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경미 시인, 두 세계의 화해
- 작성일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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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계의 화해"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 김경미 시인(인터뷰어 : 허 희 평론가)
“시인으로서나 일상인으로서나 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고 비껴나 있고 제외돼 있다는 자의식 속에서 삽니다.”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40여 년간 일상의 미세한 슬픔과 균열을 섬세한 언어로 포착해 온 김경미 시인. 그는 오랜 세월 KBS 클래식 FM의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매일 아침 청취자들의 감성을 어루만져왔다.
시인과 방송작가라는 두 개의 정체성 사이의 오랜 불화를 지나 그는 마침내 두 세계가 서로에게 “큰 자극과 혜택”이 될 수 있음을 받아들였다. 『카프카식 이별』(2020),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2019) 등 방송 원고를 바탕으로 한 산문집은 그 화해의 증표이다. 2024년, 오랜 방송작가 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업 시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그가 2025년도 아르코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시인으로의 완전한 ‘독립’을 맞이한 작가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답을 들었다.
“두 세계의 화해”
—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와 『카프카식 이별』은 오랜 방송 작가로서의 경험이 문학과 아름답게 결합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인이자 방송 작가라는 두 정체성이 어떤 영향을 주며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말씀처럼 ‘아름답게 결합한 것’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시인으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이 느껴져서 실은 제가 5년 계약이 끝나자마자 두 책 모두 출판 계약을 종료했습니다. 그런데도 얼마전에 들렀던 서점에는 『카프카식 이별』이 여전히 매대에 놓여있던데, 재고분이겠죠. 그 재고분까지 다 소진됐다 싶을 때쯤 (다 소진될지 모르겠지만) 두 책과 그 앞의 방송원고를 바탕으로 한 산문집까지 종합적으로 합치고 수정해서 새롭게 펴낼 생각입니다.
사실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초기에는 제가 방송일을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그때는 시인이 ‘대중적인 글쓰기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 매문하듯 생각하거나 시적 능력이나 열정 같은 걸 의심하고 폄하하는 분위기가 컸기 때문에 그런 혐의에서 벗어나려고 곧 일을 그만둬야지, 강박관념이 심했었습니다. 글쓰기 자체도 라디오 원고는 철저하게 대중적인 소비글로, 시는 저만의 문학적인 글로 쓴다는 이분법이 확실했었죠. 그런데 현실 작업 시간은 라디오원고일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고, 속마음에는 시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우위다보니 그 간극에서 오는 갈등과 불화가 사실 항상 컸습니다. 그래서 그 무렵 어디 글을 쓰거나 문학잡지 인터뷰를 할 때면 방송일을 마치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을 마지 못해 하는 듯 얘기하기도 해서 방송국분 중에 불쾌해한 분도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미안한 일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을 넘어가도록 방송일을 계속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두 가지가 서로에게 큰 자극과 혜택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생각을 라디오 프로그램에 본격적으로 반영한 게 kbs 클래식fm 채널의 한 프로그램에서 시도한 오프닝시였습니다. 사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년이 될지도 모르는데 매일 시를 한편씩 쓴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죠. 그런데도 시도했던 건, 그 시들은 형식만 시형식이지 내용은 매일 써왔던 일반 라디오 오프닝과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시인이니 일반 오프닝 원고를 시형식으로 수정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고, ‘오프닝시’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것도 가능해서 시도할 수 있었죠. 시에 대한 관심을 조금은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또 저 시 쓰는 데 부딪치는 게 아니라 밑그림을 얻듯이 도움이 될 거라고도 생각됐습니다. 그래서 무모한 듯하지만 일단 시작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카프카식 이별』 - 책으로까지 출판하게 됐죠. 얘기가 장황해졌는데 여하튼 돌아보면 그 라디오 오프닝시 덕분에 제 안의 시적 소재와 자양분도 좀 더 다양해질 수 있었고, 반대로 시인이어서 그런 라디오 오프닝을 거의 삼년 넘게 매일 쓸 수 있었던 거다, 양쪽의 화해에 고마워하게 됐습니다. 그걸 허용하고 지지해준 kbs 클래식fm 채널과 방송국 담당pd분들께도 물론 크게 감사하구요. (무슨 수상소감이라도 되는 듯, 민망합니다만) 여하튼 이제는 그 라디오 시집 『카프카식 이별』에 들어가지 않은 시들을 출판하자는 제의를 받아놓은 상태입니다.”
— 1983년 등단 이후 긴 시간 동안 창작 활동을 이어오셨습니다. 아르코 펠로우십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요?
