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 작성일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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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노작홍사용문학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노작홍사용문학관 조온윤
“Stories are told eye to eye, mind to mind, and heart to heart.”
이번 영국 국외연수로 방문했던 에든버러의 스코티시 스토리텔링 센터에서 운영 철학으로 삼고 있는 스코틀랜드 격언이다. 연수 나흘째 날에 만난 이 말을 나는 영국에 머무르는 동안 자주 떠올렸다. 한국과 달리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탓에 상대에게 손짓과 표정으로 의사를 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야기가 눈에서 눈으로, 정신에서 정신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믿음만 있다면 영국은 물론 어느 나라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해외를 나가본 경험이 적어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이 짧은 문장 한 줄이 자꾸만 묘한 용기를 불어넣어 주곤 했다.
지난 연수를 회고하며 이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 데에는 영국이니 당연하게도 영어로만 진행되는 스토리텔링 센터의 공연을 보고 ‘이야기는 그저 눈에서 눈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라고 스스로 다독여야 했던 때문도 있을 것이다. 공연의 내용을 전부 해득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자조적으로 한 말이지만, 자꾸만 강조하게 되는 이 문장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 이날 스토리텔링 공연을 관람하고서 알게 된 건, 그 나라만의 문화에 기반한 유머와 뉘앙스가 담긴 모든 대사를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이야기꾼이 전하려는 이야기의 얼거리를 비롯해 슬픔과 기쁨, 분노와 두려움 따위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그림자극과 애니메이션, 노래와 연주가 어우러졌기 때문도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무대에서 구연을 맡는 주연 배우, 그러니까 ‘스토리텔러’가 실감 나는 구연과 감정선으로 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상황에 쉽게 이입하게끔 관객들을 끌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관람한 스토리텔링 공연 〈A Wolf Shall Devour the Sun〉은 한두 명의 출연자가 구술로 극을 이끌어가는 공연이었는데, 이런 형식 자체도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접해보지 못한 형식이라서 내게는 유독 새롭게 느껴졌다.

여기에 연극배우와는 성격이 분명하게 다른 듯한 스토리텔러라는 역할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찾아본 이날 공연의 스토리텔러는 Dougie Mackay, 노래와 연주는 Jemima Thewes라는 가수이자 작사가였다. Mackay 씨는 바이킹처럼 길고 풍성한 수염을 기르고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고 있었는데, 마치 이야기를 손에 쥔 공처럼 갖고 놀듯이 그의 읊조리는 짧은 농담에 모두가 웃고, 격앙된 한 마디에 모두가 긴장하며 숨을 죽였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 스토리텔링이 이렇게 멋진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어린이 독자에게 동화책을 소리 내어 들려주는 동화 구연이나, 작가가 독자를 만나 자신의 작품을 소리 내어 읽으며 소통하는 낭독회 문화가 어느 정도 발달해 있다. 다만 아직은 콘텐츠로서의 공연화가 될 정도로 대중적인 문화로는 느껴지지 않기에 이곳 스토리텔링 센터의 공연 프로그램과 운영 방식 등이 좋은 모델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전 미팅으로 만났던 스토리텔링 센터의 책임 담당자 Daniel Abercrombie 씨에 따르면 그곳 센터에서 새로운 스토리텔러를 지원하기 위해 견습 프로그램으로 멘토링과 무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스토리텔러가 전문 분야 중 하나로 지원을 받고 양성되고 있다는 점도 한국에는 없는 예술 분야의 제도적 차이 중 하나로 참고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연에서 켈트족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여러 구전 속 늑대와 늑대인간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지난해 상주작가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어린이 가면극 프로그램 <괴물들의 밤>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전통 요괴에 대해 알아보고 저마다 자신을 상징하는 괴물을 가면으로 만들어 무대를 꾸며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스코틀랜드와 북유럽 지역 신화의 늑대인간이 곧 우리네 속담이나 설화에 등장하는 도깨비 격이었다. 이날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니 어느 나라든 괴물 이야기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흥미를 끄는 듯했다. 나중에 비슷한 프로그램을 또 열게 되거든 공연에서 본 그림자 인형극 같은 연출을 참고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직 중인 시설에서 활동하는 동아리 중 시 낭송회와 낭독극 등을 여는 낭독 동아리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사례로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단순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라 여길 수도 있는 스토리텔링이 다양하고 전문화한 콘텐츠가 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센터에서 소개해준 대표적인 행사로, 매년 10월에 이곳 스코티시 스토리텔링 센터의 네더보우 극장을 주무대로 스토리텔링 테마 축제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스코티시 인터내셔널 스토리텔링 페스티벌(Scottish International Storytelling Festival)을 열고 있다고 했다. 