 내가 이런 자리를 맡아도 될까 싶었지만, 노래라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 계절 나주로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3회차까지 마치고 처음으로 쫑파티를 제안했다. 요즘은 공연이 끝나도 쫑파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이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회식 자체를 권하는 일이 괜히 민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탓도 있는 것 같다. 우려와 달리 모처럼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동안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무엇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은 성공이 누구의 공인지 서로에게 돌리며 웃고 떠들다가, 그 자리에서 이 원고를 청탁받았다. 맥주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흔쾌히 쓰겠다고 했다. 제안받은 글의 주제는 ‘문학의 곁’. 하지만 나는 문학의 ‘곁’에 있기보다는 문학의 ‘주변인’에 가깝다. 주변에 작가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을 향한 나의 애정도 친구들에 비하면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최근에는 꽤 많은 양의 책을 좋은 곳에 입양 보냈다. 작업실과 집 구석구석을 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책더미를 바라보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생긴 책장의 빈 공간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을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전자책도 많이 산다. 전자책은 공간에 대한 죄책감 없이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전자책은 특유의 손맛이 없어 정이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움이 될 팁을 하나 건네자면 서점에 들러 실물 책을 조금 만져보고 물성을 느끼고 나면 조금 나아진다. 어쨌든 언젠가는 내 스마트폰의 e북 앱이 SNS를 누르고 스크린 타임 1위에 오르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책들을 대거 정리하고 달라진 점이 또 있다. 마치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가듯 도서관을 드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 종종 오전 러닝을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동선에 구립 도서관이 포함되어 있다. 의미 없는 찬사와 자기과시로 점철된 술자리를 보낸 다음 날, 털려버린 영혼을 다시 채우고 전날의 죄의식을 씻어내 주는 곳은 천천히 달리는 하천가 산책로와 도서관이다.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서는 것이 조금 쑥스럽고 미안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얼른 들어와 책장 사이를 가만히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마르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늑한 골목 같은 서가에서 책등을 훑으며 거닐다 눈에 걸린 책 한 권을 들고 나온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이 마음에 들면 ‘득템’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는 조금 이상한 독서 습관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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