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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일지 : 지역, 연계, 참여

  • 작성일 2025-10-01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가온도서관)


연수 일지 : 지역, 연계, 참여

   

가온도서관 김병운 작가

   

   런던에서의 일정 가운데 단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국국립도서관(British Library)이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도서관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으로 손꼽히는 곳인 만큼 규모가 압도적이었고, 자국에서 출판되는 모든 인쇄물이 납본되는 곳답게 도서, 지도, 악보, 신문, 음반 등 매우 다채로운 형태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다. 상설 전시 <Treasures of the British Library>를 통해 마그나 카르타 원본, 구텐베르크 성경, 셰익스피어 제1차 희곡집, 제인 오스틴 필사본, 비틀스 자필 가사 등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를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기도 했는데, 소장 가치가 높은 자료도 증명 없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하는 도서관의 정책적 기조가 전시에도 반영되어 있는 듯했다. 일정 관계로 아쉽게 전시는 관람하지 못했으나, 보유 자료의 활용도를 높이는 동시에 이용자의 접근성을 강화하려는 도서관의 노력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도서관의 기반 시설 역시 이용자의 입장에서 설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각층마다 열람  공간을 복도까지 확장해놓은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각각의 구획마다 테이블의 형태가 모두 다른 것 또한 특별하게 다가왔다. 몰입이 필요한 사람부터 토론과 회의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까지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듯했다. 건물의 층고가 높고 개방감 또한 커서 공용 공간임에도 오히려 이용자들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도서관이 추구하는 공공성과 개별성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듯했고, 이용자로 하여금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을 구축하기 위한 도서관 측의 깊은 고민 또한 느껴졌다. 자료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뿐만 아니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창의적인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도서관 관계자들과의 네트워킹 프로그램 역시 뜻깊었다. 네트워킹은 크게 이벤트 기획 파트와 전시 기획 파트로 나뉘어졌는데, 담당자들의 업무 내용과 성과,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중에서도 내게 크게 와 닿았던 것은 커뮤니티 참여 매니저(Community Engagement Manager)인 자말 모하메드(Jamal Mohamed)의 이야기였다. 그에 따르면 원래 영국국립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은 아니었으며, 8년여 전 이용자 실태 조사 이후 본격적으로 주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집중적이고 꾸준한 노력 덕분에 실제로 인근 1마일 이내에 사는 주민들의 참여가 늘었다고 한다. 

   관련 사례로 그가 최근 3년간 진행했다며 소개해준 참여형 프로그램 <Young Creaters Lab> 역시 눈길을 끌었다. 18세에서 24세 사이의 청년들이 도서관의 소장품을 소재로 소셜 미디어에 어울리는 시각적 결과물을 만드는 활동이었고, 이를 통해 도서관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소속감과 애정을 높이는 기획이었다. 보다 다양한 연령층으로 이용자를 확대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선명했고, 도서관을 전문가와 학자들의 전유물에서 주민들의 역동적인 공간으로 혁신하려는 의지 또한 엿보였다. 상주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어떻게 하면 청년층을 도서관으로 유입시킬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터라, 커뮤니티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는 현재 영국국립도서관의 문제의식과 기획 전략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 

   

   ‘축제의 도시’ 에딘버러에서는 북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Book Festival)을 참관했다. 프린지 페스티벌, 국제 페스티벌 등이 동시에 열리는 기간답게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과 예술가들로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분위기였고, 주요 거리마다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북페스티벌은 구시가지 남쪽에 위치한 에딘버러 대학의 퓨처스 인스티튜드(Edinburgh Futures Institute)를 주요 거점으로 진행되었는데,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구 왕립 진료소를 현대적으로 개조한 건물이어서 공간 자체가 주는 독특한 위엄이 있었다.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면서 현대적 기능과 아름다움을 융합해 낸 듯했고, 그래서인지 작가와 독자, 그리고 전 세계의 출판 관계자들이 교류하는 지식의 장으로서 더할 나위가 없었다. 건물 외벽에 라틴어 ‘Patet Omnibus(모두에게 열려 있다)’가 적혀 있다고도 하는데, 평상시에도 대학 구성원뿐만 아니라 학생, 연구자, 지역 주민, 관광객 모두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었다. 우리가 참관하는 동안에도 지역 주민들이 건물 내 마당과 안뜰, 카페를 자유로이 이용했고, 새 학기를 맞아 단체로 견학 나온 아이들 역시 많았다.