시기가 맞아 페스티벌을 직접 볼 수 있다면 더욱이 좋았겠으나, 이날 들려준 운영 사례와 공연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어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관람객들을 모으고 있을는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문학의 기원은 스토리텔링, 즉 구비문학일 텐데 지금은 기록이나 출판 매체와 떼려야 뗄 수 없게 결부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나르고 전해 듣는다. 문학으로 지칭되진 않더라도 부모의 유년 시절과 결혼 이야기, 아이들 사이에 사실인 양 떠돌아다니던 도시괴담, 어느 경영인의 성공 신화, 하물며 카페에 모여 나누는 신변잡기까지, 스토리텔링의 형태를 띠지 않은 삶은 드물다. 에든버러가 세계적인 문학 도시로 널리 알려진 데에는 문학의 근원적인 매체인 구전을 하나의 대중적인 문화이자 콘텐츠로서 보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문학 작가들의 활동이 단순히 작품 창작과 출판에 그치지 않고 낭독회, 책담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독자들을 만나는 방식으로 넓어지고 있다. 작가가 독자를 대면해 눈에서 눈으로, 생각에서 생각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시와 소설을 전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문학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도 영상이나 공연, 전시 등으로 점점 다양해지고 있기에, 여기에 발맞춰 문학 장르의 저변도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쇄된 사각의 지면을 넘어 일상의 문화 곳곳에 문학이 공존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스토리텔링, 다른 말로는 문학이 사람 대 사람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 감정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하나라는 점에서, 스코틀랜드의 오랜 격언은 지금도 살아 있는 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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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에서의 첫날 구시가지를 걸으면서는 놀라운 건축물도 하나 만날 수 있었다. 한눈에 봐도 주변 건물들 위로 웅장하게 솟아 있어 에든버러의 랜드마크임이 분명한 첨탑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단 한 명의 문학 작가, 에든버러 출신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월터 스콧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된 탑이었다. 월터 스콧은 우리나라로 치면 윤동주나 이상 정도의 인지도와 대표성을 띠는 스코틀랜드의 국민 작가라고 했다. 탑에 대해서도 좀 더 찾아보니 빅토리아 시대에 고딕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고 그 높이가 약 61미터로 한 명의 작가에게 헌정된 기념비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건축물이란 타이틀을 지니고 있었다.

이튿날 방문한 에든버러 작가 박물관(The Writer’s Museum)에서도 내부 공간마다 월터 스콧을 비롯해 로버트 번스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등 스코틀랜드 대표 작가들을 기념하는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기념탑에 이어 그들을 기리는 박물관을 보고 있노라니 이렇게 문학의 가치를 인정하고 드높이는 곳이기에 문학의 도시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게구나 싶었다. 재직 중인 시설이 시인을 기념하는 공간이자 복합문화시설인 터라 한 도시 혹은 국가가 그곳을 대표하는 문인을 기리는 규모나 방식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느 작가를 기리는 기념물의 크기로 그의 문학적 유산에 대한 가치의 척도를 매길 수는 없을 테지만, 이 정도 규모의 탑이라면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속으로 정말 대단한 위인인가 보다 하고 경외심을 품게 될 것 같았다.
한편으로 나는 이번 연수가 영국의 시문학과 이를 활용한 콘텐츠 기획에 대해서도 배워보는 시간이길 바랐다. 어디까지나 시설 담당자로서 참여하게 된 연수이기는 하나, 시를 애호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무래도 그런 기회를 바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든버러 일정 중에 만난 크리에이티브 스코틀랜드 문학부서의 책임자 Alan Bett 씨가 주력 장르로 아동문학과 공상과학소설, 그리고 시를 소개했을 때 그 말이 유독 반갑게 느껴졌다. 한국은 물론 어느 나라에서도 시 앞에 주력이라는 단어가 붙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스코틀랜드에서도 시가 상업적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장르는 아니라고 했다. 시집이 높은 판매율을 띠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전통적인 문학의 양식으로서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시를 쓰는 시인들은 항상 많다고 했다. 덧붙여 스코틀랜드의 문학 산업과 연계할 수 있도록 세계 각국의 문학 작가를 초청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모멘텀(Momentum) 프로그램과 함께, 최근에는 젊은 시인들이 에든버러를 찾아 시를 공연으로 재창작해 무대를 올렸다는 사례도 들려주었다. 문학이 지면을 벗어나 독자를 만났다는 데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를 끄는 얘기였는데, 미팅 시간이 다 되어 구체적인 공연화 방식에 대해 자세하게 질문을 잇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서 에든버러를 알리고 있는 단체인 에든버러 유네스코 문학도시 트러스트와의 미팅에서도 몇 가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단체의 총괄 담당자이자 시인으로도 활동 중인 Harriet MacMillan 씨는 에든버러를 비롯해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된 영국 내 도시들과 그곳에서 진행했던 문학 활성화 사례를 여럿 소개해주었다. 개중에는 엑서터에서 출판사와의 협업으로 정류장 곳곳에다 책 자판기를 설치해 도서 마케팅과 공익적 효과를 둘 다 잡았다는 사례, 에든버러에서 성벽을 활용해 문학작품의 문구를 미디어 파사드로 만들었다는 사례가 기억에 남았다.
