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우리 아동청소년문학가, “앉아서만 쓰지 않겠다… 높이뛰기 선수 만나며 세계 확장”
- 작성일 2025-12-18
- 댓글수 0
“앉아서만 쓰지 않겠다… 높이뛰기 선수 만나며 세계 확장”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 조우리 아동청소년문학가(인터뷰어 : 허 희 평론가)
“어쩌면 제 안의 철들지 않은 십 대가, 자라지 않은 청소년이 저를 대신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19년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수상한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부터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오, 사랑』에 이르기까지, 조우리 작가는 위태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상처와 성장을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왔다.
특히 최근작 소설집 『사과의 사생활』(2023)에서는 여성 청소년의 성적 욕망을 다루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2022)를 통해서는 상실의 슬픔을 통과하는 묵직한 위로를 건넸다. 청소년들의 가장 내밀한 목소리를 대변해 온 그가 2025년도 아르코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펠로우십 선정을 계기로 컴퓨터 앞을 떠나 더 넓은 세상 속으로 ‘취재’를 떠나기 시작한 작가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답을 들었다.
“여성 청소년의 욕망, ‘굳이 알 필요 없는 것’은 없다”
최근작인 소설집 『사과의 사생활』에서는 그간 청소년 문학에서 잘 이야기되지 않았던 여성 청소년의 성적 욕망을 다루며 청소년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작가의 말에 자세히 써두어 그 부분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표제작인 <사과의 사생활>은 여성 청소년의 성교육에 관련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쓰게 됐다. 현재의 학교 성교육은 임신과 출산, 남성 청소년의 성욕과 해소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성 청소년들을 위한 성교육은 다음 두 가지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훗날 임신을 위한 기관로서의 신체를 소중히 해야 한다거나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피임 방법. 사실 이조차도 많이 발전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정도의 성교육도 과하다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 그들의 욕망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까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혈기왕성하게 성욕이 끓어오르는 건 십대 남자애들 뿐만이 아니다. 음지화된 호기심을 sns 상의 일탈계, 섹트 이런 것들로 해소하려고 하다가 범죄와 연결되고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기도 한다. 가끔 양육자들은 ‘굳이 알 필요 없는 것들’을 지금 알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당연하다. 지금 알아야 한다. 나중에 어떤 루트로 알게 될지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 있다면 지금, 여기서, 제대로 된 어른들이 알려주는 게 가장 낫다. 여성 청소년의 몸과 욕망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길 바란다.‘”
“앉아서만 쓰지 않겠다… 높이뛰기 선수 만나며 세계 확장”
작가님께 이번 아르코 문학작가 펠로우십 지원 사업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펠로우십 지원 사업을 신청하며 컴퓨터 앞에서 앉아서만 쓰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결심했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서도 제출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내성적인 제가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고 발로 뛰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웠는데 문서화하는 순간 개인적으로 꼭 넘어야 할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올해 청소년 스포츠 소설을 쓰면서 남쪽 도시로 내려가 처음으로 청소년 높이뛰기 선수를 직접 만나고 부모님과 코치를 인터뷰하고 실제 연습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며 첫 취재를 해보았습니다. 이야기가 훨씬 생생해지고 구체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저의 세계도 함께 확장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확장된 작가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창작물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나온 창작물은 독자에게 보다 넓고 낯선 세계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번 펠로우십 기간 동안에는 특별히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으신가요?
“부동산 불균형과 지방 도시의 소멸이라는 주제는 청소년 소설과 큰 연관이 없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삶이 걸려 있으니까요. 정부의 정책이나 주양육자의 주거지 이전 등의 이슈는 아이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행을 미칩니다. 아이들이 인식하고 있는 ’나의 동네‘, ’나의 집‘ ’나의 공간‘ 등에 대해 이런 문제들과 연결지어 쓰고 싶어 고민하는 중입니다. 또한 많은 청소년 소설의 배경이 서울과 수도권 지역인 것 또한 지방의 독자들을 소외시킬 수 있기에 보다 다양한 도시와 설정, 장소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엄마가 되며 생긴 책임감… ‘너만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작가 되고파”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겪어내는 시간을 그려내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슬픔을 통과하는 방식은 무엇인가요?