    북페스티벌 프로그램 가운데서는 <스파크 에디션>(Spark Edition)이라는 전시에 오래 눈을 두었다. 이 전시는 매년 페스티벌에서 선보이는 청소년 참여 프로그램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된 아티스트가 지역 청소년의 창작 활동을 돕고 그 결과물을 전시 형태로 선보인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문학 상주 작가 지원 사업이 연상되었다. 상주 작가가 창작 워크숍을 열어 참여자들의 아이디어를 보다 창의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그 결과물을 한자리에 모아 공유하는 일련의 과정이 유사했다. 이 전시는 청소년들의 개성적이고 기상천외한 시각도 좋았지만 그 시각을 보여주는 방식 또한 특별했는데, 특히 글쓰기, 그림, 설치 미술 등 각 작업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여 다양한 형식적 변주를 시도한 것이 돋보였다. 전시 전반에 걸쳐 어떻게 해야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지 깊이 고심한 흔적이 느껴졌고, 이미지와 텍스트를 새로이 구성하고 배치한 것이 각 작품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듯했다. 매 작품을 유심히 살피다 보니 나중에는 거의 모든 작품을 사진에 담게 되었는데, 내게는 내용과 형식 모두 이제껏 접해본 참여형 전시 가운데 발군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매력적이었다. 

     


   관람을 마친 이후에는 스코틀랜드의 예술위인 크리에이티브 스코틀랜드(Creative Scotland)의 문학팀과 네트워킹을 진행했다. 문학과 출판 분야를 이끄는 앨런 베트(Alan Bett)와 북페스티벌의 문학 산업 교류 프로그램인 글로벌 잉크(Global Ink)를 담당하는 베스 코크래인(Beth Cochrane), 페스티벌 매니저인 케이트 세일러(Kate Seiler)가 참석했고, 창작자와 단체, 기관을 연결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각국의 문학계 전문가들이 국제 교류와 협업을 증진하기 위해 북페스티벌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도서를 매개로 산업적 활성화와 문화적 세계화를 도모하는 페스티벌의 의의와 목표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글로벌 잉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황석영 소설가의 토크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했는데, 하루 차이로 일정이 어긋나 직접 관람할 기회를 놓친 점은 아쉬웠으나 일찌감치 매진이 되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는 후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한국 문학에 대한 스코틀랜드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열기가 느껴졌고, 더불어 환상성과 다양성, 지역성을 선호하는 이곳의 문학적 경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

   

   국립 문예창작 센터(National Centre for Writing)는 이번 연수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였다. 우리가 에딘버러에서 기차로 여섯 시간 반이나 걸리는 노리치행을 감수한 것은 오직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실제로 방문 후에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리치가 2012년 영국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UNESCO City of Literature)로 지정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기관답게 글쓰기의 예술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이에 대한 깊은 자부심과 사명감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워크숍, 강연, 멘토링 프로그램,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글쓰기 프로그램 등 운영 중인 다양한 프로그램에서도 전문성과 체계가 느껴졌다.