특히 엑서터의 책 자판기는 한국에도 특유의 문고본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펭귄북스 출판사의 대표가 엑서터 시에 먼저 제안한 사업이라고 했다. 어느 날 그가 기차를 타기 전 급히 책을 구하고 싶었는데 살 곳이 없었던 경험으로 역마다 음료를 사듯 책을 살 수 있는 자판기를 아이디어로 제안해 실현한 것이다. 여기서 나온 수익은 다른 독서 프로젝트나 작가 지원사업에 재투자한다고 하니, 출판사 입장에서는 여러 프로젝트로 브랜드 평판을 높이고 행정기관에서는 공공의 성과를 내고 시민들은 자판기로 책을 사 읽는 편의를 제공받게 되는 셈이었다. 출판사도 기업이기에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순 없겠으나, 시민 복지를 책임지는 정부 부처와 출판사 모두 독서의 가치에 공감하는 만큼 공공의 영역에서 적극적인 협업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도 MacMillan 씨와의 만남에서는 럭비로 유명한 웨일스의 한 지역에서 시인들이 럭비를 주제로 시를 창작하고 경기 전에 낭독했다는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럭비를 위한 시라니, 보통은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는 스포츠와 문학이 그런 방식으로 가까워질 수가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어떤 물건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으면 한번은 눈길이 머물게 되듯이, 시나 문학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럭비 팬일지라도 럭비에 관한 시라면 아무래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을 거였다. 이날 미팅으로 얻은 사례들은 모두 문학과는 거리가 먼 대중과 자연스럽게 문학을 함께 즐길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참고할 만한 것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에든버러에서의 이야기만 죽 늘어놓은 듯하지만, 영국의 또 다른 유네스코 문학도시인 노리치에서 보고 듣고 걸으며 얻어온 것들도 잊을 수 없다. 연수 닷샛날 일정으로 방문한 노리치의 국립문예창작센터는 손수 준비한 차와 선물로 우리를 가장 환대해준 곳이기도 했는데, 이전에 한국 작가들이 여럿 레지던시로 머무르다 돌아간 자취가 남아 있어 더욱이 반가운 기분이었다. 시민들을 위한 창작 워크숍과 문학 행사를 열고 작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내어주는 등의 운영 방식이 우리나라의 문학관과 가장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건물의 역사와 관련한 이야기도 있었다. 국립문예창작센터의 별칭은 드래곤 홀(Dragon Hall)로 15세기에 한 상인에 의해 거래소로 지어졌고, 당시에는 지붕에 용 장식이 달려 있어 드래곤 홀이라는 이름이 처음 붙었다고 했다. 이후 상점이나 주택 등 여러 용도를 거치고 오랜 시간 술집으로 운영되다가 20세기에 공사를 거쳐 복원, 2015년에 이르러서야 노리치 작가 센터로 인수되었다. 이후 2018년에 다시 노리치 작가 센터에서 품을 넓혀 국립문예창작센터로 명칭을 바꾸며 지금의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덧붙여, 드래곤 홀의 나무 기둥에는 그을음이 몇 군데 있었는데 바로 위치스 마크(witch’s mark), 마녀 심판이 있던 시대에 마녀를 내쫓기 위한 일종의 주술로서 남긴 자국이라는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별관에 쾌적하게 관리되고 있는 레지던스 공간도 구경하고 보니 이전에는 크게 흥미가 없었던 해외 레지던스 사업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언젠가, 이곳 노리치의 국립 문예창작 센터에 레지던스 참여자로, 그게 아니면 관광객으로라도 또 한 번 올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겠으나 만일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들이 들려준 드래곤 홀의 연원이나 위치스 마크 같은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런던의 영국도서관, 에든버러의 유네스코 문학도시 트러스트, 북 페스티벌, 스코티시 스토리텔링 센터 등 다른 방문 기관이나 단체도 모두 비슷하긴 했지만, 특히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듣고 강조되는 듯한 단어는 커뮤니티, 소셜, 네트워킹이었다. 지역적으로든 국제적으로든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결되기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이곳 레지던스 프로그램도 매달 노리치의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참여 작가에게 부여하고 있었다.