“저는 시인으로서 문학적 독립과 사회적인 독립, 경제적인 독립 등, 모든 ‘독립’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중 경제적인 독립 부분에 관한 한,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오랫동안 라디오작가일을 계속 하면서 꾸준히 지켜왔는데 2024년에 마침내 일을 그만뒀습니다. 라디오작가는 프리랜서니 정해진 정년 시기가 따로 없지만 그래도 그때 제 나이로 보면 일종의 완전한 정년퇴직이었죠. 그게 한편으론 성인이 되고 거의 처음으로 마침내 전업시인이 된 거라서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컸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아르코 펠로우십 선정 소식을 들으니 마치 전업시인에의 축하와 격려, 적극적인 응원과 지지인 듯이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다른 지원자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아주 컸습니다. 특히 저처럼 직업이 있는(지원 직전까지 있었던) 지원자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졌거나, 혹은 정말로 당장의 생계가 막막할 정도의 전업 시인 지원자도 있었을 듯해서 그 미안함이 더욱 더 컸고, 지금도 여전히 큽니다. 다만 지원 자격이 애초부터 경제 상태를 중점으로 둔 공모는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그 미안함의 크기를 잠깐씩 줄이기는 하죠.
그런가하면 아르코 펠로우십의 경우 지원 내용도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선정에 따른 책임감도 몇배 크게 느끼며 지냅니다. 책임감이라기보다 선정의 고마움에 대한 자발적인 환원 의지랄까요. 개인적인으로 보다 적극적인 문학 활동은 물론 문학 자체에 대한 기여 방식 등에 대해서도 나름 많은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 이번 펠로우십 기간 동안에는 어떤 작업을 구상하고 계신지요?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이미 마친 작업으로는, 펠로우십 지원 때 약속했던 산문집 발간을 마쳤습니다. <모네와 카유보트는 왜 트루빌로 갔을까?>라는 제목의 미술산문집인데 고흐며 모네, 피카소와 카유보트 같은 화가들의 바다 그림만을 모은 산문집입니다. 2년 넘게 들여다보다가 말다가 하면서 시간을 끈 산문집이라 출판사쪽에 아주 미안한데 어쨌든 펠로우십 기간 동안에 발간하게 돼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작업으론 시선집과 일곱 번째 시집 발간,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책들의 개정판 발간과 새로운 산문집 발간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시선집의 경우 이전에 발간된 6권의 시집에서 가려뽑은 시들을 모았는데 그 중 첫 번째 시집에서 가져온 시들은 많이 수정했습니다. 사실 그 시집(『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의 경우, 오래 전에 복간 제의를 받았었는데 제가 대폭 수정 발간을 고집하는 바람에 취소가 됐습니다. ‘시를 크게 수정하면 원래의 시집 그대로를 복간한다는 의미와 의의가 사라진다’는 출판사 대표의 원칙 때문이었는데 맞는 말이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집에 채 담기지 못한 그 무렵의 시적 정서나 언어들을 늦게라도 가미하고 싶어서 뭔가 비겁한 채색 행위 같다는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양심껏(?) 고쳐서 포함시켰습니다.
7번째가 될 새 시집의 작품들엔 줄창 제 내면으로만 향했던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려는 노력을 담으려 하고 있습니다. 시적 주제나 언어며 형식에도 순하면서도 깊은 변화를 꾀하려는 중인데 잘 되어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심 바깥에서, 고독과 슬픔을 긍정하며”
—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라는 제목처럼, 작가님의 작품은 늘 중심에서 비껴난 존재들의 쓸쓸함과 미세한 마음의 균열을 섬세하게 포착해왔습니다. 일상 속에서 시적 순간을 길어 올리는 작가님의 눈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요? 그리고 그 시선으로 포착한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슬픔’ 혹은 ‘고독’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문학관련 인터뷰에서 이 책 얘기를 듣는 건 처음이어서 굉장히 색다른 느낌인데요, 우선 저는 시인으로서나 일상인으로서나 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있고 비껴나있고 제외돼있다는 자의식 속에서 삽니다. 그러니 제겐 아무래도 저와 같은 변방의 존재들이 자주 눈에 띄고 그들의 모습이나 감정들이 자주 포착됩니다. 시도 그 포착을 따라갈 수 밖에 없죠.
그런데 사실 저는 내 삶이나 내 존재 위치가 중심인지 아닌지, 좋은지 나쁜지에 상관없이 인간은 근본적으로 쓸쓸하고 고독하며 모순되고 그래서 슬픔을 머금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이해해야 인간의 삶의 질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현대사회는 그런 쓸쓸함이나 고독이며 슬픔을 갈수록 오히려 죄악시하거나 질병화하니 그게 바로 우리 시대의 큰 슬픔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걸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 만큼의 몫과 비중이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시의 곁을 지켜오셨습니다. 창작을 지속해 오면서 ‘쓰는 이유’나 ‘문학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오래 시를 쓰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무엇인지 여쭙니다.
“사실 등단 전에는, 굉장히 어이없는 얘기지만, 제가 문학 천재인 줄 알았었습니다. 그러다 아니란 걸 알았는데 이미 문학이 너무 깊이 체화돼 있어서 떼어낼 수가 없었죠. 그리고 제가 인간으로는 문제가 많은 사람인데 그걸 그나마 용납하고 품어주는 게 예술이어서도 손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또 한편 제게 문학의 역할은 처음에는 ‘나만의 토로’였습니다. 내 상처를 토로하고 누군가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내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자유와 치유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차츰 그 토로와 자유와 치유에 가만히 타인과 세상을 동참시키고 싶어진 것, 그게 문학의 역할에 대한 생각 변화라면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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