   문예창작 센터가 본부로 사용 중인 드래곤 홀(Dragon Hall)은 노리치의 역사적 자산이자 자랑이었다. 과거 상업용 거래소였다는 이 건물이 무려 15세기에 지어졌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수백 년간 겹겹이 쌓인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지금도 여전히 이용되고 있다는 점 역시 경이로웠다. 물자를 교류하던 곳이 세월이 흘러 이제는 지식을 교류하는 장이 되었다는 담당자의 설명이 내게 퍽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래서였다. 노리치의 오랜 역사와 문화적 유산을 계승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노력이 이곳에 집대성되어 있었고, 국제 문학 교류를 주도하는 허브 기관으로서의 정체성과 지향점 역시 시설 곳곳에 어우러져 있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된 작가들을 위한 집필 공간과 거주 공간을 직접 살펴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드래곤 홀 코티지(Dragon Hall Cottage)라고 불리는 이 시설은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2층짜리 벽돌 주택으로 원래는 양조장장이 살던 집이었다고 하는데, 현대식 주방과 욕실은 물론, 이곳에 머물렀던 작가들의 책으로 꾸며진 작은 서재까지 갖춰져 있었다. 침실로 이어지는 좁고 가파른 계단도, 잘 가꾸어진 정원과 강의 일부가 내다보이는 전망도 모두 이색적인 운치가 있었다. 드래곤홀과 코티지를 잇는 작은 중정 역시 창작 활동과 교류 활동 모두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러한 환경적인 이점까지 더해져 이곳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전 세계 작가들로부터 손꼽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투어 후 이어진 네트워킹 시간에는 문예창작 센터의 프로그램 총괄인 홀리 아인리(Holly Ainley), 커뮤니케이션 총괄인 파올라 산체스(Paula Sanchez),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인 댄 스케일스(Dan Scales)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가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과 작가, 출판인, 담당 기관 등 문학 관련 종사자들의 지속적인 네크워크, 그리고 정부 예산을 통한 안정적인 지원 시스템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자주 언급되었다. 지역 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프로그램의 공공성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공유되었고, 그 과정에서 작가 개인의 성장을 돕는 동시에 지역의 문학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어주는 상주 작가 지원 사업이 얼마나 성공적인 모델인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작가와 지역 기반의 문학 시설, 그리고 이용자의 호흡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 사업이 2017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사실에 문예창작 센터 측에서도 놀라움과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2024년 가온도서관에서 기획하고 진행했던 소설 쓰기 워크숍 <일기도 소설이 되나요?>와 그 결과물인 소설집 『거짓말로 쓰는 일기』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할 수 있었던 것도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지역 주민들이 실제 자신을 주인공으로 허구의 일상을 만들어냈다는 점, 그리고 도서관이 자리한 서울시 중구 지역을 글쓰기의 무대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각각의 이야기에 어울리도록 배치된 중구의 15개 동(洞) 사진 역시 호응이 있었다. 이후에 문예창작 센터 측으로부터 우리가 진행했던 프로그램과 맥이 닿는 프로젝트가 있다며 『A Tapestry of tales』라는 책을 선물 받기도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드래곤홀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소재로 한 이야기 모음집이었다. 참가자들이 12주 동안 드래곤홀의 역사를 함께 공부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창작을 이어가는 커리큘럼이 흥미로웠고, 시, 팸플릿, 팝업북 등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 안에 묶는 시도 또한 신선하게 다가왔다. 결과물을 타블로이드판으로 제작하여 센터를 방문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비치해놓은 것도 팁이 되었다.


   

   다음을 도모하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와 힌트를 얻었기 때문일까. 네크워킹이 마무리될 때쯤에는 오늘 만남이 일방적인 벤치마킹이 아닌, 서로의 노력과 성과를 공유하며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창의적인 자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와 네트워킹을 이끌어준 담당자들의 따뜻한 환대와 관심 덕분에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중세 시대 때부터 국제 교류가 이어져 왔다는 이 유서 깊은 공간에 우리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어서 기뻤다.

   

   


<2024 문학기반시설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선정된 우수시설 담당자, 상주작가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문학의 나라 영국의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를 탐방하고 우수사례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5년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 6박 8일간의 참여자들의 이야기들은 문장웹진–모색 10월호에서 총 6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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