문학을 통한 독자, 지역민과의 네트워킹은 국립 문예창작 센터 같은 시설뿐만 아니라 문학과 관련한 곳인 도서관, 서점, 출판사가 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학 작가의 활동 양상이 작품 집필에 그치지 않고 낭독회나 책담회 같은 소통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듯이, 이제 작가에게 요구되는 역할 또한 자신의 문학 콘텐츠로 프로그램을 기획해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동일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는 매개자라는 역할이 따라붙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참여했던 상주작가 지원사업이 앞으로도 지속되고 또 더더욱 발전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연수의 마지막 이틀은 런던에서 보냈다. 귀국하기 전 런던에서의 시간은 약간의 여유를 가지며 지난해 상주작가 지원사업과 함께 이번 연수를 정리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상주작가 지원사업의 시설 담당자로서 정란희 상주작가님과 합을 맞추었던 지난 2024년은 여러모로 뜻깊은 해이다. 한국인에게 2024년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해로 기억될 테지만 내게는 하나 더, 정란희 작가님과 함께하며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된 해로 남아 있다. 물론 우수시설 선정은 정란희 작가님이 문학관 상주작가로서 보여준 열정과 전심에 의한 결과지만,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약간의 수고를 거들었던 내게도 이 일은 분명하고 커다란 기쁨이다.
말이 씨가 되었던 걸까? 가끔 일이 몰려 힘에 부칠 때마다 작가님과 나는 지지난해 우수시설 선정 팀이 떠난 스웨덴 연수를 떠올리며 내년에 우리도 스웨덴엘 가자는 말로 서로를 북돋곤 했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주고받던 말이긴 해도 어쩐지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 스웨덴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님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열심히’ 그리고 ‘다정히’라는 부사를 양쪽 어깨에 달고 있다는 게 여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화 창작 수업의 수강생들을 위해 수업 밖에서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프로그램에 온 어린이들을 위해 조그만 간식이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던 그 마음이 우수시설 선정의 비결이라면 비결일 테다.

6박 8일 동안의 연수도 돌이켜본다.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해외를 나가본 적 없던 내가 그 먼 나라에서 여섯 밤을 보내며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데에는 연수에 동반했던 선생님들의 숨은 노고와 배려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후기보다는 개인적인 소회로 빠지게 되는 듯하지만 연수 내 가까이서 함께한 그들의 사려와 대화로부터 배운 것들이 많기에, 앞에서는 부끄러워 하지 못했던 감사의 말들을 이렇게나마 남기고 싶다.

후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또 하나 전해보려 한다. 다시 스코티시 스토리텔링 센터에서 들은 것들을 주워섬겨 보자면, 구전되는 이야기의 가장 큰 매력은 입에서 입으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되면서 점점 더 새로운 이야기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이야기는 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각색되어 저마다 조금씩 다른 버전을 갖게 된다. 내가 쓴 후기 또한 영국에서의 엿샛날을 완벽히 그대로는 담을 수는 없고 어떤 부분은 장황해지고 어떤 부분은 생략하게 되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달되는 이야기가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왜곡이나 변질이 아니라 이야기꾼 자신만의 이야기로 재탄생한다는 점은 이번 영국 연수의 숨은 의의이기도 하겠다. 이번 연수에는 우수시설 선정팀과 더불어 여러 일정을 계획하고 지원해주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생님들, 통역과 인솔을 맡아주신 코디네이터님까지 모두 아홉 명의 일행이 함께했으므로, 우리는 모두 아홉 개의 이야기를 새로이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 버전으로 주어진 영국 연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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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문학기반시설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시설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문학의 나라 영국의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를 탐방하고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5년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 6박 8일간의 참여자들의 이야기들은 문장웹진–모색 10월호에서 총 6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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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 권예진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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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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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만난 호주[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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