“말씀 주신 대로 이 책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지극한 슬픔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삶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누군가의 슬픔을 마주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곁을 내줄 수 있을지, 나를 살게 하는 말은 무엇인지 오롯이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게 되었습니다. 슬픔을 올바르게 통과하는 방식을 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가끔 더 어른들에게서 듣는 말 ’살면 살아진다.‘는 말에서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무너지는 마음을 안고도 끼니를 해 먹고 집을 치우고 생활을 챙기며 일상을 살아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누군가를 서로 알아보고 눈을 바라보는 것. 체온을 나눠주는 것. 함께 우는 것. 그렇게 시간을 견디며 조금씩 무뎌지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홀로 외로워하는 존재들이지만 슬픔을 통해 이어질 수 있다고 믿어요.
이전에는 슬픔과 절망이란 감정이 부정적이고 최대한 피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감정들의 원인은 그 정반대에 기대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좀더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되었어요. 예컨대 슬픔은 너무나 기뻐봐서, 절망은 희망을 가져봐서, 외로움은 함께를 경험해봐서 선명하게 다가오는 감정이니까요. 한 쌍, 혹은 한 세트처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보다 불가피하다면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하며 잘 견디어 나가고 싶어요. 작품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살아봐야 알 것 같습니다.”
청소년 독자들과 소통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지요?
“청소년 독자들과 소통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처럼 생각하고 그들처럼 말하며 동시에 어떻게 꼰대가 되지 않고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입니다. 가르치려고 하거나 교훈적인 이야기는 아이들을 뒷걸음치게 만들고 마음을 닫게 만들어 가닿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십대의 삶을 재연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없을테고요. 독자들이 읽고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최근 몇 년간의 작품을 돌아볼 때, 작가님이 스스로 인식하는 창작의 변화 혹은 전환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의 전환점은 아이를 낳고 책임지면서 어른이 되었다 자각한 순간인 같습니다. 저는 굉장히 내향화된, 방구석 사람이었거든요. 관심사나 타인에 대한 이해, 흥미 등도 한정적이었고 저를 둘러싼 작은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좋게 말하면 개인적, 솔직히 말하면 이기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세상에 내놓고 보니 아이가 살아갈 세계와 그 안의 타인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더군요. 아이가 자라면서 그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제 안에 다른 시선이 태어나게 된 거죠. 예를 들면 비 오는 날 달팽이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먹구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까, 왜 옆집 할머니는 처음 본 아이와 나에게 그렇게 환하게 웃어주는 것일까부터 우리 나라는 왜 이렇게 아동보호법이 약하지? 약한 존재들에 대한 보호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동물권이나 차별금지법은? 환경오염은? 혼자라면 하지 못했을 생각들이 생기면서 세상과 저의 관계가 재정비되고 확장되었습니다, 저는 그게 저에게 성장의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어요.“
첫 수상작의 제목처럼 많은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들이 기꺼이 맞이하고 싶은 ‘스무 살 이후’의 삶을 상상하게 하고 싶으신가요? 작가님의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청소년들에게 어떤 ‘희망의 증거’가 되기를 바라시는지 여쭙니다.
”어떤 이야기를 시작할 때 무척 막막한데, 이상하게도 화자를 청소년으로 설정하고 나면 무엇을 쓸 것인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제 안의 철들지 않은 십대가, 자라지 않은 청소년이 저를 대신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꺼이 맞이하고 싶은 스무 살 이후의 삶이나 희망의 증거가 되는 이야기를 제가 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십 대의 불완전하고 혼란한 감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꺼내주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런 우울도 혹은 저런 불안도 뭔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 너만이 아니라고, 멀쩡해 보이는 애들도 심지어 다 큰 어른들도 공평하게 그런 것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준다면 다른 의미로 그것도 ‘희망의 증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모색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 권예진
- 2026-09-01
문장웹진 모색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 2026-09-01
문장웹진 모색
30년 만에 만난 호주[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